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04
약먹는 천재마법사 504화
중간결산(5)
박사의 말에 따라서 다른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신상의 손 위에 올라탄다.
레녹 역시 앞에 놓인 여덟 번째 손에 올라타려던 순간, 등 뒤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유물이 아닌 정보의 경우에는 그 진위성을 어떻게 검증하지?”
꺽다리 인형, 체비엔이 턱을 삐걱거리며 물었다.
“행여나 때려 맞춰서 성과를 위증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구세계의 정보를 입력해서 실제로 성과를 낸다해도, 아무렇게나 지어냈다 얻어걸리는 경우에는 어떠한가.
앞뒤 정황을 설명할 수 없는 정보 따위를 제대로 된 성과로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사브리나의 언령술을 빌렸다. 애초에 신상을 제작할 당시부터 그녀의 도움을 받았지.”
박사가 그렇게 말하며 털뭉치의 몸으로 사브리나를 가리켰다.
“그녀의 언령술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입력한 시점에서 술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근거를 지니고 있는지 교차검증한다.”
“교차검증이라고?”
“뭐,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야.”
사브리나가 신상의 무릎에서 폴짝 뛰어 내려와, 가장 왼쪽에 내려놓은 신상의 손바닥 위에 올라탔다.
거대한 손바닥 위에 무릎 꿇은 채 수인을 맺은 사브리나가 마력을 끌어올리자, 신상에 새겨진 고대문자가 빛나기 시작했다.
치이익……!!
사브리나의 발 아래 쪽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듯이 새롭게 새겨진 문자배열의 모습.
동시에 손바닥을 타고 기어 올라온 무수한 문자의 배열이 첫 번째 팔 전체를 뒤엎고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손을 털고 일어선 그녀가 자신이 새긴 배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마력패턴을 입력하면 끝. 그럼 신상에 내재된 내 언령술이 작동해서 술자 자신이 거짓을 말하는지 알아낼 수 있어.”
“…….”
“마력패턴을 이렇게 각인해 봤자 오래 남지 않는 거 다들 알지? 흔적이 남을 걱정은 하지 말고 빨리빨리 끝내자고.”
사브리나의 말이 끝나자 하나둘씩 신상의 손바닥 위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쿠구궁……!!
신상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굽어지며 마치 올라탄 사용자를 보호하듯 감싸 안고, 여덟 갈래 팔이 제각기 다른 높이로 떠올랐다.
소류나 마이야, 버논과 같은 멤버들 역시 각자 수인을 맺고 마력을 끌어올려, 능숙하게 자신이 올라탄 신상의 손바닥에 마력을 각인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각인시킨 마력배열의 형태가, 신상의 각 팔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뒤바꾸고 있다는 점일까.
쩌적……!!
소류가 손을 댄 신상의 팔이 통째로 얼어붙은 차가운 서리가 끼기 시작한다.
버논이 마력을 박아넣은 곳에서 짙은 알코올 냄새가 흘러나오고, 혈노가 손을 댄 팔에서는 찐득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거대한 꼭두각시의 팔로 바뀐 인형이 손댄 팔과 털이 수북히 나기 시작한 근육질의 남자가 손댄 팔까지.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마이야가 올라탄 신상의 팔이었다.
키리릭……!!
빈틈없이 들어찬 밀도높은 마력배열이 신상의 손바닥 위에서 선명하기 그지없는 존재감을 뿜어낸다.
신상의 손바닥을 깊숙하게 파고든 배열이 외려 신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을 잡아먹으려 들 것만 같다.
동시에 팔의 형상 자체가 거대한 톱니바퀴의 형태로 변해 실시간으로 다시 조립되기 시작한다.
신상의 형태에 자신의 마력을 반영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신마력의 힘만으로 신상 자체의 성질을 바꿔버릴 듯한 기세.
마이야에게 멀리 떨어져서 지켜보던 레녹조차 그 숨길 수 없는 저력에 살짝 감탄했을 정도.
단순히 위계를 초월한 수준이 아니다.
8레벨에 도달한 뒤에도 그녀가 끊임없이 스스로를 갈고 닦아, 굉장히 높은 수준의 경지에 다다랐다는 증거.
기계도시 마키나의 핵심 프로젝트, 승천문의 실패에 대한 집착으로 방황하는 망령.
그만큼 마이야 렌슬릿이 스스로를 갈고 닦는 수준은 범인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한참 초월해 있겠지.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려던 순간.
신상의 손가락 위에 걸터앉아 있던 근육질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잠깐만, 이대로 결산을 진행하기엔 숫자가 하나 안 맞잖아.”
“로기어, 무슨 말이지?”
“뒤쪽에 서 있는 저거. 이번 결산에 참가하려는 놈 아닌가?”
로기어라 불린 남자가 힐끗 극장 무대 뒤편에 서 있던 그림자를 가리켰다.
레녹이 극장 안에 들어온 시점부터 꿈쩍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던 형체가 하나.
아무런 기척도, 반응도 없지만 그것이 살아 숨 쉬며 이 공간에 우두커니 서 있다는 사실 자체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굴러들어온 돌이 둘 있으니, 둘 중 하나는 자리를 비켜줘야 하잖나.”
레녹을 보며 씩 웃은 로기어가 말했다.
“깔끔하게 둘이 붙어서 결판을 내자고.”
속내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노골적인 로기어의 제안.
하지만 레녹은 굳이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피식 웃었다.
박사 역시 그런 로기어의 제안이 꽤 재밌게 들렸는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는 없다. 저건 이번 결산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멤버가 아니니까.”
“……아니라고?”
로기어가 살짝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표정을 찡그렸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겠군.”
박사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사브리나가 극장의 조명 스위치를 켰다.
찰칵!
천장에 매달린 낡은 조명들 중 하나에 불이 들어오며, 인영이 서 있는 자리를 정확하게 비춘다.
조명 아래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무표정한 사자거인의 모습. 레녹은 저 거인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블레이버 마탑 서대륙 지부에서 날뛰었던 복마전의 백사자, 투란.
직접 숨통을 끊어 아그네타에게 시체로 넘긴 사자거인이 버젓이 이 자리에 살아 있음에도, 레녹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멀쩡하게 숨을 쉬고, 두 발로 선 채 균형을 잡고 있지만 그 눈동자는 어딘가 혼탁하고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
극장에서 그 존재를 확인한 시점부터 레녹은 투란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로기어 역시 투란이 멀쩡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표정을 확 찌푸렸다.
“그쪽과는 활동영역이 겹치는 일이 없어서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한때는 조직의 멤버였던 친구지.”
박사가 부드럽게 말했다.
“죽은 시체를 그냥 부려먹고 있다는 거냐?”
“손상된 머리를 유전자 재생으로 만들어 이식했다. 대뇌는 완전히 재생되지 않아 백치가 되어버렸지만, 힘쓰는 일에는 아주 듬직한 친구가 됐지.”
“……하.”
그제서야 눈앞의 백사자가 이 신상을 여기까지 운반한 장본인임을 깨달은 로기어가 날카로운 웃음을 내뱉었다.
“보아하니 그쪽도 힘 쓰는 일에는 꽤 자신 있어 보이는데. 피치못할 사정이 생긴다면 미리 언질을 주면 좋겠군.”
박사가 능청스레 첨언했다.
“그 좋은 몸으로 본전도 뽑아내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 아깝잖나.”
로기어가 코웃음을 쳤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군. 꿈도 꾸지 마.”
“어쨌든 그는 이번 결산의 참가자가 아니야. 그러니 빅터가 결산에 참가할 자리 역시 남아 있는 셈이지.”
박사가 레녹을 향해 눈짓했다.
“계속할까?”
“…….”
레녹은 말없이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신상의 여덟 번째 손바닥 위에서 수인을 맺었다.
우웅……!!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성질과 패턴을 모조리 비틀어 변질.
조작계통의 특질계 술사에게 어울리는 형태와 색채로 통째로 탈바꿈한다.
끌어올린 마력을 신상의 손바닥 위에 흘려넣은 그 순간.
지지직……!!!
알 수 없는 노이즈와 함께 신상의 팔의 형태 자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새카맣고 이질적인 묵색의 마력에 갇힌 채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듯이 뒤집히고, 가지런히 놓여 있던 신상의 손가락과 팔이 경련하듯 꿈틀거린다.
드드득!!
마치 있어서는 안 되는 조작명령을 받은 듯이 제자리에서 발작하는 신상의 여덟 번째 팔의 모습.
다른 이들 역시 다소 흥미로운 기색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특질계 술사라 그런지, 마력 주입도 괴상하기 그지없군.”
“저걸 배열을 각인했다고 할 수 있나……?”
잠깐 발작하던 신상의 팔은 이내 잠잠해졌지만, 그럼에도 간간이 팔을 타고 흐르는 묵색의 마력이 당장이라도 팔을 없애버릴 것처럼 점멸하고 있다.
“으으으으음…….”
굉장히 못마땅한 것처럼 침음성을 흘리던 털뭉치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신상의 기능에는 문제가 없어. 단순히 특질계 마력의 주입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이다.”
“그렇다면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끌렸어. 나부터 시작하지.”
탁!!
산양의 뿔을 깎아 만든 듯한 뿔피리를 꺼내놓은 로기어가 말했다.
“중부도시 크리벤에서 찾은 2세계의 유물, [강심의 뿔피리]다. 사용조건은 5레벨 이상의 육체능력자. 구체적인 능력은 강력한 고양을 통한 정신내성 획득. 최대 적용범위는 1000명 이상.”
10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정신내성 능력을 부여할 수 있는 유물이란 말인가.
로기어가 뿔피리를 자신이 마력을 주입한 신상의 손 위에 내려놓고 물러난 순간, 신상의 손이 움직여 그대로 뿔피리를 움켜쥔다.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이 신상의 눈동자를 향했다.
두 개의 얼굴, 각 얼굴에 감겨 있는 다섯 개의 눈동자가 왼쪽부터 하나씩 뜨이기 시작하고.
끼릭, 끼릭, 끼릭, 끼릭!!
신상의 얼굴에서 활짝 뜨여진 네개의 눈동자가 말없이 사방을 주시했다.
다른 멤버들이 조용히 감상을 중얼거렸다.
“인과조정치 4단계 정도인가? 나쁘지 않은데.”
“2세계의 유물이나 규칙은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걸 생각하면 꽤 높은 가치를 지닌 유물이겠어.”
사브리나와 소류의 평가가 나쁘지 않다.
가장 먼저 나선 로기어가 신이 난 것처럼 말했다.
“당연하지, 크리벤의 봉인성채까지 뒤져서 찾아온 물건이라고. 싸구려였다면 거기를 지키고 있던 놈들을 다 죽여버렸을 거다.”
“…….”
그 사이 바로 옆에 서 있던 사브리나가 언령주 뒤에서 묵직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쿵!!
묵직한 자루 속에서 거대한 외팔 남성의 조각상을 꺼내 든 사브리나가 말했다.
“남서부 라마슈리아 성당에 보관되어 있던 [첨완의 신상]. 일대 400m 범위에 일괄적으로 출혈을 부여하는 술식이 걸려 있어.”
조각상을 신상의 손 위에 내려놓자, 똑같이 주먹이 다시 쥐이고 신상의 눈동자가 하나씩 뜨여진다.
눈동자 셋. 그중에서도 마지막 눈동자는 완전히 뜨여지지 않은 정도.
사브리나가 분한 듯이 중얼거렸다.
“이건 말도 안 돼. 얼마나 어렵게 구해왔는데 조정 3단계도 안 된다고?”
“조각상은 일반적으로 범용성이 낮아 조정 변동성이 떨어지지. 차라리 조각상을 받치는 초석같은 게 더 가치가 있을 정도니까.”
“어차피 언령술 때문에 조정치가 낮아도 상관없잖나.”
“다 했으면 내 차례다…….”
사브리나에 이어서, 석판 사방에 아무렇게나 모여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성과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앞선 두 사람이 각자 수집해 온 구세계의 유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꺼내 놓는 이들도 몇 명 있었다.
한 번 결산을 끝낸 이들끼리는 신상의 손에서 내려와 다른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싸늘한 침묵이 흐르던 것과는 반대로 꽤 적극적인 분위기.
“북부 사자의 첨탑에서 이능개화전단의 전진기지를 발견했다. 자세한 정황을 듣고 싶다면 따로 말해.”
“헤드로 군벌의 장성들 중 하나가 죽었다. 시체는 주문연맹에서 보관하고 있지. 정확한 장소는 이쪽에…….”
“20년전에 요르타에서 실종된 군령술사의 술식병장이 지저 경매장에 나왔다. 아마 두 달 뒤에 카탈로그에 게시될 거야.”
단순히 구세계의 유물을 수집한 성과가 아니더라도, 그를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걸까.
레녹은 말없이 순서를 기다리며 돌아가는 상황을 흥미롭게 응시했다.
체비엔과 버논이 각자 손에 넣은 구세계의 유물을 꺼내 들어 올려놓는다.
마이야 역시 기계장치처럼 생긴 작은 박스를 내어놓고 물러섰다.
신상의 손이 주먹을 쥐는 것과 함께 두개의 머리위에 새겨진 눈동자가 쉴새없이 깜박였다.
결산에 제출된 대부분의 유물이나 정보가 3단계에서 5단계 사이. 신상 한쪽 얼굴의 눈 다섯 개를 건드리는 선에서 멈춘다.
마이야가 내놓은 물건만이 6단계에 도달해 두 번째 얼굴의 눈을 꿈틀거리는데 그쳤을 뿐.
유물 자체의 능력이나 기능만큼이나, 기존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얼마나 큰 변동성이 관측되느냐 역시 중요한 문제라는 말이겠지.
다른 여섯 명의 차례가 끝나고, 아직까지 아무것도 내놓지 않은 사람은 차가운 얼굴로 앉아 있던 소류와 레녹 두 사람뿐.
“내 차례군.”
다른 이들의 시선이 모이기 시작하자, 소류가 먼저 손가락을 까닥였다.
키리릭!!
동시에 그의 팔목 안쪽에서 풀려나온 길쭉한 팔찌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손바닥 위에 올라섰다.
싸늘한 목소리로 소류가 말했다.
“카바힘 왕가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1세계의 유물, [666번제 구속법구]다.”
그 설명을 듣자마자 석판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침음성.
“음…….”
“1세계의 넘버링을 구해왔단 말인가?”
“대단하군요……. 앰버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품목으로 기억하는데.”
“이 중에서는 가장 가치가 높은 물건이겠어.”
어딘가 기대가 담긴 시선과 함께 신상이 주먹을 쥐고, 눈동자가 빠르게 뜨여지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제출했던 유물이나 정보들 중에서는 가장 빠른 속도.
순식간에 조정치 5단계를 넘어선 신상의 눈동자가 여섯 번째로 완전히 반개하고, 일곱 번째 눈동자를 막 뜨는 상태에서 멈춰선다.
“인과조정치 7단계 근처인가.”
“1세계의 넘버링이야. 기존의 데이터를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변동성이라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박사가 한동안 바빠지겠군…….”
“하나만 더.”
다른 이들이 그렇게 수군거리는 사이, 소류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입을 열었다.
“카이우슈 쪽 준비가 거의 끝났다. 제벽이 자리를 비우는 즉시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다. 참가할 생각이 있다면 따로 얘기해.”
“……”
삽시간에 사위가 조용해지는 모습.
역시 소류가 그때 카이우슈에 있던 것은, 대천사의 눈물을 손에 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이레아가 말했던 대로 카이우슈에 숨겨진 무언가를 위해 작업을 치고 있던 중이겠지.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평범한 일은 아닌 듯 한데, 당장 레녹이 그것을 묻지 않는 이상 알 방법이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이제 저 친구 하나 남았나?”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가지고 왔는지, 한번 확인해 보자고.”
소류의 말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레녹에게 모여드는 시선.
체비엔은 물론이고, 버논이나 사브리나, 소류와 마이야까지 그를 주시하고 있다.
원래는 계획되지 않은 멤버가 이 자리까지 찾아왔다면, 필히 그만한 물건이나 정보를 들고 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시선에 섞인 노골적인 호기심과 기대를 고스란히 느끼며 레녹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 시점에 참가한 게 정답이었나?’
단순히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였다면 레녹도 적당한 유물을 던져주고 넘길 생각이었지만, 그것과는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
서로의 성과를 확인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그 성과 자체를 평가하고 보상을 받으려는 느낌.
이런 분위기를 주도한 장본인이 박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조정치 단계를 평가한 다음 그에 걸맞은 대가를 받는 식일 터.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레녹에게 손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의 성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구세계의 법칙과 관련이 있는 성과이면서도, 당장 레녹에게 어떤 리스크도 없을 법한 결과물.
망설일 필요는 없다. 이런 상황을 생각하고 굳이 지친 몸을 이끌고 복마전에 다시 얼굴을 비춘 것이 아니었나.
레녹이 지닌 정보를 가장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는 최고의 타이밍.
흐물거리는 노이즈가 낀 신상의 손 위에서 마력을 담은 전성을 속삭였다.
“귀도 교단 내부의 물자보급과 인력수급이 당분간 크게 어려워질 거다. 교단을 상대로 무언가를 하고 싶으면 지금이 적기겠군.”
“뭐?”
“교단 10사도 암리타가 사망했다. 그녀의 사도술식은 당분간 사용할 수 없을 거다.”
“……!!”
전혀 예상치 못한 레녹의 말에, 다른 이들이 빠르게 신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레녹의 말을 들은 순간,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여덟 번째 손이 강하게 주먹을 움켜쥔다.
방금 그 정보 자체를 구세계의 규칙과 강력한 연관성이 있는 정보라 판단했다는 의미.
키이잉!!
동시에 신상의 눈동자가 지금까지와는 한결 다른 속도로 만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