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06
약먹는 천재마법사 506화
중간결산(7)
새파란 폭발광이 극장 전체를 비추고 어둠 사이를 환하게 밝혔다.
파아아앗!!
평범한 사람이라면 대번에 눈이 멀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시야의 한계를 아득하게 뛰어넘은 광량.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인 어느 누구 하나 폭심지에서 시선을 돌리는 이 하나 없다.
마나 공명 소이탄의 위력이 심상치 않음을 인지했기에, 외려 로기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타이밍이 거의 완벽했어.”
“공간전이를 이용해서 폭탄을 쑤셔 박으니 반응하기 어렵군. 저게 바로 특질계 공간조작 술식인가?”
“이물질을 감지한 순간 그대로 뱉어내야 하는 건가. 까다로운데.”
“당연히 나라면 할 수 있다……. 웨어울프답지 않게 영 둔해 빠졌군…….”
레녹의 폭발에 당황하기는커녕 감탄하거나, 로기어의 느린 반응을 타박하는 이들의 모습.
여기서 로기어가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레녹은 그런 멤버들의 반응을 흘려들으며 곧바로 한 번 더 공간전이를 사용했다.
암리타와의 전투를 통해 공간조작에 대한 이해도를 대폭 끌어올린 지금, 레녹은 대천사의 연민에 담긴 능력조차 제 것인 양 꺼내 쓰고 있다.
공간을 다룬다는 본질적인 개념에 깊이 닿을수록, 파생되는 술식이나 아티팩트의 응용 역시 다채롭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천사의 연민에 담긴 공간전이 능력 자체를 추출해 손에 넣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릴없는 상념과는 달리 레녹의 마력은 의지에 비견되는 기민한 속도로 움직인다.
눈부신 섬광 사이로 타들어가는 로기어의 머리 위에서 소이탄 다섯 발을 광채를 터트리며 회전.
사그라들던 폭발이 한 번 더 눈부시게 타오르며 열기의 광선을 쉴 새 없이 내리꽂았다.
그 손속에 다른 멤버들의 안색도 살짝 변했다.
“……한 번 더 한다고? 공간전이를 연달아 성공시켰다면 마력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
“아직도 여력이 남아 있었나.”
“살짝 맛이 간 것 같은데, 슬슬 말려야 하지 않을까?”
“말려? 폭탄을 입마개라고 생각하는 놈을?”
콰아아아앙!!
로기어가 서 있는 자리를 압축해서 노리는 국소규모 지정 폭발. 하지만 그 여파만으로 일대 공기가 달아오르고 휘청인다.
먼지 쌓인 채 서 있던 관객석이 파도처럼 쓸려나가고, 조명 거치대가 휘청이며 떨어지다 쇳물이 되어 녹아내렸다.
광량의 흐름이 조금씩 약해지고, 열기가 사그라들며 조금씩 희미해지려던 그 순간.
콰직!!
폭발의 중심에서 무언가를 씹어 삼키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열기가 빨려 들어간다.
으드드득!!
마치 이빨로 쇠를 씹는 듯한 기괴한 소리와 함께 불길 사이로 걸어 나오는 로기어의 모습.
아직 목구멍에 남은 열기가 가시지 않은 것처럼 푸르스름한 불꽃을 토해낸 늑대가 형형한 안광을 흘리고.
부서진 유리관의 잔해가 꽉 다문 이빨 사이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입을 꾹 다문 채로 반인반수의 육신을 부르르 떨던 로기어가 그대로 고개를 휙 돌리고 숨을 토해냈다.
“우웨에에엑!!!”
콰아아아!!!
동시에 로기어의 입안에서 터져 나온 나머지 열기가 극장 관객석 사이를 그대로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하아, 하아, 하아아아……!!!”
거칠게 숨을 토해내는 로기어의 온몸에서 터질 것만 같은 마력이 준동하고, 털 아래 새겨진 술식각인이 쉴 새 없이 번뜩였다.
목 안쪽에서 회전하는 마력에 섞여나온 의념이 선명한 심상이 되어 공진했다.
웨어울프를 중심으로 거대한 기류가 회전하는 것만 같은 살벌한 환상.
로기어는 입안에서 터트린 소이탄의 열기를 버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열기를 뱃속에 그대로 삼켰다가, 마치 토해내듯 신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뱉어내 피해를 순식간에 최소화해 버린 것이다.
마력과 심상의 조화, 맨정신으로는 시도할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절기.
강인한 짐승의 육신이라 해도 식도와 내장까지 선천적으로 튼튼한 것은 아니다.
로기어 자신이 크로켄 아실러스에 필적하는 괴물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소우주 심상에 기반한 능력일 터.
‘탐욕이나 식성과 관련된 심상인가. 아니면 소화, 폭식?’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로기어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양다리를 활짝 벌리고 허리를 숙인 채 어깨를 풀면서, 형형한 눈길로 레녹을 노려본다.
“신상에 열기가 닿지 않게 토하느라 애 좀 먹었다. 덕분에 위장이 좀 많이 상했군.”
“…….”
“하지만 네 머리통은 씹어 삼켜도 토해주지 않을 거다.”
늑대인간의 입꼬리가 길쭉하게 찢어졌다.
“그러니 애걸복걸하기 전에 미리 고민해 두라고.”
“짐승 주제에 재밌는 말을 하는군.”
레녹이 피식 웃었다.
“혓바닥을 자르고 뱃속에 직접 소이탄을 쑤셔 박아도 버틸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한번 해봐.”
로기어가 천천히 자세를 낮추며 고개를 기울였다.
“네 입을 길게 찢어서 거기 담긴 비밀을 전부 전해 듣기 전에.”
살벌하기 그지없는 선언.
로기어가 이 자리에서 소우주를 꺼내든 이상 충돌은 피할 수 없다.
한발 앞으로 걸어 나온 레녹이 점멸 술식을 예열하며 마력을 끌어올리고.
로기어가 한 손으로 입을 쭉 벌리고 마력을 회전히켜 전신의 감각을 돋군 찰나의 순간.
신상의 위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사가 입을 열었다.
“둘이 치고 받는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러다 정산을 받지 못해도 괜찮겠나?”
그 말에 살기를 미친듯이 흩뿌리던 로기어가 역관절 다리를 멈춰 세웠다.
“……뭐?”
“슬슬 신상의 작동 시간이 끝나가는군. 출력 제한이 걸려 있어서 시스템을 오래 유지하기 어려워.”
태평하게 대꾸한 박사가 털뭉치로 만들어진 몸을 마구 흔들었다.
“조금 더 끌리면 정산 자체가 어려워질거다. 그래도 괜찮겠다면 계속하지. 솔직히 난 이대로 싸움을 구경해도 나쁘지 않은데 말이야.”
박사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곧바로 반응했다.
“뭐,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그건 곤란하지……. 결산에 참가한 의미가 없어지지 않나…….”
“으흐흐,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한심한 놈들.”
음침한 혈노의 웃음을 흘려들으며 레녹이 박사에게 물었다.
“신상의 작동 시간이라는 게 정확하게 무슨 의미지?”
“뭐, 지금까지 설명을 들었으면 알겠지만 이건 구세계의 정보를 다루는 컴퓨터다. 전원을 켜고 시스템을 구동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정해져 있고, 다 소모하면 동력을 보충해야 하지.”
박사가 신상의 정수리를 탁탁 두들기며 대답했다.
“물론 실시간으로 백업해서 정보를 저장해놓긴 하지만, 한번 작동이 끝나면 다음 결산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대답하지 않는 레녹을 보며 박사가 웃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쪽이 터트린 폭발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
눈치채고 있었나.
레녹은 방금 로기어를 공격하며 폭발의 화력을 신상 쪽으로 살짝 돌렸고, 다른 멤버들과 박사의 반응을 살폈다.
저 신상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중품이라면, 박사나 다른 멤버들에게 틀림없이 반응이 있을 터.
복마전 내부의 인프라를 확인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박사는 그런 레녹의 생각을 귀신같이 눈치채고 은근히 경고를 던져왔던 것이다.
하지만 레녹은 그런 박사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오히려 차갑게 웃었다.
“그럼 아무래도 상관없겠군.”
순식간에 로기어의 아가리에 소이탄을 한발 더 물린 레녹이 그대로 폭탄을 격발.
콰아아아앙!!!
푸르스름한 불꽃이 신상의 바로 아래쪽에서 터져 나와 빛의 기둥을 그렸다.
“빅터…….!!”
“박사의 말대로 신상의 기능에 문제는 없다고 하니, 먼저 정산을 받든 마음대로 해라.”
레녹이 로브 사이로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난 이 늑대새끼를 죽여 놓은 다음에 줄을 서지.”
그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에 판데모니엄의 다른 멤버들까지 혀를 내둘렀다.
“……미쳤군. 특질계 술사는 다들 이런 놈들 뿐인가?”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랑 크게 다르지는 않군.”
“뭐야, 소류. 빅터랑 한번 일해본 적이 있었어?”
“같이 일을 했다기보다는…….”
소류가 무표정한 얼굴로 연달아 터져나오는 폭발을 구경하는 사이, 그 열기 사이에서 로기어가 뛰쳐나와 광소했다.
“크하하하핫!! 좋아, 한번 끝까지 달려볼까!!”
레녹의 잇따른 공세에 주눅들거나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좋아하는 로기어 역시 평범한 초인은 아니다.
혀를 낼름거리며 침을 뚝뚝 흘린 로기어가 그대로 레녹을 향해 마력을 끌어올리고 아가리를 쩍 벌린 그 찰나의 순간.
“아니.”
마이야 렌슬릿이 움직였다.
“이제 슬슬 지겨워.”
곁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한걸음 움직여 로기어의 앞에 선 그녀가 웨어울프의 아래턱에 손을 올린다.
퍼어엉!!
그 직후 로기어의 몸이 강펀치를 허용한 것처럼 크게 휘청이다, 피를 흩뿌리며 뒷걸음질 쳤다.
레녹의 인지능력으로도 타점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초신속.
“……!!!”
하지만 로기어는 느닷없이 마이야의 선공을 받아내고도 쓰러지는 대신 그 자리에서 그대로 균형을 잡아냈다.
“마이야……!!! 뭘 하는 거냐!!!”
“애초에 시비를 걸었던 건 네 쪽이잖아. 웨어울프.”
마이야가 무표정한 얼굴로 한번 더 손을 내리긋는 것과 동시에, 로기어의 정수리가 쪼개지듯 그대로 푹 떨어진다.
짐승의 육감으로도 제대로 반응조차 어려울 정도로 날카롭고 정교하다.
로기어 역시 본신경지가 아닌 무력만으로 따지자면 이미 위계의 끝을 한참 넘어서 있을 텐데도, 마이야의 손끝에 이리저리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참아야 끝나겠지. 당연한 것 아니냐?”
“빌어먹을……!!!”
콰직!!
로기어 역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이빨을 뿌득 갈며 마이야가 휘두르는 손을 잡아챘다.
마이야가 피식 웃으며 눈을 빛냈다.
“잡아?”
“……좋아. 정산을 망칠수는 없지.”
은빛의 웨어울프가 그 자리에서 조금씩 줄어들더니, 문신이 새겨진 인간 남자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로기어가 아무리 레녹의 입을 열고 싶어 하더라도, 결산 자체가 어그러지는 상황까지는 바라지 않겠지.
결국 여기서 레녹과 전투를 속행했다가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은 그 하나뿐이다.
그것을 깨닫고 분을 삭이며 물러서는 로기어를 보며 박사가 말했다.
“선수를 취하고도 가면을 부수지 못했다면 거기서 끝난 거지. 피를 보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아니겠나.”
“…….”
“아직도 앙금이 남아 있다면 정산이 끝난 다음에 개인적으로 해결하는 게 좋겠군.”
“이렇게 좋은 안주거리가 어디 있다고, 시간이 되면 다같이 구경이라도 할까?”
“그래도 빅터의 얼굴이 궁금하긴 했는데, 아쉽게 됐군.”
“얼마나 개성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길래 얼굴을 감추는지 궁금하긴 해.”
“명은 알고 있겠지?”
버논까지 빅터와 로기어의 전투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다.
두 사람의 충돌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은근히 기대하는 듯한 노골적인 기색.
조직으로서 움직이기보다는, 순전히 개인으로서 충동적인 순간을 쫓아 움직이는 듯한 언동.
이것이 판데모니엄만의 개성이라면 개성일까.
여전히 조직력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훌륭한 행태를 다시 한번 실감하며 레녹이 천천히 로브를 털어냈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소류가 말한 것처럼 완전히 다른 의미일지도 몰라.”
떨떠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충돌을 지켜보던 사브리나가 말했다.
처음으로 의견을 보탠 그녀의 말에 시선이 모였다.
“특정한 구속이나 제약을 통해서 발언 자체를 금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이유를 말할 수 없는 상황 자체가 의도된 것이라면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그런 제약에 걸려 있는데 암리타가 죽었다는 사실 자체는 말할 수 있다고?”
“한 달도 되지 않은 일이라면서? 어차피 얼마 안 가서 정보가 퍼질 거라 생각했다면, 그 사실 자체에는 구속이 느슨하게 적용돼도 이상하지 않아.”
사브리나가 턱을 괸 채로 고민에 잠기며 첨언했다.
“암리타의 사망 자체보다, 그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면. 지금 일어난 일을 대충 설명할 수 있지 않아?”
“…….”
판데모니엄의 언령술사.
아무런 근거도 단서도 없는 와중에, 레녹의 태도와 언동을 통해 벌써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것인가.
‘예상보다는 훨씬 빠르군.’
사브리나를 바라보던 레녹이 가면 아래로 묘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