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59
약먹는 천재마법사 559화
자문자답(1)
교각 저편에서 울려 퍼지는 묵직한 바이크의 엔진소리.
부아아앙!!!
한 손으로 스로틀을 당기고, 다비가 자동운전 알고리즘으로 조작을 보정한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입자발전소의 풍경을 보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위에 퍼져 나간 괴물들의 힘을 좇았다.
‘판은 이쪽이 먼저 깔았어. 남은 건 상대의 반응을 보고 실시간으로 맞춰 나가는 것뿐.’
레녹이 이번 작전에서 크로드 아즐란에게 지시한 일은 간단하다.
발전소의 상공을 점유한 저 거대한 유령함선이 바깥으로 끌려 나올 때까지, 함선에 무자비한 폭격을 꽂아 넣는 것.
8레벨의 창사인 결백은 접근전과 창술에 있어서만 경지에 다다른 전사가 아니다.
극위의 경지에 이른 육체능력과 균형감각, 심상과 의념의 조합을 이용하면 창을 던지는 것만으로 포격에 가까운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레녹은 그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오직 결백만이 가능한 원거리 투창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유령함선을 두들기고 있었다.
쿠과과과과!!!
먹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백색의 기둥에 관통당한 함선이 연신 흔들리며 휘청였다.
이것이 포대나 요새를 통한 포격이었다면 마드리치 오니온 역시 함선의 능력을 사용한 포격으로 대응하겠지.
하지만 발전소의 상공에 멈춘 유령함선과는 달리, 결백은 언제든지 투창을 던지는 위치를 바꿔서 요격을 시도할 수 있다.
적어도 함선의 존재를 유지하는 한 일방적인 공세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할 터.
오니온의 권역, 유령함선 망량쇄례한이 지역을 장악하고 대규모로 힘을 흩뿌리는데 특화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
내전이 벌어지는 전선에서는 압도적인 힘을 뽐냈겠지만, 지금처럼 소수정예로 이뤄지는 침투작전에서는 오히려 덩치가 큰 목표물이다.
결국 오니온이 할 수 있는 것은 함선을 직접 이끌고 결백을 상대하러 움직이거나, 혹은 함선의 존재 자체를 포기하는 것뿐.
‘권역을 해제하고 함선을 포기한다면 그것도 상관없다. 오히려 이쪽의 상황은 훨씬 편해지겠지.’
유령함선이 사라진다면 결백의 투창은 그대로 카이세와 올리비에라가 위치한 발전소 시설 위로 떨어질 뿐이다.
‘8레벨 극위능력자의 권역이라 해도, 일방적인 공세에 언제까지 버틸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방면에서는 취약해도 당연해.’
술자의 근원심상을 투영하는 자성영역과, 술식의 이상점을 찾아내는 권역의 힘은 엄연히 다른 개념에 위치해 있다.
마드리치 오니온이 군령술식의 이상점으로 찾아낸 부유권역, 망량쇄례한의 유령함선은 틀림없이 강력한 힘이지만.
결국 그 권역의 이상점 자체는 광범위한 공간에 군령술식을 다방면으로 투사하는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8레벨의 부적술사였던 갑선 드레퓌스의 부동권역 정도가 아니라면, 권역 자체의 내구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권역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는 움직일 거다.’
만약 이것이 오니온과 결백의 일대일 결전이었다면 오니온은 권역의 소멸을 감수하고 버티면서 다른 방법을 모색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고위술사에게 있어 상대의 노림수에 끌려나간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거부감이 드는 일이기 때문.
하지만 이렇게 고위계 초인들이 다수로 맞붙는 상황에서는 혼자만의 판단으로 구도를 바꾸기 어렵다.
온갖 다양하고 강력한 능력들이 판치는 초인들의 전투에서, 권역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변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전장의 흐름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손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악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레녹의 추측은 결국 틀리지 않았다.
[벌레같은 놈들…….]유령함선에서 울려 퍼지는 소름 끼치는 전성과 동시에, 함선이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까지 애처롭게 몸을 비틀고 싶다면, 좋다. 그 무도한 춤사위에 직접 어울려주지.]뿌우우우!!!!
귀신들의 비명이 한데 겹쳐 공명하며 장대한 뿔피리 소리로 화한다.
발전소의 하늘을 벗어나 거침없이 출진하는 함선의 모습.
그 방향은 방금 전까지 결백이 쉴 새 없이 투창을 쏘아내던 외곽지역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확실하게 치뤄야 할 거다.]사아아악!!
투창에 맞아 박살 나 안개를 줄줄 흘리는 함선의 구멍 사이로, 알 수 없는 형체 수백 개가 폭포처럼 지상을 향해 굴러떨어진다.
[그워어어어……!!] [아프다, 아파……!!] [추워…… 날 재촉하지 마!!]기묘한 울음소리와 비명을 터트리며 일어서 발전소 내외곽 공터를 가득 메우고 행진하는 유령군세.
유령함선 저편에서 터져 나온 그 물량은 레녹이 상대했던 진짜 마드리치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숫자다.
오니온은 결백을 상대하기 위해 유령군세를 불러낸 것은 물론이고, 그 물량으로 발전소 외곽 구역을 통째로 틀어막아 외부의 접근을 차단해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오오오오!!!] [천귀의 야행이 이곳에 달했도다!!!]그런 유령함선을 양옆에서 보호하듯 자리에서 일어서 도열하는 거대한 해골거인 두체.
푸르스름한 안광을 내뿜으며 사방을 노려보는 해골거인 둘이 함선의 닻줄을 어깨에 메고 걷기 시작하자, 일대 지면이 그 충격으로 으스러진다.
쿠구구구구!!!!
군령술에 통달한 것으로도 모자라, 수천의 귀신을 손에 넣고 자유자재로 부리는 저승의 사자.
내전 당시 죄인들을 심판하던 최전성기의 마드리치 오니온이 전력으로 발휘하는 군령술의 정수.
하지만 레녹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바이크를 쥐고 있던 다른 손을 그대로 놓아버렸다.
탁!!
다비의 자동운전 알고리즘에 몸을 완전히 맡긴 채, 바이크 위에서 양손으로 빠르게 수인을 맺었다.
동시에 레녹의 품 안에서 펼쳐진 거대한 두루마리, 파피루스 아르겐테우스가 눈부시게 발광하고.
그 안에 미리 적어놓은 소환진이 발광하는 것과 동시에 지축이 미친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지진이라도 터져 나오는 것처럼 크게 흔들리는 지반.
발전소에서의 전투로 한차례 무너진 대지 사이로 무언가가 크게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무수한 흙과 돌더미가 모여 거대한 뱀의 머리가 되어, 그대로 유령함선의 용골을 물어뜯었다.
우드드득!!!
거대한 뱀의 머리가 유령함선의 밑동을 물고 그대로 땅 아래로 잡아당긴 그 순간, 함선에서 터져 나온 한기가 뱀의 온몸을 뒤덮고 얼려 붙힌다.
사슬과 닻줄을 메고 걷던 두 마리 해골거인이 발길질로 뱀의 머리를 짓밟아 터트리려던 찰나,
기다렸다는 듯 날아온 결백의 투창이 함선의 용골을 완벽하게 관통. 선척의 머리를 지상에 그대로 처박았다.
콰아아아앙!!!
레녹의 머리 위를 사선으로 날아 추락한 유령함선이 그대로 지상을 긁고 저 멀리까지 미끄러진다.
[우오오오오!!!]닻줄에 매달린 해골거인이 함선의 추락에 끌려가 그대로 지상을 불태우며 멀어졌다.
온몸의 장기가 통째로 뒤흔들리는 진동. 귀청이 터질 것만 같은 굉음.
마드리치 자신이 불러낸 유령군세를 짓눌러 터트리며 추락한 함선의 파편이, 결백이 서 있는 평야 끝에 멈춰 선다.
땀을 줄줄 흘린 레녹이 자신이 해낸 일을 확인하고 아슬아슬하게 바이크 스로틀을 움켜쥐었다.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유령함선이 발전소 상공을 벗어난 틈을 노려 함선 자체를 추락시키고, 마드리치 오니온이 결백과 지상에서 마주 보게 하는 것.
물론 함선이 없더라도 전성기의 마드리치 오니온에게는 강력한 군령들이 남아 있고, 본신의 무력 역시 건재하겠지만.
지상과 하늘이라는 압도적인 조건의 우위를 없애주는 것만으로 레녹이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품안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다비가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전뇌정령의 예언 실현이라는 위업을 앞에 두고 물러나야 한다니!]“널 만들 때 그런 능력을 커스텀한 기억은 없는데.”
[흥, 딥웹의 멍청이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시빗거리가 몇 개는 더 남아 있거든요.]“자꾸 그러면 인터넷 사용시간 제한어플을 깔아줄 거야.”
[힝…….]귀가 축 늘어진 다비가 아쉽다는 듯 연신 혀를 날름거렸다.
[저 전투기록을 녹화해서 돌아간다면, 딥웹을 활활 불태울 수 있을 텐데…….]“…….”
수상할 정도로 커뮤니티 분탕질에 집착하는 전뇌정령의 머리를 꾹 눌러 코트 안으로 집어넣은 레녹이 정신을 집중했다.
다비의 변덕으로 시작해 딥웹에서 한창 화제가 되었던 결백과 마드리치의 대결구도.
그 광경을 이 자리에서 직접 구경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레녹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펠릭스와 이리야 역시 달라진 상황과 구도를 인지하고 그 자리에서 서로의 역할을 바꿔 움직인다.
레녹 역시 마력사로 스스로의 몸을 묶으며, 라이플 총구를 스로틀 위에 걸친 뒤 마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타타탕!!
8중첩의 사격보조마법이 담긴 탄환이 소리를 넘어 군령들의 머리를 연달아 박살 내고.
동시에 발전소 정문 교각에서 튀어나온 새머리거인이 해머를 든 채 미친 듯이 질주했다.
“하아아아압!!!”
쿵!!
마력을 흩뿌리며 해머를 휘두르자, 사방에서 달려들던 유령의 군세가 그대로 짓눌려 터져나갔다.
정면에서 길을 열기 시작하는 펠릭스와 후문에서 잠입을 시도하는 이리야.
원거리에서 저격을 시도하며 따라붙은 레녹까지.
‘카이세를 제외하고 남은 전력은 네 명. 저쪽도 컨디션이 온전한 건 아니야.’
마드리치 오니온을 밖으로 유인해 결백과 맞붙게 하는 건 이미 반쯤 성공했다.
남아 있는 전력 중 맥퀸은 레녹이 직접 저격해 전투불능에 가까운 상태로 만든 상황.
남은 것은 카이세를 다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이번 사태를 마무리 짓는 것뿐.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그대로 바이크의 거대한 차체를 거침없이 교각 사이로 미끄러뜨렸다.
끼이이익!!!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기울어진 몬스터바이크의 차체가 군령들을 들이받아 날려버리고, 순식간에 발전소 본관 앞에 도달한다.
두꺼운 바이크 앞바퀴로 정문을 후려쳐 박살 낸 레녹이 통제실로 향하는 복도 위에 올라타 스로틀을 당긴 순간.
파아아아아앗!!!
[기다리고 있었다.]올리비에라의 육합전성이 울려 퍼지며, 사방이 눈부신 광채로 가득 들어찼다.
* * *
쿠과과과광!!!
건물 바깥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하기 그지없는 진동.
“왔군.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길레온이 무심코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다.
“오니온이 먼저 움직였어. 저쪽에도 새로운 조력자가 도착한 모양이다.”
한쪽 눈을 감은 채로 마치 무언가를 유심히 바라보듯 얼굴을 찌푸린 길레온이 말했다.
“육체능력자…… 엄청나게 강력한 괴물이군. 굉장히 불안정하지만, 기세만큼은 마법사와 비견될 만한 수준이다.”
“흠, 그놈과 비견될만한 수준이라…… 그사이에 그 정도 괴물을 데려왔다고?”
등을 돌린 채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던 카이세가 고개를 내저었다.
“불가능하지. 동부 대륙에서 활동하는 극위급 초인의 동선은 모조리 파악하고 있어. 처음부터 작전에 같이 투입된 전력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아.”
“모종의 사정으로 이전에는 참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대번에 결백의 행적을 짐작해낸 카이세가 동의했다.
“지금 이 폭격을 쏘아대는 게 마법사가 아니라, 새로운 적이라면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아마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 얼굴일 거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카이세가 이내 등을 휙 돌렸다.
그의 양손에는 수 미터에 달하는 멀쩡한 철갑 날개 한 짝이 들려 있었다.
“다 됐다. 망가진 부품은 거의 다 수복이 끝났어. 적어도 비행기능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다.”
“그런가.”
길레온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든 뒤, 아무렇지도 않게 카이세의 등 뒤로 돌아갔다.
철컥!!
“……지금 뭐 하는 거지?”
“멍청한 내 친구한테, 구명의 수단을 하나 더 만들어주고 있는 거지.”
무표정한 얼굴로 카이세의 허리춤에 능숙하게 철갑 날개 한 짝을 장착시킨 길레온이 대답했다.
“정상적인 비행은 어려워도, 고층 건물의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정도는 살려줄 수 있을 거다.”
“이게 없으면 넌 비행은커녕 이능을 통제하는 것도 어려울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가져가.”
“한쪽 날개로도 공중기동은 구현할 수 있다. 공간박리의 이능도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야. 싸울 수 있다. 그거면 충분하지.”
“길레온.”
“우리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지?”
길레온이 말했다.
“그럼 말하지 않아도 돼. 설명할 필요도 없다.”
“…….”
“중요한 건 네가 살아나가는 거야. 너만 살아 있다면 언제든지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카이세의 등뒤에서 희미하게 펄럭이는 철갑날개를 확인한 길레온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널 따라 나온 게 나 하나뿐이라서 다행이군. 다른 동료들은 이것보다는 요령 좋게 일을 처리해 주겠지.”
천천히 물러난 길레온이 한쪽 날개를 흔들자, 그의 몸이 살짝 떠올라 뒤로 밀려났다.
그대로 등을 돌린 그는 날개 안쪽에서 굵직한 샷건 몇 자루를 꺼내든 채 모습을 감췄다.
철컥!!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길레온의 차분한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졌을 뿐.
이미 이곳에서 카이세의 의중을 확인하고, 자신의 결말을 받아들인 듯한 소리였다.
“…….”
카이세는 허리춤에 매달린 철갑 날개를 매만지며, 말없이 자신이 수복시킨 시공간 고정장치의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파직, 파지직……!!
갈라진 알의 껍질이 꽃잎처럼 피어난 요람의 형태.
그 안에서 조금씩 무언가 형태를 갖춰가려는 알 수 없는 에너지의 모습.
카이세는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 * *
발전소 후문 근처를 가득 메운 군령들의 형상.
알 수 없는 병장기를 든 채로 사방을 배회하던 군령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한줄기 섬광이 있다.
쐐애액!!
그 자리에서 네 갈래로 갈라진 섬광이 군령의 머리 십수 개를 관통하고 대번에 하나로 돌아온다.
뒤늦게 이상을 알아차린 군령들이 괴이한 비명을 내지르며 달려들지만,
파팟!!
유령군세의 머리를 사뿐히 즈려밟은 이리야의 신형이 순식간에 안뜰을 주파해 파고들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사방을 미친 듯이 훑고 최적의 경로를 계산한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지형 구조물을 따라 이리야가 순식간에 지하 동력실로 향하는 복도를 찾아낸 순간.
복도 벽을 뚫고 솟아오른 무언가 그대로 이리야의 몸을 들이받고 날려버렸다.
콰아앙!!
“……!!!!”
예상치 못한 기습이지만, 이리야의 대응은 차분했다.
숨을 들이켜며 이를 악물고 스피어를 교차시켜 철갑의 날개를 받아낸다.
늑골이 부러진 고통은 이미 진작 마취제로 지워 없앤 뒤. 무너진 복도 사이를 뒹군 이리야가 몸을 번뜩 일으켜 세웠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동력실은……!!”
차가운 목소리를 뒤로하고 동력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이리야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곳에 틀림없이 있었던 거대한 시공간 고정 장치와 카이세의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길레온은 그런 이리야를 내려다보며 말없이 남아 있는 한쪽 날개를 펄럭였다.
키이잉……!!
날개가 다섯 갈래로 쪼개지며 거대한 손바닥의 형상으로 변하고, 그 사이로 공간이 조금씩 층지어 벗겨지기 시작한다.
시작부터 공간박리의 이능을 전력으로 토해낸 길레온이 말했다.
“카이세를 만나게 해주지는 않겠다. 너희들과 더 이상 얼굴을 맞대고 있을 이유도 없지.”
“그렇군요. 이상할 정도로 진입이 쉽다 했더니, 그사이에 고정 장치 위치를 통째로 옮긴 겁니까…….”
이리야가 이내 숨을 들이켜고, 스피어를 부여잡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길레온은 그런 이리야의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 물었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엇을 손에 넣으려는지 알고 있군. 그렇지?”
그 말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고 말없이 자세를 잡는 이리야의 모습.
하지만 길레온도 굳이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듯 이어서 말했다.
“직접 말은 해주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어……. 너희들은 뭔가 달라. 내가 그동안 상대했던 적들과도 조금 다르지.”
“…….”
“카이세는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그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 무지로 인해 당신이 죽는다고 해도?”
“그래.”
길레온이 환하게 웃었다.
무채색에 가까웠던 그의 표정에 드러난 유일무이한 색채.
“내가 바라마지 않는 결말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
괴리된 시공에서 살아가는 저들 역시, 이쪽을 보고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걸까.
역시 저들 역시 지금 이곳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폐쇄구역에서 벌어진 기적에 대한 모든 답을 쥐고 있는 것은 단 한 사람.
그리고 이제부터 이리야가 해야 할 일은, 마법사를 그 사람에게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쿠르르릉……!!
머리 위에서 울려 퍼지는 천둥과도 같은 굉음.
펠릭스 역시 정문을 뚫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마주친 상대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결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발전소 외곽 구역에서 울려 퍼지는 귀곡성과 창극의 격돌.
저 멀리서 회전하는 엄청나게 압축되어 터져 나오는 마력의 기둥.
혼란의 한복판에서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답을 찾아내기 위해, 이리야는 천천히 스피어를 고쳐 쥐었다.
* * *
고요하기 그지없는 공동.
레녹은 말없이 한참 동안 사람 하나 없는 거대한 공간을 걷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비춰지는 것은 레녹 자신의 모습뿐.
거울만이 가득한 알 수 없는 공간.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수십 개의 거울 너머로 레녹의 모습이 동시에 비치다가, 이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양 사라진다.
샤악!!
거울에 비춰지는 수십 개의 자기 자신들 중, 누군가가 레녹을 돌아보고 키득거린다.
“…….”
레녹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이질적인 형상을 눈여겨보다, 다시 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영역의 형태를 하나로 고정하지 않고 두 가지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을 줄은 몰랐군.”
현실을 완전히 덮어씌우는 전개형과 현실의 사이에 불러내는 침식형.
그 밖에도 자성영역의 존재 방식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술자의 심상은 본디 한 가지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올리비에라는 그런 자신의 영역을 두 가지 형태 모두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었다.
‘두 가지 형태를 모두 보유했다기보다는, 나와 싸운 직후 심상의 형태를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게 맞겠지…… 괴물이 따로 없어.’
레녹처럼 심상의 가능성 자체를 선택하는 방식은 아닐지라도, 영역의 형태를 전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
올리비에라가 지닌 재능과 솜씨가 얼마나 비현실적인 종류의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녀와 같은 역량의 술사를 상대할 때, 두 번째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되는 이유.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는 다시 싸운다고 해서 결코 똑같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였다.
레녹이 지금 걷고 있는 이 공간은, 현실을 침식하는 거울장벽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거울의 미로.
카이세가 일러준 통제실. 발전소 본관 최상층으로 향하는 길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레녹은 이 미로 속을 헤매고 있었다.
[탐태소천경이 무너지고, 전륜축성의 극위마법이 파훼되었을 때 생각했지.]거울 사이로 속삭이듯 들려오는 올리비에라의 조용한 목소리.
[너는 나를 알고 있어. 그것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잘 알고 있지.]“…….”
[그 진실에 당장이라도 손이 닿을 것 같지만, 여전히 한 걸음이 모자라 미답에 이르는구나.]레녹의 모습만이 비춰지는 수백 장의 거울 사이로, 까마득히 먼 저편에 자리한 올리비에라의 환영이 비추는 듯하다.
거울 파편으로 만들어진 옥좌 위에 앉아, 나른한 기색으로 이곳을 내려다보며.
미로 속에서 반사된 빛을 한몸에 받고 있는 그 오연한 모습.
그 모든 광량이 얼굴에 드리운 베일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집속되고 있는 것은 우연일까.
자성영역 전개
연원위계 심상구현
[탐태경천궁(探兌鏡薦宮)]쩌저저적……!!
금이 가기 시작한 거울의 미로 사이로, 파편이 산산이 부서져 내리며 레녹의 육신마저 어긋나 비춰진다.
[가까이 오거라, 마법사.]베일 사이로 희미한 무지개의 안영을 내뿜은 그녀가 말했다.
[다음으로 향하는 길이 그곳에 있는지, 내 직접 너를 통해 확인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