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33
약먹는 천재마법사 633화
해저장벽 심성관(2)
츠즈즈즈즈즈!!!!
사방에서 나풀거리며 눈처럼 떨어져 내리는 수천 갈래 푸른 입방면체가 어두운 심해 속에서 발광한다.
입방면체끼리 연결되며 만들어지는 무수한 도형의 선이 거미줄처럼 뻗어나가며 해저장벽을 둘러싸고 거대한 네트워크를 그렸다.
전뇌세계 안에서만 간섭이 허락되었던 정령의 힘을, 현실에 간이구현하려 펼쳐내는 전뇌공능.
이 자리에서 해저장벽의 조작권한을 통째로 강탈해 강제로 문을 열어젖힌다.
끼기기긱……!!
쉴 새 없이 돌아가던 톱니바퀴들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는가 싶더니, 이내 그 자리에서 방향을 바꿔 천천히 회전한다.
마치 지금까지 돌아가던 회전이 장벽 안쪽 잠금을 단단히 조이기 위해서 였다는 것처럼.
톱니바퀴들이 반대로 돌아갈 때마다 압축되어 있던 장벽 내부 공간이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했다.
쿠과과과과!!
어두운 심해 속에서 수천 갈래 거대한 톱니바퀴가, 정령과 마법사의 의지에 따라 거꾸로 회전해 열려가는 장대한 풍경.
하지만 장벽의 두께가 얇아지고, 그 안쪽의 공간이 희미하게 보일 만큼 균열이 퍼져나간 직후.
철컥!!
마치 무언가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는 해저장벽의 모습.
쿠우우우웅!!
직후 심해 아래쪽에 거대한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흔들렸다.
그 뒤로는 다비의 전뇌공능을 이용해 해저장벽을 강제로 해체하려 해도, 장벽이 열리기는커녕 지진의 강도만이 격렬해질 뿐.
쿠과과과……!!!!
마력을 들이부어 영역의 출력을 높일수록, 온 바다 전체가 다 함께 노래하듯 진동하는 강렬한 충격이 울려 퍼졌다.
[……마스터.]“그래.”
다비가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레녹이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영역을 거둬들였다.
후우우웅……!!
어두운 바다 사이로 거미줄처럼 퍼져나간 푸른 입방체의 연결선이 서서히 소멸하고, 레녹과 다비를 중심으로 퍼져나온 무채색의 파동이 사그라든다.
침묵하던 다비가 말했다.
[이대로는 해저장벽의 문을 열기 전에 해역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릴 거예요. 제힘이 도움이 되지 않아서는…….]하지만 레녹은 그 말에 오히려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완전히 반대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잘 먹혔어. 그래서 멈출 수밖에 없던 거다.”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저 장벽은 애초에 물리적으로 열리도록 설계된 구조가 아니야. 이제야 알겠군.”
천천히 마력을 회수하고 탐사선의 좌석에 걸터앉은 레녹이 중얼거렸다.
“기계도시의 구획을 분리하는 장벽을 구성하는 부품들을 엮어, 특정한 형상으로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네? 그렇다면 어떻게 저 안에 심성관이라는 공간이 존재할 수가…….]“방금 일어난 지진을 생각해 봐.”
레녹이 포션을 꺼내 마시면서 말했다.
“장벽을 억지로 열어젖히려 했더니 지진이 일어났어. 반대로 말하자면, 지진 정도의 충격이 아니라면 장벽이 열리지 않는다는 거다.”
장벽의 부품을 억지로 움직여서 문을 여는 것이 아니다.
이 깊은 바다 아래 쪽에서 지진이 일어날 정도의 거대한 충격이 아니고서야, 장벽은 열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애초에 물리적으로 장벽이 열리고 닫히도록 설계된 구조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
다비의 자성영역 몽상전의경은 해저장벽의 제어권한을 파고들어 강제로 해체해버릴 수 있었지만.
그 시점에 바다 아래 쪽에서 발생한 지진이 심해를 타고 기계도시 마키나 전역으로 뻗어 나갈 터.
레녹은 그 사실을 깨닫고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 영역의 힘을 투사하는 것을 멈춰버린 것이다.
[이 바다 아래 쪽에 지진이 일어날 충격이 있어야, 장벽이 잠깐 열릴 정도의 균열이 만들어진다는 말이군요.]실시간으로 레녹의 생각을 전달받은 다비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충격량으로만 따져도 지도가 바뀔 정도의 화력이나 폭발이 필요한 것으로 계산이 되네요. 하지만 그래서 더 이해가 잘 안 되는걸요.]다비가 다섯 갈래 꼬리를 꼬물거리면서 레녹의 품 안에서 물었다.
[그러면 대체 마키나에서는 어떻게 해저장벽을 열고 심성관에 물건들을 수납할 수 있다는…… 어라?]한발 늦게 무언가 떠오른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비를 보며 레녹이 웃었다.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키나에서는 실제로 분기마다 지도를 바꾸지.”
침묵하던 다비가 말했다.
[설마……]“분기마다 도시 각 지구와 장벽의 위치를 임의로 바꿔서, 실제로 지형지물을 통째로 바꿔버릴 정도의 충격을 일으킨다. 바로 그 이유가…….”
레녹의 차가운 시선이 죽은 듯이 멈춰버린 해저장벽에 닿았다.
“해저장벽을 분기마다 열고, 그 안에 드나들기 위해서였던 거야.”
* * *
기계도시 마키나에서 분기마다 각 지구의 위치를 바꾸고, 수십 미터 기계장벽을 이동시켜 구획을 나누는 이유.
그것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강렬한 충격을 이용해, 해저장벽을 출입할 수 있는 균열을 만들어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장벽을 열기 위해 도시가 통째로 이동하는 수준의 충격과 무게가 필요하다는 진실.
그것이 반대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레녹은 곧바로 깨달아 버렸던 것이다.
“기계도시 마키나를 세운 다음 해저장벽을 만든 것이 아니야.”
레녹이 중얼거렸다.
“어쩌면 해저장벽을 드나들 방법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계도시를 만들고, 주기적으로 장벽과 구획의 위치를 바꿨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면 사실상 이 시점에서는 장벽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요…….]다비가 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기계도시의 구획이동과 해저장벽의 관계를 알았지만, 이러면 결국 구획이동 당일까지 기다려야 할 텐데요.]레녹의 계획은 심성관에 소집되기 전에 미리 해저장벽을 탐사하고, 구세계의 마총, 테레메르의 종언을 몰래 훔쳐내는 것에 있다.
만약 해저장벽이 기계도시가 이동하는 정도의 충격으로만 열린다면, 레녹으로서는 장벽 안으로 진입할 방법이 없어져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
‘억지로 충격을 가해서 균열을 열수는 있겠지만, 무조건 사상자가 발생한다.’
몽상전의경의 힘으로 장벽을 열어젖히면, 바다 위쪽 기계도시의 구획과 장벽들이 멋대로 이동하며 수천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게 될 터.
그렇게 된다면 해저장벽에 들어가기도 전에 기계도시 전체에게 추살당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발각당하는 것을 감안하고 영역을 사용하긴 했지만, 사상자가 발생해 지상까지 그 여파가 번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레녹이 거기까지 생각한 그 순간, 해저장벽의 뒤쪽에서 느닷없이 거대한 마력원이 솟아올랐다.
[쿠오오오!!!]세찬 물길을 일으키며 장벽 뒤편에서 돌아 나온 것은 길쭉한 금속의 동체.
전면부에는 인간의 얼굴을 닮은 형상이 새겨져 있고, 사방에 난 분사구로는 엄청난 마력을 내뿜어 반동으로 삼고 있다.
기괴한 인면어의 형상을 한 금속의 거체가 헤엄치듯 순식간에 탐사선을 노리고 쏘아졌다.
그 정체를 곧바로 파악한 다비가 빠르게 소리쳤다.
[해저장벽 내부 요격시스템 작동. 발현마력에 호응해 최대등급의 경계령이 발동했어요!]“저 기분 나쁘게 생긴 철덩어리는?”
콰아아아!!!
인면어를 닮은 병기가 입을 쩍 벌리고 마력을 끌어올린 순간, 바닷물이 통째로 진동하며 강렬한 파동을 터트렸다.
그 여파로 원형의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탐사선을 크게 뒤흔들었다.
전투를 상정하지 않은 탐사선으로 저쪽에 응대했다가는 오히려 이 자리에서 탐사선째로 수장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다비. 장벽 근처로 가까이 붙어줘.”
빠르게 판단을 내린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다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걸 피해서 장벽 안으로 들어간다. 방법이 아직 하나 남아 있어.”
다비가 곧바로 탐사선의 조종간을 조작해, 선체를 장벽 가까이로 더욱 바짝 붙였다.
쿠과과과!!!
수천 개의 톱나바퀴가 돌아가며 일으키는 격렬한 물길이 탐사선을 흔들었지만, 레녹은 개의치 않고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쥐었다.
색이 바래 낡은 회중시계. 한 손에 들어올 법한 작은 크기라는 것을 제외하면, 겉으로 보기에는 어떠한 특이점도 없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레녹의 시선은 어느새 착잡하게 변해 있었다.
카이세의 회중시계.
국지적인 공간에 한해 시간을 역행시키는 것이 가능한, 레녹이 지닌 유일무이한 시간계통의 아티팩트.
이 아티팩트의 힘이 아니라면, 이 시점에서 해저장벽을 뚫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다비 역시 레녹의 생각을 곧바로 눈치챘는지, 살짝 머리를 치켜들고 물었다.
[대상으로 삼기에는 해저장벽이 너무 큰데, 통할까요?]“아티팩트 적용영역을 극한까지 축소시켜서 줄이고 한정시키면 어떻게든.”
레녹이 그렇게 대답하며 다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까 투사했던 해저장벽의 설계구조. 기억하고 있지?”
[물론이죠!]순식간에 레녹의 의도를 이해한 다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탐사선의 방향이 아래쪽으로 휙 꺾이더니, 거대한 장벽 가장 아래쪽으로 향했다.
수천 개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며 격렬한 물살을 일으키는 가운데, 유난히 조용하게 가라앉은 국소규모 해역.
짙은 어둠과 물살 사이에 은밀하게 가려져, 코앞까지 접근하는 게 아니고서야 결코 알아차리기 어려운 소요지대.
모든 톱니바퀴의 동선과 회전이 한 곳으로 모여들어, 흐름끼리 얽히며 길항 상태를 이루는 곳이 있다.
“찾았다.”
가지런하게 정돈된 나선형의 균열을 발견한 레녹의 말에, 다비가 곧바로 탐사선을 움직였다.
균열의 바로 위에 탐사선의 선체 배면을 누르듯이 접근시켜 달라붙인다.
곧바로 선체 곳곳에서 튀어나온 지지대가 장벽의 균열 곳곳을 붙잡고 탐사선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마력을 끌어올려 실드와 수류조작 마법을 동시 전개. 탐사선 근처의 바닷물을 억지로 멈춰 세우고, 그 사이를 실드로 보호한 직후.
[수압 변동 적응 완료.] [선체 하단부 개방.]취이이이익!!!
바짝 달라붙은 탐사선의 배면이 열리면서, 그 너머로 장벽의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 환경이 엄청난 수압으로 짓눌리는 사이에 서로 다른 두 공간을 연결해 붙이는 고도의 조작능력.
레녹의 마법과 다비의 조작이 병행되지 않았다면 선체 하단을 개방한 순간 탐사선이 그대로 폭발해 버렸겠지.
실제로 그 여파로 탐사선의 선체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크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해요……!!]“그래. 알고 있어.”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빠른 속도로 회중시계의 배터리를 꺼내 들고 뒷면을 열어 갈아 끼웠다.
딸칵!!
배터리를 바꾸고 조심스럽게 마력을 밀어 넣은 순간, 초침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
기계도시에 찾아온 목적들 중 하나를 이 시점에서야 비로소 완수했다는 실감이 들기도 전에, 아티팩트를 곧바로 작동시켰다.
위이이잉……!!
레녹의 마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아티팩트에 부여된 직후, 회중시계의 초침이 시계 밖으로 수직으로 곧추섰다.
회중시계의 분침과 시침이 빠른 속도로 역회전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레녹이 망설임 없이 균열의 정중앙에 초침을 꽂아 넣었다.
찰칵!!
초침의 길이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
이 거대한 해저장벽과, 그 문의 역할을 담당하는 균열에 비하면 사막 위의 바늘조차 되지 못한다.
하지만 초침이 균열 사이로 밀어 넣고 회중시계의 마력이 균열 안쪽으로 침투한 그 순간, 거짓말처럼 균열의 틈새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드르륵……!!!
임의로 충격량을 억지로 만들어, 균열의 틈새를 개방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방법을 이용해 해저장벽의 균열이 열렸던 시간으로 역행시켜, 균열 자체를 강제로 열어버리는 것.
국지적으로 현실의 법칙 자체를 조작하고 있는 셈이다.
끼기긱……!!
균열 너머로 비춰지는 새하얀 광채.
나선형으로 조각된 문이 둥글게 갈라지며 사람 한 명이 들어설 법한 공간으로 넓혀진 그 순간.
레녹이 망설임 없이 회중시계를 그 자리에서 뽑아 들었다.
찰칵!!
국지적으로 적용되던 시간역행의 힘이 사라지자마자,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닫혀가기 시작하는 균열의 문.
하지만 레녹은 빠르게 닫혀가는 균열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력을 끌어올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레녹이 손가락을 튕기자, 탐사선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듯 장벽 안쪽으로 도약했다.
파아아앗!!
두 눈을 멀게 만들 만큼 눈부시게 빛나는 백색광.
실드로 덧대고 보호한 사방의 공간 좌표와 온도, 습도와 풍향이 실시간으로 바뀌는 것이 느껴진다.
감각 자체를 억지로 마비시켜 보호하고, 천천히 마법을 사용해 하나씩 열어젖혀 주변의 상황을 확인한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청각을 조심스럽게 개방한 순간, 가장 먼저 들리는 것은 어딘가 귀에 익은 소음이었다.
철컹, 철컹!!
마력이 담긴 아티팩트. 눈부시게 빛나는 귀금속. 온갖 아이템과 장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거대한 유리공동.
규칙적인 소음과 함께, 주변으로 보이는 풍경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44B 에이리어 판정 완료. 해당 구역에 위치한 장물들의 가치 보존 불가. 아티팩트를 회수 및 폐기합니다.]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안내음성과, 발아래로 미끄러지는 거대한 롤러의 형상.
“이건……”
레녹은 자신이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컨베이어벨트 위에 쓰러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쓰게 웃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군.”
* * *
기계도시 마키나. 장벽 최외곽 사막지대.
휘오오……!!
거센 모래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남자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뒤에 서 있던 집행관이 그 모습에 남자에게 물었다.
“데이저 님. 무슨 문제라도?”
“…….”
데이저라 불린 남자는 대답 대신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발밑에서 섬뜩한 파육음이 울려 퍼졌다.
철퍽!!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시체 한 구.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일어선 데이저가 중얼거렸다.
“이번 분기에 종심지구 해역을 지키는 함대가 어디였지?”
“12함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집행관의 대답을 들은 데이저가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12함대? 마키나 해군에 언제부터 8함대 이상의 편제가 존재했던 건지 모르겠군.”
“…….”
데이저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집행관이 조용히 숨을 삼켰다.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이 남자는, 단순히 집행기관의 일원이나 기게화병단의 군단장으로 분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수십 년전 기계도시 최고의 집행관이었던 마이야 렌슬릿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괴물이지만.
최근 엑스 마키나 행정부를 장악한 위원이 아니었다면 영영 햇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존재.
지금 기계도시의 해군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 역시, 지닌 기억과 현실 사이에 족히 수십 년이 넘는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 데이저가 꺼내는 말을 허투루 흘려듣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긴장을 숨기지 못하는 집행관의 얼굴을 바라보던 데이저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렇게 긴장하지는 말고. 윗선에 연락이 닿는다면 간단한 전언 하나만 전해줘라.”
“예?”
“승천문의 실패 이후로, 추방자들이 내게 넘겨주고 간 권한이 몇 개 있다.”
데이저는 그렇게 말하며 땅에 박아넣었던 무언가를 뽑아내었다.
우두둑!!
검붉은 핏물이 잔뜩 묻어 있는 거대한 대검.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면, 대검의 칼날 곳곳에 날카로운 나사 수십 개가 튀어나와 있어 그사이에 살점이 걸려 있다는 것일까.
대검을 툭툭 발로 걷어차서 살점을 떨궈 낸 데이저가, 핏물 범벅이 된 대검을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대부분은 엑스 마키나 수뇌부가 갈리면서 막혔지만, 아직 남아 있는게 몇 개 있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종심지구 어딘가에 순간적으로 시간선이 비틀렸다.”
“…….”
예상밖의 대답을 들은 집행관의 표정이 순간 멍하게 변했다.
데이저는 그런 상대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수십 년 전에 아터마이어의 도움을 받아 만든 정위시간선 측정기의 보고권한을 내가 보유하고 있어. 방금 그 권한이 작동했으니까 알려라.”
“아터마이어…… 정위시간선…… 아, 알겠습니다.”
“뭐야, 이제 집행기관에서는 그 이름도 모르는 거냐? 문의 실패를 감추겠다고 아주 개판을 쳐놓은 모양이군.”
데이저가 그 반응에 재밌다는 듯 웃었다.
“뭐, 아무래도 좋으니까 연락해 봐. 그럼 꽤 재미있는 반응을 볼 수 있을 거다…….”
긴장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집행관을 보며 데이저가 대검을 들어 올렸다.
대검을 든 채 먼지가 낀 하늘을 바라보는 데이저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수십 년만에 바깥으로 나왔는데도,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똑같군…… 이것도 다 팔자야.”
승천문의 실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집행관 놈에게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불쾌하지만.
그가 상부에 연락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수십 년만에 자유를 되찾은 몸.
그러나 데이저 자신이 하필 이 시점에 마키나 방위를 위해 외곽 지구로 불려 나온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고오오……!!
침묵 속에서 고조되어가는 공기.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처럼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는 살기.
뜨겁고도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지평선 너머에서 흔들린다 싶었던 그림자는, 이미 데이저의 눈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 섬뜩한 인기척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것보다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하게 제련되어 있음을 실감하며 데이저가 웃었다.
“오랜만이오, 누님. 그간 잘 지냈는지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