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4
“그동안 수업에 집중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거든요.”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아리스의 옆으로 다가섰다.
흠칫 놀라며 움츠러드는 아리스의 반응을 무시하고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살핀다.
여기서 그녀가 불쾌감을 표시하기라도 한다면 곤란해질테니.
한쪽으로 쓸어넘긴 풍성한 금발.
눈앞에서 직접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믿기지 않을만큼 맑고 푸른 눈동자.
그 세련된 미모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레녹은 그녀가 들고 있던 책을 받아들었다.
“마력구동원리 해명. 일반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주로 활용되는 마력의 작동원리를 다루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더군요.”
스스로 마법을 사용하면서 얻어낸 실전적인 지식과, 이론과의 비교.
그 간극에서 찾아오는 무지에 대한 궁금증을 처음으로 그녀에게 묻는다.
“회전을 이용한 마력가속과 지속적인 압박을 통한 펌핑. 두가지의 효용성이 이 해석본에서는 굉장히 단순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한번에 가용하는 마력량이 일정수준을 넘어갈 경우 가속과 펌핑의 두가지 효능이 완전히 뒤바뀌면서 컨트롤이 힘들어지는 경우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더군요.”
“자, 잠깐만. 그걸 당신이 어떻게….”
“다른 해석본과 논문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굉장히 이례적인 예외로 치부하고 모호하게만 해석하고 있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녹의 담담한 시선이 아리스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한다.
“이 부분에 대한 지식이, 일정 계위 이상에 도달한 마법사들에게만 허락된 희귀 이론이 아닌가…..하고 말이죠.”
“……….”
침묵하는 아리스를 보면서, 레녹이 다시한번 기존에 세웠던 철칙을 되새겼다.
‘재능 부분은 철저히 숨긴다. 가지고 있는 이론에 대한 지식만 오픈하고 도움을 구하면 충분해.’
도서관에는 무수한 마법관련 서적들이 존재하지만, 레녹은 어느순간부터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마력의 원리가 서적에 적힌것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레녹의 넘치는 재능이 스스로를 전혀 다른 길로 이끌어가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보다는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된 마법이론에 대한 정보가 지극히 한정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꽤 오래전부터 레녹은 이러한 가설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고 있었고, 방금 아리스의 반응으로 확신했다.
다시 맞은편에 앉은 레녹의 입이 매끄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몇년이 넘었습니다.”
“……….”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알고 있는 지식간의 간극은 멀어지고, 오히려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색한 지식으로 바뀌어가더군요.”
여기서부터는 연기가 필요하다.
레녹은 고민하는듯이 아리스의 시선을 슬쩍 피하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가 왜 이제서야 이런 말을 꺼내는지 아시겠습니까?”
짧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부릅뜨고 그녀와 시선을 맞춘다.
그녀의 눈에는 영락없이 학구열이라는 알 수 없는 갈망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보이겠지.
재능과 환경에 가로막혀 공부를 이어나갈 수 없는 학생처럼 여겨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레녹의 연기가 그럭저럭 잘 먹혀들었는지, 아리스의 시선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날 속였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쉽게 말을 꺼내기는 힘들더군요. 제가 감히 누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숨죽인 침묵이 흐른다.
어느샌가 도서관 8층에는 두 사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리스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당신의 추측이 맞아요. 시정부에게 공인받지 않은 4위계 이하의 마법사들에게 해금되지 않는 정보들이 존재하고, 이는 발칸의 시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죠.”
“……….”
“스승을 구해서 직전제자로 들어가지 않거나, 마탑에 소속되지 않는 이상 제한을 풀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사실상의 정보격리조치라고 봐도 무방하죠.”
“그렇군요…..”
이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아리스의 입장에서 그런 해금을 어길수는 없다는 암묵적인 의사표현이겠지.
당연한 일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레녹은 이름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타인에 불과했으니까.
단지 그녀의 개인적인 호의로 인해서 비정기적으로 이런 만남을 가지고 있을 뿐. 원체 두 사람의 관계는 지금까지 그 어떤 의미도 가지지 않았다.
‘어떻게 설득을 해야할까….’
레녹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그에게 허락되지 않을 이론을 가르쳐줄 선생이 아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법이론에 대한 고민을 일부라도 털어놓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영감을 제공해줄 같은 마법사가 필요할 뿐.
“교수님이 알고 있는 지식을 함부로 알려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조심스럽게 돌려말할 필요가 있었다.
“다만, 지금같은 수업방식을 조금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그게 무슨….?”
“제가 평소에 이론서를 보면서 생각했던 내용을, 이번에는 교수님이 들어주시는겁니다. 사실, 저도 마법을 공부하면서 하고 싶은 말이 적지 않았거든요.”
황당한 얼굴로 레녹을 쳐다보는 그 시선을 받아내면서, 그가 씩 웃었다.
이번에는 진심이 담긴 미소였다.
“재밌을 것 같지 않습니까?”
테스트
아리스와의 만남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뒤로 며칠이 지났다.
파노아는 약속대로 레녹에게 유물을 넘기는 것뿐만 아니라 이번 작전의 실패로 인한 온갖 수당을 잔뜩 안겨주었다.
2천만 셀밖에 없던 레녹의 통장에, 순식간에 스테모니아를 한번 더 구입할만한 비용이 들어올만큼.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예비용으로 하나 더 구입하고 쉽지만, 레녹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옥션에 매물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니.
결국 그 돈을 헛되이 쓰지 않기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높은 곳을 노려야하는 것이다.
일주일의 시간이 더 지나고, 레녹은 협상이 이뤄졌던 다이크 본사를 다시 찾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작전부터 반 마법사님의 보좌를 맡게된 마냐 하우스라고 합니다.”
굉장히 앳되어 보이는 인상의 사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사전에 파노아 팀장님께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오늘부터 본 프로젝트의 팀원들을 선정하기 위한 테스트가 있을 예정입니다. 반 님은 그 과정에서 자격이 불충분하다고 생각되는 후보자들을 평가하고, 걸러내시면 됩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쇼핑백을 양손으로 레녹에게 내밀었다. 안의 내용물을 살펴보니 사원들이 입을법한 평범한 정장이었다.
“맞춤은 아니지만, 사이즈는 문제없을겁니다. 다른 사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어갈 정도는 되겠죠.”
굳이 눈에 띌 필요가 없다는 마냐의 말도 틀린건 아니라 레녹은 순순히 옷을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답답해 보이는 셔츠의 첫 단추를 풀고 폭이 좁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끌어내렸지만 마냐는 그걸 보면서도 별 말 하지 않았다.
“사측에서 직접 배급하는 정장으로, 기본적으로 신축성과 내구성이 좋아 호신용으로도 어느정도 수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싫어하시는게 아니라면 앞으로 작전에서 복장을 맞춰 입는것을 추천드립니다.”
“눈에 띄지 않으니까?”
“이번에 선정될 다른 팀원들이 반 님의 목숨을 대신해줄 수 있을테니까요.”
아무렇지도 않게 섬뜩한 말을 내뱉은 마냐가 등을 돌렸다.
앳된 인상과는 달리 사고관이 살벌한 사람이었다.
레녹은 픽 웃고는 곧바로 그녀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빌딩의 지하로 내려간다.
사원과 임원들을 위해 마련된 지하 주차장을 뚫고 더 아래쪽으로.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깜깜한 어둠을 응시하면서 마냐가 입을 열었다.
“본사의 지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시정부에 로비한 자금이 적지 않습니다. 본래 지하철도가 다녀야 할 경로를 선점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죠.”
“그걸 나한테 말해줘도 되는건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반 마법사님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희는 이미 결론을 내렸습니다. 회사의 치부를 들추고 신뢰를 얻을수만 있다면 나쁜 장사는 아니겠지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꾸하는 마냐의 모습은 어찌보면 이성적인 마법사들과 꽤나 닮아있었다.
파노아는 이런 그녀의 성정을 눈여겨보고 일부러 레녹에게 그녀를 붙여놓은 것일까.
짧은 고민이 지나가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차가운 금속빛을 띄는 복도를 지나 아치형의 다리를 건너자 그 아래쪽으로 거대한 공동이 눈에 보였다.
제대로 완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단순히 거대한 공간을 파놓고 그 위에 조명을 가져다 붙인듯한 투박한 형태.
바닥을 단단한 시멘트로 다지고, 한쪽 구석에 단상을 만들어놓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공사장비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텅 빈 공간.
그 사이를 여러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다양한 지형지물을 가져와 배치하고 옮긴다.
바닥에 빼곡하게 그려진 형형색색의 페인트 그림에 따라 하나둘씩 구조물이 설치되어간다.
가장 앞에서 그 작업을 지휘하는 킬리안의 모습을 본 레녹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건 뭐지?”
“후보생들을 테스트하기 위한 임시 시설을 설치하는 중입니다. 킬리안이 직접 전담해서 관련 물품들을 공수해왔죠.”
“킬리안이?”
아무데나 시비나 걸고 다니는 양아치인 줄로만 알았는데, 저런 일도 할 줄 알았단 말인가.
게다가 저들이 설치하고 있는 구조물의 형상이 꽤 그럴듯해 보여서 더 놀라웠다.
레녹의 말에 담긴 감정을 눈치챘는지 마냐가 슬쩍 그를 돌아보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킬리안은 라이칸스로프중에서도 상당한 고위 전사계급 출신입니다. 때문에 육체적으로 어떤 훈련을 통해 전사들을 검증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더군요. 이번 피지컬 테스트는 전적으로 그의 관할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사 계급이라…..”
웨어울프들이 어릴때는 부족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단어를 여기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레녹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저 요란한 녹색머리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계급에 대해서 말이 나올정도라면 킬리안이 가진 웨어울프의 피는 저번에 만났던 가일의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정순할테니.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선형으로 이뤄진 계단을 타고 내려와 공동 바닥에 도착한 두 사람이 킬리안 쪽으로 향했다.
다른 직원들과 함께 구조물을 옮기던 그가 마냐의 기척을 인지하고 고개를 돌렸다.
“귀한 마법사님이 오셨군. 어때, 기분은 좀 풀리셨나?”
“너희가 실수한만큼은.”
싸늘한 레녹의 대꾸에 순식간에 좌중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미 다이크의 다른 직원들도 레녹의 정체에 대해서는 미리 언질이 있었는지 얌전히 눈치를 보기 급급하다.
결국 킬리안은 괜히 시비를 걸었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고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정말 한마디도 안 지는군. 이번 작전에 대해서는 나도 유감이야.”
“……..”
“하지만 여기 온 것 자체가 같이 잘해보기 위해서가 아니겠어?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이쪽에서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그건 내가 직접 봐야 알겠군.”
“물론이지. 지금 여기서 준비하는건…. 말하자면 최소한의 커트라인이야. 우리 마법사님을 지키려면 스펙이라도 좋아야 하지 않겠어?”
지금 진행하고 있는 테스트조차 레녹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개편한 결과물인가.
레녹은 파노아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배팅을 했다는 사실을 절절히 실감했다.
이 정도면 프로젝트의 향방을 아예 레녹의 능력 여하에 맡기겠다는 식의 일처리가 아닌가.
항만에서 보여주었던 레녹의 힘이 어지간히 인상적으로 다이크 사의 직원들에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그런 생각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킬리안과 짧은 대화를 마친 레녹은 일단 공동 끝자락의 단상에 걸터앉아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마냐는 아무런 말없이 그의 뒤에 서서 아래쪽의 풍경을 관망했다.
다양한 상황 대처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구조물들이 제 자리를 잡은 뒤에야, 파노아가 공동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한손으로는 핸드폰을 붙잡고 바쁘게 통화를 하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킬리안을 발견한 그녀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 뭐라뭐라 쏘아붙이고, 그가 어색한 표정으로 턱을 긁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오던 다른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근처에 천막을 치고, 울타리를 만들고, 온갖 측정장비를 들여놓기 시작한다.
한참 뒤에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직원들의 인도에 따라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동 안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번 계획을 위해 파노아가 직접 선정한 후보생들이겠지.
“………”
대략 스물 정도 되어보이는 사람들 무리를 레녹은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했다.
그가 흘려낸 마력이 굵직한 방향성을 띄고 곧게 뻗어나가 그대로 후보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우우웅!!
동시에 시선을 좌우로 빠르게 움직여 반응하는 사람들을 살폈다.
“….!!”
화들짝 놀라듯이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넷. 뭔가를 눈치챈 사람은 다섯.
그리고 정확하게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사람이 세 명.
‘마력을 괜찮게 다루는 놈이 세명은 되는군….. 나쁘지 않아.’
파노아가 생각보다 후보생들을 괜찮은 놈들로 뽑아온 모양이다.
레녹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반님, 설마 벌써 시작하신겁니까?”
“음?”
뒤늦은 마냐의 질문에 레녹의 살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눈치챘나?”
“마법사님이 마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정도는 느껴지더군요.”
마냐는 곤란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저었다.
“피지컬 테스트가 끝나기 전에는 되도록 후보생들을 자극하는 일을 자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쪽에서 비밀 엄수 조건을 상당히 빡빡하게 건 상태라, 저들 역시 꽤 예민한 상태일테니까요.”
“………”
마냐의 말에 레녹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놀란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