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47
약먹는 천재마법사 647화
집행관(4)
“…….”
그 복잡한 내면과 근원을 레녹이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까.
그녀가 어떻게 마키나의 집행관이 되었는지, 이 도시를 소중히 여기어 승천문 계획을 집도했는지.
실패해 추방당한 뒤, 아직까지 망령이 되어 복마전에 입단해 떠돌고 있는지.
구태여 이해하고 납득하려 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찰칵.
레녹은 들고 있던 라이플을 수납하고는 천천히 마력을 거둬들였다.
“라이먼…….”
마우저가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레녹을 불렀지만, 레녹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부탁을 들어주면, 당신은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시치미를 떼고, 마이야 혼자 처리하라고 발뺌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 대신, 마이야의 제안을 이 자리에서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헤르메스는 심성관이 아닌 기계도시 전역을 이용해 새로운 문을 제작, 구세계의 승천자를 불러낼 생각이다.
도시 전체를 들썩이는 구획이동이 사전작업에 불과하고, 동시에 사람을 풀어 레녹을 추적하고 있다면 마이야의 말대로 시간이 많지 않다.
마이야가 먼저 자신의 패를 까고 조건을 설명한 것 역시, 서로 협상할 시간조차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터.
마이야가 대답했다.
“헤르메스를 제외하고, 이 도시에서 네가 벌인 모든 일의 인과를 수습해 주지.”
“인과를 수습해 준다고?”
“라이먼이 네 진짜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무슨 생각인지는 알아. 신분 자체를 의도적으로 허술하게 짜 올렸고, 그 틈을 이용할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사실이 발목을 잡고 있지 않나?”
마이야가 차갑게 웃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행적을 돌이켜보면 네가 누구인지, 어떤 힘을 지닌 초인인지도 알 것 같지만…… 묻어두기로 하자.”
대답하지 않는 레녹을 향해 마이야가 말했다.
“네 신분에 대한 의혹. 너를 둘러싼 이 도시의 포위망. 계엄령이 내려진 이 도시의 군사력. 내가 모두 직접 처리해 주마.”
그제서야 마이야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레녹이 웃었다.
“……그렇군. 처음부터 나와 이 사실을 가지고 거래를 할 생각이었나?”
레녹이 신분을 위장하고 헤르메스와 충돌했으며, 직후 라이먼의 신분까지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이야는 그렇기에 레녹을 대신해 라이먼의 신분을 둘러싼 의혹과 추적을 처리해 주겠다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시간이 끌리면, 집행기관이 이 공방을 특정해 포위할 거다.”
레녹은 마이야의 시선이 레녹이 아니라, 공방 뒤쪽을 훑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빨리 결정해. 거래를 받아들이면 곧바로 시작하지.”
“좋다.”
레녹이 웃으며 대답했다.
“기계도시 최고의 집행관이 마키나 전역에서 쫓기는 모습이라면, 한 번쯤 구경할 가치가 있겠지.”
“…….”
순간 마이야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는 빠르게 감정을 수습했다.
라이먼을 둘러싼 추적과 의혹에서 벗어나고, 헤르메스를 상대할 방법을 하나 더 손에 넣는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마이야는 레녹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기보다는 순전히 그녀의 목적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지만.
그를 통해 레녹에게 양측으로 이득이 되는 거래를 제시했다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결정했다면 바로 시작하지. 일단 화덕진군의 제자부터 처리해라.”
마이야는 마우저를 향해 눈짓한 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공방 밖으로 걸어 나섰다.
마우저가 살짝 기가 죽은 기색으로 투덜거렸다.
“마이야 렌슬릿……. 전혀 변하지 않았군. 여전히 살이 떨릴 만큼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이야.”
“안면이 있습니까?”
“스승님의 공방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댄 마우저가 레녹에게 물었다.
“그래서, 일단 저 추방자와 협력해 이번 일을 해결할 생각인가? 아까 그 아터마이어라는 사람과 함께?”
“…….”
“난 아직도 잘 모르겠군……. 지금 이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마우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구세계와 승천자. 신살자와 승천문의 존재까지.
헤르메스의 목적과 수단은 세계의 비밀을 멸망 저편에서부터 깊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마주하기 어려운 것들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레녹은 구태여 마우저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는 대신, 본론을 꺼내 들었다.
“마이야 렌슬릿과 움직이는 사이 따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지금 말인가?”
마우저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지만, 레녹은 곧바로 창고 문을 힘껏 열어젖혔다.
드르르륵!!
창고 안쪽은 물이 흥건하게 젖어 있는 것은 물론, 온갖 금속 파편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구석에 처박히듯이 쓰러져 있는 것은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채, 겨우 새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거대한 금속체의 형상.
그 모습을 알아본 마우저가 입을 떡 벌리고 레녹을 돌아보았다.
“고위 마법사의 재주가 하늘에 닿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 와중에 탐사선의 잔해를 챙겨왔다고?”
막대한 하중이 걸려 터져나가기 직전의 탐사선.
탐사선이 폭발하며 파이겐바움의 눈을 사용해 탈출하는 와중에도 레녹은 밤까마귀의 파편을 가능한 모두 챙겨서 도망쳤던 것이다.
마력을 통해 측정한 중량은 해저장벽에 도달하기 전에 비해 거의 절반 이상이 뜯겨나간 처참한 몰골.
원래라면 여기서 깔끔하게 복원을 포기하고 폐기 처분하는 것이 맞겠지만, 레녹은 아직 이 장비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남아 있는 아르마델타 합금은 깔끔하게 걷어내고, 일단 밤까마귀의 형상을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정비를 할 겁니다.”
“이미 기본적인 뼈대가 무너졌어. 원본보다 훨씬 더 강한 재료로 덧대 수리하지 않는 이상에야…….”
레녹이 소매를 만지작거린 순간, 그 안에서 자색의 수정으로 보이는 광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곧바로 그 광물의 정체를 알아차린 마우저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그라자이아 광석?”
“해저장벽 근처에서 채굴되고 있던 광석을 조금 가져왔습니다. 경도 하나만큼은 알아주는 물건이라고 하더군요.”
레녹이 그것을 하나 집어 들고 희미하게 웃었다.
“밤까마귀의 새로운 선체로 삼기에는 꽤 적절한 재료 아니겠습니까?”
* * *
기계도시 마키나 종심지구.
엑스 마키나 최고평의회 위원들이 기거하는 당사 거리 안쪽.
높게 솟아오른 시계탑 로비에, 기계머리 파벌의 위원들이 모여 함께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비 벽에 걸린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은 적게 잡아도 8가지 이상.
그 모든 화면이 쉴 새 없이 변화하는 도시 전역을 비추면서, 빠르게 화면을 돌리고 상황을 관조하고 있다.
[하급 공방지구 북서쪽 외곽으로 이동 중.] [천일염 생산해역 내륙지방으로 재편성.] [생체공학 연구지구 좌표 고정.]두두두두!!!
화면 곳곳에서 격렬한 진동과 동시에 변화하고 이동하며 충돌하는 기계도시의 여러 지역들.
스크린을 바라보는 위원들이 목이 타는 것처럼 들고 있던 위스키를 연거푸 들이마셨다.
“……헤르메스 위원에게 이번 일을 일임한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군요. 심성관에 문제가 생겼다지만 너무 급하게 일을 처리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누군가 중얼거린 그 푸념에 다른 위원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받았다.
“문 너머를 들여다보고 멀쩡하게 돌아온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하물며 헤르메스는 엑스 마키나의 위원이면서도 아직까지 연구를 이어가고 있죠.”
“…….”
“해저장벽에 관련된 일이라면 그의 발언권이 가장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마이스터 몇 명이 사망하고, 심성관에서 사고가 벌어졌다면…….”
구체적인 정황증거까지 뒷받침이 된 만큼, 엑스 마키나로서는 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하물며 헤르메스는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는 문의 연구에서 꾸준히 성과를 내던 극소수의 연구자들 중 하나.
평소에는 마키나의 권력에 대해 일절 발언하지 않던 그가 이런 요구를 한 만큼, 그 무게가 더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그 라이먼이라는 장인은 구속됐습니까?”
“한 시간 전부터 사이드스쿼드 요원들에게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통신 자체가 두절된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렇다면 헤르메스 위원의 말대로 라이먼이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군요.”
드넓은 로비가 침묵에 잠겼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상대는 힘없는 장인일 뿐이오. 오히려 일이 틀어지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잡아넣어야……!!”
“랭뮈어 위원……? 어디 가십니까?”
랭뮈어는 다른 위원들이 그를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랭뮈어는 라이먼을 마이스터 선발식에 참가시킨 장본인.
선발식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다, 외려 약점을 잡혀버린 그로서는 라이먼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손재주가 좋고 직관이 뛰어난 장인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밤까마귀라는 기이할 정도로 강력한 전투병기 제작능력. 대뜸 랭뮈어의 저택에 쳐들어와 결판을 낼 정도의 담대함.
그런 일을 저질러놓고도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꼬리를 잡히지 않았을 만큼 은밀하며 정교한 솜씨.
어쩌면 지금 라이먼이 용의자로 특정된 것조차, 그가 직접 의도해서 꾸민 일일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랭뮈어는 한시도 이 근처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운전기사를 불러서 차를 대기시켜. 지금 당장 종심지구를 빠져나간다!!”
“알겠습니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행원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린 뒤 품 안에서 휴대폰을 들어 올린 그 순간.
쿠우웅!!
랭뮈어가 서 있던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충격이 일었다.
“뭐, 뭐야?!”
“습격이다!! 엑스 마키나가 습격당했다!!”
화들짝 놀란 다른 위원들이 튀어나와 소리지르고, 경호원과 호위병들이 서둘러 위원들을 둘러싸고 각자의 장비를 꺼내 움켜쥔 그 순간.
부웅!!
건물 벽면이 마치 도화지처럼 잘려나가 그대로 먼지처럼 소멸했다.
그 너머에서 털털거리며 운전해 안으로 들어오는 낡은 트럭 한 대.
아무렇지도 않게 바퀴를 굴리며 위원들의 앞에 멈춰선 트럭의 창문이 열리고, 누군가 얼굴을 쓱 내밀었다.
“랭뮈어 위원님. 오랜만입니다.”
곧바로 상대의 얼굴을 알아본 랭뮈어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라, 라이먼…….”
“일개 장인 따위가 감히……!!”
“여기가 어디인지 알고 있는 거냐!!!”
엑스 마키나 경호원들이 총화기와 날붙이들을 들고 트럭째로 레녹을 터트리기 위해 움직였지만,
레녹은 그런 이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들고 있던 길쭉한 나팔총을 들어 올렸다.
키이잉!!
나팔총의 방아쇠를 당긴 순간, 총구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기이한 이명과 동시에 경호원들이 일제히 두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끄르르륵……!!”
허무할 정도로 쉽게 끝나버린 싸움. 공방을 교환한다는 최소한의 구도도 성립하지 않는 압도적인 결과.
경호원의 귀에서 검붉은 고혈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위원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길쭉한 나팔총을 든 채로, 운전대를 잡고 있던 레녹이 랭뮈어를 보며 웃었다.
“진작 도망치셨을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계셨군요. 제가 보고 싶기라도 했던 겁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뭐, 그건 됐으니까 일단 이쪽으로 와주시죠. 저랑 같이 가주셔야 할 곳이 있습니다.”
그 말에 다른 위원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긴 어딜 간단 말이냐. 느닷없이 종심지구에 이런 짓을 벌이고도……!!”
“아직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레녹이 트럭 운전석 창문에 기댄 채로, 손에 들고 있던 나팔총을 흔들었다.
“여기 모인 위원님들 전원. 제가 납치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