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46
약먹는 천재마법사 646화
집행관(3)
승천문의 설계자, 아터마이어.
기계도시 마키나의 모든 가능성을 걸었던 지고의 프로젝트, 문을 설계한 장본인이자.
계획의 실패와 함께 사라져 그 이름마저 마키나의 역사에서 지워진 연구자.
마이야는 바로 그 아터마이어의 이름이, 본디 박사의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군.’
의외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레녹은 크게 동요하지 않고 빠르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생각해 보면 박사가 아터마이어거나, 그에 준하는 존재라는 증거가 꽤 많았기 때문이겠지.
판데모니엄에서 마이야와 박사가 예전부터 안면이 있어 보였던 모습.
구세계의 정보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에 흥미를 보이던 박사의 태도.
그리고 그가 제작했던 신상이 기계도시 마키나 곳곳에 복제품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까지.
박사가 한때 이 기계도시에서 구세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판데모니엄에서 박사가 보여주는 역량이나 천재성을 생각한다면, 연구직을 넘어 승천문의 설계에 직접 관여했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레녹이 박사가 아터마이어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던 이유.
그건 레녹이 판단했던 박사가, 한 곳에 얽매여 초대형 프로젝트에 매진할만한 사람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단장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는 하지만, 박사의 계획과 방식은 판데모니엄 안에서도 다분히 이질적이고 독단적이다.
레녹은 그런 사람이 한때 기계도시 소속으로서 승천문 계획의 설계파트를 담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건 내가 남긴 미련이 아니다, 마이야.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군.]박사가 차갑게 변한 목소리로, 마이야가 만든 혈문 너머에서 웃었다.
[내가 했던 일은 승천문의 이론을 실현 가능한 도안으로 설계해 준 것뿐이지. 쥬라의 천칭에 조건을 걸고 대가를 맞췄을 텐데?]“…….”
희미한 냉소가 섞인 박사의 대답.
[적막 너머에서 의미를 꺼내오겠다는 발상부터 틀렸다. 이런 문제가 생길 거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지. 이제 와 그걸 수습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탁, 탁…….
나른하게 무언가를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박사가 중얼거렸다.
[한 번으로는 끝나지 않을 수고를 반복하는 것뿐이다, 마이야…… 네가 찾는 근원적인 해답과는 거리가 멀지.]마이야가 승천문의 실패에 얼마나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서도, 정면에서 그것을 비웃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문의 실패에 책임이나 부담을 느끼기는커녕, 그것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오히려 박사의 말을 들어보면, 마이야가 이 시점에 마키나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만류하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
말없이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녹이 눈을 빛냈다.
‘모종의 거래를 통해 승천문 계획에 참여했지만, 그 결과에는 관심이 없었던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고, 박사가 문을 설계했다는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박사는 계획에 있어 자신의 공이 사소하다 생각하는 듯했지만, 레녹은 반대로 그 대답에서 그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고 있었으니까.
승천문의 이론을 실현 가능한 도안으로 설계했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 심상과 의념, 가능성을 수치화시켜 계산과 연구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천재성.
박사가 이야기한 것은 레녹조차도 흉내낼 수 있을지 장담키 어려운, 이론화의 극에 다다른 재능의 결실이었던 것이다.
아터마이어라는 이름이 이 도시에서 완전히 잊힌 이 시점에도 그가 승천문의 설계자로 기억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과정에서 박사의 능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노골적으로 승천문의 실패를 지적하며 비웃는 박사의 말.
하지만 마이야는 그런 박사의 말에 분노하는 대신, 말없이 팔뚝에서 떨어져 내리는 핏물을 바라보았다.
떨어져 내린 핏물이 솟아올라 문의 형상으로 변해, 박사와 의사를 연결하고 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박사 자신이 직접 개입할 생각이 없음이 드러난 이 시점에서, 최소한의 결과를 남겨야 할 터.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헤르메스는 신살자와 함께 한 적이 있는 극소수의 승천자들 중 하나다.”
[신살자?]“이번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그 인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어. 내 말이 틀렸나?”
[…….]침묵하던 박사가 웃었다.
[……그렇군. 듣고 있는 사람이 있었나? 빨리 말을 해줬으면 서로 편했을 텐데.]“…….”
마이야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지만, 레녹은 지금 두 사람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곧바로 눈치챘다.
헤르메스는 단장과 관련이 있는 극히 드문 구세계의 존재들 중 하나.
그렇기에 마이야는 승천문의 실패를 수습하는 일이 아니라도 그 경과를 지켜볼 필요성을 박사에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다만 단장의 존재를 신살자로 돌려 말한 것은, 레녹이 단장의 정체를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한 간단한 메시지일 뿐.
박사는 순식간에 그 말의 의도를 읽고 레녹의 존재를 은연중에 눈치챘던 것이다.
[좋다.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지.]방금 전까지 만류하던 태도가 어색할 만큼 시원스러운 태세전환.
마이야 역시 그런 박사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아. 문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 빠르게 듣지.”
[해줄 말이라…… 아, 그렇군.]박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웃었다.
[마침 내 데이터베이스에 구세계의 승천자에 대한 정보가 몇 가지 있다. 헤르메스에 대해 설명해 주지.]“……헤르메스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다고?”
[헤르메스 오로크니어. 망국의 재상, 강철의 유령, 백금의 사령관.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연구하며 질량술식을 토대로 위계를 초월해 자격을 얻은 승천자.]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박사가 평탄한 어조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일기당천의 사령관이자, 군단과도 같은 무력을 지녔다더군. 구세계의 역사에 그가 남긴 전공이 수십 년 단위로 존재할 만큼 뛰어난 전쟁대리인이었던 모양이다.]“…….”
[냉정하고 기계적인 성품. 멸망시킨 나라가 다섯 곳. 스러진 문명이 하나. 신으로 추앙받은 적도 있으나 신도를 두는 일에는 관심이 없던 것 같다.]레녹은 그 말을 듣고 WORLD 2.0에서 헤르메스 같은 존재가 있었는지 생각해보았지만, 마땅히 생각이 나는 보스나 등장인물은 없었다.
그가 WORLD 2.0을 플레이하는 것을 그만둔 다음에 존재했던 초월자인 걸까.
마이야 역시 그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긴 듯 복잡한 표정으로 침묵했다.
박사는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마치 낡은 책을 들여다보듯 중얼거렸다.
거기까지 읽어내리던 박사의 말이 뚝 멎었다.
“박사, 무슨 일이지?”
[후후…… 어째서 헤르메스의 자아가 문 너머에 존재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군. 그는 처음부터 세계를 초월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낮은 웃음을 터트린 박사가 대답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대충 알겠군. 기계도시 근처에 내가 남겨둔 안배가 하나 있다. 좌표를 보낼 테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도록.]“좋아.”
마이야가 차갑게 대꾸하며 천천히 팔뚝을 문질렀다.
“나머지는 일이 모두 끝난 다음 듣지.”
[마음대로. 다만 구세계의 공허에 너무 깊게 관여하는 일은 없도록 해라. 알고 있겠지만-]천천히 닫혀가는 혈문 너머로 잠시 말을 멈춘 박사가 속삭였다.
[이미 우리는 그 오래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가능성과 함께하고 있으니까.]순간, 마이야의 입매가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그를 그렇게 부르는 것 자체가 어색하다는 것처럼.
“가능성이라…….”
[구세계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야. 잊지 마라.]묘한 어조로 중얼거린 박사의 목소리가 희미해지며, 걸음 소리가 멀어진다.
마치 문 너머에서 등을 돌리고 걸어 나가기라도 하는 듯한 작은 발소리.
[절대적인 기준 아래 모든 것은 계산의 영역에 존재할 뿐. 나머지는…….]흩어져가는 기척 너머로 박사의 전언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마이야는 그 말을 듣고 있다, 천천히 팔뚝을 문질러 지혈하고 혈마법을 거둬들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선 그녀가 레녹을 향해 가볍게 고갯짓했다.
“좌표를 받았다. 일단 움직이지.”
하지만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헤르메스를 막고 싶어 한다는 건 알겠다. 당신은 이것이 예정되어 있던 실패들 중 하나라 생각하는군.”
“…….”
“그렇다면 어째서 직접 나서는 대신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거지?”
“승천문의 실패와 함께…….”
마이야는 그렇게 말한 뒤, 희미하게 입꼬리를 일그러뜨렸다.
마치 그 사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견디기 어렵다는 것처럼.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천칭에 언약을 걸고 모든 권한을 내려놓았다. 기계도시 엑스 마키나를 비롯한 중추 시스템에 대한 간섭이 내게는 금지되어 있지.”
“천칭?”
“쥬라의 천칭. 중앙도시 아르스노바에서 기아스를 재해석해 만들어낸 수치화된 계약의 일종이다.”
마이야가 대수롭지 않은 듯이 설명했다.
“타락한 위상을 매개로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고위계 초인만이 대가를 거는 것이 가능한 금제의 역할을 하고 있지.”
“금제로 인해 개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싶다, 이 말인가?”
“계약의 반동으로 피해를 보는 건 내가 아니야.”
팔짱을 낀 채로 레녹을 응시하는 마이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계약자가 천칭에 내걸었던, 가장 소중하고 집착하는 가치 그 자체지.”
“…….”
그녀가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것은 기계도시의 안위, 혹은 그에 준하는 가치에 이른 무언가.
금제를 어기고 과하게 손을 썼다가는 기계도시 자체가 망가져 버릴 수도 있다고 그녀는 돌려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직접 헤르메스를 상대하려 나섰다가는, 오히려 그를 도와주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군.”
추방자로서 시스템에 개입할 모든 권한이 박탈당했기에, 접근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마이야는 몰래 이 도시에 다시 돌아와, 도시 전체를 뒤집어엎으려는 헤르메스를 막으려 들고 있다.
그것은 이미 이 도시에게 버려진 뒤에도, 마이야가 여전히 마키나의 실패를 곱씹고 항시 되새기고 있었다는 증거겠지.
“헤르메스의 존재는 우리가 계획을 준비할 당시 상정했던 여러 가지 변수들 중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위험한 변수 중 하나다.”
빠르게 지혈을 끝내고 흔적을 수습한 마이야가 말했다.
“자격을 얻은 승천자의 자아에 잡아먹힌 정신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볼 수 없지. 잠식된 기억에 따라, 진짜 자신을 불러내기 위해 움직이는 부품이 될 뿐이다.”
“…….”
“추방당하기 전, 그와 관련된 위험을 확실하게 대비하고 싶었지만…….”
아마 레녹의 이해를 바라고 던진 말은 아니겠지.
그녀의 말은 마이야의 내력과 사정을 어느 정도 인지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
하지만 그렇기에 레녹은 마이야가 어째서 이 시점에 마키나로 잠시 돌아왔는지 이해했다.
그녀는 승천문의 실패를 수습하거나,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실패로 인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마키나로 돌아왔던 것이다.
도시 밖에서 마주한 그녀는 희생과 살육, 파괴와 몰락을 자행하는 무법자였지만,
마키나로 돌아온 그녀는 아직도 도시에 책임을 다하는 수호자이자 집행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