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48
약먹는 천재마법사 648화
집행관(5)
시계탑 지하실로 내려가는 으슥한 계단 입구.
가느다란 마력사로 양손이 묶인 위원들이 줄지어 지하실을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인질로 잡힌 채 단체로 호송되듯이 이동하고 있는 위원들의 모습.
“자네가 타고 있던 트럭. 그건 종심지구 근처 중앙은행 소속 현금수송 차량이더군.”
줄 가장 뒤쪽에서 말없이 걷고 있는 레녹의 눈치를 보던 랭뮈어가 말했다.
“연식이 오래되기는 했지만 아직 이 근방에서 사용되는 기종이지. 그걸 타고 종심지구까지 몰래 진입해 온 건가?”
레녹은 그런 랭뮈어를 재밌다는 듯 바라보다 대답했다.
“비자금을 실시간으로 받아 보관하기 위해, 금융지구 쪽으로는 내부 보안이 느슨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뭐?”
“현금을 받으러 출발한다고 둘러대면 아무도 의심하지 않죠. 불철주야 도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위원님들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레녹이 결코 좋은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지금 그가 말하는 그 모든 계획 하나하나가, 철저하게 이런 순간을 대비해 왔다는 정황증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장인은 이런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계탑에서 비자금을 받은 뒤, 수송차량을 이용해 금융지구로 보낸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던 겐가.”
“랭뮈어 위원!!”
“어찌 그런 유언비어를 함부로 퍼트린단 말입니까!!”
다른 위원들이 화들짝 놀라 발뺌했지만, 랭뮈어는 그들을 무시하고 레녹에게 물었다.
“목적이 뭐지? 우리를 인질로 잡아 무엇을 하려는 겐가?”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기에 앞서, 그들이 걷고 있는 시계탑 지하계단의 천장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이곳 시계탑은 마키나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건물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
“건물 자체는 마키나의 기술력에 뒤처진 지 한참 되었지만, 상징성 때문에 종심지구에 남아 있는 건축물이라…… 기계도시의 위명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다른 위원들 역시 온갖 수난을 겪으며 올라온 이들인 만큼, 동요하지는 않았지만 긴장한 기색은 감출 수 없었다.
나선형으로 길게 늘어진 계단과 으슥한 복도를 지나, 두꺼운 레버를 돌리자 드러나는 시계탑의 엔진실.
온갖 펌프와 피스톤이 사방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수증기와 열기가 뒤섞인 채 엔진실 안쪽을 가득 메우고 있다.
“후우…….”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땀을 흘리거나, 숨이 막히는 기색으로 손을 내젓는 위원들의 모습.
랭뮈어는 그들을 무시하고 가장 뒤에 서 있던 레녹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네가 말한 대로 오래된 건물이라, 동력 효율이 좋지 않아. 여기서 뭘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찰칵!!
그 순간, 레녹이 대뜸 엔진실의 문을 닫고 그대로 안쪽에서 잠가 버렸다.
자신을 비롯해 누구도 엔진실 안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손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허억……!!”
다른 위원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고, 모두가 레녹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뒷걸음질 쳤다.
“거짓말을……!!”
“빌어먹을, 왜 하필 이런 곳까지 와서……!”
레녹은 그 외침에 대꾸하는 대신, 손에 쥐고 있던 나팔총을 그대로 들어 올려 위원들을 향해 겨누었다.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고, 위원들이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
쿠웅!!
엔진실 내부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펌프와 피스톤이 일제히 작동을 멈추었다.
“……어라?”
위원들이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천천히 양손을 귀에서 떼어내자, 레녹이 말했다.
“대형펌프 47대. 중형 피스톤 80대. 693개의 하부삽입파이프와 플래툰 공방의 증기배출장치 3대.”
나팔총을 든 손을 내린 레녹이 주변을 둘러보며 걷기 시작했다.
“엔진실 내부에서 발생하는 출력은 시계탑 하나를 커버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수준입니다. 정상적으로 출력이 공급된다면, 내부 시설이 과부하되어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죠.”
“뭐, 뭐?”
“그렇다면 이 엔진실에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시계탑이 아니라 다른 기능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 레녹과 위원들이 서 있던 엔진실 바닥이 크게 흔들리더니 쑥 가라앉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으헉!!”
“떨어진다!”
“자, 잡을 곳이……!”
휘청거리면서 어떻게든 엔진실 곳곳에 존재하는 손잡이를 잡고 매달리는 위원들의 모습.
무심코 곳곳에 먼지가 쌓여 있는 손잡이를 움켜쥔 위원들이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렇군. 이런 식으로 손잡이가 여러 군데 만들어져 있었던 것 자체가…….”
덜컹, 덜컹!!
엔진실이 엘리베이터가 된 것처럼, 지하 내부로 내리꽂히듯이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린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멈춰 서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옆으로 방향을 틀어 한참을 질주한다.
마치 레일 위를 내달리는 것처럼 흔들리다, 다시 상승하는 엔진실의 형상.
“……음?”
감이 좋은 위원들 중 몇몇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덜컹!!
엔진실이 멈추는 것과 동시에 레녹이 잠가버렸던 문이 활짝 열렸다.
머뭇거리며 밖으로 빠져나온 위원들이 바깥의 풍경을 보고 당혹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이, 이게 대체…….”
“이런 흉악한 신상이 시계탑에 숨겨져 있었다고?”
파헤치다 만 것만 같은 음침한 흙더미 공동 한복판. 이면팔비의 거대한 신상이 흙더미 사이에 파묻히듯 박혀 있었다.
두 개의 머리와 여덟 개의 팔을 지닌, 악귀와도 같은 형상.
여덟 개의 팔 모두가 알 수 없는 사슬에 얽매여 단단하게 묶여 있고, 열 개의 눈동자는 굳게 닫혀 있다.
흙더미 사이에 반쯤 파묻히다시피 한 채 잠이 든 듯한 고요한 신상의 모습.
하지만 그 존재감은 아무런 힘도 내뻗지 않았는데도 실로 압도적이기 그지없다.
다른 위원들이 신상의 존재감을 마주하고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사이, 레녹은 가까이 다가가 신상의 팔뚝을 매만졌다.
‘박사가 말했던 좌표가 여기였군.’
팔뚝의 단단함과 그 재질이 기억속에 남아 있는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은 레녹의 눈이 빛났다.
‘중간결산에 사용되던 이면팔비의 신상. 이게 바로 그 프로토타입이었나.’
나시사 솔머 암살범을 추적하던 과정에서 레녹은 박사가 사용하던 신상과 유사한 복제품을 마주했었다.
기룡의 심장를 찾던 사이드스쿼드 요원에게서 화덕진군의 망치를 손에 넣고, 아르마델타 합금의 제조법이라는 정보를 뽑아내지 않았던가.
그때는 어째서 신상의 복제품이 이곳에 있는지 모른 채, 신상의 능력만을 이용한 뒤 도망쳤을 뿐이지만.
박사의 이름이 아터마이어라는 사실을 안 뒤에야 그 내막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승천문의 설계자 아터마이어.
기계도시에서 오랫동안 구세계를 연구해 온 그가 만들어낸, 구세계의 정보를 보관하기 위한 프로토타입.
바로 그것이 이 기계도시에 존재하는 신상의 정체이자, 근원 그 자체였던 것이다.
판데모니엄에서 중간결산에 사용되던 신상은, 아마 박사가 마키나를 떠난 뒤 새롭게 만들어낸 완성본이겠지.
하지만 그 신상의 원본은 아직 이 기계도시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엑스 마키나 위원들이 직접 기거하는, 역사가 오래된 시계탑의 비밀 공간에.
엔진실의 숨겨진 기능을 작동시킨 것은, 시계탑의 여분 출력 자체가 이 지하공동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
레녹은 박사에게 받아낸 좌표를 통해 일련의 과정을 조사하고, 신상을 성공적으로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수송차량을 끌고 시계탑까지 들어와 위원들을 인질로 잡은 것 자체가, 박사가 일러준 좌표까지 진입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아터마이어라는 이름이 완전히 잊혀진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박사가 남겨둔 신상은 아직까지 이곳에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신상의 팔을 단단하게 묶고 있는 사슬을 매만지던 레녹이 말했다.
“마이스터급 장인이 직접 제작해 걸어 넣은 물건이군요.”
“……뭐라고?”
“자체적으로 내장된 보안 시스템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동급의 권한이 필요해 보입니다.”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위원들을 향해 레녹이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엑스 마키나의 권한이 필요한 일이란 말인가.”
“믿을 수가 없군. 이런 흉물이 시계탑 지하에 숨겨져 있었다니…….”
레녹이 위원들을 인질로 삼아 이 자리까지 데려온 이유가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이해했다.
위원들이 위축된 듯한 기색으로 머뭇거리며, 신상의 여덟 갈래 팔을 묶은 사슬 앞에 섰다.
단단한 사슬 옆에 박힌 디바이스에 티켓을 인식시키고, 엑스 마키나의 권한으로 보안 조치 해제를 요청.
시스템이 권한을 승인하는 것과 동시에 신상을 묶은 사슬이 동시에 풀려났다.
쿠우웅!!
떨어져 내린 사슬이 흙먼지를 풀풀 풍기면서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위원들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쿨럭, 쿨럭!!”
순식간에 먼지투성이가 된 위원들이 뒤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레녹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엔진실로 돌아가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라이먼…… 너는 저 신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건가?”
다른 위원이 불안한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희미하게 웃었다.
“이쪽 공동은 개발을 진행을 하다만 탓에 산소가 많이 희박합니다.”
“그게 무슨……?”
“그나마 환기가 잘 되는 엔진실로 빨리 돌아가지 않는다면, 오래 버티기 어려울지도 모르겠군요.”
“……!!”
말 몇 마디만으로 위원들을 제 발로 엔진실로 돌려보낸 레녹이 신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엔진실의 이동기능은 레녹이 다시 돌아가지 않는 한 작동하지 않을 테고.
상대적으로 환기가 잘 되는 엔진실이라면 위원들을 가둬두기에도 적합한 장소겠지.
이 지하공간은 시계탑에서도 수백 미터 아래로 하강해야 도달할 만큼 숨겨져 있으니, 위원들을 인질로 삼아 잡아두기에도 알맞다.
남은 건 박사가 남긴 좌표에 위치한 이 신상을 이용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뿐.
“마이야. 준비됐나?”
“신상이 진짜라는 건 확인이 끝났다.”
아무렇지도 않게 신상의 등 뒤에서 걸어 나온 마이야가 대꾸했다.
“위원들을 데리고 엔진실을 들락거리지만 않았어도 진작 시작했겠지.”
“아터마이어가 숨겨진 신상의 위치를 알려주기는 했지만, 그가 마키나를 떠난 지 수십 년이 넘었다고 들었다.”
마이야의 말에 레녹이 침착하게 답했다.
“누군가 신상의 존재를 인지하고 손을 써두었을 가능성이 있었지. 실제로 마이스터 중 누군가 신상을 발견하고 사슬을 걸어두지 않았나?”
곧바로 레녹의 말을 이해한 마이야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렇군. 엑스 마키나 위원들이 그만큼 모여 있다면, 어떤 보안장벽이든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사슬을 걸어둔 마이스터는 신상을 발견하기는 했지만, 기계머리 파벌의 위원들이 기거하는 시계탑 내부에서 신상을 꺼낼 방법을 찾지는 못한 거야.”
사방에 어지럽게 떨어진 사슬들을 보며 레녹이 말했다.
“그래서 같은 권한을 지닌 이들만이 풀 수 있는 사슬을 걸어두고, 추후 신상을 연구하려 했던 것 같군.”
실제로 신상의 복제품이 사이드스쿼드 요원들 사이에서 이용되던 것을 생각하면, 이 프로토타입을 발견한 것이 레녹뿐만은 아니라는 증거.
어쩌면 레녹이 방금 인질로 엔진실에 돌려보낸 기계머리 위원들 중에서도 이 신상의 존재를 알고 있는 위원들이 있을 수 있다.
작정하게 시간을 들여 심문하고 속내를 긁어낸다면, 그 내력을 캐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시간이 없으니까. 일단 신상과 관련된 엑스 마키나의 행적은 나중에 따로 조사해 보지.”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손목을 두들겼다.
“엔진실에서 이동하는 사이 위원들 중 두 명의 티켓을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한번 사용하고 나면 막히겠지만, 최고보안방벽도 두 번은 통과할 수 있을 거다.”
박사가 알려준 루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쉽게 기계머리 위원들의 목줄을 거머쥐지는 못했을 터.
위원들을 이 자리에서 죽이거나 인질로 잡을 상황은 아니었지만, 레녹은 그렇다고 순순히 그들을 놓아준 것은 아니었다.
엔진실이라는 비좁은 환경. 불안정한 상황에서 여유가 없어진 위원들의 의식을 뚫고, 방비가 허술한 위원들의 티켓을 몰래 복제해 냈던 것.
동시에 신상을 끌어올리는 와중 혹시 모를 보안장치가 존재한다면 위원들을 방패로 삼아 헤쳐나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엑스 마키나 위원의 티켓을 복제까지 해냈다라……좋아.”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린 마이야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훨씬 더 감이 좋군. 바로 시작하지.”
“문제가 있다면, 난 신상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물건인지는 잘 모른다. 이제부터 그쪽이 알아서 해야 할 거야.”
물론 레녹은 중간결산에 참여한 만큼 신상이 어떤 능력을 지닌 장치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슬쩍 발을 뺐다.
빅터의 신분으로 온 것이 아닌 만큼, 박사나 신상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낼 이유는 없다.
마이야는 레녹이 평범한 장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정체를 세세하게 캐묻지는 않았다.
그건 라이먼의 진짜 정체가 누구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반대로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 때문일 터.
‘견뢰의 존재를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니면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신상에 다가서는 마이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레녹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어느 쪽이든 레녹이 이 시점에서 신상의 능력에 대해 아는 척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여기서는 일단 박사의 조언을 받은 마이야의 판단에 따르는 수밖에.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모르는 척 먼저 마이야에게 언질을 주었다.
“아터마이어가 직접 만든 신상이라면, 구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매개체일 가능성이 높겠군.”
“맞다. 심성관에서 문 너머를 보고 왔다면 알고 있겠지.”
라이먼의 신분으로 문 너머를 보고 돌아온 만큼 이 정도도 추측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터.
마이야 역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상의 손바닥 위에 올라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세계의 기억과 정보들을 등가교환의 형태로 거래하고 보관하기 위한 저장장치다.”
“…….”
“박사는 이 물건을 아주 오래전부터 구상했지만, 정작 제대로 완성시킨 건 계획이 끝나고 난 뒤의 일이었지.”
“승천문 계획의 실패 말인가?”
화악……!!
레녹이 대놓고 그 단어를 언급하자, 마이야의 기세가 일순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빅터는 알지만, 라이먼은 모른다. 뻔한 연기를 섞어서라도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문제였다.
싸늘한 시선으로 레녹을 내려다보던 마이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의 실패를 완전히 마무리 짓고 나서야, 박사는 처음 생각했던 방식으로 회귀했던 거다.”
“…….”
“아터마이어가 종국에 무슨 생각을 하고 이름을 버렸는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던지고 도시를 떠났는지는 그만이 알겠지.”
철컥!!
품 안에서 소검을 꺼내든 마이야가 싸늘하게 웃었다.
“하지만 미련을 아예 남기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랬다면, 신상의 프로토타입을 이곳에 멀쩡하게 숨겨두었을 리도 없을 테니.”
망설임 없이 신상의 손바닥 위로 타고 올라선 마이야가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레녹은 내심 흥미롭게 마이야가 하는 일을 뒤에서 구경했다.
박사가 만든 신상의 능력은 구세계의 정보나 유물을 바치고 가치를 측정해 비등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원칙.
레녹 역시 신상의 복제품을 이용해 아르마델타 합금의 제조법을 손에 넣지 않았던가.
박사가 이 신상이 숨겨져 있는 좌표를 알려준 시점에서 그를 이용해 필요한 정보를 얻으라 언질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마이야가 이 시점에 신상에 무엇을 대가로 삼아 거래를 할지 궁금한 것도 사실.
‘중간결산 당시에는 마이야가 크게 눈에 띄지 않았었지. 나름대로 성과를 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위성도시 바이루츠에서 중간결산을 진행할 당시, 마이야는 할당량을 채우는 데만 만족했을 뿐 거래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기계도시 마키나와 직접 관련된 일에서 중요한 정보를 대가로 내거는 일을 망설이지는 않을 터.
레녹은 마이야가 어떤 정보를 대가로 삼아, 헤르메스를 막기 위한 방법을 찾아낼지 내심 흥미가 있었다.
신상의 손바닥 위에 올라타 마력을 끌어올린 마이야의 입이 열리기를 레녹이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마이야가 가볍게 한발을 앞으로 내디뎌 순식간에 신상의 팔을 타고 걸어 올라섰다.
“……음?”
레녹이 그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무어라 언질을 두기도 전에.
서걱!!
번뜩이는 소검을 휘두른 마이야가 대번에 신상의 목을 잘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