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49
약먹는 천재마법사 649화
집행관(6)
투웅!!
사람만한 크기의 거대한 신상의 머리 두개가 떨어져 내린다.
목이 잘려나간 단면에서,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검붉은 진액이 꿀렁꿀렁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소검을 거둬들이는 마이야를 보며 레녹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프로토타입을 이렇게 망가뜨려도 괜찮겠나? 이렇게 만들면 신상의 능력을 이용하기는 어려워질 텐데.”
“박사는 신상의 능력으로 거래를 하라고 이쪽 좌표를 찍어준 것이 아니다.”
마이야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신상의 능력을 구성하고 있는 재료 중에, 이번 계획에서 필요한 물건이 있지.”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주변을 둘러보다 흘러나온 진액을 손가락으로 찍어본 뒤 중얼거렸다.
“이건…… 대천사의 진액이군.”
“알고 있었나?”
“심성관에서 헤르메스가 불러낸 대천사를 상대한 적이 있다.”
대천사 카슈인이 마이스터의 육신을 빌려 강림한 순간, 검붉은 진액이 흘러넘치지 않았던가.
레녹은 신상의 목이 잘린 단면에서 피처럼 솟아 나오는 이것이, 대천사의 진액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증거로 카슈인의 영을 흡수한 대천사의 연민이 희미하게 진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력전도율이 나빠 어딘가에 활용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신상의 동력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나?”
“대천사의 진액은 현세와 구세 양쪽의 정보를 호환시켜 줄 수 있는 극소수의 촉매다.”
“호환이라…….”
신앙을 토대로 삼아 구세계와 현세계 양면으로 실패한 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일까.
레녹은 어째서 대천사의 진액이 두 세계의 정보를 호환시켜줄 수 있는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이야가 의외라는 듯 레녹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히려 네 말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군. 헤르메스가 문 너머에서 대천사의 영을 불러냈단 말이냐?”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육신에 강령을 시키는 형태였지만…….”
레녹은 당시 헤르메스가 어떤 식으로 대천사를 불러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실패한 신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전후과정을 들려주자, 마이야가 고민에 잠겼다.
“영성을 직접 문 너머에서 끌어내는 건 계획 당시에도 거의 전부 실패했던 일인데…… 헤르메스가 문을 이용하는 솜씨가 경지에 다다른 모양이군.”
“헤르메스의 말에 의하면 대천사의 영성을 인간에게 주입한 것 자체가 실험에 가까워 보였다.”
자연스럽게 대천사의 진액을 빈 약병에 골라 담아 수납한 레녹이 대답했다.
진액 자체가 촉매의 역할을 한다면 데이터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육신에 구세계의 영성이 깃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초월자 자신을 불러내려 시도하겠지.”
헤르메스는 승천자의 기억에 잠식당한 인위적인 자아 그 자체.
승천자의 기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초월자는 아닌 바.
하지만 헤르메스가 문 너머에서 진짜 승천자의 영성을 불러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건 말 그대로 구세계의 승천자 본인이 직접 기계도시 마키나에 강림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대천사의 강림을 통해 계획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구획이동을 통해 새로운 승천문을 만들고 있다.
계획이 마무리되는 순간 헤르메스는 세 번째로 만들어진 문 너머에서 승천자의 영을 직접 불러내 합신(合神)을 시도할 터.
‘구세계의 승천자가 이 세계에 강림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긴 하지만…….’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마이야는 자신이 베어 떨어뜨린 신상의 머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눈을 감은 채로 목이 떨어진 두 개의 머리.
소검을 눈꺼풀에 가져다 대 도려내고, 신상에 존재하는 열 개의 눈동자를 하나하나 적출해 낸다.
고통스러운 듯 희미하게 꿈틀거리며, 검붉은 진액을 쏟아내는 신상의 머리.
하지만 마이야가 모든 눈동자를 적출해 낸 그 순간 이내 힘을 모두 잃고 죽은 듯이 굳어버렸다.
레녹이 신상의 머리에서 추출해 낸 열 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필요했던 것이 신상의 능력이 아니었군. 애초에 이 눈동자를 원했던 건가?”
“아터마이어가 만든 프로토타입은 그 기능이 완성되지 않아, 마키나가 지닌 신화급 보구의 힘을 빌려 만들어진 부분이 있다.”
마이야가 그렇게 대답하며 눈동자를 손에 쥐고 조심스럽게 깨부수었다.
콰직!!
신상의 눈동자. 그중에서도 동공 역할을 하던 자흑색의 수정체를 조심스럽게 그러모은다.
박혀 있던 동공 파편을 추출해 모아놓자, 자연스럽게 합쳐지며 손가락만한 크기의 거울로 변했다.
두근, 두근……!!
자흑색의 묵직한 광채를 띄는 보석거울이 마이야의 손에 쥐어진 채로 불규칙하게 진동하며 흔들린다.
레녹은 심장처럼 박동하는 자흑색의 보석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공간이…….”
마이야가 쥐고 있는 거울의 공간이 실제로 부풀어 올랐다 수축하고 있었다.
보석거울의 맥동을 따라 공간 자체가 확장되고 수축하는 기현상.
마이야의 손도 공간을 따라 부풀어 올랐다 수축하며, 피부가 찢어지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
8레벨 육체능력자의 내구력과 회복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마이야의 손이, 거울을 쥐고 있는 것만으로 부풀어 올라 찢어질 만큼 강렬한 공간의 흔들림.
하지만 마이야는 제 손이 부풀어 찢어지고 피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거울을 들고 레녹에게 내밀었을 뿐.
“이게 무엇인지 알 것 같나?”
“……아주 강력한 의념을 보유한 무언가라는 사실밖에는 모르겠군.”
레녹이 유심히 그것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마력이 일체 섞여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아티팩트나 보석 종류는 아니야. 애초에 자연적인 현상이나 인과관계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군.”
“9레벨 승천자, 천견 마드레아 팔시어의 의념을 물질화시킨 물건이다.”
순간, 그 대답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레녹이 침묵했다.
마이야가 대뜸 내뱉은 그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더할나위없이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뭐?”
“이 세계 모든 것을 누구보다 멀리 내다보았다는 천견의 사상전역. 그 의념의 토대를 추출해 만들어낸 추출물이지.”
“…….”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던 레녹이 빠르게 표정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천견……. 그 등대지기의 사상전역을 추출해 만든 의념물질이란 말인가?”
“마키나에서 승천문 계획이 진행될 당시, 천견의 도움을 받아 이러한 추출물을 몇개 만들었다.”
마이야가 대답했다.
“위대한 승천자들 중에서도 천견은 비교적 인간에게 우호적인 편이었지. 그렇기에 필레놈 자치령에 막대한 공물을 바친 다음 이 의념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승천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부분은 이정표로 소모되었지만, 아터마이어가 몰래 빼돌려 숨겨둔 물건 중 하나다.”
보석거울을 움켜쥔 마이야가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9레벨 승천자가 자신의 심상을 현실에 통째로 뒤집어씌워 전개하는 사상전역.
레녹은 진둔과의 만남을 통해 그 개념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힘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진둔 자이기스 이더노어가 북대륙 설원에 전개했던 사상전역, 항하사미궁.
결계사로 살아온 그의 삶 자체를 덧그리듯 현실에 덮어씌워 전개했던, 초인 수천 명을 일시에 수용하고도 남을 법한 거대한 미로.
단순히 그 영역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수준을 넘어, 사상전역 내부에 들어온 모든 이들의 생살여탈권을 거머쥘 수 있는 힘이다.
마이야는 천견이 거느리고 있던 사상전역의 의념 일부를 추출해, 물질화 시켰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드레아 팔시어가 스스로의 사상전역을 추출해서 세상에 퍼트렸단 말인가…….’
생전의 천견은 어째서 마키나의 승천문 계획에 힘을 빌려주었던 것일까.
행여나 기계도시의 방식이 이 세계의 결말에 대한 대답이 되기를 바라기라도 했던 걸까.
그렇다면 등대지기의 역할을 물려받은 라피스 역시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터.
어쩌면 세계 곳곳에 등대를 세워 등대지기의 공능을 되찾는 청의 눈의 계획이, 천견의 사상전역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마이야가 계속해서 말했다.
“자격을 갖춘 초월자의 의지는 이 세계의 격에 비견되는 힘. 그 힘을 빌린다면 시간선을 비틀어 고정점을 강제로 만들 수 있지.”
승천자의 의념을 물질화시켜 동력으로 삼아, 세계의 벽을 찢고 강제로 다음으로 향하는 문의 단초로 삼았다는 말인가.
그 말에 담겨 있는 마키나의 기술력과 발상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를 직감한 레녹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의 시작점을 강제로 고정하고자, 천견의 의념을 물질화시켜 이정표로 삼았다는 말인가. 제정신이 아니군…….”
승천문 계획의 요체는 다음 세계로 향하는 문 자체를 만들어내는 것.
하지만 세계 자체를 뛰어넘는 만큼, 급변하는 시간선 사이에서 언제든지 돌아오기 위한 시작지점이 필요하다.
시간의 상대성을 뛰어넘는 고정점이 없다면, 계획이 진행되는 사이, 길을 잃고 표류하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을 터.
그렇기에 기계도시의 선조들은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무려 승천자 천견의 의념을 물질화시켜 이정표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가장 멀리 내다본다는 등대지기의 의념이라면, 확실히 세계 저편에서도 길을 찾는 눈이 되어줄 수 있겠지.”
“……생각보다 이해가 빠른데. 비슷한 경험이 있나?”
마이야는 레녹이 설명을 곧바로 이해한 것에 살짝 놀란 듯이 그를 돌아보았다.
레녹 역시 시간마법을 다루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 고민해 온 만큼, 보석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 보석거울이 천견의 의념을 물질화시킨 촉매라는 건 알겠군. 아터마이어가 말했던 방법이 이것인가?”
박사, 아터마이어는 자신의 혈육으로 알려진 엘라바 아터마이어의 머릿속에 승천문 개방코드를 통채로 복제해 박아넣은 당사자.
그것을 생각하면 박사가 반대로 문을 강제로 닫아버릴 수 있는 수단을 남겨두었다 하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승천문에 하등 미련이 없는 것처럼 반응하기는 했지만, 여차할 경우 문의 시스템에 개입하기 위한 수단은 아직까지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일까.
그 치밀함과 광기 어린 탐구심은 레녹이 판데모니엄의 천재와 괴물들 사이에서도 박사를 유독 위험하다 느끼는 이유 중 하나였다.
“헤르메스의 방식은 승천문의 실패와는 관계없는 방향으로 폭주하고 있을 뿐……. 그 사실에 대한 어떤 미련이나 해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이야가 차갑게 자조했다.
“그런 식의 대안에는 납득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승천문의 과오를 수습할 방법은 틀림없이 존재해.”
“…….”
“결말이 찾아오기 전에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 거다……. 그전까지는 누구도 이 도시를 마음대로 주무르지 못해.”
마이야의 두 눈에 어린 그것은 단순한 열의나 의욕 따위가 아니다.
한없이 침착하고 차갑게 빛나는 집착과 광기.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불사할 준비가 된 실패자의 각오.
그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면서도 파멸을 향해 내달리는 지름길이다.
레녹이 그에 대해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연 그 순간.
사아악……!!
저 멀리서 저릿한 한기와 함께, 사방을 짓누르는 날카로운 존재감이 물감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이 시선을 돌리고, 곧바로 그 기척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화력포대에 가까운 기계화병단과, 은밀하고 음습한 사이드스쿼드와도 다른, 날카롭고도 선명한 개개인의 기척.
기계도시 최고의 소수정예 특수무력집단.
마키나를 대표하는 무력의 상징이자, 질서의 대행자.
집행기관이 종심지구를 직접 포위하고 나섰다.
* * *
두두두두두!!!
맹렬하게 진동하는 종심지구 시계탑 근방.
사방에서 거칠게 울려 퍼지는 진동음에 휘청거리는 일대 거리의 소음만이 가득 찬 건물들 사이.
묵색의 제복을 걸친 수십 명의 초인들이 각기 다른 건물 지붕 위에 올라타, 묵묵히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계도시 최정예 특수부대, 집행기관.
수십 번이 넘는 실전을 거친 뒤에야 정식으로 집행관의 이름을 수여 받는 엘리트들이, 일제히 한 곳을 응시하며 때를 기다린다.
치익ㅡ!
고요한 통신망 사이로, 딱딱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먼저 가겠다. 다른 집행관들에게는 엑스 마키나 위원들의 구출을 부탁하지.]“……이자벨라.”
다른 집행관들을 현장에서 통솔하는 역할을 맡은 지부장들 중 하나, 파일로가 입을 열었다.
“괜찮겠나?”
[내가 후보로 선발해 마이스터 선발식에 호출했던 자다.]이자벨라가 일말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는 내 책임도 있지.]“…….”
파일로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자벨라가 곧바로 움직였다.
그림자째로 사라지듯 녹아든 그녀의 신형이 곧바로 시계탑 앞에 선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를 신경 쓰지 말고 곧바로 작전대로 시작해라.]이자벨라는 라이먼을 선발식에 참가시킨 관계자. 그렇기에 그 책임을 지고 이자벨라가 가장 위험한 전면에 나선다.
우자트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지만, 그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상황을 주시했다.
시계탑 정문 앞에 선 이자벨라가 쓰고 있던 후드를 천천히 걷고, 로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음이 울려 퍼졌지만, 이자벨라는 구태여 숨기지도 않고 태연하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빛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어두운 시계탑 로비.
구획이 이동하며 간간이 울려퍼지는 진동만이 로비 안을 희미하게 들썩이고 있을 뿐.
로비 천장을 둘러싸고 서 있는 다양한 조각상들의 한가운데, 등을 돌린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이자벨라가 싸늘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라이먼.”
“하급 공방지구에서 뵙고 처음이지요?”
이자벨라를 돌아보지도 않고 레녹이 먼저 말을 건넸다.
“증폭장치, 아직 사용하고 계시는군요. 한 번쯤은 다시 저를 찾아오실 줄 알았습니다만.”
“…….”
“주기적으로 조정이 필요한 물건입니다. 앞으로는 다른 장인에게 장치의 조정을 부탁드리는 게 좋겠군요.”
“어째서지?”
이자벨라가 물었다.
“네가 가진 장인으로서의 재능은 이 도시의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걸출한 종류의 것이다.”
속삭이듯 작은 음성이었지만, 그 음색조차 이 고요한 로비에서는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이대로 장인 일에 매진하며, 도시에 헌신하기만 했더라도 영광과 출세가 보장되어 있을 텐데.”
“그 질문은 좀 잘못되어 있군요.”
레녹이 웃었다.
“집행관님은 제가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
“선발식에 참가시키기 위해 라이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죽은 장인의 신분을 차용해 알리바이를 만들었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이자벨라를 향해 레녹이 차분하게 말했다.
“상황이 이끄는 대로 흘러 지금에 다다랐을 뿐입니다. 이제 와 누구를 탓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렇지.”
이자벨라가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쥐고 있던 증폭장치를 움켜쥐었다.
안으로 접혀 있던 네 개의 칼날이 열리고, 그 사이로 회전하는 마력이 미친 듯이 증폭되어 광구의 형태로 변했다.
주먹만 한 크기의 마력광구. 하지만 그 안에 압축되어 회전하는 마력은, 시계탑을 증발시키고도 남을 만큼 강력하다.
그 마력광만으로 어두웠던 시계탑 로비가 눈이 멀어버릴 듯 환하게 빛났다.
파지직!!
증폭장치를 움직여 레녹의 등 뒤에 광구를 겨눈 이자벨라가 말했다.
“그러니 이제 그때 내가 했던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시간이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광채 사이로 이자벨라의 담담한 목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
“철가면을 쓴 범인이 너라는 정황증거와 관련증언을 현장에서 확보했다. 마이스터와 엑스 마키나 위원 암살, 내란죄를 비롯한 12종의 특수 중범죄 혐의로 너를 구속한다. 눈을 감고 양손을 앞으로 내밀도록. 압송이 끝날 때까지는 어떠한 발언도 허락하지 않겠다.”
“내란죄라…….”
레녹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떠오른 광구가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헤르메스는 이번 일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라이먼. 예전에도 이야기했을 텐데?”
이자벨라가 그렇게 말하며 곧바로 증폭장치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난 두 번 말하는 걸 싫어한다.”
파아아아앗!!!
증폭장치 끝에 맺힌 광구가 그대로 회전하며 레녹의 등을 향해 정확하게 쏘아졌다.
엄청난 광량이 두 사람의 눈앞에서 터져 나와 빛을 밝히며, 사방을 지옥같은 열기로 물들였다.
쿠과과과!!!
자신의 장비를 수리해 준 장인을 상대로 마력포를 투사한 이자벨라의 표정은 한치의 동요도 없었다.
라이먼이라는 이름이 장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결착을 내야만 한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콰아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열기의 폭풍 속으로 서슴없이 손을 뻗어, 레녹의 멱살을 거침없이 움켜쥔다.
“네가 정말 심성관을 뒤집어놓은 범인이라면, 고작 이 정도를 버티지 못할 리는 없겠지.”
후욱!!
“남은 건 너를 끌고 가서 심문실에서 모든 내막을……!!”
하지만 손끝에 잡힌 것이 레녹이 아니라, 그녀의 손을 마주 잡은 누군가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자벨라의 말이 뚝 멎은 순간.
화아아악!!
마력의 불꽃 너머에서 철가면을 쓴 누군가 거침없이 그녀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라이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우악스럽고 폭급한 마력.
압도적인 살기를 줄줄 흘리며 앞으로 걸어 나온 철가면의 등 뒤에,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고 있었다.
“……!!!”
철가면의 정체가 라이먼이 아니라는 사실에 이자벨라가 순간 강한 혼돈을 느끼고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그 순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레녹이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유감입니다, 이자벨라.”
“이건……!!”
이자벨라가 철가면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나며 빠르게 통신기에 손을 가져자 댄 순간.
그녀의 간극을 파고든 철가면이 그대로 이자벨라의 명치를 걷어찼다.
뻐억!!
“……!!!”
마치 공간 자체를 쪼개어 동선을 극한까지 압축시킨 듯한 초고속의 일격.
반응조차 하지 못한 이자벨라의 몸이 확 구부러지며, 시계탑 벽면으로 튕겨나가듯 처박혔다.
콰아아앙!!
“카학!!”
하지만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이자벨라는 증폭장치에 담긴 마력의 컨트롤을 놓지 않았다.
집행관의 강인한 정신력과 뛰어난 재능이 의식이 끊길 정도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그 출력을 조작하고 있었던 것.
이자벨라를 따라 꼬리를 물고 이어진 거대한 광구가 그 자리에서 섬전같은 빛의 기둥으로 전환.
순식간에 이 시계탑 자체를 날려버리는 육중한 포격이 되어 지상에 떨어져내렸다.
파아아아앗!!
하지만 레녹의 앞에 선 철가면은, 떨어져내리는 마력의 응집체를 바라보면서도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운 울림이군.]철가면 너머로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딱딱한 전성이 울려퍼졌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잠시 알아보지 못했어.]“쿨럭!! 뭐라고……?”
[그가 네 장비를 수리해 주었다고 했나. 그렇군. 클라크가 이미…….]말을 잇지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철가면의 모습에 이자벨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클라크 렌슬릿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죽음을 깨닫고 동요한듯한 그 모습에서 강한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
그 사이 철가면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천천히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모두 내 부덕이다, 이자벨라.]“……당신, 정체가 뭐지?”
[모두 내 책임이구나. 미안하다.]“가면을 벗고 얼굴을 보여……!!!”
이자벨라가 낮게 쏘아붙이며, 증폭장치에 담긴 마력을 탄환으로 삼아 힘껏 쏘아낸 그 순간.
철가면을 쓴 존재가 한 손으로 마력탄을 쳐내 옆으로 튕겨냈다.
콰아아앙!!
시계탑 건물 벽면이 폭발하듯 터져나가며 거센 열풍을 휘날린다.
떠들썩해진 통신망. 시계탑을 포위하고 있던 집행관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날카로운 기척이 연이어 느껴진다.
지상을 대번에 융해시킬 만큼 격렬한 온도 사이로, 철가면이 가볍게 손짓해 열풍을 싹 걷어냈다.
열풍 사이로 철가면이 레녹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따로 신호를 줄 생각은 없으니, 알아서 적당히 시작해라.]“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다만 괜찮겠나?”
레녹이 열풍이 걷히고 완전히 박살난 시계탑 건물 저편을 향해 고갯짓하며 물었다.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꽤 많아 보이는데.”
먼지 폭풍의 너머에서 하나둘씩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초인들의 그림자.
하나같이 날카롭고 예리하게 정제된 살의를 흩뿌리며 사방에서 시선을 내리꽂는다.
이자벨라와 교환한 찰나의 공방.
하지만 시계탑을 반파시킨 빛의 기둥을 신호로 삼기라도 한 것처럼, 다른 집행관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상 그녀 한 명에게 집행관 수십 명을 동시에 떠넘기는 듯한 모양새.
하지만 레녹의 말에 철가면은 당치도 않다는 듯 싸늘한 조소를 흘렸다.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말고, 뒤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어라.]철컥!!
철가면이 가볍게 손을 흔드는 것과 동시에, 한쪽 팔뚝을 타고 소태도가 손에 잡혔다.
날카로운 은빛의 칼날을 역수로 쥔 채, 아무렇지도 않게 성큼 앞으로 걷기 시작한 철가면의 모습.
[이 도시에서 내가 패배하는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