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73
약먹는 천재마법사 673화
중앙의회 상원(1)
찰칵!!
카이세의 회중시계를 작동시키는 것과 함께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바늘.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아티팩트를 들고 천천히 접근해, 조심스럽게 백금의 보석에 가져다 댄다.
차르르르륵!!!
그것만으로 의념체의 시간이 조금씩 역행하며, 한껏 응축되어 있던 힘의 격류가 풀려나오고.
순백의 충격파가 연구실 전체를 휩쓸고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파아아앙!!
“후우……!!”
카이세의 역행술식을 통해 거꾸로 풀려나온 승천자의 의념을, 그 자리에서 수용해 해석해 나간다.
망국의 재상이자 백금의 지휘관. 수차례 문명을 멸망시킨 전쟁대리인.
승천자 오로크니어가 최후의 순간 레녹에게 남기고 만 한 줌의 의념.
그 의념은 현실의 풍파에 휩쓸려 사라지는 대신, 선명하기 그지없는 목걸이의 형태가 되어 레녹의 곁에 남았다.
마키나에서는 단지 간직하고 있을 수밖에 없던 승천자의 의념물질.
레녹은 발칸으로 돌아와 시간이 생기자마자, 그것을 연구하는데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로크니어의 질량술식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기적이 아니야.”
연구실 스크린에 떠오른 분석 수치들을 눈여겨보던 레녹이 중얼거렸다.
“그게 가능했다면 그는 진작 승천에 성공해 이 세계에 도달해 있었겠지. 그의 질량술식은 따지자면 촉매를 사용한 기억의 재현에 가까워.”
[기억의 재현 말인가요?]“백금을 촉매 삼아, 자신이 부수고 파괴한 기억들을 복원해 내는 방식이지. 반대로 말하자면,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부수어야만 술식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거야.”
삐빅, 삐빅!!
비어 있는 항목에 추정치를 채워 넣고, 시뮬레이터를 작동시키자 화면에 떠오른 보석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백금의 병사, 거대한 대포와 로켓, 온갖 병장기의 형상이나 건축물의 파편으로도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것.
자신이 무너뜨린 모든 파괴의 흔적을 자신의 손으로 일으켜 복구시키는 유한한 순환.
그것이 바로 헤르메스 오로크니어가 보유했던 질량술식의 공능이었던 것이다.
“아마 오로크니어가 익혔던 질량술식은 원래 전투에 특화된 힘은 아니었을 거야. 문인에 가까운 출신을 생각하면, 생산이나 제작에 특화된 능력이었겠지.”
[그 초월체의 힘이 전투에 특화된 힘이 아니었다고요?]“위계를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그 방향성을 크게 비틀었기 때문에 도달한 경지가 아닐까 싶군.”
레녹은 문 너머에서 오로크니어가 살아온 기억을 들여다보았기에, 그가 어떤 식으로 질량술식을 성장시켰는지도 어렴풋이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오로크니어는 공명에는 관심이 없다, 추후 가진 바 재능을 살려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던 존재.
다른 이들보다 긴 생애를 살아오는 동안, 익혔던 재주를 다듬을 시간과 자질은 충분했을 것이다.
본디 생산이나 제작에 사용되었을 질량술식을 다듬어, 끝내는 전쟁을 수행하는 백금의 군세로 만든 것이 아닐까.
“결국 자격을 손에 넣는 것은 힘의 본질이나 한계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사용자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아니라 사상전역만을 승천시킨 오로크니어의 답은 틀렸다.
아이러니한 것은, 오로크니어 역시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그 방식을 선택했다는 사실일까.
스스로에게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승천자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갈망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레녹은 이미 실패해 스러진 승천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레녹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이미 실패해 버려진 무수한 대답을 마주하고 틀렸다고 단언하면서도.
정작 레녹이 내놓을 해답이 그들보다 더 옳을 거라 어찌 자신할 수 있을까.
어쩌면 레녹 역시 그들만큼, 혹은 그들보다 더 추하게 실패한 결말의 끝에 남겨질지도 모를진대.
하지만 레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앞서간 선구자들을 뒤쫓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희망이 아니라 방법을 찾고 있다.
자격이 아니라 대답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구해야 한다면, 과정조차 결말에 이르기 위한 인과의 산물이라면-
“……적어도 후회하고 싶지는 않군.”
레녹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컨트롤러를 조작하자, 보석의 형상이 흐릿해지며 연구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구궁!!
오로크니어가 남기고 간 백금의 보석은 승천자가 선물한 의념의 응집체.
그만한 초월자가 남긴 의지는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일대 시공에 간섭하려 들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다.
여러 장치를 사이에 두고 출력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연구실의 시공이 뒤틀리려 하고 있는 것.
하지만 레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 자리에서 연구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오로크니어가 남긴 질량술식은 그 효용성에 한계가 없는 힘이다.’
사방으로 번져나가는 백금의 광채를 주시하는 레녹의 시선이 깊게 가라앉았다.
‘완벽하게 습득하지는 못해도, 그 원리를 제대로 다룰 줄만 알면 충분해.’
자신이 직접 부수고 파괴한 기억을 질량형성으로 재현하는 질량술식.
하지만 까다로운 조건과 극악에 가까운 연비에도 불구하고, 레녹은 이 술식에 내재된 잠재력이 무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동안 레녹이 쓰러뜨렸던 무수한 강자들과 초인들. 전략병기와 요새들.
질량술식을 빌려 그 기억의 일부를 꺼낼 수 있다면, 어떠한 대가라도 감수할 만하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유기체들을 제 꼬리다듬개로…….]그렇게 중얼거린 다비가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의욕을 활활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주 좋은 생각이네요, 마스터. 당장 시작하죠!!]“……대체 내 연구 어디에서 꼬리다듬개란 결론이 도출된 거지?”
황당하다는 듯 대꾸한 레녹이 연구실의 동력공급 레버를 한계까지 밀어올렸다.
우우우웅……!!
술식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리해서라도 오로크니어가 남긴 의념의 출력을 바닥까지 긁어내야 할 터.
레녹은 연구실이 통째로 망가지는 것도 각오하고, 카이세의 힘을 사용해 승천자의 의념을 극한까지 끌어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키잉, 키잉, 키기기긱……!!
유리가 깨져 나가는 소리, 허공을 휘적이는 환상, 시간이 조금씩 늘어지는 듯한 감각이 오감을 뒤덮고 좀먹는다.
시간과 공간이 뒤집혀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 이물감이, 레녹의 둔한 오감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
비싼 돈을 들여 장만했던 연구장비들의 스크린이 연달아 깨져나가며, 사방에서 끊어진 전선이 뱀처럼 날뛰었다.
몰아치는 마력의 폭풍이 백금의 광채와 섞여,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현실에 만들어낸다.
연구실 곳곳이 백금의 비늘로 뒤덮이는 듯한 기이한 풍경.
다비조차 레녹의 품 안에서 쉽사리 버티지 못하고, 드문드문 끊겨나간 보조연산의 여파로 저택 곳곳이 폭발하려 든다.
하지만 레녹은 두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아예 직접 마력을 사용해 백금의 광채를 파고들었다.
끝을 모르고 뻗어나가는 마법사의 직관이 승천자의 의념을 관통해. 그 핵심을 한껏 열어젖힌다.
끼이이이익!!!
문이 비틀려 찢어지는 듯한 섬뜩한 소음과 함께, 연구실의 공간이 짓눌려 비틀어지기 직전.
의념 밖으로 의식을 뽑아낸 레녹이 손을 거둬들였다.
슈우우웅……!!
파아앙!!
대기 전체가 통째로 빨려들어 가는 바람소리와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일어 연구장비들을 하늘로 띄워 올렸다.
수천만 셀을 가뿐하게 호가하는 값비싼 측정장비들이 그대로 고물덩어리가 되기 직전.
레녹이 손가락을 튕겨 반중력 마법을 영창, 장비들이 속절없이 떨어져 망가지는 것을 막아세웠다.
천천히 마법을 축소시켜 부드럽게 장비들을 연구실에 내려놓은 레녹이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깔끔하게 소멸한 작업대 잔해 위에 떨어진 백금의 보석. 순백의 광채를 휘감은 그 결정에는 어떠한 흠집조차 없다.
천천히 다가가 보석을 집어 든 레녹이 중얼거렸다.
“여기까지군. 더 이상은 어렵겠어.”
작정하고 끝까지 파고들면, 저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오로크니어와 벌였던 전투의 기억이 역류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레녹은 직감하고 멈춰 세웠던 것이다.
지금 레녹의 저택이 위치한 곳은 20번대 구역 일대.
여기서 승천자와의 전투 기억이 역류해 현실에 튀어나온다면, 그것만으로 수만 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일단 방법은 확인했으니, 나머지는 인적이 없는 장소에서 따로 확인해 볼 수밖에.
보석을 회수한 레녹이 연구실을 나와, 문을 걸어 잠갔다.
망설이지 않고 성큼 1층으로 올라서 외투를 챙기는 레녹의 모습.
다비가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물었다.
[바로 실험에 나가시려구요?]“그러고 싶지만……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생긴 것 같다.”
[처리해야 할 일인가요……?]다비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레녹이 손을 들어 올렸다.
철컥!!
품 안에서 새하얀 리볼버를 꺼내든 레녹이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려 보조마법을 중첩. 방아쇠를 당겼다.
빠지지직……!!
새파란 마력광이 백색의 총신을 타고 혈관처럼 모여들었다, 총성과 함께 사라지고.
아무렇게나 쏘아낸 탄환이 복도 벽면 곳곳을 타고 도탄처럼 반사되더니, 순식간에 계단 쪽으로 사라졌다.
그 직후, 아무것도 없는 계단 아래쪽으로 핏물이 뚝뚝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큽!!”
쿵!!
외마디 신음과 함께 계단 사이로 떨어진 무언가 꿈틀거리다 그대로 도망쳤다.
총구를 내린 레녹이 그 모습을 싸늘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저택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오셨군. 마중을 나가야 하지 않겠나?”
* * *
또각!
고요한 저택 복도 사이로, 규칙적인 소음이 울려퍼진다.
물이 흐르는 듯한 유려한 형상의 지팡이를 짚은채, 거침없이 복도를 가로지르는 레녹의 모습.
무표정한 얼굴로 거실에 선 레녹의 머리 위로, 낫처럼 길게 구부러진 그림자가 떨어져내렸다.
사아악!!
아귀처럼 기이하게 찢어진 입을 벌린 채, 거침없이 레녹의 목을 물어뜯으려는 섬광.
하지만 레녹은 그를 돌아보지도, 반응하겠다고 마력을 끌어올리지도 않았다.
단지 거실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 선 채, 손에 든 지팡이를 가볍게 한번 두들겼을 뿐.
또각!
그 순간, 거실의 풍경이 통째로 뒤집히며 그림자의 몸이 그대로 천장에 거꾸로 처박혔다.
콰아앙!!
“카학!!”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군. ”
레녹이 한번 더 지팡이를 두들기자, 이번에는 반대로 바닥에 처박혀 뒤틀리는 인영.
발아래 고개를 처박고 부들대는 인영을 내려다보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선천이능. 초능력이나 혈계공능쪽인가? 아니, 그것보다는 좀 더 원초적인 느낌인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종족특성에 가까워. 애초에 인간이 아니었나?”
“커컥……!! 우아악!!”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기자, 고개를 처박은 상대의 몸이 그 자리에서 전조도 없이 뒤집혔다.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얼굴을 드러낸 남자를 레녹이 유심히 눈여겨보았다.
“하관과 치아배열을 보면 언어구사가 불가능한 건 아닐 텐데. 왜 말을 하지 않는 거지?”
아인종이라 추측하긴 했지만, 외견만 보고 있자니 인간과 거의 다를바가 없다.
다만 피부가 유난히 어둡고 기척이 희미해서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 정도.
하물며 체질상 마력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듯 하니, 어지간한 감지능력으로는 기척을 인지하기 어려웠겠지.
“산 채로 실험체가 되고 싶지 않다면 뭐라도 말해보는 게 좋을 텐데.”
레녹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목을 발로 짓밟았다.
“저택의 결계와 보안장치를 어떻게 뚫고 들어왔는지 나도 아주 궁금하거든.”
“아, 아니야…… 몰랐다!!”
실험체로 쓴다는 레녹의 협박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던 걸까.
정체모를 신음만 흘리던 남자가 황급히 소리쳐 대답했다.
“몰랐다고?”
“그, 그래…… 몰랐다. 이 집이 당신같은 마법사의 저택이라는 걸 몰랐다고……!!”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지혈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남자가 애원했다.
“알았다면 절대로 들어오지 않았을거다. 제발 살려다오…… 아니, 살려주십시오!!”
“…….”
저택에 침입해 올 정도로 뛰어난 은신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정작 레녹이 누구인지도 몰랐단 말인가.
위화감을 느낀 레녹이 곧바로 저택의 결계와 보안장치들을 점검했다.
“……그렇군. 오로크니어의 의념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결계의 힘이 약해졌나?”
“뭐, 뭐?”
당황한 남자를 두고 레녹이 생각에 잠긴 채 중얼거렸다.
“연구실을 터트릴 생각으로 실험했으니 반동이 생긴 건 그렇다쳐도, 바로 침입자가 들어오는건 말이 안돼.”
레녹의 싸늘한 시선이 남자의 옷깃을 향했다.
“처음부터 이 저택을 노리고 있었군. 그렇지?”
“아니다. 제발……!!”
뻐억!!
충격마법으로 남자의 가슴팍을 후려갈기자, 그의 앞섶에서 물건들이 쏟아져 내린다.
바운티헌팅을 하며 받아두었던 현금뭉치와 마도서 몇 장. 낡은 보석이 박힌 아티팩트까지.
그 잠깐 사이에 알뜰살뜰하게도 물건을 털어온 도둑을 보며 레녹이 웃었다.
“아니라고?”
“……으, 으아악!!”
자포자기한 남자가 발작하듯 레녹을 향해 작은 낫을 휘두드려던 찰나.
탕!!
순백의 리볼버가 불을 뿜으며 남자의 미간을 관통했다.
사격보조마법을 영창해 터트린 찰나에 가까운 속사. 무어라 반응도 하지 못한 남자가, 희미한 단말마와 함께 뒤로 푹 쓰러졌다.
레녹은 청년의 시체에서 등을 돌린 뒤, 조용한 저택을 말없이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 저택에 도둑이 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고요한 풍경.
육안으로는 그 위화감을 전혀 눈치챌 수 없을만큼 자연스러운 저택을 보며, 레녹이 웃었다.
“더 있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레녹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설명하듯 말했다.
“파티가 끝난 뒤를 노린 것부터 계획적이야. 정원에 쌓여 있는 장물을 보았다면 한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았을테고. 결정적으로…….”
청년의 시체를 총구로 가리킨 레녹이 웃었다.
“죽기 직전까지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리더군. 동료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나?”
“…….”
“끝까지 나올 생각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지팡이를 한번 더 두들긴 순간, 저택의 풍경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창조계열 고유마법 : 주술 응용
위상소환 : 개념혼용
“일단 한곳에 몰아넣고 생각해 볼까.”
[아라마토스의 위장]쿠구구구……!!
복도와 거실, 천장과 부엌의 풍경이 일그러지며, 한 곳에 겹쳤다가 펼쳐지듯 회전한다.
마치 레녹의 저택이 그 의지에 따라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격렬하게 요동치는 광경.
벽면과 천장 곳곳에서 마치 위액 같은 액체가 새어나오고, 그 안에 은밀하게 숨어 있던 이물질들을 사방으로 밀어냈다.
치이이익!!
“끄아아악!!”
살점이 녹아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희끄무레한 그림자와 같은 영체들이 미끄러지듯이 끌려나오고, 복도와 천장의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졌다.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려는 이들이 황급히 출구를 찾지만, 공간이 왜곡되는 환상과 함께 탈출구는 하나로 모일 뿐.
저택 전체가 거대한 생명체의 위장과 혼용되며 이물질을 소화시키고 뱉어내고 있다.
본디 레녹의 것이 아닌 생명과 물질이 위액과 산에 쫓겨나듯 미끄러지고 내몰리며.
종국에는 저택 정원 끝자락에 처박히듯 일제히 모여들었을 뿐.
“하아, 하아……!!”
순식간에 발각당해 쫓겨난 십여명의 도둑들이 충혈된 눈으로 숨을 몰아쉬며 레녹을 노려본다.
기껏 투지를 불태우지만, 이미 그들의 살점은 위산에 녹아내리고 그 피육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상황.
“죽여!!”
짐승처럼 숨을 헐떡이며 미친듯이 레녹을 향해 달려드는 아인종의 모습.
특이할 점이라면 그들이 든 무기가 하나같이 녹색으로 빛나는 단검이라는 것일까.
정원 사방에 숨어 있다 나타나, 레녹의 코앞까지 접근해 단검을 찔러넣으려던 찰나.
키리리릭!!
레녹의 코앞에서 회전하는 실드의 흐름에 따라 모조리 빗겨나간다.
창조계열 고유마법 : 합성
[멘탈스크림] [쇼크버스터] [이중영창: 사이코 쇼커]손끝에서 뻗어나온 희미한 파동이 수십갈래 섬광으로 갈라져 동시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회전했다.
인간의 정신을 강제로 고양시키는 멘탈스크림과, 충격마법 쇼크버스터를 조합해 만들어낸 창조마법.
으지지직!!
그렇게 발생한 강렬한 정신의 충격파가 아인종의 의식을 때려부수듯이 휘둘러지고.
수십명의 아인종들이 두 눈을 완전히 까뒤집은 채 발작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완전히 이성을 잃은 채 무차별적으로 레녹을 향해 살의를 휘두르는 수십명의 초인들.
지팡이를 들어올린 순간 마력사가 솟구쳐 도둑들의 사지를 붙든 채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고.
푹! 푹! 푹!!!
조작마법에 이끌려 손에 손을 맞잡고 얼싸안듯, 서로의 심장에 서슴없이 칼날을 찔러넣었다.
“꺼……어…….”
둥글게 선 아인종들이, 서로의 심장에 단검을 찔러넣은 채 몸을 기대고.
도미노처럼 쓰러지지 않은 채 선 채로 숨이 끊어진다.
저택 정원 한복판에서 수십명이 동시에 죽어 피를 흘리는 기묘한 광경.
레녹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곧바로 등을 돌리고 저택으로 들어가려던 그 순간.
등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집을 찾아온 도둑들에게 너무 자비로우시군요.”
푸욱!!
똑같은 얼굴을 한 청년 여댓 명이, 쓰러진 아인종의 시체에 칼날을 욱여넣고 있었다.
한 번 더 심장을 찌른 뒤, 거침없이 아인종의 목을 베어내 그 자리에서 떨궈낸다.
느닷없이 나타나 가감 없이 잔혹한 처형을 선보인 쌍둥이 청년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린 그 순간.
슈욱!!
청년들의 몸이 그 자리에서 하나로 겹쳐지며 한 사람으로 변했다.
스스로 분신을 만들어내는 기묘한 능력.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력은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초능력자?”
“예로부터 집에 든 강도는 목을 걸어 효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하였습니다.”
청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원하신다면 쓰레기를 치우는 것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만. 어떠십니까?”
“…….”
말없이 침묵하던 레녹이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로 말했다.
“이미 죽었는데도 일부러 목을 베었군.”
“예?”
서로의 심장에 단검을 찌른채 죽은 아인종을 가리킨 레녹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것도 거의 동시에 잘라 버렸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죽지 않는 건가?”
“…….”
레녹이 차갑게 웃었다.
“너, 이 아인종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군.”
입에 걸린 미소가 살짝 무너지고, 손끝이 움찔거린 그 순간.
청년의 몸이 그대로 반으로 꺾여 저택 담벼락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윽……!!!”
청년의 감각으로는 어떤 전조조차도 느낄 수 없는 압도적인 격차.
불길함을 인지하고 팔을 들어올리지 않았다면, 아마 갈빗대가 뭉개졌어도 이상하지 않다.
담벼락에 청년의 몸을 박제하듯 들어 올린 레녹이 물었다.
“마지막에 나타나 생색을 낸 것부터 우연은 아니겠지. 뭐 하는 놈이지?”
“쿨럭, 쿨럭!! 자, 잠깐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청년이 마른 기침을 토해내며 대답했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해봐.”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올리자, 마당에서 나무줄기가 솟아올라 의자의 형상으로 변했다.
자연스럽게 의자에 기대앉은 레녹을 멍하니 바라보던 청년이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입을 열었다.
“중앙의회 보좌관의 직책을 맡고 있는 아르망 마르틴스라고 합니다.”
“중앙의회?”
레녹이 그 말에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린 그 순간.
스스로를 아르망이라 칭한 청년이 품안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편지 한장을 꺼내 들었다.
“오늘 이 자리는, 중앙의회 상원의 전령으로서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