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83
약먹는 천재마법사 683화
가장 오래된 혈통(5)
“……명왕의 제자?”
주변을 둘러싸는 흑마력에 맞춰 의념을 움켜쥐던 레녹의 손길이 멈추었다.
판데모니엄의 명왕.
위계를 초월한 8레벨의 흑마법사이자, 결과로서 시공에 개입하는 초월적인 술사.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온갖 도시와 문명을 파괴하고, 소멸시키며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는 괴물.
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재능 있는 이들을 찾아 헤매며, 레녹을 판데모니엄에 끌어들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관심이 가지 않는 모든 일에 잔인하리만치 냉혹한 그 명이, 늦은 나이에 새로 제자를 들였단 말인가.
움켜쥔 마력마저 내려놓은 레녹이 흥미로운 눈길로 바에곤을 주시했다.
“그렇군. 네가 명의 제자란 말이지…….”
명은 오랜 시간 레녹을 판데모니엄에 끌어들이려 노력했으면서도, 정작 레녹을 제자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 레녹이 이미 익히고 있는 마법과 계통이,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레녹 역시 굳이 흑마법을 배우려 하기보단, 명이 알고 있는 비밀을 묻는 일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재능’에 대한 명의 기준이 얼마나 냉정하고 까다로운지는 잘 알고 있는 바.
만약 정말로 명이 바에곤을 제자로 선택했다면, 바에곤이 지닌 재능은 대체 얼마나 희귀하고 독특한 종류의 것일까.
“가장 오래된 혈통에 대해 조사만 하고 빠질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게 있었군.”
바에곤의 모습을 대놓고 위아래로 관찰하듯 바라보는 레녹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아니면, 네가 바로 그 ‘오래된 혈통’과 관련된 존재인가?”
멸목의 힘을 가장 오래된 혈통으로 불리는 누군가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혈통을 잇는 가문이 멸목의 존재를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면, 틀림없이 단순한 숭배나 신앙 이상의 비밀이 존재하고 있을 터.
어쩌면 바에곤이 명의 제자로 선택받은 이유가 그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바에곤은 레녹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한발 앞으로 나서며 에르몽을 독촉했다.
“작업을 끝내, 빨리!!”
“진짜 이게 무슨 헛수고인지…….”
궁시렁대면서도 거대한 나무 앞에서 무언가 작업을 이어나가는 에르몽의 모습.
말은 저렇게 해도, 역시 이곳에서 끝마쳐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레녹이 그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재차 마력을 끌어올리려던 그 순간.
시선을 가로막듯 몸을 비틀어 걸어 나온 바에곤이 손가락을 방아쇠처럼 쭉 당겼다.
끼리릭!!
그 손짓에 따라 영창대기 중인 주문이 순차적으로 도열. 레녹을 둘러싼 수십 발의 흑마법이 회전하듯 작동한다.
마치 열쇠와 자물쇠가 맞물리듯, 영창해 보존시킨 수십 발의 주문이 시간차로 절묘하게 빠져나갈 공간을 틀어막고.
흑율계열 고유마법
다중발현 영체(影體)
[마도(魔度) : 흑건(黑鍵)]거의 동시에 레녹의 급소와 숨구멍을 노리고 폭발했다.
콰과과과광!!!
거대한 흑색의 기둥 수십 개가 그 자리에서 동시에 솟아오르는 듯한 환상.
블록을 맞춰 완성시키는 것처럼, 흑색의 기둥이 입방체의 형상으로 조립되어 레녹을 가두고 격리한다.
끼이이익……!!
이음새를 완벽하게 차단한 입방체 안에서 레녹의 존재를 확인한 바에곤이 그대로 오른손을 움켜쥐고.
쿠와아아아!!!
입방체가 그대로 사정없이 찌그러지며 내용물을 쥐어 짜버렸다.
강력한 육체능력자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한 줌의 핏물조차 남기지 못할 만큼 지독한 압착력.
하지만 흑살신전 아래쪽으로 인간의 핏물이 주르륵 짜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 대신, 완벽하게 압착되었다고 생각한 흑건의 기둥 사방이 크게 들썩이며 푸른 뇌광이 새어 나왔을 뿐.
쩌억!!
인지한 순간, 눈앞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번개의 손이 문을 움켜쥐고 비틀어 열어낸다.
흑살신전 안에 압착되어 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두 갈래 손바닥이 레녹을 포개듯이 보호한다.
그 안에서 지팡이를 짚은 마법사가 걸어 나오는 것과 동시에 전개하는 전격마법 4중영창.
[뇌요신래(雷曜申來)] [주박수(胄拍手)] [대라전(帶羅電)] [여뢰신(余雷身)]파지지지지직!!!!!
거인의 두 손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듯 회전하며 레녹의 눈앞에서 그대로 충돌.
창조계통 고유마법 : 연금술 응용
사중연성 복합공명
[초융합(超融合)]거대한 우레의 파문이 주변에서 흩날리던 흑마력을 전부 불태우고 밀어버렸다.
[뇌명(雷鳴)]콰아아아앙!!!
“우와아아악!!”
나무 등걸 사이를 만지작거리던 에르몽조차 죽음을 직감했을 만큼 엄청난 마력의 응집.
하지만 놀랍게도 레녹이 터트린 뇌명의 위력은 멸목의 파편을 건드리는 일 없이, 바에곤의 주문만을 불태우고 사라진다.
“미, 미친…….”
그 의미를 이해한 에르몽의 안색이 보랏빛으로 질렸다.
고위 흑마법과 일대 공간을 전부 밀어버릴 만큼 강력한 영창이었는데도, 멸목의 나뭇가지에는 화상 하나 없다.
저만한 위력의 다중속성 충격마법을 사용하면서도 그 속도와 범위를 입자 단위로 컨트롤하고 있다는 사실.
“표본을 남기려면 굳이 손상시킬 필요는 없겠지.”
딱딱하게 굳은 바에곤의 얼굴을 바라보며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에 피해가 끼치지 않는 선에서는 놀아주마.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길래 명의 눈에 들었는지 궁금하군.”
“웃기지 마……!!”
낮은 욕설을 내뱉으며 바에곤이 재차 마법을 영창한다.
[암옥쇄(暗獄鎖) : 괴영(怪影)] [여후승차(黎朽承車)]발 아래서 굵직한 그림자의 사슬이 튀어나오고, 그를 고삐로 삼아 새카만 마차가 사방에서 솟아오른다.
쿠구구구!!
바퀴를 굴리며 내달리는 마차 사이로 거무튀튀한 흑마력이 끓어오르고, 레녹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지면 위로 새카만 잔흔을 박아넣었다.
치이이익!!
순식간에 사방에 가득 차 피어오르는 흑마력을 움켜쥐고, 레녹을 향해 달려든다.
“그딴 무식한 마법 따위, 사용하기 전에 때려 부수면 그만이다!!”
어둠 속에 가려진 바에곤의 신형이 마차의 사슬을 움켜쥐고 고속으로 이동.
삽시간에 영창해 쌓아 올린 포격마법을 때려 박으며 미친 듯이 레녹의 실드를 깨부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흑훼(黑毁)] [구찰(歐紮)]타오르는 흑색의 의념이 실드와 전격마법을 동시에 갉아먹고, 토해내듯 솟아난 어둠이 사방에서 공간을 문지르며 치닫는다.
[음멸(陰滅)]그늘 아래로 드리워진 마력입자가 밀집되어 회전, 칠흑빛의 포화가 되어 지하 공동 사이를 관통했다.
“부서져라!!”
콰아아앙!!!
쏘아 올리는 모든 마법 하나하나가 수준급의 위력과 속도를 동시에 갖춘 공세.
특히 영창을 성공시켜 완급을 조절해 일제히 터트리는 기예는 타고난 감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목 아래까지 넘실거리는 암흑의 불길을 바라보는 레녹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파직……!!
손가락 사이로 터져 나온 피어오른 뇌전이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렸다.
물감이 번져 나가듯 허공 사이로 급격하게 새파란 전광이 물들어가고.
쾅!!
그 자리에서 수백 갈래 벼락의 파편으로 분해되어 흩날렸다.
[분뢰사수(分雷射洙)]쩌저저적!!!
공간이 유리처럼 깨져 나가는 환상, 퍼져나가는 수백 갈래 균열 모두가 피어오르는 뇌전의 편린이다.
손가락을 튕겨 진원지를 만들어준 순간, 모든 벼락의 파편이 제각기 의지를 가진 것처럼 맥동했다.
으지지직!!
사방에서 몰아치는 어둠을 끌어안고 잡아먹는다. 내리쬐는 흑색의 섬광보다 한발 빠르게 질주한다.
소리를 뛰어넘어 터져 나온 우레의 줄기가 바에곤이 조작하는 수십 갈래 흑마법을 깡그리 때려 부순 그 순간.
[귀렴(歸斂)]사방으로 흩어지던 전격의 파편이 비산한 것 이상의 속도로 바에곤의 눈앞에 모여들어 폭발했다.
콰아아앙!!
“크아아아악!!”
폭발의 여파로 튕겨 나간 바에곤의 신형이, 허공에서 보이지 않는 마력사에 그대로 붙잡혀 내걸렸다.
“카학!!”
“……이해할 수가 없군.”
마력사로 바에곤의 멱줄을 쥐고 들어 올린 레녹이 중얼거렸다.
흑마력을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초고속으로 영창해 터트린 중첩주문.
그 속도와 위력. 정면에서 주문전투를 걸어오는 담력과 배짱까지 어느 곳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하지만 레녹은 그런 바에곤의 공세를 정면에서 잡아먹고 역으로 흡수해 터트려 버렸다.
바에곤이 영창한 모든 주문보다 더 빠르고 무거우며, 정교하고 예리한 마력조작.
아무리 기술적으로 탁월하고 완성도가 높다 하더라도, 결코 레녹을 앞서나갈 수 없는 선이 있다.
레녹이 명의 제자에게 기대한 것은, 이런 뻔하기 그지없는 방식으로 완성된 마법사가 아니었다.
“이런 게 명의 제자라고?”
“……!!!”
바에곤의 얼굴이 격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무런 감흥 없이 던진 그 한마디가, 지금 이 상황을 더할 나위 없이 내비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감히, 감히……!!!”
조소했던 상대에게 역으로 깔아뭉개지는 모멸감. 지금 이 상황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격분.
한계를 넘어선 감정이 의념으로 변하고, 통제를 벗어난 마력을 미친 듯이 뿜어냈다.
“끄아아……아아…….”
입을 쩍 벌린 바에곤의 목구멍 안쪽에서 솟아오른 새카만 마력이 연기처럼 흩날리고.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드리운 거대한 나무가 그 마력에 호응해 가지를 기울였다.
끼익!!
수백 갈래 나뭇가지 사이에 매달린 글렌의 시체들이 레녹과 바에곤의 주변을 둘러싸고 내려 선다.
멸목의 파편에 흡수당해 죽어버린 글렌의 시체들이 양손을 들어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그 수인이 본디 바에곤이 했어야 할 영창을 대신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
동공마저 새카맣게 물든 바에곤이 뱃속에서 끈적거리는 암흑을 그 자리에 토해냈다.
“아아아아악!!!”
자성영역 전개
흑율위계 심상구현
[음쇄육상도(陰灑毓想圖)]파아아앗!!
목을 졸리는 상황에서 영창에 성공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영역전개.
바에곤이 토해낸 암흑덩어리가 주변을 잡아먹고, 레녹의 신형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가두었다.
오감 자체가 마비된 것처럼 먹먹하게 느껴지는 영역 내부.
“크하, 아하하핫!!”
쉴 새 없이 목구멍으로 새카만 물질을 토해내면서 바에곤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자성영역 음쇄육상도는 바에곤이 술식을 완성한 뒤에도, 그 효율이 터무니없이 낮아 사용할 수 없었던 힘.
하지만 바에곤의 감정에 이끌린 멸목의 도움을 받아, 이론상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영역의 힘을 온전히 전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음쇄육상도의 능력은, 바로 영역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강제로 흑마력으로 전환하는 힘.
“죽어……!!!”
레녹의 머리 위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검은 눈물을 줄줄 흘리는 눈동자가 눈을 떴다.
[암정동공(暗程瞳孔) : 회안(晦眼)]검은 눈물을 흘리는 눈이 비추는 모든 것을 분해하여, 흑마력으로 변환한다.
글렌의 시체. 레녹이 딛고 선 모래바닥, 기름의 장벽과 보호막.
그리고 레녹의 마력까지도.
쩌저저저적!!!
지팡이를 짚고 선 저 마법사의 마력이, 조금씩 흑마력으로 바뀌어간다.
그 사실을 깨달은 바에곤의 얼굴이 저열한 환희로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된다, 된……다!!!”
고위계 마법사. 그것도 다른 계통을 사용하는 술사라면, 그만큼 체내 마력이 간섭당하는 일에 치명적이다.
높게 쌓아 올린 탑의 근간이 위태로워진다면, 무너지는 것 역시 방대하기 마련.
하물며 그것이 제 몸조차 생명유지장치에 기대 빌빌거리는 존재라면 어떠할까.
아주 조그마한 흔들림만으로도, 그 생명을 뒤흔들 법한 진동으로 바꿀 수 있다.
자신의 영역으로 저 마법사를 죽일 수 있다.
바에곤이 그것을 직감하고, 암흑 덩어리를 끊임없이 토해내며 웃어젖히던 그 순간.
영역 내부에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던 바에곤의 사지가, 뻣뻣하게 굳어 멈춰 버렸다.
“……어?”
동시에 그가 토해낸 어둠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갑자기 어딘가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끼기기기……!!
영역 내부에 가득 들어찬 흑마력이 보이지 않은 인력에 이끌리듯 한 점으로 수렴한다.
레녹의 손아귀로 모여든 막대한 흑마력이 단 한 점으로 압축되어 맹렬하게 회전했다.
마법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펼 때마다, 영역 내부를 가득 메운 흑마력이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싸아아악……!!
그리고 일대의 모든 흑마력이 남김없이 빨려 들어가 소멸하듯 사라진 그 순간.
레녹의 손안에는 아주 작은 흑색의 물방울이 떠올라 있었다.
어느새 거짓말처럼 해제되어버린 음쇄육상도의 영역. 그 사이로 얼어붙은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린 바에곤의 모습.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바에곤을 보며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역시 잘 안 되는군.”
“뭐, 뭐를…….”
악을 쓰고 말을 쥐어 짜내는 바에곤을 보며 레녹이 웃었다.
“명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흑마법은 이것 하나뿐이었거든.”
시거 뱅 갱단 두목, 에덴을 처리하고 처음으로 명과 마주했던 그 당시.
명이 레녹의 공격을 막기 위해 사용했던 흑색의 물방울.
공간 자체를 접착해 이어붙여, 경화시키듯이 모든 공격을 막아세우던 흑마법.
레녹은 자신의 마력이 흑마력으로 전환되는 것을 내버려 두다가, 영역 내부의 흑마력을 전부 긁어모아 기억 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흑마법을 구현했던 것이다.
명에게 사실상 유일하게 직접 배웠다고 말할 수 있는 흑마법을.
에르몽이 주저앉은 채로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악마 같은 발상이군요. 그냥 그쪽이 악당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거, 거짓말…… 그럴 리가…….”
숨이 막혀가는 와중에도 마법이 강제로 파훼당한 반동으로 피를 줄줄 흘리는 바에곤의 모습.
레녹은 그런 바에곤의 목을 조르던 마력사를 조작해, 그대로 그 몸을 머리부터 땅에 처박아버렸다.
우지지직!!
“쿨럭!!”
흑마법 중에서도 단일화력으로는 최상급에 달한 사안 마법을 정면에서 파훼하는 레녹의 모습.
에르몽이 슬쩍 눈치를 보며 그 시선이 닿지 않은 방구석으로 기어 도망쳤다.
“끄, 으으윽…….”
두 눈을 까뒤집은 채 경련하는 바에곤을 발아래 처박은 레녹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설명해 봐. 명의 제자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개인적으로 명에게 이것저것 받아먹은 게 많은 만큼, 바에곤을 바로 죽일 수는 없었다.
만약 바에곤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정말 명의 제자라면,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만드는 것으로 넘어갈 용의는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말입니다…….”
에르몽이 한숨을 내쉬며 무어라 설명하려던 그 순간.
세 사람의 머리 위에 드리운 흑색의 나무가 벌벌 떨기 시작했다.
쫘아아아악!!
동시에 뿌리와 가지 양쪽으로 지력과 생명력을 미친 듯이 흡수하며, 기름과 글렌의 시체를 쪽쪽 빨아먹는 기괴한 모습.
에너지가 한데 모이다 못해 터져 버릴 것처럼 일그러지던 그 순간.
방금 전까지 에르몽이 마주 보고 있던 나무 등걸이 쩍 갈라지며, 그 안에서 무언가 모습을 드러냈다.
끼익!!
나무 안쪽으로 보이는 것은 한 점의 빛도 허락하지 않는 어두운 흑색의 관.
인간의 손길 없이 만들어졌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매끈하고 정교한 이음새.
주변의 마력은 물론이고, 바라보는 사람의 의식까지도 통째로 빨아들이는 듯한 묘한 기척.
마치 당장이라도 누군가 저 관을 열고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에르몽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걸 만들기 위해서였거든요.”
“…….”
레녹이 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그 순간.
“쿨럭, 쿨럭!!”
피투성이가 된 바에곤이 레녹보다 먼저 관 앞에 섰다.
에르몽이 작게 탄식하며 이마를 짚었다.
“……이런.”
“다 끝났어. 계획은 여기서 끝이다.”
바에곤이 에르몽과 레녹을 동시에 노려보며 말했다.
“스승님께 여기서 있던 일을 전부 말씀드리고, 너희들을 죽여 버릴 거다.”
“저 관이 명과 관련된 물건인 모양이군.”
“…….”
“명의 제자를 데려온 이유도, 관을 제작하는데 저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나?”
레녹의 말에 에르몽이 뭘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그래, 아주 X발 그냥 다 말해라!!”
“당신도 마찬가지야, 늙은이.”
바에곤이 에르몽을 비웃었다.
“스승님의 은혜에 기대 그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면서, 감히 나를 배신해!!”
에르몽이 탄식하며 이마를 짚었다.
“우리가 서로를 믿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배신을 합니까?”
“닥쳐!!”
양손으로 관의 문을 움켜쥔 바에곤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우지직!!
그 압력으로 손톱 사이로 검은 진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손등의 핏줄이 모조리 터져 나가는 모습.
하지만 바에곤은 미친 듯이 웃으며 힘껏 관짝의 문을 잡아당겼다.
“다 끝났어. 명왕이 이 자리에 내려오실 거다!!”
[거기, 이름이 반이라고 했죠?]에르몽이 탄식하는 자세 그대로 레녹에게 조용히 전언을 건넸다.
[방금 전의 다툼은 잠시 잊고 협력하지 않겠습니까?]“…….”
[저 미친 새끼는 여기서 그 흑마법사를 불러낼 생각이라구요. 이대로 가다간 다 죽습니다.]레녹이 대답하지 않자, 다급한 어조로 에르몽이 재차 속삭였다.
[그냥 부숴 버려도 좋아요. 계획과는 다르게 일이 흘러갔다는 걸 알았다간, 그 짜증을 감당해 낼 자신이…….]“그래. 한번 열어봐라.”
“에엑?!”
전언도 잊고 기겁하는 에르몽을 무시하고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명이라면,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서도 설명을 해주지 않을 사람은 아니었으니.”
저 관이 심상치 않기는 하지만, 부수려면 부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바에곤이 저 관의 힘을 이용해서 명을 불러낼 수 있다면, 레녹 역시 잠시 구경해 줄 용의는 있었다.
레녹의 느긋한 대답을 들은 바에곤이 이를 악물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웃기지 마. 언제까지 그렇게 느긋하게 굴 수 있을 줄 알고……!!!”
“…….”
“네놈 따위가 아니라, 내가 스승님의 제자다!! 내가 명왕의 후계자야!!! 내가……!!!!”
끼이이익……!!
손가락이 뭉개지고 살점이 흘러내리는 손으로, 발악하듯 힘껏 관을 열어젖힌다.
“으아아아아악!!!”
피눈물을 흘리며 온 힘을 다해 관의 문을 힘껏 열어젖힌 순간.
관짝 안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에 바에곤의 몸이 아음속의 속도로 튕겨 나갔다.
으지지직!!
팔다리가 부러진 채 처참하게 바닥을 나뒹구는 바에곤을 무시하고, 레녹이 말없이 열린 관 안을 주시했다.
멸목 아크로트리니어의 기력과 글렌 수백 명분의 생명력을 빨아먹고 완성된 흑관.
그 안에 담긴 힘이란 대체 무엇인가.
“…….”
끝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암흑만이 그곳에 있었다.
끈적하게 녹아 흘러내리는 듯한 어두운 의념.
끝을 모르고 침잠해가며, 무의식의 저편을 파고드는 어둠 덩어리.
“스승님!!!”
바에곤이 처절하게 소리쳤다.
“스승님!! 도와주십시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시선을 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