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82
약먹는 천재마법사 682화
가장 오래된 혈통(4)
실실 웃고 있는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던 아르망의 눈동자가 순간 크게 커졌다.
“자운 오디스……!!”
레녹에게도 꽤 익숙한 이름을 외친 아르망이 황급히 검을 뽑아 들었다.
“에이전트 작전보고서에서 그 얼굴을 본 적이 있어. 테러 조직을 버려두고 도망쳤다 들었는데,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아르망을 바라보던 남자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그런 이름이었죠?!”
“……뭐?”
“미안합니다, 이거 원. 이 몸의 주인이 무슨 이름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서.”
“…….”
“뭐 서로 이름을 기억할 만큼 우리가 애틋한 사이는 아니었어서 말입니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가끔 이렇게 이 몸의 주인을 알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 걸보면, 아주 인정머리가 없는 녀석은 아니었던 모양이네요.”
“대체 무슨 이야기를…….”
아르망이 망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레녹이 지팡이를 짚고 몸을 돌려세웠다.
“그 얼굴을 알지.”
“음?”
레녹의 얼굴을 보자마자, 자운 오디스의 얼굴이 미묘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반의 얼굴에 반응하는 것처럼 자운의 피부 표면이 울긋불긋 일어서는 기이한 모습.
남자는 말없이 꿈틀거리는 자신의 얼굴 피부를 바라보다, 스스로의 뺨을 힘껏 후려갈겼다.
짝!!
“당신, 이 몸의 주인과 안면이 있는 사이네요?”
남자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자아를 죽여놓은 지 한참 지나서,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반응하지 않는데……. 혹시 뭐 형제나 연인 같은 거였습니까?”
“반대다.”
레녹이 웃었다.
“죽일 수 있었는데, 몇 번 살려 보내준 적이 있었거든.”
“……허허.”
“넌 모르는 모양이지만, 그 몸은 아직 나를 기억하는 모양인데.”
한 걸음 앞으로 나서는 것과 동시에, 레녹이 속삭였다.
“그리고 네가 진짜 자운 오디스가 아니라는 것도 알지.”
항하사미궁의 끝에서 의식전이 술식으로 자운 오디스의 몸을 차지한 고대의 흑마법사.
그 후 판데모니엄에 들어가, 소류와 함께 서대륙에서 활동하던 기인.
자운 오디스의 보석술식과 흑마법을 동시에 다루는 흑마법사, 에르몽이 이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판데모니엄.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지?”
에르몽과 글렌.
판데모니엄의 일원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접점도 없는 두 사람이, 미개발지구 지하에 숨어 대체 무슨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지.
레이센과 손을 잡은 흑마법사들의 잔당은 어디 가고, 이들이 대신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지.
후우우웅!!
“……!!”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그 저력을 깨달은 에르몽의 표정이 싹 변했다.
슬쩍 레녹의 눈치를 보며 에르몽이 그 자리에서 뒷걸음질쳤다.
“흠흠, 나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런 곳에서 전투를 벌이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을…….”
“보석술식. 아직 가지고 있지?”
에르몽의 말을 자른 레녹이 앞으로 성큼 걸으며 물었다.
“이 근방을 모조리 보석으로 바꾼 걸 보면, 술식을 극한까지 활용하기 위한 환경을 인위적으로 구축한 거겠지.”
“…….”
“이런 인간들을 수십 명씩 모아서, 무슨 짓을 벌일 생각인지 꼭 한번 듣고 싶은데.”
“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리던 에르몽이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분위기.
글렌이 쓰러진 채 눈을 끔벅거리고, 등 뒤에서 아르망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침묵하던 에르몽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래서 젊은 마법사 놈들이란……. 하나같이 마주칠 때마다 재수가 없군요.”
“…….”
“하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위험해. 여기서 싸우면 틀림없이 내가 죽겠지요?”
자포자기한 듯이 중얼거리던 에르몽이 이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아, 근데 못 참겠다. 한번 그냥 해볼랍니다!!”
키이잉!!!
에르몽의 발밑에 떨어진 다이아몬드가 빛의 기둥으로 화해, 지하 공동을 싸그리 날려 버렸다.
한번의 포격으로 멈추지 않고 연달아 회전하며, 수조 기둥을 박살 내고 글렌의 육신을 태워 죽여 버리는 보석마력.
글렌의 육신들 중 하나를 움켜쥔 에르몽이 미친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발칸의 견뢰!! 그 소문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확인해 보자구요!!”
“나…… 그만 돌아가고 싶은데…….”
글렌이 더듬거리며 중얼거리는 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머리통을 터뜨린 에르몽이 레녹을 향해 달려들었다.
허공에 보석을 던진 뒤, 그 충격파를 부스터 삼아 순식간에 속도를 올리고 파고든다.
반쯤 무너져 내린 유리 공동 사이를 사선으로 엇갈려 질주하며 접근.
양 손가락 사이에 보석 여덟 개를 가지런히 끼운 채 보석술식을 영창했다.
에르몽의 등 뒤로 펼쳐진 보석의 날개가 각기 다른 여덟 갈래 색채로 물들어 회전하고.
발아래로는 황금빛의 괴조의 형상을 그려낸다.
괴조의 부리 사이로 보석마력을 추출해 이중으로 영창하는 흑마법이 동시에 발동.
그 자리에서 레녹의 신형을 깔끔하게 집어삼키고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쿠과과과과!!!
[천하석(天河石) : 공간연동 박리개화]끼이이이익……!!!
폭발의 중심지에 보석을 던져 넣고 그대로 공간을 비틀어 잘라내는 보석술식의 극예절기.
[선고 : 비약진(碑約震)]여덟 가지 광채가 그 자리에서 나선으로 회전해, 거대한 보석 기둥으로 응축되는 기적.
형형색색의 보석 기둥이 마치 거대한 묘비처럼 레녹의 머리 위에 내리찍히며, 그 존재를 남김없이 지옥에 봉인한다.
쿠아아아앙!!
그 충격으로 유리 공동이 통째로 깨져 나가며, 거대한 보석의 묘비가 흑색의 계단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푸하!!”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글렌의 몸을 피해낸 에르몽이 그중 하나를 주워 들고 말했다.
“아픈 친구, 이제부터 아까 그 초능력자를 추적하는 겁니다. 저는 그동안 준비를 끝내놓죠.”
“준비?”
쾅!!
보석의 묘비가 세로로 쪼개지며, 폭발하는 마력 광채를 뚫고 레녹이 걸어 나왔다.
파직, 파직……!!
당장에라도 에르몽의 멱줄을 움켜쥘 것처럼 손을 뻗던 레녹이, 발아래 펼쳐진 계단의 정경을 보고 잠시 멈춰 섰다.
에르몽이 그 모습을 보고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 그 순간.
거대한 뇌전의 손아귀가 그대로 흑마법사의 머리통을 내려치고 후려갈겼다.
콰아아앙!!
“크악!!”
수백 갈래 계단 아래로 힘없이 뒹굴어 튕겨 나가는 에르몽의 신형.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에르몽이 벌벌 떨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푸핫, 비겁하게 시간차공격을……!!”
“네가 할 말은 아니군.”
[항뢰(恒雷)]키이이잉!!!
레녹의 손끝에서 터져 나간 전격의 섬광이 거대한 뇌전의 구체를 형성하며 폭발.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에르몽의 신형을 지하 깊숙하게 처박아 버렸다.
뚜두두두둑!!
“으케케케켁!!”
비명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비명과 함께, 두들겨 맞으면서도 거침없이 흑마법을 영창.
그대로 흑색의 안개와 사슬을 쥐고 휘두르며 쏟아지는 뇌전을 어떻게든 막아낸다.
쿠과과과!!!
굳어버린 석유의 동굴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서 교차하는 검고 푸른 의념의 정광.
찰나의 순간 수십 번이 넘는 고유마법이 사방으로 엇갈려 터져 나오고, 기름으로 얼룩진 지하공동을 남김없이 불태웠다.
[자령섬전(刺領殲電)] [열뢰(裂雷)]쩌저적!!
수백 갈래로 쪼개진 자줏빛의 번갯 조각이 칼날의 파편처럼 쇄도하고.
[공작석(孔雀石) : 술식 난반사]에르몽이 흩뿌린 보석이 거대한 거울의 형상으로 변해 그 화력을 사방으로 빗겨내려 발악했다.
흑마법과 보석술식을 잡히는 대로 휘두르며, 사방에 보석의 쐐기를 꽂아 넣고 트랩으로 삼아 시간차로 터뜨린다.
레녹과 정면에서 공방을 이어가면서도 빠른 속도로 영창을 반복하는 에르몽의 전투.
보석술식과 흑마법이라는 상이한 두 가지 술식을 전투 도중에 동시에 다루면서도, 그 손속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아그그그그!!”
입으로 쉴 새 없이 기이한 소리를 지껄이고는 있지만, 어둠 속에서 피어오르는 흑색의 꽃 사이로 보석광이 번뜩이고.
동공을 휘감고 회전하는 꽃봉오리 사이로 보석 생명체가 솟구쳐 달려들며 폭발한다.
콰아아아아앙!!!
보석술식으로 창조한 사역마를 그 몸통째로 갖다 박아 터뜨리는 기예.
희귀한 보석 안에 응축된 마력이 막대한 만큼, 그 폭발의 범위와 속성 역시 각기 다른 계통으로 분화하며 레녹을 노린다.
“흑흑, 내 도오오온!!”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수인을 맺는 손길은 멈추지 않는다.
보석을 쉴 새 없이 갖다 박아 터뜨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보석마력을 체내에 응축해 육체능력을 극한까지 증폭.
폭발 사이로 레녹의 실드가 뚫려 나가는 단 한 순간을 노리며 은밀하게 준비를 거듭한다.
보석의 폭발로 터져 나온 각기 다른 계통과 속성의 충격파에 수십 장의 실드가 흔들리며 벗겨 나간 그 순간.
구겨지듯 처박혀 있던 에르몽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듯 도약했다.
파아앗!!
하지만 레녹의 숨결 한번에 그 모든 폭발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으며.
보석보다 단단한 냉기의 결정이 사방에서 흑마법사를 짓눌렀다.
[만하설결(灣河雪白)] [군백(群白)]쩌어어어엉!!!
“끄악!!”
시커먼 기름의 동굴이 순식간에 새하얀 냉기의 숨결로 얼어붙으며, 에르몽의 신형까지 그 자리에 눌러 붙였다.
온몸이 새하얀 서리에 응결된 채로, 레녹의 발 아래 넙죽 처박힌 흑마법사의 모습.
“으아…….”
“…….”
하지만 레녹은 그런 에르몽을 무시하고 곧바로 그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치열하게 교차하는 전투 도중에도 에르몽이 알게 모르게 보호하려 했던, 거대한 기름의 장벽 너머.
쾅!!
거침없이 그 장벽을 박살 내는 순간, 얼어붙은 에르몽의 몸이 보석의 결정으로 흩어져 녹아내린다.
동시에 박살 나 무너진 장벽 너머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던 진짜 에르몽이 난처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런, 벌써?”
“…….”
레녹은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에르몽이 서 있는 거대한 방을 말없이 올려다보았다.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흑색의 나무 앞에, 에르몽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이 서 있었다.
굵직한 뿌리로는 발아래 흥건한 기름을 쉴 새 없이 빨아들이고, 말라비틀어진 수백 갈래의 가지가 머리 위로 늘어져 있다.
그렇게 길게 늘어진 나무의 가지마다, 글렌의 몸이 남김없이 매달려 숨이 끊어져 있었다.
마치 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나뭇가지마다 매달려 있는 글렌의 시체들.
수백 구의 시체들을 매단 채 일렁이는 나무의 형상이, 기묘할 정도로 섬뜩하게 느껴진다.
“쉽지 않을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들킬 줄은 몰랐네요.”
에르몽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부러 분신을 내려보내 먼저 그쪽을 찾아가는 정성을 들였는데, 대체 어떻게 눈치챈 겁니까?”
레녹이 유전 아래로 내려와 글렌을 찾은 시점부터, 에르몽은 이미 침입자를 눈치채고 있었다.
다만 지금 그가 하는 일과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분신을 만들어 먼저 레녹에게 내려보내 전투를 하게 만들었던 것.
보석술식으로 만들어진 분신은 그 특유의 독특한 기척 때문에 분신인지 알아차리기 어렵다.
하물며 보석을 대량으로 쥐여주고 사용하게 하면, 보석술사 자신과 비슷한 전투력을 발휘하는 것도 가능할 정도.
하지만 레녹은 그런 에르몽의 분신이 가짜인 것을 처음부터 알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분신을 죽여 버리고 이 장소를 찾아낸 것이다.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에르몽의 질문에 레녹이 대답했다.
“그냥 죽이니까 알겠더군.”
“…….”
할 말을 잃어버린 에르몽이 말없이 옆에 서 있던 청년과 시선을 마주쳤다.
레녹이 그런 에르몽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영역을 펼치고 싸워도 모자랄 판에, 죽기 직전까지 생각조차 안 하는 걸 본체라 생각하기는 어렵지.”
“허허…….”
아르망 마르틴스의 분신 능력을 보며 분신을 구분해 봤기 때문에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에르몽의 허탈한 웃음을 무시한 레녹이 물었다.
“이 나무가 너희들이 지하에 몰래 숨어서 꾸미던 진짜 목적이겠지?”
“…….”
“뿌리로 기름을 빨아들여, 가지에 열매를 맺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뿌리와 가지 양쪽으로 지력과 생명력을 동시에 빨아들이고 있군.”
레녹의 시선이 동시에 에르몽이 서 있는 나무줄기 한복판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모여드는 곳은…… 나뭇등걸 안쪽인가?”
나무뿌리를 통해 지력을 빨아들이고, 가지로는 글렌의 생명력을 동시에 흡수한다.
뿌리와 가지 양쪽으로 모여드는 에너지를 한데 그러모아, 나뭇등걸 안쪽에서 무언가를 완성해 내고 있다.
거대한 방 전체를 잡아먹고 머리 위에 드리운 고목의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했다.
멸목 아크로트리니어.
문명을 잡아먹고 우주 저편에 뿌리를 뻗치는 외신의 힘을, 이제 와 에르몽이 다시 이용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레이센이 이 사실을 알려줄 수 있었던 것은, 멸목의 힘을 에르몽이 이용하며 외신의 꿈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때 이후로 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설마 이제 와서 여기 남겨진 흔적을 회수하려 들 줄은 몰랐군.”
레녹이 중얼거렸다.
에르몽을 바라보는 레녹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것도 너희들의 수장이 내린 명령인가?”
“…….”
에르몽은 대답하는 대신, 잠시 가만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그가 깔끔하게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큼 앞으로 걸어 나온 에르몽의 얼굴에 어린 결단.
레녹이 그 모습을 보며 지팡이를 살짝 기울여 짚은 순간.
에르몽이 레녹의 앞에 납작 엎드렸다.
착!!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여기서 다 포기하고 물러날 테니까, 10분만 모른 척해주시면 됩니다.”
“이봐.”
에르몽의 말에, 상황을 관망하던 청년 역시 불쾌한 기색으로 끼어들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여기까지 와서 다친 마법사 한 명 때문에 물러날 거라고?”
“그럼 당신이 저 친구랑 싸워서 대신 죽어주든가 하시지요.”
엎드린 에르몽이 의욕을 잃은 눈으로 시선을 피했다.
“기계도시 쪽 소식도 못 들었습니까? 다치고 자시고 저 친구는 그냥 미친놈이에요.”
“…….”
“그만치 난리를 피우고도 발칸으로 돌아와 일할 만큼 싸움에 미쳐 있다구요. 괜히 여기서 투덕거리다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프잖아요.”
묘하게 핵심을 건드리는 에르몽의 말에 레녹의 얼굴이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청년은 그런 에르몽과 레녹을 바라보다 싸늘한 조소를 흘렸다.
“웃기지 마, 늙은이. 수백 년 넘게 광산에 처박혀 잠이나 자고 있던 주제에……. 내가 누구인 줄 알아?”
에르몽을 지나쳐 한 발 앞으로 나선 청년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발아래부터 휘감긴 흑색의 마력이 청년의 몸을 휘감고 어두운 그림자처럼 회전했다.
수준급의 흑마법을 사역하는 마법사.
청년이 싸늘한 표정으로 레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길바닥에서 굴러먹던 근본 없는 마법사 따위가 무서워서 도망치는 일은 없다. 닥치고 작업을 끝내.”
“좋은 자신감이군.”
레녹이 웃었다.
쓸데없이 명성이 높아지는 바람에, 반을 알아보고 시비를 거는 이들은 거의 없어진 지 오래.
이렇게 당돌하게 덤벼오는 놈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그놈의 견뢰, 견뢰……. 다 뒤져가는 마법사를 높게 쳐주는 사람들이 참 많더군.”
청년이 그렇게 이죽거리며 성큼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생명유지장치에 기대 빌빌거리면서도, 그 위상은 누리고 싶어 안달이 나셨어. 그렇지?”
“…….”
드드드득!!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솟구치는 흑마력이 그 자리에서 빠르게 조립되어, 수십 발이 넘는 고유주문으로 변한다.
마법을 영창하는 것과 동시에 바로 쏘아내지 않고, 완성 직전에 일부러 멈추어 유지하는 기예.
난이도로 따지자면, 방아쇠를 당기고도 총알을 총구에 묶어두는 수준의 이적이다.
자신이 다루는 주문을 완벽하게 숙달하고, 그 마력의 흐름을 온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증거.
카라락!!
등 뒤에서 회오리치는 흑색의 마법 수십 종을 제 의지로 틀어쥔 청년이 레녹의 앞에 섰다.
“난 스승님과는 달라.”
청년이 조소했다.
“넌 그냥 반쪽짜리 재능을 가진 가짜일 뿐이지. 내가 이 자리에서 그걸 증명해 보겠다.”
“스승?”
레녹이 고개를 기울였다.
“네 스승이 누구지?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
에르몽이 살짝 탄식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내젓고.
“내 이름은 바에곤 데이요르.”
청년이 싸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위대한 흑마법의 계승자이자, 모든 죽음의 주인이신 명왕의 적법한 제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