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81
약먹는 천재마법사 681화
가장 오래된 혈통(3)
아르망 3의 전혀 예상치 못했던 탈주 선언.
느닷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 나선 분신의 말에 다른 아르망들이 기겁했다.
“미친 소리를…….”
“절대 안 돼!! 너는 내 분신이라고!!”
“마음껏 떠들어라. 난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살 테니까.”
지하동굴을 앞에 두고 당장에라도 서로 싸울 것처럼 날을 세우는 아르망의 분신들.
레녹은 그런 분신들을 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방금 걸어준 마법은 분신의 자아정체성을 보장해 주려는 시도는 아니었다.”
“뭐?”
“말도 안 돼.”
아르망 3이 표정을 찌푸렸다.
“지금 내 몸을 타고 흐르는 이 마력은 그야말로 내 영혼을 일깨우는 숨결이었어. 이런 힘을 주고 내 정체성을 부정할 생각인가?”
“…….”
어쩐지 무척 감수성 있는 표현력을 지니게 된 것 같기도 한데.
정말 증강마법에 괴상한 부작용이 붙어 있었기 때문일까.
“내가 다행이라 말했던 건…….”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허공에서 회전한 두 갈래 낙뢰가 동시에 떨어져 내렸다.
파지지직!!!
아르망 1과 아르망 2의 정수리에 내리꽂힌 증강마법이, 순식간에 그들의 능력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부풀린다.
“우욱!!”
“힘이……!!”
“견뢰!! 어째서 저들에게……!!”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하는 아르망 1과 2.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치는 아르망 3.
레녹이 그런 아르망의 분신들을 보며 말했다.
“내가 개발한 증강마법의 세 가지 개정판을 동시에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거였지.”
“……예?”
“세 분신의 능력과 마력이 똑같다면, 똑같은 표본에 각기 다른 증강마법을 걸어 비교하기도 편하지 않겠나?”
“…….”
그제야 레녹이 어째서 분신에게 증강마법을 걸고, 제대로 유지되는가 확인했는지 이유를 깨달은 분신들이 입을 다물었다.
걸어둔 증강마법이 약해지거나, 분신이 정체성을 깨닫는 부작용을 염려한 것이 아니다.
순전히 레녹이 개발한 마법의 개정판을 비교하고 그 효율을 실험해 보기 위한 발상에 불과할 뿐.
처음부터 레녹은 아르망의 분신을 통해 자신의 마법을 연구할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르망 2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 아니, 왜 하필 이 시점에 저를 상대로 연구를…….”
“이 정도 표본을 두고 실전에서 검증할 기회는 흔치 않지.”
레녹이 웃었다.
“그리고 내 몸으로는 실험해 볼 수 없는 노릇 아니겠나.”
“…….”
레녹은 오래전부터 여뢰신의 효용성을 깨닫고 꾸준히 위력과 효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해오고 있었다.
위력을 높이고 연비를 낮추거나, 또는 반응속도를 높이고 감도를 낮추거나.
여뢰신을 통해 증강되는 능력의 계통이나 성질을 조금씩 바꾸어, 다양한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버전을 개량하는 방식.
그렇게 연구해 온 증강마법은 물론 레녹과 함께하는 전위들에게 걸어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지만.
그 최종적인 목적은 당연히 레녹 자신이 직접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한계를 넘어선 초인과 괴물들의 전투에서, 레녹 자신 역시 근접전투에서 단 한 번의 기회라도 더 손에 넣기 위한 발버둥.
그것을 이만큼 동일한 표본을 상대로 동시에 실험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개량판마다 출력과 연비는 다르지만, 각자 10분 정도의 지속시간은 보장될 거다. 다시 말해 표본을 비교할 시간이 많지는 않다는 뜻이지.”
“…….”
“뭐 해?”
레녹이 웃으며 고개를 까닥였다.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고.”
* * *
콰아아앙!!
새카만 벽면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지하동굴.
어둠이 내려앉은 그늘 사이, 세 갈래로 나뉜 섬광이 빠르게 질주한다.
파아아앗!!
섬광이 동굴 안쪽 복도를 파고드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침입자다!!”
“방호를 치고 마법진을 작동시켜라!!”
“감속을 걸고 요격에 나선다. 전위부터 움직여!!”
흑색의 도포를 걸친 사람들이 복도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짙은 흑마력을 움켜쥔 채 힘껏 내던진다.
복도 사방으로 던져진 마력이 의념을 묶어 거대한 장벽으로 일어서고, 흑색의 불길을 비처럼 쏟아냈다.
두두두두!!
하지만 그런 흑마법사의 저항을 얼굴이 똑같은 청년 여럿이 동시에 달려들어 찍어 눌렀다.
우드드득!!
유난히 체격이 커진 청년이 장벽을 밀쳐 기울이고, 다른 둘이 그 무릎과 어깨를 밟고 뛰어오른다.
허공으로 도약한 둘 중 하나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 흑마법사들의 등을 찌르며.
다른 하나는 거침없이 영창을 시도하는 마법사들의 대열 사이를 파고들었다.
카가가각!!
“끄아아악!!”
“너, 너무 빨라!!”
“말도 안 돼. 가용마력에 비해 위력이 터무니없이……!!”
사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흑마법사들을 가차 없이 죽이며 돌파하는 세 명의 청년들.
빠르게 꺾여 나가는 흑마법사들의 잔당 뒤로, 지팡이를 짚은 마법사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긴다.
콰직!!
“꺼어억……!!”
전투는 오래지 않아 끝났다.
세 사람의 전투는 너른 복도를 넘어, 거대한 계단이 위치한 광장까지 뚫어낸 뒤에야 멈추었다.
파직, 파직!!
내딛는 걸음마다 강렬한 전격의 흐름이 묻어 나오며, 어두운 광장을 희미하게 밝히는 모습.
세 사람의 아르망이 각자 다른 기세를 천천히 거둬들였다.
“하아, 하아……!!”
각자 지친 정도는 다르지만, 피로감이 극심한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는 모습.
레녹은 가장 마지막에 광장으로 걸어 들어와,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피곤할 거다. 아무리 효율적인 증강마법이라고 해도, 대상자의 기력을 뽑아 쓰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으니까.”
“…….”
“예상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두 번째 개정판이 가장 효율적이군. 다른 둘은 아직 조정이 필요해.”
사용자에게 강력한 육체증강과 뇌전의 성질을 부여하는 여뢰신(余雷身).
하지만 기존 여뢰신의 연비와 위력을 조정해 만들어낸 개정판은 아직 한참 연구 중에 있다.
일도증려, 이두팔겁, 사서삼극 중 가장 전투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은 이두팔겁 하나뿐.
다른 둘은 다소 지나칠 정도로 장단점을 분리시킨 탓에 기존의 목적에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용도에 따라 세부적인 능력치를 나눈다는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지만…… 좀 더 연구가 필요해 보이는군.”
“…….”
레녹의 담담한 고민에도 아르망의 분신들은 무어라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살짝 지친 듯한 기색으로도 묘하게 서로 눈치를 보며 슬쩍 거리를 벌릴 뿐.
하나의 본체에서 갈라진 분신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서먹서먹한 모습.
마치 같은 분신들이 아니라, 서로 경계해야 할 경쟁자들을 보는 듯한 기이한 광경이다.
품 안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던 다비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태어난 지 몇 년도 되지 않은 전뇌정령에게 인생 훈수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분신들의 반응이 어떠할까.
레녹은 굳이 그 사실을 일러주는 대신, 말없이 아르망의 분신들에 걸린 여뢰신을 깔끔하게 거둬주었다.
파지지직……!!
“아!!”
“으윽…….”
단말마를 내지르며, 아르망의 마력이 급격하게 쪼그라들고 표정이 확 변한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푹 숙인 아르망의 분신들이 하나로 합쳐지며, 아르망 마르틴스 자신으로 돌아왔다.
멍하니 스스로의 몸을 더듬거리던 아르망이 이내 한숨을 내쉬며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후우우우…….”
“기분이 어떻지?”
“……최악이군요.”
레녹의 질문에 아르망이 힘없이 대답했다.
“정말 고약한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걸어둔 증강마법은 당연하지만, 언제고 직접 회수해 거둬들일 수 있는 종류의 힘이다.”
피식 웃은 레녹이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런 증강마법으로 인해 분신의 새로운 자아가 깨어난다는 건 가능성이 낮은 일이지……. 처음부터 착각하고 있던 거야.”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더군요. 제 안의 충동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르망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대답했다.
파리한 안색으로 머리를 쓸어넘긴 아르망이 떨어진 칼을 주섬주섬 주워 들었다.
“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충동이 증강마법으로 커지면서, 통제를 벗어나 정체성을 갖추었다 착각한 게 아닐까 싶군요.”
“그럴듯한 추측이군.”
아르망의 분신들은 레녹의 증강마법을 받고 새로운 자아로 각성한 것이 아니다.
초능력이란 육체와 정신의 유기성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선천이능.
그렇기에 분신 능력을 사용하는 아르망의 경우, 육체의 동일성을 통해 분신을 통제하고 조작하고 있다.
하지만 레녹의 증강마법을 받은 분신이 다른 분신들과 달라지며, 아르망의 정신이 그 정체성을 착각하기 시작했다.
분신의 돌발 행동과 갑작스럽게 달라진 말투는, 아르망 자신의 정신이 분신을 오판하면서 생겨난 부작용.
레녹은 여뢰신을 해제하며 돌아온 아르망에게 그 사실을 지적해 주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해결해 줬지만, 만약 같은 방법을 적이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
“지금처럼 네 통제를 듣지 않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너를 직접 공격하려 들겠지.”
말없이 고개를 숙인 아르망의 모습.
“평소에도 분신을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서, 조건이 변해도 너 자신이라는 확신을 심어두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초능력에 대해 그리 잘 알지는 못하지만…….”
흑마법사의 시체에서 낡은 무전기를 주워 든 레녹이 말했다.
“결국 자신을 믿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이능이지. 그걸 하지 못해 미쳐 버린 이들을 나는 몇 번 봤다.”
“……이해했습니다. 제 초능력에 맹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더 노력해야겠지요. 조언 감사드립니다.”
“…….”
나름대로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망을 보며, 레녹은 사서삼극의 마력 패턴을 따로 빼놓아 정리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르망 3의 갑작스러운 일탈이 예상 밖의 일이라는 사실은 분명했기 때문.
‘사서삼극은 기본적으로 반사신경과 사고속도를 증강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개량판이었지.’
세 가지 개량판 중에서도 유일하게 정신능력을 보조하는 만큼, 아르망 3이 이상행동을 보인 이유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사서삼극을 만들 때 조정했던 방향성을 좀 더 연구하다 보면 유의미한 성과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레녹은 그런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뒤 주워 든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진정됐으면 이걸 보고 이야기하지.”
삐, 삐빅-
버튼을 누르자 알 수 없는 신호음이 새어 나오다가, 뚝 끊겨 버린다.
“멀쩡하게 작동은 하는데, 정작 통신은 연결되지 않는군.”
“통신망이 끊긴 걸까요?”
“그랬다면 아예 통신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떴을 거다.”
“그렇다면……?”
“누군가 중간에서 연결되는 통신을 가로채고 있는 거지.”
레녹의 말을 이해한 아르망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레이센과 손을 잡은 흑마법사들이겠군요.”
“이걸 들고 신호음이 최대한 길게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봐라.”
아르망은 레녹의 말에 따라 흑마법사들의 시체에서 멀쩡한 무전기를 여럿 회수해, 분신을 사용해 곳곳에서 무전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번 합체한 뒤에 다시 나뉜 뒤에도 어딘가 서먹해 보이는 분신들의 모습.
다비의 말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말 촌극이 따로 없다.
하지만 이 아이러니함이 바로 모든 초능력자가 기본적으로 늘 지니고 살아가는 위태로움의 방증.
그렇기에 이능개화전단이라는, 본디 있을 수 없는 조직이 탄생해 중앙전선을 내달리고 있는 것이다.
어떤 선천이능자에게는,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재능이 저주에 불과할 뿐일 테니까.
“반 님.”
아르망 9가 계단 저편에서 레녹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레녹이 즉시 들고 있던 무전기를 들고 버튼을 눌렀다.
“들리나?”
[네. 무전기를 통해 들립니다.]“좋아. 거기까지는 멀쩡하게 무전기가 작동하는 범위 안이군.”
만약 흑마법사들의 수뇌부가 중간에서 무전기의 통신을 가로채고 있다면, 그 유효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통신이 탈취당하는 경계선을 가늠해서 반대로 뒤집어 나가면, 어디서부터 통신이 막히는지 시작점을 가늠할 수 있을 터.
아르망 역시 레녹의 의중을 이해했는지 곧바로 움직였다.
“이쪽이군요.”
“크악!!”
난간 위에 단검을 들고 숨어 있던 흑마법사를 처리한 아르망이 그대로 계단을 타고 올랐다.
말없이 아래쪽에서 계단을 바라보는 레녹의 모습에 아르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라오지 않으실 겁니까?”
“…….”
레녹이 지팡이를 까닥인 순간, 바닥 아래 고여 있던 기름이 뭉텅이로 일어나 레녹의 발밑을 받쳤다.
슈우웅!!
순식간에 계단 수백 개를 가뿐하게 건너뛰어 레녹을 2층 난간 위에 올려두고, 철푸덕 떨어져 내리는 기름 덩어리.
아르망이 그 모습을 보며 실수했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근래 부상을 입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조심하지.”
* * *
레녹은 곧바로 아르망의 분신들을 앞세우고 계단 위로 펼쳐진 복도를 주파했다.
매캐한 모래 고원 아래쪽에 존재한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지하구조물.
“이런 지하구조물을 소수 인력만으로 지어낼 수 있다니……. 레이센 상원의원이 이들에게 비자금을 맡긴 이유가 있었군요.”
아르망이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기름을 굳혀 만들었다고 하셨지요. 굳이 이런 장소에, 이런 재질을 선택해 만든 이유가 있을까요?”
“글쎄……. 아마 촉매로 사용하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촉매 말씀이십니까?”
“그걸 생각하면 어째서 이 근처에 숨어 비자금을 숨겨두고 있었는지도 이해가 가지.”
레녹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만약 흑마법사들이 기름을 굳힌 물질을 촉매 삼아 이 모래더미를 변질시키는 데 성공했다면…….”
지팡이 끝으로 벽면을 가볍게 긁어내자, 그 안에서 투명한 결정 같은 게 떨어져 내렸다.
“그다음의 공정도 흑마법을 사용해서 처리할 수 있었을 테니까.”
“……보석 결정입니까?”
어안이 벙벙한 아르망의 어깨를 두들기며 레녹이 재차 걷기 시작했다.
어둡기만 했던 복도의 풍경이 조금씩 밝아지고, 좌우로 펼쳐진 공간은 계속해서 넓어진다.
흑색의 고체로 점칠된 복도가 투명한 결정의 형상으로 변해간다.
차랑, 차랑!!
길쭉한 원반 형태로 구부러진 거대한 보석 결정으로 이루어진 방.
눈부신 보석의 방 사방에, 투명한 유리 기둥 수십 개가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유리 기둥 안에는 진녹색의 액체가 가득 차 있고, 그 액체 안에 눈을 감은 채 둥둥 떠 있는 인간들이 수십.
“…….”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에 아르망이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레녹은 그런 아르망을 내버려 두고 유리 기둥에 둥둥 떠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맥박이 살아 있군. 멀쩡히 호흡도 하고 있어. 생명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장치인 것 같군.”
“이, 이…….”
“장치의 동력은 석유를 부어 해결하고 있는 건가? 생산과 공급을 한가지 방식으로 해결하다니, 효율적인 발상이야.”
툭.
지팡이 끝을 가져다 대는 순간, 유리 기둥이 박살 나며 그 안에서 녹색의 액체에 뒤덮인 육신이 떨어졌다.
와장창!!
아르망의 앞에 알몸의 남성이 그대로 머리부터 떨어져 마구 뒹굴었다.
레녹은 쓰러진 알몸의 남성을 지팡이로 밀어 뒤집은 뒤, 그의 얼굴을 유심히 주시했다.
“이제 보니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건강한데. 그렇다면 왜 이런 방식을 써서 보관을 한 거지?”
“어떻게 발칸 근처에서 이 정도 대규모 인신공양이 일어날 수 있을 수가……!!”
아르망이 떨리는 목소리로 품 안에 손을 뻗었다.
휴대폰을 꺼내든 아르망이 황급히 번호를 눌렀지만, 통신이 연결되는 일은 없었다.
레녹이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통신을 전부 가로채고 있다고 했잖나. 자기폭풍 때문에라도, 애초에 미개발지구 지하에서 전화가 연결될 리는 없지.”
“당장 지원팀을 불러야 합니다!!”
“놈들이 우리를 순순히 보내줄까?”
“……!!”
안절부절못하는 아르망을 보며 레녹이 지팡이를 짚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이건 인신공양의 흔적이 아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한 것 같긴 한데, 분위기가 많이 달라.”
단순히 인간을 제물로 바치기만 할 거라면 굳이 이렇게 정성 들여 보관해 둘 이유가 없다.
공양을 위해서 제물을 준비해 두었다기보단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품 안에서 주사기를 하나 꺼내 들었다.
“일단 한번 깨워서 직접 물어보자고.”
“그게 무엇입니까?”
“죽어가는 마수도 날뛰게 만들어줄 수 있는 강심제다.”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그대로 바늘을 쓰러진 남자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왜 의식을 잃었는지는 몰라도, 이걸 맞으면 싫어도 정신을 차리게 되겠지.”
푹!!
바늘을 꽂고 그대로 약물을 안으로 밀어 넣는다.
약물을 심장에 직접 투여한다는 극단적인 방법.
평범한 인간이라면 아마 그 자리에서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그대로 심장이 마비되어 죽어버리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알면서도 남자의 심장에 강심제를 놓고 가볍게 두들겼다.
그건 이미 이들의 눈앞에 박제된 이 육신들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
그리고, 강심제를 투여받은 남자가 그 자리에서 번쩍 두 눈을 떴다.
수조 안에 갇혀 있던 수십 명의 사람들과 동시에 눈을 뜨고 레녹을 응시하는 섬뜩한 모습.
“……!!”
그들의 동공은 마치 수천 마리의 벌레가 기어가는 듯이 흔들리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르망이 창백하게 질린 안색으로 이를 악무는 것과는 달리, 레녹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쪽이었군.”
이 남자를 비롯한 수십 개의 육체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기척.
그리고 당장에라도 자아를 유지하지 못하고 흩어질 것 같은 이 동공이 기억에 있었기 때문.
스스로를 단일개체라고 믿는 수백 개의 군체의식이 육신을 통제하며 움직이는 존재.
정신이 오염되는 질병의 일종이라 말할 만큼, 판데모니엄 내부에서도 능력의 정체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하는 이능자.
편람의 우물 작전에서 광대와 프레이야를 보조했던 군체의식 보유자, 글렌이 이곳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의식을 차린 글렌에게 레녹이 무어라 질문하기 위해 입을 뗀 그 순간.
“미안하지만 그 친구, 아직 여기서 깨우면 안 되거든요.”
두 사람의 등 뒤에서 혼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사이한 눈매를 지닌 훤칠한 체격의 남성.
어딘가 검게 가라앉은 죽은 낯빛과는 달리, 얼굴에 맺힌 웃음은 한없이 가볍기 그지없다.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괴이한 시선으로 레녹을 바라보며 남자가 웃었다.
“많이 아픈 친구예요. 그거 잠깐 내려놓고 저랑 이야기나 하지 않겠습니까?”
남자의 손아귀 사이로, 작은 보석들이 동전처럼 마구 짤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