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5
바닥에 뿌려진 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얼어붙으면서 바닥에서 굵직한 얼음의 뿔이 튀어나와 그대로 아리스를 노린다.
아리스 역시 담담한 표정으로 불덩이 세 발을 떨어뜨려 순식간에 레녹이 만들어낸 얼음덩어리를 녹여버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속성의 맹점을 이용한 공방이 오가고 있지만 레녹도, 아리스도 모두 알고 있다.
평범한 열기에 녹아버릴만큼 쉽게 만들어낸 얼음이 아니며, 고작 얼음만을 녹이고 사라질만한 화력도 아니다.
두 사람이 시선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시 바닥을 녹아 흐르는 물로 향하고, 거의 동시에 두갈래의 마력이 한번 더 내리꽃혔다.
카가가가각!!
하나의 물웅덩이에서 피어오른 두 갈래의 얼음길이 서로 얽히면서 치열하게 머리를 노린다.
‘결공이라고 했었나. 분명 이렇게….’
아주 잠깐 마주했던 마력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레녹의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동시에 마력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속절없이 밀리기만 하던 레녹의 냉기가 조금씩 아리스의 기세를 따라잡더니, 역으로 상대방을 잡아먹을 만큼 덩치를 키운다.
“…….!!”
그 매서운 기세에 눈썹을 끌어올린 아리스의 마력이 일순 더욱 차갑게 변했다.
이중의 나선을 그리면서 얽혀들어간 냉기가 대기의 수분을 모조리 얼리고 뿌리끝에서 빨아들이며 게걸스럽게 서로를 탐한다.
쩌저저저저적….!!!
쿠웅!
사방을 정신없이 격하고 회전하면서 물어뜯던 쌍방의 냉기가 마침내 천장에 닿고 거대한 얼음의 기둥을 만들고 나서야,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마력을 거둬들였다.
“……..”
강당의 앞에 피어난 차가운 서리의 나무를 본 레녹이 가만히 들고 있던 생수통을 내려놓았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미친듯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초대
‘이런 느낌이군…. 대충 알 것 같은데.’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피면서 레녹이 생각했다.
한번 손에 쥔 감각을 놓지 않으려는 듯.
이때까지 다른 마법사들과 몇번 싸워본적은 있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솔직하게 말해 레녹의 눈에 차지 않는 수준이었다.
아니면 레녹이 공용마법으로도 비슷하게 흉내를 낼 수 있는 수준이었거나.
그러나 아리스가 사용하는 마법은 다르다.
한가지 속성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원소라는 계열 자체를 아우르는 고난도의 고유마법.
마력의 흐름만 눈여겨 보는 것만으로 깨닫는 것이 있다.
그건 단순히 이론을 공부하고 배우는 것만으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적나라한 실전의 영역에 가까웠다.
‘마력의 흐름을 네 갈래로 나누고 필요할 때마다 여러 갈래를 엮어서 사용하고 있어. 성질변화를 유도해서 여러 속성을 한번에 제어하는 방식인가.’
시작부터 다양한 계열을 사용하는 레녹이 따라하기에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마력운용을 시작부터 다르게 가져가면서 마법을 사용할때만 엮어낸다는 개념은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결공(結功)정도면, 지금 당장 따라해볼수도 있을 것 같지만….’
여기서 그 짓거리를 했다가는 아리스가 레녹을 가만두지 않겠지.
레녹이 상념에 빠진 사이 흐트러진 셔츠 매무새를 다듬은 아리스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
“흠흠.”
자기도 모르게 흥을 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멋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한 아리스가 손을 내밀었다.
“저희 학생들을 위한 시연에 협조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별 것 아닙니다.”
“과연 다이크에서 직접 모셔올만한 실력이군요. 특히 마지막에 마력을 다루는 제어능력은 저도 조금 놀랐어요. 그런 종류의 컨트롤은 누군가의 사사를 받지 않는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정밀함인데…..”
누군가의 사사라, 최근 들어서 도서관에서 비슷한 것을 받고 있기는 했었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디 학파 소속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마 말씀을 드려도 모르실겁니다.”
레녹이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능숙하게 대꾸했다.
“유명하지도 않고 외부와의 교류도 많지 않아서 그리 이름을 알리지는 못했거든요.”
“그렇군요.”
대답하기 싫다는 레녹의 의중을 눈치챘는지,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해오지 않았다.
레녹은 그런 아리스의 유려한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건 잠깐이지만, 마력을 다투었던 상대에 대한 무의식적인 분석에 가까웠다.
정밀한 마력제어능력과 눈앞에서 거친 마법을 마주하고도 주눅들지 않는 침착함.
레녹과 비슷한 수준으로 지형지물을 눈여겨보고 대처하는 융퉁성.
그리고 안정적이며 다채롭게 사용하는 원소계열의 고유마법까지.
‘흠잡을데가 없군.’
잠깐의 고민끝에 레녹이 내놓은 결론은 그것이었다.
아리스 리첼렌은, 레녹이 보아온 모든 마법사들 중에서도 승천자를 제외하면 가장 강한 마법사가 분명했다.
주변을 생각해서 여파를 조절한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겠지.
그녀의 실력을 레벨로 나타낸다면 어느정도일까. 직접 마력을 겨뤄본 뒤에야 레녹은 그 실력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5레벨 이상이겠지. 대학 교수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군.’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아리스도 나름대로 할 말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살짝 무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무슨 담배 피우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엉뚱한 질문이었다.
“그건 왜…..?”
“아뇨, 그…”
대답하기 힘든듯이, 말끝을 흐린 그녀가 말했다.
“제가 아는 사람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 착각이겠죠.”
“………..”
레녹은 할 말을 잃었다.
그 대답이 워낙 황망한 것을 떠나서, 그녀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강당 위에 올라온 마냐가 빠르게 레녹을 향해 다가와 속삭였다.
“반 님. 여기까지 하시고 내려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머지 일정은 저희쪽에서 잘 마무리를 짓도록 하죠. 사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레녹이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려가지.”
슬쩍 대답을 얼버무리면서 아리스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그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포기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돌렸다.
짧지만 강렬한 만남. 하지만 그 끝에 그녀가 물어온 것은 레녹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질문이었다.
생각보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도서관에서의 약속이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걸까.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레녹은 상념을 정리하고 저 아래쪽에서 그를 기다리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다. 더스틴이 고작 쓸만한 마법사가 부족하다고 레녹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는 않았을거라는 사실을.
특히 아리스 리첼렌같은 실력있는 마법사와의 맞대결을 생각하면, 단순히 더스틴 본인의 만족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목적이 있다고 보는것이 맞겠지.
이를테면, 지금 어딘가에서 이 자리를 지켜보고 있을 사내 관계자들… 그런 이들에게 방금 레녹이 보여주었던 실력은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칠테니.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한층을 통채로 사용하는 광활한 사무실에 그를 데려와 앉힌 더스틴이 자리에 앉자마자 살짝 고개를 숙인 것이다.
“아까는 미안하게 됐네. 자리가 자리인지라 쉽사리 양해를 구하기가 힘들더군.”
“이사진들입니까?”
레녹의 대답에 더스틴이 놀란듯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걸출한 사람이라는 파노아의 말이 틀리지 않군. 그래, 라바테논 대학의 실무견학을 계기로 이사진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어. 그들에게 내가 가진 패를 실제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네.”
급하게 준비된 일정이라 자네에게 미리 말하지 못한 점은 사죄하지, 하고 덧붙이는 더스틴의 말에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이걸로 의뢰 한번을 줄여준다는 약속을 지켜준다면 충분합니다.”
“그 부분은 내가 확실히 보증하지. 지금까지 자네가 해온만큼의 성공보수 역시 그대로 쳐서 계좌에 입금해주겠네.”
더스틴이 파노아를 바라보며 눈짓하자 그녀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도움이 되셨습니까? 그쪽 대학의 학생들을 인솔해온 교수를 상대하기 좀 힘들었는데,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레녹이 슬쩍 생색을 내자 더스틴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자네 아리스 리첼렌이 누군지 모르는건가?”
“…실력있는 마법사라는 것 말고는.”
“싱클레어 마탑을 대표하는 실력자로, 어린 나이에 6레벨 군위마법사의 자리에 오른 천재들 중 하나야. 본인의 뜻이 워낙 완고해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지만, 원래라면 진작 마탑에 불려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네.”
뛰어난 마법사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6 레벨에 도달한 실력자였던가.
“마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유명하지 않겠지만, 그 외모도 포함해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저명한 인사지. 어찌되었든 그런 마법사를 상대로 얼핏 대등해보이는 시연을 보인것은 큰 의미가 있네.”
더스틴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주주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끼치는 건 물론이고, 잘만하면 이사회의 내분까지도 유도할 수 있겠지. 자네가 잘 해주었으니, 남은 건 이쪽의 몫이야.”
“그것보다는 앞으로의 프로젝트에 집중을 해줬으면 좋겠군요. 이 모든 일이 정작 40번대 구역에서 결착을 짓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일테니까요.”
정곡을 찌르는 말에 옆에 서 있던 파노아의 얼굴이 순간 경직되었지만, 더스틴은 허허 웃고 흘려넘겼다.
“날카로운 지적이군.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솔직하게 처음에는 바깥 구역을 다소 얕잡아보고 시작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
“다만 그건 엄연히 계획에 걸맞는 인력을 준비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파노아의 실책은 아니었네. 그것만큼은 알아주었으면 좋겠군. 내 인선실수로 이번 일에서 자네와 그녀의 신뢰가 옅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네.”
더스틴이 그렇게 말하며 파노아에게 눈짓을 주자,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정말로 이번 프로젝트에 필요한 모든 일처리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어. 40번대 구역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무기사업의 일부를 덜어내고 우리가 그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은, 거기에 돈을 대고 있던 정계의 인사 일부를 달래줘야 한다는 뜻이지. 그러면서 지금 유지하고 있는 다른 기업과의 협업도 신경쓰다보니 정작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놓쳐버린 걸세.”
‘말이 길군.’
세상에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냉정하게 말해서 레녹은 더스틴과 파노아가 얼마나 힘들고 고생을 하고 있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었으니까.
아니면 더스틴은 세상물정 모르는 마법사가 그들의 처지에 공감해줄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일까?
레녹의 시선이 조금씩 차가워져 가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한창 떠들고 있던 더스틴이 아니라, 그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던 파노아쪽이었다.
그녀는 무의식중에 매만지고 있던 손목시계를 쳐다보는 시늉을 하더니 곧바로 더스틴에게 속삭였다.
“사장님, 슬슬 이사진과 약속한 미팅시간이 된 듯 합니다. 여기서 이만 일어나시는게…”
“…..아, 벌써 시간이 그리 됐나? 내가 말이 너무 많았군.”
더스틴은 그렇게 말하면서 말을 끊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의자 팔걸이에 걸쳐둔 옷을 집어들고 아주 자연스럽게 레녹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어찌되었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보상을 하도록 하겠네. 시간을 내줘서 고맙군. 하지만 내가 했던 말은 모두 진심이야. 그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네.”
파노아를 내버려두고 훌쩍 사무실을 나서는 더스틴의 뒷모습을 레녹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
그런 레녹의 모습을 본 파노아가 변명하듯이 말했다.
“사장님께서 처음 작전에 대해서 핑계를 대려고 저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내업무에 집중하시는 분의 시선과, 실무자의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는 걸 알아주신다면….”
“눈물겹군.”
“…….네?”
“이만 돌아가지.”
흥미롭다.
더스틴과 파노아가 떠벌이는 말같지도 않은 변명보다는, 이상할 정도로 끈끈한 두 사람간의 신뢰관계가.
분명 더스틴은 일어서는 순간까지도 레녹이 어디서 짜증을 느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파노아의 말을 듣자마자 대화가 잘못 끼워졌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자리를 피한것이다.
한 그룹을 이끄는 사장이면서도 기획팀장의 의견을 순간적으로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것은 더스틴의 능력이 부족하기라서보다는, 그가 그 이상으로 파노아라는 사람을 믿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건, 그녀가 심적으로 압박을 받을때마다 매만지는 저 손목시계와도 관련이 있겠지.
레녹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도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잘 기억해두었다.
언젠가 다이크 사와 갈라져야 할때, 이 두 사람의 개인적인 신뢰관계가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을테니까.
파노아는 이상할 정도로 순순히 물러나는 레녹을 보고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했는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사흘내로 저희쪽 일정을 마무리하고 세번째 작전에 들어가겠습니다. 시거 뱅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확실하게 손발을 잘라야겠지요.”
“플라톤이 돌아섰으니 남은 건 한군데 뿐이군.”
“예.”
파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이제는 익숙해진 원룸의 냄새.
간단하게 세면을 마친 레녹은 부엌으로 다가가 찬장에 정렬해둔 영양제를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건강에 대한 레녹의 집착은 여전했다.
아니, 돈이 모일수록 더욱 강렬해지고 있었다.
다이크와 작전을 연달아 함께하면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은 적어도 그가 인터넷으로 쇼핑을 하는데는 망설임이 없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시간날때마다 하나씩 사 모았던 영양제의 숫자는 이제 열가지를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