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99
약먹는 천재마법사 799화
화신술식(1)
“유령용의 화신 술식이라…….”
유령용 야오 쉰의 본신술식이자, 요새의 환경을 구축하는 힘이 화신 술식이라는 영귀의 전언.
레녹은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련의 설명과 상황들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리스의 말대로라면, 유령용이 군령이 된 이유가 화신술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심지어 화신술식은 레녹이 요르타에서 상정해 두었던 세 가지 목표들 중 하나.
진혼정의 일로 인해 제쳐두었던 일이, 이런 식으로 엮여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탓에 망설이던 찰나.
“혹시나 했지만 정답이었군.”
그 반응을 반쯤 확신하듯 이해한 영귀가 비웃듯이 말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진혼정의 비사에 대해 알고 있던 것 역시, 야오 쉰과 내통했기 때문이겠지?”
“…….”
이미 레녹이 유령용과 한패라는 투로 상정하고 무기를 뽑아 드는 영귀들의 모습.
귀기어린 살의가 어깨 위로 쏟아져내리며, 순식간에 주변을 음침한 영기로 가득 채웠다.
츠츠츠츠!!
“요새에서 무력을 행사하면 유령용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겠지만…… 이 자리에서 네놈을 보내주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로 돌아오겠지.”
이미 저들은 레녹이 위령탑에서 저지른 일을 알고 있다.
대심판관 오리스와 손을 잡고 위령탑을 반쯤 뒤집어 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결코 레녹을 놓치려 하지 않겠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 가지 어폐가 있군.”
하지만 레녹은 그 말을 듣고도 피식 웃으며 영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건 너희들이 나를 상대할 수 있을 때 고민해 볼 일이 아니겠나?”
서걱!!
그 순간, 천막 아래 매달려 있던 창백한 피부의 영귀가 그 자리에서 반으로 쪼개졌다.
머리부터 복부까지를 깔끔하게 세로로 절단해 양단하는 섬뜩한 절삭력.
레녹의 손에서 뻗어나온 실선이, 날카로운 칼날처럼 번뜩이며 영귀를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린 것이다.
파스스!!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흐릿한 영기로 폭발해 사라지는 영귀의 모습.
그것을 보자마자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다른 영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이본이 당했다. 시작해!!”
“특질계 조작술사다. 사전에 논의한대로 거리를 유지하도록!”
“철저하게 대열을 유지하며 움직여라!!”
퍼어엉!!
그 순간, 야시장에 쌓여 있던 과일 상자 수십 개가 폭발하며 사방에서 과일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과육과 과즙을 줄줄 흘리면서 사방에서 떨어져 내리는 수백 개의 과일 더미.
“시야를 가리는게 목적인가? 잡스러운 수작이군.”
그 사이에서 레녹이 마력사를 손가락에 둘둘 휘감았다.
과일의 비 사이를 꿰뚫은 의념이 실재하는 힘이 되어 영체를 관통하려던 찰나.
레녹이 퍼뜩 시선을 돌려, 허공에서 과일 하나를 움켜쥐었다.
과일 사이에 섞여 있던 비슷한 색으로 칠해진 폭탄이 격발.
야시장 한복판에 거대한 불꽃의 기둥을 피워 올렸다.
뻐어어엉!!!
충격과 함께 주변의 기물을 불태우는 푸르스름한 영기의 파동.
레녹은 그 파동이 근방의 마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음을 깨닫고 미간을 찌푸렸다.
영락한 군령을 압축해 터트려, 인위적으로 주변의 마력을 뒤틀어 버리는 교란장비인가.
레녹 자신보다는 주변의 기물과 환경을 대상으로 하는 영적인 비틀림.
정교한 조작을 필요로 하는 조작술사에게, 이런 식의 교란이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카가가각!!
“예상대로 군령술에 조예는 없어. 감각을 교란시키면 공방이 성립한다!!”
“컨디션에 극도로 예민한 조작술사다. 적응하기 전에 죽여!”
샛노란 부적 하나를 입에 물고, 영기의 폭풍 저편으로 달려드는 영귀들의 모습.
과일 더미 사이에 숨겨둔 폭탄을 터트려, 계속해서 레녹의 신경을 괴롭힌다.
뚜두둑!!
콰아앙!!
상가 건물과 박스가 무너지며 굉음을 터트리는 사이, 사방에서 튀어오르는 폭탄의 형상.
쏟아지는 과일 더미와 뒤섞여 형체를 제대로 알아보기도 어렵다.
영기의 폭풍을 연달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거리를 좁히던 찰나, 레녹이 영귀들의 흐릿한 질주를 피해 천막 사이로 가속해 사라졌다.
카가가각!!
두꺼운 로브가 흩날리며 짙은 그림자를 한낮의 야시장 안뜰에 덧칠한다.
마력사에 몸을 걸고 가속하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번뜩이는 영귀의 참격.
흐릿한 안개에 휩싸인 낫과 곡도가 마력사와 충돌하며 처연한 불꽃을 튀겼다.
드드드득!!
도망치기에 급급해 보이는 레녹의 신형. 아무렇게다 당기고 휘두르는 듯한 마력사의 움직임.
하지만 그때마다 은빛의 실선이 낫과 곡도의 날을 밀고 당겨내며 어루만졌다.
허공을 두들기듯 손을 내저을 때마다, 춤을 추듯 회전하는 마력사 다발이 검격의 궤적을 모조리 빗겨냈다.
“조작 정밀도가 무슨……!!”
“아예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건가!!”
그 말도 안 되는 마력사 조작에 야시장 벽과 천막 위를 질주하던 영귀들이 이를 악물었다.
“생각하는 수준이 뻔하군. 그런 게 아니다.”
끼이익!!
뒤집은 손목에 마력사를 묶어, 다른 끝단으로 영귀의 목을 비틀어 버린다.
거리 조절에 실수한 영귀를 그 자리에서 참살해 소멸시킨 레녹이 마력으로 영귀의 영체를 마저 터트리며 웃었다.
“변화하는 환경까지 계산에 넣고 술식을 전개하는 거지.”
“……!!!”
“군령을 재료로 삼는 폭발이라 그런지, 마력패턴의 교란 정도가 많이 이질적이군.”
비산하는 과일 무더기 사이로 내려선 레녹이, 달려드는 영귀들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거슬려서 더 못 봐주겠으니, 이쯤에서 그만…… 음?”
그 순간, 레녹이 가면을 쓴 시선을 그대로 위로 치켜들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직후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떨어져 내리며 샛노란 정광을 터트렸다.
파아아앙!!
사방에서 폭발하던 영기의 폭풍이 사그라들고, 영귀들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레녹의 앞을 가로막듯 나타낸 것은, 양 손을 기도하듯 모은 안대를 쓴 수도승의 모습.
양손에 정광을 모아 레녹과 자신을 보호하는 결계를 펼치며 호통을 쳤다.
“진혼정의 영귀들이 생자를 핍박하려 들다니, 부끄럽지도 않은 겐가!!”
“……”
“야오 쉰의 요새에서 이런 무도한 짓을 벌인다는 것은, 의식에 참가하는 이들에게 결례를 범하는 일! 당장 물러나도록 하게!”
수도승이 영귀들을 바라보며 소리친 뒤, 레녹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검문 이후로 처음이군. 이제 내가 왔으니 안심하게.”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너는…….”
레녹이 기억 속을 더듬어, 이내 그 얼굴을 떠올린 뒤 고개를 끄덕였다.
“선착장에서 말을 걸었던 수도승이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사도의 시체를 사용해 배를 만들어 헤드레인 강을 건널 당시, 레녹에게 먼저 말을 걸었던 눈먼 수도승.
그가 지금 야시장 거리에서 대뜸 레녹을 도와주고자 나섰던 것이다.
영귀들 역시 수도승을 앞에 두고 빠르게 정보를 교환했다.
“……누구지?”
“스타니아의 수도승이다. 영변 의식을 위해 요르타에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군.”
“외부인? 그럼 같이 끌고 가도 상관은 없겠어.”
“할 테면 어디 한번 해 보시게.”
수도승이 결연한 표정으로 레녹의 앞에 서서 주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내 비록 재주는 많지 않으나, 생사의 도리를 어기는 귀신들을 상대로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끼기긱!!
그 순간, 수도승이 머리 위에 드리운 너른 그림자를 발견하고 말을 삼켰다.
수도승뿐만 아니라, 야시장에 선 다른 영귀들의 자리까지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그늘.
무심코 시선을 들어 올린 수도승과 영귀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키키키킥.]기괴한 매부리코를 지닌 거대한 노인이, 히죽 웃는 얼굴로 그들을 굽어보고 있었기 때문.
구부정한 허리. 빼빼 마른 여덟 개의 팔과 길쭉하게 늘어진 수십 개의 손가락.
말라비틀어진 손가락에 묶인 마력사 다발이 베일처럼 늘어져 느릿하게 흔들리고 있다.
자수를 놓듯이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가락 너머로, 연원을 짐작할 수 없는 이질적인 마력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이, 이게 대체…….”
“의도는 알겠지만 별로 도움은 되지 않는군.”
수도승이 멍하니 중얼거린 말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레녹이 뒤에서 입을 열었다.
어느새 양손을 합장한 채 소환수를 불러낸 레녹이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방해되니까 저리 비켜라.”
“소, 소환수!!”
키이잉……!!
흑요석 가면 너머로 강렬한 안광이 빛을 발하고, 영귀들이 그 정체를 깨닫고 질겁한 순간.
재단사의 손끝이 느릿하게 허공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조작계열 고유마법
마력투사 분산공명
[의념해례(意念解隷)]끼이이이익……!!
그 순간, 사방에 늘어뜨린 마력사의 흔들림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려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아니라, 마력사에 내걸린 공간 자체가 늘어지며 그 간극을 메우는 착시.
한없이 느려지는 체감시간 속에서, 가느다란 선의 궤적을 모두가 홀린 듯이 바라본다.
사방에서 회전하는 마력사 끝에는,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과일 파편이 매달려 있었다.
끼리릭!!
어긋난 인지 속에서 한없이 느리게 수축하던 마력사가 폭발적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콰드득!!
마력사 끝에 매달린 과일이 그 자리에서 과육을 깨부수고 심지만 남아 비틀리고.
날카로운 탄환으로 변한 과일 심지가 그 자리에서 영귀들의 머리를 동시에 관통했다.
뻐억!!
푸르스름한 불길에 휩싸인 영귀의 육신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쓰러졌다.
소멸하는 영귀의 시체 사이로 걸어 나온 레녹의 모습을, 수도승이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순간의 오판으로 타지에서 스러지는 것만큼 애석한 일이 있을까. 우행이구려.”
“……선착장의 일도 그렇고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군.”
수도승을 지나쳐 걷던 레녹이 픽 웃음을 흘렸다.
“그런 것 치고는 꽤 오래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재주가 꽤 좋은 모양이지?
“허허, 그건 소승이 할 말이군.”
수도승이 레녹을 보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그대가 보여준 기예에 비하면, 소승이 지닌 재주 따위는 하등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거늘.”
“…….”
레녹이 대답하지 않자, 안대 아래쪽으로 수도승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대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미 그 시간에 서 있지 않구려. 지금은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이지?”
막연하면서도 본질을 찌르는 예리한 질문.
조작술식을 사용하는데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정교한 조작과 첨예한 수싸움.
하지만 가능성의 마안과 계시의 공능을 조합하는 순간,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승산을 확정 짓고 행동에 임할 수 있다.
레녹이 영귀를 상대한 작금의 전투가, 예지에 가까운 힘에 기반한 결과임을 수도승은 알아본 것이다.
‘가능성의 영역을 확인하는 왼쪽 마안과 중첩해 요령을 따라 하면 훨씬 더 멀리까지 공방을 예측할 수 있다.’
수도승을 바라보며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신녀의 도움 없이도 계시를 사용할 줄 알면, 조작술식을 보조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겠지.’
계시의 공능은 신녀의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주의 존재에서 기반한 전지의 편린.
그렇기에 그 요령을 적당히 익혀두면 레녹 역시 따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레녹은 그 사실을 감옥에서 깨달은 뒤, 신녀의 도움 없이 계시를 사용하는 연습을 거듭하고 있었다.
“스타니아의 수도승이라 했던가.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지.”
하지만 그런 감상은 일절 드러내지 않은 채, 레녹이 가면 너머로 수도승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산에 처박혀 수행에 열중하는 것 치고, 속세의 사업에도 적극적이라 들었는데. 여기는 무슨 볼일이지?”
스타니아 수도원.
지나가다 가끔 전해 들었을 뿐이지만, 레녹은 그들이 어떤 조직인지는 알고 있었다.
신앙이나 믿음보다는 내면의 수행에 열중하는 구도적인 종교집단.
그들이 제작하는 영약이 워낙 유명해, 그 이름으로 제휴를 맺고 제약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레녹 역시 그들이 제작한 영약, ‘스테모니아’를 프리랜서 시절 복용해 본 적이 있을 정도.
하지만 수도원에 대해 레녹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면, 카르텔의 전 1사장, 파르덴 맥퀸의 본적이 스타니아 수도원이었다는 것이겠지.
해방술식과 주계도문을 다루며, 수도원의 풍경을 심상으로 삼은 영역 ‘백나찰포사’를 휘두르던 실력자.
위계를 완성한 채 정체되어 있었음에도 그 독특한 술식은 여전히 레녹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설마 레녹의 입에서 그리 구체적인 정황을 들을 줄은 몰랐는지, 수도승이 기함하며 고개를 숙였다.
“허어, 생각보다 식견이 깊은 분이셨군. 실례했소이다. 복마전은 소승같은 이들에게 관심이 없을줄 알았는데.”
“수도원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를 통해 파생되는 술식에는 흥미가 있다.”
레녹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해방술식을 비롯해 수도원에 전승되는 고유술식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
파계승, 파르덴 맥퀸은 해방술식과 주계도문을 조합해, 아르주마르타라는 독특한 소환수를 다뤘었다.
술식의 출력을 대폭 끌어올리고 보조하는 인공소환수의 존재는, 레녹이 허수차원의 재단사를 제작하는데도 적잖은 영감이 되었던 바.
무어라 대답하지 못한 수도승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레녹을 바라보았다.
“좋소이다. 수도원의 사정을 알고 계신다면 긴 설명이 필요 없겠군.”
조용히 양손을 모은 수도승이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소승의 이름은 크라야 니르주마. 수도원의 명을 받아 배움을 얻기 위해 요르타에 찾아왔소.”
“배움이라고?”
“괜찮다면, 유령용의 요새에서 열리는 영변 의식에 참가하지 않겠소?”
자신을 크라야라고 소개한 수도승이 레녹을 향해 물었다.
“영변 의식은 유령용 야오 쉰이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시험으로, 시험을 통과한 이는 화신 술식을 전수받을 수 있지.”
“…….”
“의식은 요새에서 치러지며, 최소한의 자격검증을 제하면 참가자의 역량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소.”
대답하지 않는 레녹을 두고 크라야가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대의 무위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이질적이고 강력하니, 어렵지 않게 의식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오.”
“유령용이 화신 술식을 인간에게 전수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이해했다.”
레녹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쪽이 내게 그걸 굳이 권유할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이지?”
“의식을 주관하는 유령용은 요르타 내부에서도 까다로운 권력자로, 절차와 관례를 지극히 신경 쓴다는 말이 있소.”
크라야가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곧바로 말했다.
“하지만 반대로 의식이 열릴 때마다, 참가자들 중 한 명을 내정자로 두어 절차를 무시하고 술식을 전수한다는 소문도 있지.”
“…….”
진혼정의 추살부대가 언급했던 내정자가 이것을 이야기하던 것이었나.
영귀들이 직접 입에 담을 정도라면, 아마 크라야가 말한 소문 역시 허황된 거짓말은 아니겠지.
레녹을 향해 공손히 양손을 모은 크라야가 말했다.
“그리고 소승이 보기에는 그대가 소문의 내정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이는구려.”
“요컨대 혼자서는 의식을 통과할 자신이 없다 이 말이군.”
레녹이 냉소했다.
“유령용의 성정과는 별개로, 실력이 충분하다면 그딴 소문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 텐데?”
“……그대가 언급한 해방술식은, 수도원에 있어 오랜 치부이자 미련으로 남은 힘이오.”
“뭐?”
크라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오래전 구결이 소실되어 망가진 탓에, 고위 승려들이 죽고 나면 전승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지.”
자조하는 듯한 기색으로 승려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복원을 위해 수도원을 배신한 파계승의 행적까지 찾아보았을 정도니, 그 간절함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
“화신 술식은, 수도원의 해방술식을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될 법한 극히 얼마 되지 않는 힘이오.”
안대를 쓴 크라야의 시선이, 레녹의 가면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대가 자격과 적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 그 옆에서 의식을 함께하는 것만으로 배워가는 것이 있겠지.”
“…….”
레녹이 내정자의 자격과 적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 확신하기 때문에, 그 옆에서 같이 의식을 치르고라도 싶다는 말인가.
반응이 없는 레녹을 보며 크라야가 어떻게든 함께하고 싶은지 이런저런 제안들을 꺼내 들었다.
“대신 그대에게 영변 의식의 복잡한 철자를 대신 처리해드리겠소. 또 수도원에서 만든 영약이라도 필요하다면-”
“아까부터 내정자의 자격이니 적성이니 떠드는데, 그게 무엇인지부터 듣지.”
엉망진창이 된 야시장의 풍경을 돌아보며 레녹이 물었다.
“그게 지금 이 소란을 덮고도 남을 법한 조건이 될 수 있는 건가?”
“음. 소승이 듣기로는 무언가를 매개로 다루는 술사일수록 의식을 통과하기 쉽다더군.”
크라야가 기억을 짚으며 설명했다.
“드물고 희귀한 계통일수록 야오 쉰의 눈에 들기에 적합하다는 말도 있었소.”
“……”
레녹은 어째서 크라야가 레녹을 도와 같이 의식에 참가하려 했는지 바로 이해했다.
무언가를 매개로 다루면서 희귀한 계통이라. 특질계 조작술식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수식어가 아닌가.
물론 언령술식이나 음계술식처럼 매개체가 필요한 희귀계통 술식은 여럿 존재하지만, 개중에서도 조작술식이 지닌 위상과 입지는 한결 더 특별한 종류의 것.
“흠…….”
[귀하. 야오 쉰의 영변 의식에 참가하실 생각이십니까?]“어쩌면 야오 쉰과 직접 접촉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
신녀의 영체가 속삭이는 말에 레녹이 팔짱을 낀 채로, 수도승에게 보이지 않게 대답했다.
“저자가 말하는 대로 화신 술식에 대한 적성을 따져 내정자를 고른다면, 일이 생각보다 편해지지 않겠나.”
[하지만…….]“아,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더 있소. 이건 정말 소승도 흘려들은 이야기기는 한데…….”
크라야가 힐끗 레녹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비틀린 심성을 가진 자일수록 외려 술식을 익히기 쉽다는 소문이-”
“……그걸 왜 내게 지껄이는 거지?”
[음.]불쾌한 듯이 대꾸하는 레녹과는 반대로, 갑자기 신녀가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이라도 신녀의 영체를 강물 아래 던져버릴까 레녹이 고민하는 사이, 크라야가 곧바로 걸음을 돌렸다.
“이제 막 의식이 시작될 텐데, 생각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같이 가는 것이 어떻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