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50
약먹는 천재마법사 850화
인수인계(18)
35구역과 36구역 사이에 위치한 화이트스톤 국립공원.
에이리어의 경계 사이에 숨겨진 연구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적한 공장.
국립공원 전역의 전력을 생산하고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발전시설.
그 시설을 두고 수천미터 떨어진 곳에서, 수백에 달하는 병력이 시설 하나를 둘러싸고 포위하고 있었다.
철컥, 철컥!!
곳곳에서 마력이 내장된 화포의 기동음이 들리고, 한껏 소리를 낮춘 음색이 빠르게 통신망을 오간다.
온몸에 장착하는 엑소슈트를 착용한 군인들이 대열을 갖추고 발전시설을 포위한 채 무장을 마쳤다.
“흐음…….”
그보다 조금 앞쪽에 위치한 수풀에 숨어 있던 적발의 여성이 아리송한 기색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멀리 떨어진 시설의 정경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여성이 발치에 내려놓은 연홍색 바이저를 주워들며 물었다.
“저기에 있는 거 확실해?”
“측정되는 마력으로는 확실합니다.”
아직 앳된 기색의 소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력패턴을 전혀 식별할 수 없는 걸 보면 거의 틀림없어요. 애초에 숨길 생각도 없는 수준입니다.”
“…….”
소년이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저희가 개입하든 말든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거겠죠…….”
“테오. 입 조심해.”
소년의 옆에 서 있던 청년이 담담하게 말했다.
“듣고 있을지도 몰라. 머리 위에 벼락이 떨어진 뒤에는 늦을걸.”
“윽…….”
“여기서 발전시설까지 거리는 6㎞가 넘어. 그런데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황색 바이저가 황당한 듯 물었다. 음성변조를 하지 않은 육성이 헬멧 너머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청년이 황색 바이저를 돌아보며 답했다.
“건강이 좋지 못한 걸로 유명하지만, 그걸 뛰어넘을 만큼 예민한 감각을 갖춘 마법사다. 너도 바로 들켰을 텐데.”
“……그렇지. 내 토축술식을 바로 알아보고 비웃더군.”
황색 바이저가 일순 무거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어. 분하기보다는 두려웠지…….”
“지병에 시달리는 몸으로도 싸움을 멈추지 못하는 광인이다. 이상한 일은 아니야.”
팔짱을 낀 채 후위에 서 있던 옥색 바이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
“시의회는 견뢰의 건강이 생각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일지도 모른다 추측하고 있다. 그런데도 계속 일선에 나서는 이유가, 그가 위계를 초월한 방식과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제정신이 아니군. 싸움을 찾아다녀야만 현상유지라도 할 수 있단 말이야?”
“보고서에 적힌 추측일 뿐, 확실한 건 아니야. 다만 위계를 초월한 괴물들이 그러하듯 견뢰가 망가져 있으리란 사실은 틀림없겠지.”
“…….”
이지스의 대원들 사이로 긴장된 공기가 감돌았다.
파멸에 가까운 광증을 통해서만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대마법사.
지금부터 그들이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마법사가, 그 어떤 초인보다 위험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던 것이다.
“일이 어떻게 되든 연구소의 핵심 기술이 유출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특히 연구소에 비밀리에 연구되던 안건이 견뢰의 손에 넘어간다면, 모두가 책임을 피할 수 없겠지.”
“하, 개죽음은 싫은데…….”
이지스의 대원들 모두가 도시를 지킨다는 숭고한 사명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특무기관에 들어온 이유는, 대부분이 개인의 사정에 기반한 거래에 있기에 명령을 피할 수 없을 뿐.
싸우다 죽는 것이 무서워서 망설이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소모되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것이다.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늦게 패배하기 위해 저 안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것도 그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방해하기 위해.
우울한 분위기에 녹색 바이저가 옆에 서 있던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
“어이, 드루이드. 그렇게 멀뚱히 서 있지 말고 뭐라도 말해봐`.”
“…….”
짐승가죽 후드를 뒤집어쓴, 190㎝를 훌쩍 넘기는 장신의 남성이 녹색 바이저를 노려보았다.
녹색 바이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까닥거렸다.
“아까 견뢰랑 싸웠었다면서. 뭐 우리한테 알려줄 사실이나 느낀 점 없어?”
“……놈의 번개.”
잠깐 생각하던 드루이드, 이파사가 중얼거렸다.
“맞지 마라. 아프더군.”
“그게 끝?”
이파사에게 시선을 주던 다른 대원들이 황당한 듯 중얼거렸다.
“전격계열은 순수술식계에서 광요계를 제외하고 가장 빠른 마법이다. 모두 피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차라리 안 아프게 맞는 방법을 가르쳐주던가.”
“그딴 건 몰라.”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이던 이파사가 말했다.
“번개에 맞는 순간 술식의 근간이 흔들리더군. 의념이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뭐?”
이파사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내가 그 정도였으니, 너희 속인들은 버틸 수 없겠지.”
“으음…….”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이지스의 대원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자연술식을 사용하는 드루이드가 그렇게 느꼈다면, 아마 마력사용자가 맞이할 결말은 뻔하겠지.
“역시, 흑색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
“아니, 시간이 없다. 헤이워드와 라파엘 교수를 납치한 것부터 데이터 복원에 이용할 생각이겠지. 저 둘이 붙었다면 금방 결과를 낼 거다.”
라파엘 교수는 발칸의 거주민이 아닐뿐더러, 마력이론 분석학에서 한 손 안에 꼽히는 권위자 중 하나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시설의 전력공급을 강제로 끊어버리면 계획을 지연시킬 수는 있겠지.”
“발전시설에 잠입해 동력부를 손상시키고, 견뢰의 반응에 따라 상황을 보며 교수를 구출한다.”
“절대로 정면에서 싸우지 마. 마주치는 순간 도망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청색의 브리핑에, 다른 대원들 역시 곧바로 장비를 갖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한곳에 모여 있던 이지스의 대원들이 순식간에 발전시설을 둘러싸고 서로 거리를 벌렸다.
후욱!!
나무의 그림자, 수풀의 흔들림 사이에 숨어서 각자 다른 길로 발전시설 안으로 잠입한다.
파직……!!
공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귓가에서 희미한 소음이 들렸지만, 누구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파앗!!
발전시설 안에 진입한 순간, 대원들이 일제히 공장 안에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육체를 강화하며 감각을 활짝 열어젖힌다.
시설 주변에서 보고 느껴지는 모든 정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작전 성공을 위한 최적의 판단만을 골라 통신으로 전달.
[이쪽은 동력부에서 멀어. 움직이며 견뢰의 시선을 끌겠다.] [대기 중인 주둔병단 호출 완료. 후진입해서 길을 막게 할게.] [내가 동력부에 가까워. 먼저 간-!!]통신망 사이로 순식간에 수십 가지 전언이 교차하고, 그 모든 의사소통이 유의미한 행동으로 전환된다.
고요한 복도. 지키는 사람 하나 없이 돌아가는 시설의 제어장치.
천장과 벽면에 빽빽하게 들어찬 전선 아래를 조용히 걸어, 서서히 거리를 좁히던 대원들이 일제히 마력을 끌어올린 그 순간.
콰아아앙!!!
그 순간, 공장 전체가 흔들리는 굉음과 함께 통신이 뚝 끊겼다.
피부를 저릿하게 만드는 섬뜩한 정전기. 머리털을 곤두세우고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따가운 감촉.
발전시설 곳곳에 떨어진 대원들이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기시감에 퍼뜩 시선을 돌린 그 순간.
[오오오오오!!!!]웅장한 포효와 함께 폭발한 뇌전의 파동이 발전시설 전역을 관통했다.
파지지지직!!!!
마치 거대한 벼락이 시설 전체를 휘어잡고 그대로 뽑아 드는 듯한 환상.
금속성 장벽과 강판 위로 저릿한 뇌전의 성질이 부여되며, 순식간에 시설 전역을 전류가 흐르는 통로이자 전당으로 만들었다.
우우우우웅!!!
사방에 널린 전선이 무차별적으로 끊어지며 흔들리고, 그 단면에서 터져 나온 스파크가 한데 뭉쳐 특정한 형상으로 화했다.
츠츠츠츠!!
[……두꺼비?] [두껍두껍.]전격의 성질을 가지고 태어나, 사방에 날뛰는 전력을 잡아먹고 제 몸을 부풀리는 두꺼비 정령.
시설 복도와 로비 사이에 순식간에 수십 체씩 늘어난 두꺼비 정령들이, 침입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곳곳에 끊어진 전선 단면에 입을 가져다 댄다.
전선에서 튀어나오는 스파크를 먹어치우며 대번에 제 몸을 부풀리는 두꺼비 정령의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던 대원들이 황급히 통신망을 다시 연결하고 파악한 정보들을 교환했다.
[진짜 정령이 아니야.] [일시적으로 속성이 흘러넘치는 공간에서 무작위로 태어나는 원소령이다.] [말도 안 돼. 방금 전까지는 그런 거 없었잖아!!] [견뢰가 우리의 침입을 인지했어. 아니, 이건 어쩌면-]그 순간, 사방에서 전력을 먹고 덩치를 키운 두꺼비 정령들이 제 몸을 통해 강렬한 전격을 내뿜기 시작했다.
파직, 파직!!!
그 충격으로 발전시설 사방의 천장과 벽면이 부서지며,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제어장치와 변환장치들이 속절없이 부서졌다.
콰아앙!!
[이, 이게 무슨…….]발전시설을 지키기는커녕, 직접 부숴서 그 파편을 마구잡이로 떨어뜨리는 기행.
나사와 강판, 철골과 스프링을 비롯한 온갖 부품들이 속절없이 바닥에 떨어져 소음을 내뿜고, 거의 동시에 그 자리에서 다시 조립되기 시작했다.
차르르륵!!
망가진 부품을 뭉쳐서 육체를 구성하고, 새파란 뇌전을 튀기며 일어서는 강철의 군세.
두 눈 대신 새파란 안광을 번뜩이며 팔다리를 조립한 기계병사들이 순식간에 시설의 길목을 가로막는다.
머리 위로는 뇌전의 장막이 사방을 뒤덮고, 바닥과 벽면에서 저릿한 전류가 튕기며 공장을 푸른 빛으로 물들였다.
파직, 파지지직……!!!
번뜩이는 전격파편이 한데 뭉쳐서 덩어리를 만들더니, 스스로 의지를 지닌 것처럼 돌아다니며 무차별적으로 작은 벼락을 흩뿌렸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번개의 정령과 강철의 군세가 무차별적으로 힘을 흩뿌리다, 일제히 이지스의 대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강렬한 전류가 흐르는 이 벼락의 전당에서, 있어서는 안 될 침입자를 발견한 듯한 적대적인 반응.
[인공정령과 기계병단을 합쳐 300체 이상. 강철과 전력을 매개로 삼아 발현되는 술식만 30종 이상 추정.] [방벽을 뚫을 수가 없다. 주둔병단을 후퇴시켜. 통신망을 오픈한다!!] [전격속성 부여. 최고위 레벨에 해당하는 공간 성질변화다.] [설마…….]번개정령과 기계군세를 마주한 대원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시설의 전력을 이렇게 사용할 생각이 없었어. 오히려-] [그 잠깐 사이에 발전시설 전체를 자신만의 요새로 만들었다고?]* * *
“시작이 좋군.”
콰아앙!!
모니터 너머로 폭발하는 기계병사들을 바라보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발전시설 통제실에 위치한 수십 대의 모니터.
시설의 누전과 동력실의 과부하를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감시장비지만, 지금은 침입자들이 처절하게 두들겨 맞는 모습을 비추고 있을 뿐이다.
레녹이 직접 박살 내 만들어낸 부품을 재료로 삼아 일어서는 무수한 기계군세.
발전시설의 전류를 변질시켜 만들어낸 번개정령과, 시설 전역을 사정거리에 두고 구축되는 전격의 장막.
모니터로 비춰지는 모든 화면에서 불규칙적으로 벼락이 떨어져 내리고, 뇌전의 울타리가 격렬하게 회전하며 움직이는 모든 것을 속박한다.
쿠과과과!!!!
번개와 강철이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휩쓸리는 대원들의 모습.
이상을 눈치채고 뒤늦게 드루이드와 연구소를 지키던 군대가 돌입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후퇴, 후퇴!!] [만지지 마, 감전당한다!!!] [모두 금속장구류를 탈의해라, 사이보그나 의수착용자는 당장 도망쳐!!] [안돼, 트랩의 위력이-!!] [아아아악!!]콰아아앙!!
모니터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처절한 고함과 비명소리.
온몸이 감전당해 쓰러지는 군인과 도망치며 동력부로 침투하려는 특무기관의 초인들.
화소가 모두 담아내지 못할 만큼 눈부신 번개가 몰아치는 파문 사이로 시설 곳곳에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뒤에서 그 참상을 지켜보던 라파엘이, 하던 작업도 잊고 뒤에서 중얼거렸다.
“……이건 불가능하오.”
“뭐가 말이지?”
광활한 시설 전역에 빼곡하게 뒤덮여 흘러넘치는 전격의 물결.
마치 발전시설 전역이 벼락의 바다에 잠겨서, 천천히 가라앉는 듯한 압도적인 광량.
지켜보는 것만으로 두 눈이 멀어버릴 것 같지만, 라파엘은 모니터에서 조금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눈이 빠르게 충혈되어 가는 도중에도 호기심을 참지 못해 오히려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는 모습.
홀린 듯한 표정으로 라파엘이 말했다.
“전격계통의 마력변환율은 위력에 비례해 효율이 급격하게 나빠지지. 아무리 많은 전력을 치환해도 단시간에 이만한 성질변화를 투사하는 건 말도 안 돼. 인간의 마력분산 속도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레녹이 의자에 기대앉은 채로 힘없이 기침을 하며 대꾸했다.
라파엘이 이성을 되찾은 듯 어깨를 크게 움찔거렸지만, 레녹은 무시하고 답했다.
“순수하게 마력량 하나만으로 이런 일이 가능한 존재들이 있지. 마력의 성질변화, 효율이라는 개념에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 괴물들이…….”
“…….”
정말 순수하게 보유한 마력량으로만 따지자면, 레녹조차 따라잡지 못할 만큼 압도적인 괴물들이 있다.
본디 마력량이란 그 재능만큼이나 지나쳐온 시간에 구애받는 힘.
8레벨에 도달한 이후 마력의 절대적인 양에 크게 얽매여본 적은 없었으나, 그런 레녹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괴물들이 있다.
레녹이 살아온 시간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미쳐버린 채 멈춰서서, 끊임없이 쌓아오기만 하는 초월자들.
그들이라면 이런 발전시설 따위가 아니라, 도시국가를 상대로도 초월적인 위상을 휘두를 수 있겠지.
흘리듯이 중얼거린 그 말에 라파엘의 입술이 새파래졌다.
견뢰조차 그렇게 말할만한 괴물이, 이 세계에서 어떤 위상을 지녔는지 그 역시 모를 리 없을 테니.
“고로 네 말은 틀렸다. 마력이론이라는 것이 그러하지. 실재하는 마법을 이론이라는 형태로 증명하는 결과론적인 학문일 뿐, 모든 예외를 담아내지는 못해.”
“그건 다른 학문들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자기개변의 일곱 가지 단계 아래 완성된 위계를 억지로 망가뜨려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규칙과 분류는 의미를 잃는다.”
레녹이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예외 위에 예외를 추가하며 자신만의 법칙을 만들어나가다 보면…… 처음에 무엇을 기준으로 두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지.”
“…….”
“그리고 그렇게 내면의 규칙을 망각하는 순간…….”
발아래 굴러다니는 전선을 걷어찬 레녹이 말했다.
“다루는 것이 나 자신의 힘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는 거다.”
발전시설 전체를 벼락의 요새로 만드는데 레녹이 소모한 마력은 한 줌조차 되지 않는다.
요새 전체를 벼락으로 휘감고 감전시키며, 번개정령과 기계군세를 만들어낸 것은 레녹이 아니라 발전시설에 저장되어 있던 전력으로 이루어낸 이적.
“그건, 그건…….”
라파엘 역시 레녹이 어떤 식으로 발전시설 전체를 요새화시켰는지 이해하고, 표정을 꿈틀거렸다.
말을 허투루 내뱉지 못하던 그가 호흡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그건 인간이 아니오. 생명조차 아니지.”
“…….”
“그렇게 사고하는 시점에서, 이미 생물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럴지도 모르지.”
레녹이 순순히 긍정했다.
“물아(物我)의 경계를 잊는 것은 어떤 의미로 보면 생물의 자격을 잃어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 8레벨에 도달한 많은 초인들이 망가지는 근본적인 원인이 거기에 있다.”
“…….”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스스로의 의지를 실체화시켜 다룰 수 있는 초인에게 있어, 의지란 곧 기준.
하지만 그 기준을 계속해서 육체와 정신 바깥에서 다루다 보면, 무엇이 나 자신이었는지 잊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위계를 초월해 8레벨에 도달한다는 것은, 그 개념 자체를 자신의 법칙으로 삼아 지배한다는 의미.
그렇기에 8레벨에 도달한 초인들 중 많은 이들이 인간성을 포기하기도, 버티지 못하고 미쳐 버리기도 하는 것이겠지.
라파엘 역시 레녹의 말에 동의했는지, 침울한 기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설명으로 끝나지 않고, 위계를 초월한 그 개념 자체를 완벽하게 다루면서 보여주는 시연이란 그만한 힘이 있었다.
레녹은 그런 라파엘을 바라보다 불쑥 물었다.
“왜 네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했나?”
“……?”
“아까부터 은근히 시킨 일을 미루고 이쪽을 구경하고 있더군.”
의아한 기색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라파엘을 향해 레녹이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짜증 나서 미쳐버리기 전에 시킨 일을 다 끝내라는 의미였다.”
“흐, 흐업!!”
지금까지 심각한 분위기는 곧바로 잊어버린 라파엘이 빠르게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