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56
약먹는 천재마법사 956화
금제(11)
허더필드 숲. 듀리스 공방의 아틀리에가 위치한 쉼터.
고목나무가 얽혀 만들어진 오솔길 주변 산책로.
흔들리는 나무 사이로 걸음을 옮기는 2사도의 뒷모습을 레녹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방금 전까지 서로의 술식을 부딪혔던 상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느슨한 태도.
극동지부에서 조우했을 때는, 사태가 워낙 정신없이 돌아가는 바람에 레녹도 2사도를 제대로 살펴보지는 못했다.
그가 비현실적인 경지에 이른 괴물이라는 것을 아는 것과는 별개로, 그 본질과 성정에 대해서는 인지한 바가 거의 없었던 바.
하지만 지금 이렇게 마주한 두 번째 사도에게서는 불길한 광신이나 사특한 의념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호수에 잠긴 물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은 기척. 나른한 걸음과 시선, 호흡과 신진대사. 체온과 마력까지.
그 모든 것이 사도보다는 인간에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광증에서 자유롭기에 인간의 흉내를 낼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인간을 가장하기에 광증에서 자유로운 것인지.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기원을 생각하며 따라 걷던 레녹의 앞에서,
“다섯 번째는 인간의 숫자. 여섯 번째는 짐승의 숫자.”
2사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6사도는 육체적으로 가장 고강하면서도, 비교적 광증에 노출되기 쉬운 이들이 그 자리를 맡곤 했었지.”
“…….”
“교단 내부에서도 가장 많은 후보들이 논의되었으며, 잦은 교체를 염두에 두고 있던 자리야.”
호수가 보이는 벤치 끝에 앉은 2사도가 느긋하게 말했다.
“아나테마가 6사도에 오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하지만 여섯 번째 사도에게 주어지는 숨겨진 역할이 하나 더 존재한다.”
“역할이라고?”
2사도의 시선이 레녹을 힐끗 스쳐 지나갔다.
“6사도는 본래 그분의 재림을 위해 예비되는 그릇 중 하나다.”
“…….”
“모든 계획이 실패하고 교단의 안배가 남지 않았을 경우, 광증에 빠진 사도의 혼을 대신하여 그분께서 자리하도록 예정되어 있지.”
침묵하는 레녹을 두고 2사도가 웃었다.
“여섯 번째 사도를 고강한 육체를 지닌 이들이 맡는 것도, 지저거신의 사도술식이 유난히 효율이 좋은 것도 그런 이유다. 평범한 그릇 따위로는 그분의 존재를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
“아나테마는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 역할을 맡는 것을 대가로 사도의 좌를 내려받았지. 전대 사도가 편람과의 전투에서 영멸하며 급하게 그 공석을 메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야.”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는 사도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난 그가 네 손에 죽은 것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
“그는 외부인임에도 교단에 대해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고, 그건 그만큼 교단을 이용할 여지가 많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의자에 등을 기댄 채로 고개를 뒤로 젖힌 2사도가 느릿하게 말했다.
“물론 그분께서는 그러한 변수까지도 지나가는 여흥으로 여기시겠지만, 그런 감상은 내가 맡은 역할이 아니니…….”
“교주를 섬기면서도, 그의 의지와 감상은 자신과 별개라 생각하는 건가.”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서서, 벤치에 앉은 2사도를 내려다보았다.
“역시 너는 다른 사도들과 다르군.”
“…….”
“광증에 속박당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교단의 신앙에 대해서도 얽매이지 않으려 해.”
레녹이 물었다.
“내가 본 모든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군. 교주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인가?”
“다른 건 너지.”
2사도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안경 너머로 그의 투명한 시선이 레녹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네 존재는 교단이 존재해 온 모든 역사를 통틀어 단 세 번도 없었던 예외야.”
“…….”
“단의 신앙은 외신을 섬기지만, 그 본질은 오직 그분만을 위한 것. 그분께서 바라신다면 교단의 모든 규율은 뒤로 미뤄둘 수밖에 없지.”
“고해성사치고는 재미있는 말이군.”
레녹이 냉소했다.
“교단의 교리가 외신이 아니라, 교주 한 사람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규칙이라고?”
“외해의 신들은 이 세계에 관심이 없어. 그들이 원하는 건 신앙이 아니라 종말이지.”
“…….”
교단의 필두사도에게서 들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던 단언에, 레녹의 말문이 막혔다.
교리를 믿는 신도에게 죽어서도 허락되지 않는 생각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육성으로 흘려내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그런 레녹의 표정을 재밌다는 듯 바라보면서도 2사도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속박과 규범 따위는 자신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처럼.
“신들이 자신의 꿈을 화신체에게 나누어주는 건, 오직 그분만이 신들에게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야.”
자조하듯 입매를 비튼 그가 물었다.
“신뿐만 아니라 인간도 마찬가지. 단의 신도들에게 바다의 신은 막연한 환상에 불과하며, 그들이 믿고 따르는 건 구세주뿐이지.”
“…….”
“우리의 존재가 신이 아니라 그분에게서 비롯되었는데 어떻게 그분을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한 2사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레녹을 향해 몸을 돌려세운 그의 몸이, 호숫가의 그림자 사이에 가려진 채로 일렁거렸다.
그림자에 가려진 것이 아니라, 마치 실재하는 음영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처럼 어둡게 번뜩인다.
“바다의 신과 지상의 인간이 단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이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분을 저버릴 수 있었지?”
괴물이 온몸을 구불거리며 레녹을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어떻게…… 그분이 바라는 구원을 부정할 수 있었던 거지?”
“너는…….”
침묵하던 레녹이 천천히 눈을 들어 올렸다.
왜 지금 그가 레녹에게 이런 질문을 건네는지, 그 말을 듣자마자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보았군.”
2사도는 레녹과 교주가 만나는 순간을 보았다.
그가 이 시점에 레녹의 앞에 나타나 구원을 언급하는 이유.
교주가 원하는 구원을 레녹이 거부한 것에 대해 말하며 의지를 표방하는 이유.
세 사람이 한곳에 모여 대답을 교환했음을, 그럼에도 끝내 같은 곳에 서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교주가 허락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스스로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일까.
레녹은 어쩌면 두 가지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사도가 광증에서 자유로운 이유. 자성영역의 힘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 기억 속의 만남을 자유롭게 엿볼 수 있던 이유.
개념과 규칙, 형상과 의지에 얽매이지 않는 힘.
“네가 섬기는 외신의 힘은, 애초에-”
“글쎄?”
레녹의 말을 대뜸 끊어버린 2사도가 피식 웃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난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림자 뒤로 벗어나 원래대로 돌아왔다.
안경을 쓴 청년의 형상으로 돌아온 2사도가 짐짓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특정한 개념으로 단정 지어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부질없지 않아?”
“…….”
“여기까지는 내 순수한 호기심이었고, 이제 해야 할 일을 해야겠군.”
해야 할 일이라.
레녹 역시 2사도가 어떤 순간에 그의 앞에 나타났는지를 잊지 않았다.
엘바토 듀리스에게서 유사를 손에 넣고, 그 말 자체가 누군가를 상징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카이세 바쥬르에 대해서는 잊어둬.”
벤치의 등받이에 기대앉은 2사도가 말했다.
“그가 교단과 거래를 했다는 사실이 당분간은 밝혀지면 안 되거든.”
“…….”
“오늘 네게 교단의 사정에 대해 설명해 준 것과 내 술식을 들춰보고도 넘어가 주는 건 그 대가야.”
6사도의 역할. 교리의 본질. 2사도의 기원이자 근본에 대해서까지.
그 모든 것을 일러주고 인정한 것 자체가, 카이세 바쥬르에 대한 일을 비밀로 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인가.
“그런 시답잖은 거래를 받아들인 기억은 없는데.”
“그래? 그럼 아무래도 상관없어.”
2사도가 태연하게 목을 주무르며 웃었다.
“어차피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닐 생각도 없었잖아?”
“…….”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와 관련된 모든 일에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거야.”
손가락을 추켜올린 청년이 느릿하게 손목을 까닥였다.
“금제라는 속박에 묶이지 않으려면, 저울의 반대편에 무언가를 올려놓기는 해야 하거든.”
“그만한 힘을 지니고서도, 아직까지 금제에 묶이는 걸 경계하고 있는 건가.”
레녹이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카이세의 변절을 숨기려는 이유가 뭐지?”
“프로젝트에 대해 조사해 왔다면 알고 있을 텐데.”
복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들어 올린 청년이 대답했다.
“그는 처음부터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서 있었고…… 결국 마지막까지 균형을 지키지 못했지.”
“…….”
“그가 변해 버린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야. 오히려 너무나도 잘 해낸 결과였지. 하지만…….”
레녹을 바라보는 2사도의 눈빛이 냉정하게 빛났다.
“어느 쪽이든 넌 실망하게 될 거다.”
“어느 쪽이든…….”
그 말에 레녹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말하는 어느 쪽이, 정확하게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
이해한다. 프로젝트는 세상의 모든 실패를 남김없이 규명하기 위한 계획이었으니까.
무수한 실패를 답습하던 끝에 모든 것이 처음과는 달라졌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니.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알면서도 나직하게 답했다.
“어떻게 사람이 매사 처음과 같을 수만 있을까.”
“…….”
“알아. 내게 아나테마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것도. 그런 암시를 통해 설명해야만 하는 결말도 있다는 걸.”
아나테마가 끝내 신념을 저버리고 사도로서 영락했듯이, 카이세 역시 프로젝트의 마지막에는 그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이미 완전히 마무리가 되어버린 아나테마의 이야기를 굳이 2사도가 꺼내어 들려주는 순간,
레녹은 이 대화가 한편으로는 카이세의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했던 것이다.
2사도를 지나쳐 걸음을 옮긴 레녹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렇다고 카이세가 바랬던 소망이 거짓이 되어버리는 건 아니니까.”
“…….”
“그 증거가 이미 내 안에 있다.”
레녹이 웃었다.
“나는 다만, 대답이 되기 전까지 모두 이해하고 싶을 뿐이야.”
“그래…….”
2사도가 쓴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분의 대적자가 내린 대답을 내 말 한마디로 바꿀 수는 없겠지.”
“…….”
“하지만 이건 경고야, 반.”
오랜 친구처럼 부드럽게 이름을 부른 2사도가 씩 웃었다.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널 죽여야 하거든. 그렇게 집요하게 계획을 파헤치면서, 모든 것을 도외시하려 한다면 더더욱 말이야.”
“원래 마지막으로 기회를 잡은 사람이 가장 독한 법이지.”
시종일관 느슨한 태도를 보이는 2사도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인가.
분명 중요한 이야기임이 틀림없는데, 레녹의 대답조차 장난을 치듯 유하게 흘러나온다.
“유감이다. 광신도의 사정 따위를 일일이 헤아려줄 만큼 여유가 있지는 못해.”
“그런가.”
하지만 2사도는 그런 레녹의 대답조차 기껍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눈을 감아버렸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오만함이 정말, 부럽군…….”
“…….”
“그래서 더더욱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아.”
눈을 감은 채로 등을 돌린 2사도가, 천천히 자신의 안경을 벗으면서 말했다.
마치 레녹에게 자신의 육안을 보여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린다.
“너와 더 이상 이야기하다가는, 나도 여기 찾아온 진짜 목적을 잊어버릴 것 같거든.”
“어디로 가려는 거지?”
“교단의 새로운 신녀와 만나기로 해서 말이야. 당분간은 바쁠 것 같아. ”
2사도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이젤과 세이나가 떠나 버렸으니, 누군가는 남아서 수습을 해야 하지 않겠어?”
“…….”
그는 교단 내부의 굵직한 대소사를 직접 처리해 오던 사도의 필두.
새롭게 신녀 자리에 등극한 우레카 나이드리와 논의해야 할 일이 여럿 있겠지.
2사도가 우레카 나이드리를 마음에 들어 하든, 들어 하지 않든.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녹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신녀에게도 나를 대신해 안부를 전해줬으면 좋겠군.”
“안부 말이야?”
“팔이 괜찮냐고 묻는다면 무척 반가워할 거다.”
“……뭐? 하하핫!!”
2사도 역시, 뒤늦게 레녹의 말을 깨닫고 웃음을 터트렸다.
거의 드러내지 않던 감정의 기복. 드물게 어깨를 들썩이며 웃던 청년이 숨을 돌리며 말했다.
“공방의 VIP에게 주어지는 개인금고에, 교단의 오래된 법보가 하나 보관되어 있다.”
“…….”
“가져가. 너와 같은 마법사에게도 충분히 쓸 만한 물건일 거야.”
“이제 와서 선물로 환심을 살 생각이라면,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렇지. 우리 만신의 종복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인간은 오직 너 하나뿐일 테니까.”
“…….”
“그러니 부디, 다시 만나기 전까지 꼭 살아 있기를 바라지.”
레녹에게 멀어지듯, 느릿하게 한 걸음을 내디딘 사도가 말했다.
“네 운명이 광명을 찾든, 아니면 오만에 빠져 나락 끝에 처박히든…….”
가려진 2사도의 눈가 사이로, 싸늘한 은빛이 번뜩인 순간.
“반드시 신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니까.”
후욱!
나직한 속삭임과 함께, 2사도의 기척이 사라졌다.
텅 빈 허공을 붓으로 덧칠해 지워버린 듯한 소멸.
하지만 그 존재는 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일 없이, 여전히 자유롭게 시공을 거닐겠지.
모순적인 일이다.
어떤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야 할 두 번째 사도가, 정작 교단을 이끄는 무엇보다 막중한 의무에 매여 있다는 사실이.
레녹이 여태껏 보아온 무수한 운명과 대답이 그러했듯, 기원은 그 자체로 기원이 되지 못하고.
본질은 그 자체로 본질이 될 수 없으며, 생명의 궤적은 언제나 모순에 묶여 있는 것이다.
그건 결국 이 세계의 존재 자체가 모순 위에 성립하는 기적이었기 때문이겠지.
인과가 닫히며 멸망해야 했던 이 별이, 아직 암흑의 바다 위에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2사도가 기절시킨 공방의 직원들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겠지.
유사의 설계도를 복사하고, 2사도가 금고에 남긴 법보를 미리 확인할 시간은 남아 있을 듯했다.
발칸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