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55
약먹는 천재마법사 955화
금제(10)
귀도 교단 극동지부. 바다를 달리는 섬 위에서 벌어졌던 결전.
신녀와 사도의 존재가 뒤섞이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 죽은 그날.
10사도 암리타 프라우벨과의 싸움을 마무리짓던 순간, 레녹은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교단 내부에서도 최정예 극대전력이라 불리는 제2사도.
가장 완벽한 화신체로서 교단의 실질적인 행보를 이끄는 초월자.
다른 사도들이 미쳐가는 와중에도 아직 멀쩡하게 자신의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괴물.
바다를 맨몸으로 건너, 극동지부에 홀로 도착해 모든 생명을 죽여버리려 했다던 그날의 섬뜩함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을까.
평범해 보이는 외견. 소탈한 말투. 외신을 섬기는 화신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한 기세.
하지만 틀림없이 그 내면에는 교단의 모든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의뭉스러운 본의가 숨겨져 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냐고? 그건 무의미한 질문이군.”
레녹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2사도가 턱을 괸 채로 나른하게 웃었다.
“당연히 안경을 맞추러 왔지. 안 보이는 건가?”
“…….”
“눈이 나쁜 사람들에게는 신체의 일부나 마찬가지거든. 언제든지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하는 물건이지.”
레녹이 침묵하는 사이 2사도가 태연하게 너스레를 떨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조용해진 공방을 돌아본 그가 미소지었다.
“듀리스 공방의 장인들은 손재주가 좋은 데다 품질 보증 기간도 꽤 길어서 말이야. 나로서도 애용하고 있어.”
“쓸데없는 소리는 거기까지 하지.”
제 손으로 의식을 짓눌러 기절시킨 인간들을 상대로 저런 말을 하는 것부터, 상대는 역시 인간이 아니다.
다만 교단 내부에서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2사도가, 단순히 안경을 맞추기 위해 듀리스 공방까지 찾아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대답.
다른 목적을 숨기고 있거나, 그 안경이 아케인 공방의 손을 거쳐야 할 만큼 특별한 물건이기 때문이겠지.
“마키나를 뒤집어 놓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런 곳에 잠적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조금만 당겨도 끊어질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
극도로 신중하게 상대와의 거리감을 가늠하며, 레녹이 천천히 말을 골랐다.
2사도는 사도들 중에서도 광증에서 완벽하게 자유롭다 일컬어지는 초월자.
무력과 위상으로 따지자면 역대 사도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는 존재다.
조금이라도 방심한다면 언제 선공을 잡힐지도 모르는 일.
하물며 외신의 사도인 그가 다른 인간들의 안위를 신경 쓸 거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화신조차 인지할 수 없을 만큼 느릿하게 의념을 끌어올린 레녹이 물었다.
“교단의 필두사도조차 기계도시를 상대하는 일은 버거웠던 모양이지?”
“기계도시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 입장에 얽매여 있는 곳이야.”
안경을 추켜올린 2사도가 대답했다.
“최고위원회는 힘을 잃었지만, 이면의 암흑가를 지배하는 초인들은 굉장히 까다롭거든. 특히 마스터마인드나 충령 같은 거물은 중앙에서도 주기적으로 동향을 체크할 만큼 위험한 자들이지.”
“……암흑가의 초인들을 상대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는 말인가?”
충령은 몰라도, 마스터마인드가 누구인지는 레녹 역시 알고 있었다.
기계도시의 음지에 기거하는 8레벨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자, 아오슈 스페로.
헤르메스와의 전투를 끝낸 레녹에게 접근해, 자신의 능력으로 뒷수습을 도와주었던 초인이다.
마이야 렌슬릿과 안면이 있는 듯한 언행을 보였고, 레녹에게도 호의적으로 굴었지만.
반대로 레녹의 눈앞에서 대놓고 그의 기억과 뇌수를 빼먹고 싶다고 말하던 미치광이.
레녹이 마키나에 머물 당시에는 최고 위원회를 비롯한 기계도시의 양지 세력과 충돌한 탓에, 그들과는 마지막에 잠시 조우했을 뿐이지만.
분명 기계도시에 기거하는 음지의 초인들 역시 상당한 저력과 위상을 보유한 괴물들이었겠지.
설마 2사도는 마키나에서 그들과도 충돌해, 다른 모든 세력을 정리하고 돌아온 것일까.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만 말해두지.”
생각에 잠긴 레녹을 두고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쉽지는 않았어. 그 낡은 도시를 당분간 회생 불가능한 수준까지 파괴하면서도, 반대로 절멸시키지는 않아야 했거든.”
“…….”
“나 같은 화신체는 하는 행동마다 의미를 부여받게 되니까. 행여나 가비행 같은 귀찮은 의식에 묶이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태연하게 웃으며, 레녹이 그동안 파헤쳐왔던 온갖 비밀과 금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 든다.
마치 레녹의 반응을 떠보려는 듯이, 혹은 반대로 그런 것을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처럼.
이 자리에 나타난 순간부터 의도와 목적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듯 자유롭고 경쾌하다.
그렇기에, 레녹은 눈앞의 사도에게서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한 확신을 느끼고 있었다.
“너는 처음부터 내가 여기 올 것을 알고 있었군.”
확신 어린 레녹의 말에, 웃고 있던 2사도의 움직임이 멈췄다.
“이 시점에 내게 접촉한 것 역시, 카이세의 일에 대해 할 말이 있기 때문이겠지.”
“…….”
유사란 시계의 초침을 제어하는 부품이자, 그와 같은 삶을 살아온 카이세 바쥬르를 가리키는 단어.
그렇기에 교단과의 거래를 통해 유사를 제작한 오슈토 듀리스의 죽음을 매개로 세 사람이 조우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장과 교주와의 만남에서, 유사의 월식에 대해 이야기가 나온 것 역시 이미 정해진 일이었겠지.
제멋대로 움직이며 의중을 짐작할 수 없던 2사도가, 하필 이 순간에 레녹의 앞에 나타난 것 역시.
그런 2사도의 존재를 이 자리에 붙잡아둬야 할 만큼, 아주 강력한 목적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빨리 끝내라. 교단의 사도와 오래 얼굴을 맞대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흠, 생각보다 대접이 박하군. 이건 좀 섭섭한걸.”
2사도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안경을 추켜올린 그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그건 역시 얼마 전에 6사도를 죽이고 왔기 때문인가?”
“…….”
아나테마의 타락과 변절도. 그 죽음과 최후도 이 남자는 모두 알고 있다.
전부 알면서도 처음부터 모른 척. 우연한 만남을 가장하며 뻔뻔스럽게.
레녹이 결정적인 무언가를 붙잡은 순간 다가와 말을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그 사실을 확신한 레녹이 차가운 살의와 함께 마력을 끌어올리려던 찰나.
“아니, 난 너와 싸우러 온게 아니야.”
턱!
2사도가 아무렇지도 않게 레녹의 어깨를 손으로 짚었다.
레녹이 두르고 있는 실드와 아티팩트, 의념을 펼친 감응력을 뚫어내고 순식간에 그 몸에 손을 댄다.
아무런 술식이나 의념의 조작도 없이, 동작 하나만으로 서슴없이 레녹의 간극을 파고드는 한 수.
하지만 레녹이 상대해 온 온갖 강자들과도 궤를 달리하는 섬뜩함이 그 손짓에 있었다.
“…….”
“말했잖아. 여기는 나도 애용하는 공방이라고.”
침묵하는 레녹의 어깨를 짚고 고개를 살짝 숙인 2사도가 말했다.
“이런 자리에서 싸우면, 내 안경을 고쳐줄 장인이 모두 죽어버리지 않겠어?”
“그쪽이야말로 영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레녹이 2사도를 두고 시선을 들어 올리며 싸늘하게 웃었다.
“놔.”
파지직……!!
그 순간, 레녹의 어깨를 짚은 사도의 손가락 사이로 강렬한 전류가 튀어 올랐다.
대수롭지 않게 힐끗 시선을 돌린 2사도의 안색이 살짝 변한 순간.
날카로운 뇌광이 번뜩이며 순식간에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파앙!!
새파랗게 빛나는 충격파가 고요한 공방 한복판에서 일렁이며 터져 나온다.
쓰러진 사람들은 물론이고, 공방 시설 전체가 크게 요동칠 만큼 강렬한 의념의 준동.
손을 들어 올린 채 물러선 2사도를, 레녹이 어깨를 털어내며 돌아보았다.
“이건…… 굉장한데.”
살짝 놀란 표정으로 레녹을 바라보던 2사도가 흥미로운 듯 물었다.
“불가침의 성호를 뚫고 흠집까지 내다니. 마력이 속성의 범주를 뛰어넘은 건가?”
“…….”
“아직 동력을 마력에 두고 있을 뿐, 이미 번개가 의념에 닿았군. 성질의 변화를 넘어 초월에 달한 게 아니라면…….”
“시종일관 여유가 넘치는군.”
레녹이 그를 보며 미소지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나올 수 있는지 볼까?”
위이이잉!!!
체내에서 마력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레녹의 의지를 사방의 시공간에 무차별적으로 흩뿌린다.
극한까지 가속한 의식 속에서 팔괘법진의 선천이능이 작동.
체감시간을 길게 늘리듯이 잡아당기며 주변의 모든 것을 느리게 만들었다.
내면에서 퍼올린 심상이 순식간에 공방 전역을 휘감고, 무채색의 영역으로 화한 순간.
“……설마.”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던 2사도의 표정이 처음으로 사라졌다.
파아아아앗!!!
시작과 동시에 전력으로 펼쳐내는 자성영역 전개.
상대는 교단 내부에서도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초월적인 수준의 괴물이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승산은커녕, 목숨의 보전조차 장담하기 어려울 터.
하지만 레녹은 만화경을 꺼내 들어 준비한 분기점을 펼치는 대신, 눈앞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위화감에 곧바로 마력을 거둬들였다.
‘없군.’
현실과 영역의 시공간이 겹쳐지는 찰나의 순간.
두 시공간 어디에서도 2사도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감각과 직관이 극한을 넘어 초월에 도달하는 순간에도, 눈앞에 서 있는 2사도의 존재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
“…….”
그것을 확인한 레녹이 손을 접자, 공방 전역을 뒤덮고 펼쳐지던 영역이 취소되어 사그라들었다.
“손속에 거침이 없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건 완전히 상정 이상이군.”
최고위 사도라 해도, 레녹의 영역을 아무런 대처 없이 받아넘길 수는 없던 것일까.
손을 들어올린 채 마력을 끌어올린 2사도가 곤란한 듯 중얼거렸다.
“이런 자리에서 대뜸 영역을 펼치다니, 며칠 전에 아나테마와 생사결을 내고 온 게 아니었-”
“그게 바로 네가 섬기는 외신의 사도술식이었군.”
“…….”
날카로운 레녹의 말에, 2사도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자성영역을 피한다는 건 평범한 사도나 화신체에게 허락되는 일이 아니지.”
자성영역은 술자의 심상을 현실의 시공간에 뒤집어씌우는 자기개변의 도달점.
시공간을 통째로 개변하는 힘이기에, 피하거나 막아낼 수 있는 성질의 기술이 아니다.
서로의 영역이 충돌하거나 겹치는 것은 가능하지만, 영역 자체를 회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방금 보여준 2사도의 능력이, 바로 그가 지닌 사도술식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시공의 박리. 개념의 회피. 속박의 무효화. 어느 쪽이든 의념이나 심상의 비틀림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가라앉은 눈으로 2사도를 바라보며 레녹이 말했다.
“네 사도로서의 근원. 네가 섬기는 외신의 정체와 관련된 힘이겠지.”
2사도를 만난 그 순간부터, 레녹은 기척을 읽을 수 없는 흐릿한 존재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분명 눈앞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섣불리 그 형체와 대상을 특정 지을 수 없는 기이한 위화감.
레녹이 지닌 제사장의 권능을 사용해도 사도로서의 본질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다른 사도와는 확연하게 다른 묘한 분위기 자체가, 그가 사도로서 지닌 본질이 아닐까.
그와 대화하는 도중에 레녹은 판단을 끝내고, 교전과 동시에 영역을 전개해 자신의 추측을 검증했던 것이다.
“사도로서의 근원이라…….”
레녹이 그의 본질을 잠깐이나마 엿보았음을 그 역시 눈치챘기 때문일까.
2사도가 곤란한 표정으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실수했군. 아나테마를 죽인 마법사라면 그만큼 사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라 가정했어야 했는데…….”
“…….”
“자성영역을 미끼로 삼아가며 내 술식을 알아내려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 이건 좀 곤란한걸.”
교주의 두 번째 사도로서 살아왔으면서도 광증에서 한없이 자유로운 2사도.
그 능력과 사도술식이, 그가 아직 미치지 않을 수 있던 이유이자 기원이라는 말일까.
하지만 눈앞의 사도는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미련도 없어 보였다.
레녹이 그 사실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2사도가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나와 싸울 작정을 하자마자 영역을 꺼내든 판단은 놀랍군. 어지간히 영역의 힘에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일 텐데…… 본단에 돌아가면 너에 대한 정보들을 전면 수정해야겠어.”
2사도는 레녹의 영역을 보지 못했지만, 레녹의 대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고 있었다.
목숨을 건 결전을 각오한 직후 영역을 전개했다면, 말 그대로 자신의 영역에 절대적인 확신이 있기 때문.
그건 견뢰가 보유한 자성영역이 철저하게 전투에 특화되어 있는 힘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가 다루는 힘을 인지했다면, 이런 일이 별로 의미 없다는 것 역시 이해했을 텐데.”
느긋하게 자신의 손목을 주무른 2사도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아직도 이 자리에서 결판을 내고 싶나?”
“…….”
2사도의 질문에 레녹이 침묵했다.
레녹 역시 2사도의 힘을 확인한 시점에서, 더 이상 싸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어쩌면 2사도가 술식의 일부를 보여주고도 태연했던 것조차, 이러한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레녹조차 승산을 확신할 수 없는 초월적인 경험과 소질을 보유한 강자.
그런 상대가 레녹과 정면에서 대응하기는커녕, 발을 뺀다면 애초에 싸움이 성립할 일도 없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레녹이 마력을 거두자, 2사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등을 돌렸다.
“오슈토의 아들이 깨어나기 전까지 조금 시간이 있겠지.”
2사도가 웃으면서 공방 바깥을 향해 손짓했다.
“그때까지 잠깐 이야기나 하지.”
“…….”
“아나테마의 죽음과, 카이세 바쥬르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