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89
약먹는 천재마법사 989화
중앙전선 경계지대(6)
지옥불 환상궁(煥狀穹).
술식의 이름을 불러 지정하며 시동을 건 순간, 흑록색의 지옥불이 레녹의 의지에 따라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화르르륵……!!
손끝에서 흘러 떨어지는 피를 타고 옮겨붙은 불길이 손아귀 사이로 퍼져 나와 곡선을 그렸다.
길게 휘어지는 지옥불의 중심을 움켜쥐고 정확하게 이쪽을 가리키는 레녹의 모습.
“그것이 그대가 이 싸움에서 선택한 승리의 단초인가.”
그 형상을 정면으로 마주한 로베라이드가 고개를 꺾었다.
“마치…… 불길을 곡궁 삼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
로베라이드를 향해 내민 레녹의 왼손을 휘감고 흑록색 불길이 수 미터 넘게 피어올라 휘어진다.
지옥불로 이루어진 거대한 대궁(大弓)을 쥐고 군단장을 겨누는 듯한 섬뜩한 기세.
하지만 순식간에 자신을 겨냥한 예리한 공기 속에서도 로베라이드는 평정을 유지했다.
“천번에게 궁술의 재능이 있다는 정보는 들어본 적이 없었건만.”
“주시자들 중에서 걸출한 궁사가 한 명 있었지.”
레녹이 대답했다.
“그녀에게 어깨너머로 배웠다.”
“……이벨린 마르시아를 말하는 것인가. 본관 역시 현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네.”
철컥!!
무거운 중갑을 조작해 증기를 뿜어낸 로베라이드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대륙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궁사. 한때 사령부와 1군단의 최우선 섭외대상이었으니 그 실력이야 말해 무엇할까.”
“…….”
“하나 중앙전선 섬멸전에 이름을 올려둔 재인이라 해도,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의 일.”
활활 타오르는 화염대궁을 주시하는 군단장의 시선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대의 배움이 아무리 깊다 해도, 그 화살이 현궁의 그것만큼 날카로우리라고는 믿기 어렵군.”
“그렇겠지. 내가 현궁에게 배운 것은 현궁의 궁술이 아니니까.”
흑록색의 화염으로 만들어진 대궁을 움켜쥔 레녹이 활에 걸린 시위를 잡아당긴 순간.
쩌저적……!!
불길한 빛을 발하는 불화살이 손끝을 타고 뻗어나와 시위에 매겨졌다.
밤하늘 아래 사이한 흑록색으로 번뜩이는 화염대궁을 쥐고 화살을 겨눈 마법사의 모습.
“중요한 것은 영감. 궁술의 형태로 힘을 조형하는 발상 그 자체였지.”
“…….”
“정공법으로 군단장을 상대하려면 아마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거다. 내가 지닌 불꽃을 끝까지 예열시키야 그나마 공방이 성립할 테니까.”
지옥불의 빛에 얼굴에 음영이 진 레녹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건 그런 힘이 아니야. 그런 논리를 따르지 않는 사술의 반작용에 가까운 힘이지.”
화살을 시위에 매긴 채, 천천히 로베라이드를 향해 대놓고 겨눈 레녹이 고개를 젖혔다.
“당신 같은 전사를 상대로는 더더욱 말이다.”
“사특한 편법으로 본관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믿는겐가.”
후욱!
오른팔의 갑주가 팔을 죄여오며 강렬한 증기를 내뿜고, 순식간에 그 중량을 늘려나간다.
깊게 자세를 낮춘 로베라이드가 그 몸을 웅크리듯이 숙이면서 말했다.
“전장에 서는 군인에게 그것이 얼마나 헛된 시도인지, 가르쳐주도록 하지.”
끼리릭……!!
레녹이 그 말을 무시하고 시위를 당기면서 자세를 잡는다.
저 지옥불 화염대궁의 시위가 누구를 향할지는 불을 보듯 뻔한 바.
하지만 얼마나 신묘한 술식을 지니고 있다 해도, 활의 형태를 취한 이상 사격 직후에는 위치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피격을 허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확실하게 레녹을 잡아 죽이는 것이 최선.
우드득!!
체중을 수십 배 늘린 로베라이드의 한 걸음이 지축을 울리며 땅을 짓뭉개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레녹을 향해 휘둘러졌다.
뻐어어어엉!!!
레녹의 코앞에서 폭발한 충격파가 두 사람의 양옆으로 갈라지며 지평선을 가로지른 직후.
화염대궁을 가로로 들어 올린 레녹이 잡아당긴 시위를 손에서 놓았다.
파아앙!!
인지의 한계를 넘어선 흑록색의 불길이 충격파를 무시하고 번개처럼 군단장의 어깨를 관통했다.
“……!!!”
치이이익……!!!
대기를 스치며 불태우는 파열음. 고통보다 먼저 느껴지는 싸늘함.
뜨거운 열기가 아니라,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한 한기.
지금까지의 전투와는 전혀 다른 위화감에 로베라이드의 등골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군단장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노성을 내지르며 거침없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오오오오오!!!”
쿠우웅!!
어깨에 박힌 불화살을 뽑아내지도 않고 의념을 휘감아 중갑을 움직인다.
몸을 헤집고 불태우는 불꽃 따위, 군단장의 강인한 신체에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
육신이 움직이는 한 그의 괴력과 심상이 쇠할 일은 없다.
으직!!
눈앞을 가로막는 지옥불 대궁을 한 손으로 쳐내고, 그 너머로 드러난 레녹을 향해 전력으로 의념을 내뻗은 순간.
로베라이드의 권격이 레녹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지면을 거칠게 휩쓸었다.
콰아아앙!!!
“큭……!!”
직접 피격은 피했지만, 그 충격까지는 모두 막지 못한 듯 레녹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나가듯 미끄러진다.
한 손으로 화염대궁을 쥔 채, 힘없이 비틀거리며 겨우 균형을 잡는 모습.
하지만 레녹을 바라보는 로베라이드의 얼굴은 전에 비할 바 없이 굳어 있었다.
“이건……!!”
로베라이드의 권격은 자신의 체중을 수십 배 늘려 단 한순간에 터트리는 폭발 그 자체.
직격하지 않더라도 그 일대를 타격한 순간 온몸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어야 정상.
하지만 로베라이드의 공격은 레녹을 죽이기는 커녕, 그 몸에 제대로 된 부상조차 입히지 못했다.
마치 중장이 다루는 힘의 기반 자체가 크게 흔들리며, 위력이 엇나가버린 듯한 위화감.
순식간에 그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한 로베라이드가 어깨에 박힌 지옥불 화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치이익……!!
손을 지지는 고통을 무시하고 불화살을 움켜쥔 로베라이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의념을 강제로 조작해 비틀어 버리는 사술인가……!!!”
지옥불 화살에 관통당한 직후, 의념의 소모가 엄청나게 커지면서 순간적으로 소우주의 조작이 비틀렸다.
그 때문에 군단장 본인의 중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위력의 증폭까지 이어지지 못했던 것.
그리고 의념의 소모가 급격히 커진 원인이, 어깨를 관통한 화살 때문이라는 사실을 로베라이드는 곧바로 이해했던 것이다.
“믿을수가 없군. 고작 접촉하는 것만으로 대상의 의념에 간섭하는 힘이 존재한다니!!”
“염열마법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심오한 구석이 있지.”
점화장치에 몸을 기댄 채 군단장을 올려다본 레녹이 웃었다.
“위력을 내기 위해서는 예열이 필요한데, 일정 수준까지 예열을 끝내면 반대로 술자를 잡아먹기 시작하거든.”
“…….”
“자신이 피워낸 불길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다른 불씨를 갖춰 맞불을 놓아야 해. 염열마법을 익히며 이해했던 묘리를 술자가 살아가는 내내 강요받게 되지.”
화르르륵!!
활활 타오르는 흑록색의 화염대궁을 다시 로베라이드를 향해 겨누면서 레녹이 말했다.
“이것은 바로 그 모순을 이용해 지펴낸 새로운 [불씨]다.”
“……에반 마르티네스.”
마법의 정보를 공개함으로 위력을 끌어올리는 기아스의 일종.
레녹이 무엇을 하는지 순식간에 간파한 로베라이드는 그 말이 아니라, 방금 자신이 겪은 현상에 집중했다.
로베라이드는 지옥불 화살을 피하지 못했지만, 반대로 레녹 역시 군단장 본인의 공격을 제대로 받아넘기지 못했다.
저 화염대궁을 개시하는 도중에는 레녹 역시 의념조작에 난해함을 겪고 있는 것인가.
로베라이드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레녹이 피식 웃었다.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이해하지 못했다면 여기서 끝내지.”
끼리릭……!!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화염대궁의 시위를 당기자, 다시 한번 대궁 위로 타오르는 불화살이 나타났다.
흑록색의 화염을 넘실거리며, 군단장의 심장을 정확하게 노리는 화살촉의 모습.
로베라이드가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어깨를 돌렸다.
‘화살에 맞은 직후 의념의 소모값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중갑 사이로 거칠게 증기를 뿜어내며 걸어나온 군단장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추정되는 능력은 의념의 흡수, 혹은 포식…… 의지를 잡아먹는 사술인가.’
전사의 소우주란 의념과 심상의 조화를 통해 체내에서 물리법칙의 변화를 강제하는 기적.
의념을 흡수해 심상과의 균형을 무너뜨린 시점에서 소우주의 조작이 엇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타인의 의념에 개입해 흡수나 포식을 행한다는 것은, 술자 본인조차 막대한 부담을 짊어지는 행위.
하물며 로베라이드 정도로 굳은 의지와 심상을 지닌 강자가 그 대상이라면, 그 효율이 극히 낮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방금처럼 의표를 찔러 소우주 조작이 비트는 정도가 한계겠지.
“……아쉬운 일이로군.”
거기까지 생각한 로베라이드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주 너머로 번뜩이는 중년 남성의 눈동자가, 레녹의 무표정한 얼굴을 향했다.
“발칸을 불바다로 만든 대마법사라면, 차후 군단의 전쟁에서도 누구보다 큰일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건만.”
“…….”
“하나 그대 같은 용장이 다른 세력에 투신한다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한 적이 되어버리겠지.”
뚜둑!!
제 자리에서 자세를 낮추고 마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로베라이드의 의념이 극한까지 활성화된다.
동시에 그 자리에서 군단장의 갑주가 쉼 없이 증기를 내뿜으며, 그 몸의 중량을 계속해서 높여 나갔다.
“오늘 군단이 치른 희생보다 더 큰 손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 자리에서 오늘의 일을 깔끔하게 매듭짓고 가도록 하겠네.”
“그런 말은 싸움이 끝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텐데?”
“아니, 늦겠지.”
쿠구구구……!!
로베라이드 주변의 공기가 쉴 새 없이 왜곡되고 어그러지면서, 거칠게 공간을 찍어누른다.
육중한 몸을 천천히 앞으로 기울이면서 고개를 숙인 군단장이,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면서 중얼거렸다.
“지금부터 그대의 목숨을 취하기 전까지, 어떤 대화조차 필요 없을 테니까……!!”
뻐어어엉!!
원형의 파문이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로베라이드의 모습이 사라진다.
제 자리에서 전력으로 몸을 투신하듯 가속한 군단장의 신형이 음속을 뛰어넘으며 충격파를 터트렸다.
터터터터텅!!!
소리보다 빠르게 수백 미터를 뛰어넘어, 한발 늦게 대기를 찢어발기고 소닉 붐을 발산한다.
주언과 수인, 영창을 생략한 염열마법이 로베라이드의 눈앞에서 시작과 동시에 완성되어 펼쳐졌다.
[적축(赤築)] [파화자향(波火滋響)]콰아아아앙!!!!
넘실대는 불바다 위에서 레녹과 로베라이드의 신형이 정면으로 격돌했다.
화염을 온몸에 두른 레녹과, 전신에서 증기를 내뿜는 중장이 번개처럼 맞붙었다.
[일자중탄(鎰自重彈)] [태염륜(太炎輪)] [업화(業華)]쿠화아아아악!!!
눈부신 불꽃의 광선이 비처럼 떨어지고, 용암의 파도와 불기둥이 몰아치며 로베라이드를 후려쳤다.
“……!!!!”
타오르는 불바다 위로 중장의 신형이 수십 미터를 튕겨 나가 나뒹굴었다.
로베라이드조차도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엄청난 열기가 온몸을 짓누르고, 갑주를 녹여 망가뜨린다.
[화렴자우(火簾刺雨)] [주라살(朱羅撒)]드르르르륵!!
불바다 저편에서 형상의 불길이 겹쳐 몰아치며, 지상의 모든 것을 일소하고 지워 버렸다.
살아 움직이는 화신(火神)이 되어, 호흡하고 걷는 모든 순간마다 천지를 불태우는 끔찍한 형상.
아직 살아서 전장을 배회하고 있던 강습부대의 군인들이, 사위를 불태우는 화기에 허우적거렸다.
“아, 안 돼!! 살려줘!!”
“차, 참모부……! 참모부는 뭘 하는 거야?!”
“나를 봐라, 에반 마르티네스!!!”
진노한 로베라이드가 한 발을 앞으로 뻗으면서 소우주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혁인쇄(赫引碎)] [발홍(發紅)]최소한의 영창이 필요한 고위 염열마법을 아무런 대가와 준비 없이 포탄처럼 난사.
불바다와 용암호수 사이로 나뒹구는 중장의 신형을 향해 찍어누르듯이 쏘아냈다.
쿠구구구구!!!
“아직이다!!”
하지만 로베라이드 역시 자신에게 가해지는 충격의 방향을 조절해 거리를 좁히고 레녹을 향해 다시 충돌.
타오르는 불기둥 사이로 녹아내리는 팔을 들이밀고, 그대로 레녹을 향해 주먹을 후려갈겼다.
뻐어어엉!!
화염줄기가 완만하게 구부러지며 권격을 받아내지만, 그 충격으로 레녹의 신형이 불길 사이로 쭉 밀려난다.
쏟아지는 염열마법의 폭격을 정면에서 받아내고, 손에 잡히는 대로 불길을 쥐어 꺼트리며 돌진했다.
쾅!!
눈앞을 가로막는 태양구의 앞에 멈춰선 로베라이드의 두 눈이 무시무시한 투지로 번뜩였다.
격렬하게 회전하는 화염의 구체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잡아 뜯어내듯 열어젖혔다.
뚜두두두둑!!!!
“하아아압!!!!”
영혼을 고조시키는 듯한 괴성과 함께, 중갑 사이로 증기가 폭발적으로 퍼져 나오며 그 몸을 내리누른다.
동시에 극한까지 가중된 군단장의 괴력이 폭발하듯 비산하며 맨손으로 발홍(發紅)의 태양구체를 터트리고.
그 폭발력을 이기지 못한 레녹의 신형이 순식간에 수십 미터 뒤로 튕겨 나갔다.
쐐애애액!!
양쪽으로 갈라진 화염기둥 사이로 멀어지는 마법사의 신형. 그 손에 휘감긴 흑록색의 대궁(大弓)이 쉴 새 없이 일렁이며 불길한 광채를 토해냈다.
곧바로 그 뒤를 추적하려던 로베라이드가, 화염대궁의 시위에 걸려 있던 화살이 레녹의 손에서 이미 사라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
푸욱!!
군단장의 등 뒤에서 내리찍힌 지옥불 화살이 뒤에서부터 중갑을 관통하고 가슴 위로 튀어나왔다.
온갖 충격과 술식을 받아내는 갑주 너머의 피육을 찔러 들어오는 차가운 불꽃.
“오오오오오!!!!”
하지만 로베라이드는 가슴을 파고드는 싸늘한 열기에도 포효하며 거침없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력을……!!’
화살에 맞은 순간 의념이 흡수당한다면, 흡수당한 만큼의 의념을 더 끌어올려 보충하면 그만.
로버트 로베라이드는 그것이 가능할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과 심상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뛰어난 전사에게 있어 정신의 고강함은 곧 육체의 강인함에 비례하며, 신념을 가진 군인에게 의지란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은 것.
수십 배로 끌어올린 체중을 무기로 삼아 일대를 폭격하듯 때려부순다. 뒤에서 꽂힌 화살의 장력까지 추진력으로 삼아 질주했다.
군단장의 체중이 그 자리에서 수백배로 늘어나며, 주변의 공간까지 일순 왜곡시키고.
전력으로 도약한 로베라이드의 신형이 레녹의 머리 위로 내려찍힌 그 순간.
[용성추(龍姓墜)]콰아아아아아아앙!!!
반경 수백 미터 일대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발생하며 지반을 움푹 가라앉혔다.
사방으로 땅이 갈라지고 무너지며, 충격파가 하늘 위로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지축을 울리고 땅을 파도치듯 갈아엎은 로베라이드의 신형이, 수십미터 깊이로 분쇄된 크레이터에 박혀 있었다.
“후우우……!!”
특수변형 갑주를 장착한 로베라이드 본인조차 버텨내기 버거울 만큼 전력으로 전개한 심상의 극의.
자신에게 가해지는 중력을 수백배 넘게 끌어올린 시점에서, 지상을 향해 떨어지는 충격량은 전술병기에 필적한다.
공간째로 짓눌러 터트리는 전방위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
그렇게 확신한 로베라이드가 소우주를 거두고 일어서려던 순간.
쩌적!!
로베라이드의 발 아래 생긴 크레이터 아래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극한까지 무거워진 로베라이드의 중량을 지반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
빠직, 빠직!!
사방에서 급격하게 크기를 기운 지반의 균열 사이로 뜨거운 용암이 흘러 넘친다.
쿠화아아악!!
“이런……!!”
발아래 흘러넘치는 용암이 거대한 분화구를 이루고, 군단장의 거대한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고작 지반을 조금 무너뜨린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정도로, 땅 아래서 분출되는 용암의 양이 상당하다.
곧바로 그것을 깨닫고 시선을 돌린 로베라이드가, 저 멀리서 느릿하게 호흡하는 화천강귀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소환수를 사용해 지반을 용암으로 녹이고 있었나!!”
전투 직후 로베라이드는 화염거북이의 등껍질을 박살 내 행동불능으로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화천강귀는 그 자리에서 역소환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힘겹게 버티면서, 피 대신 흘러나오는 용암을 끊임없이 지반 아래로 흘려보내고 있던 것.
그 과정에서 레녹과 로베라이드가 싸우던 전장의 지반이 약해지면서, 전장 전체가 거대한 화산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쿠화아악……!!!
이제는 어깨를 넘어 목까지 용암에 파묻힌 채로 천천히 가라앉는 로베라이드의 모습.
로베라이드가 곧바로 소우주를 취소하고 체중을 돌리려고 했지만, 그의 몸에 가해지는 중력은 계속해서 강해지기만 할 뿐.
쩌적, 쩌저적!!
그제서야 지금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이상현상이 무엇인지 이해한 군단장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럴 수가. 본관의 소우주가……!!”
8레벨의 육체능력자. 위계를 초월해 자신만의 길에 도달한 심상.
극위의 경지에 도달한 전사의 소우주가, 로버트 로베라이드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고 있다.
로베라이드 자신이 저지른 일의 후유증이 아니다.
그것을 직감한 군단장이 목에 핏대를 세운 채 노성을 내질렀다.
“에반 마르티네스!!!!”
“그렇게 소리지르지 않아도 잘 들린다.”
크레이터 위쪽에서 걸어 나온 레녹이 대답했다.
자신이 만들어낸 분화구에 파묻힌 채, 이쪽을 노려보는 군단장을 내려다보며 레녹이 웃었다.
“혹시나 했지만 정말 튼튼하기 그지없군. 중량을 그렇게까지 늘려놓고 아직 버티고 있는 건가?”
“본관의 심상에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알고 있을 텐데?”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가슴팍을 두들겼다.
“당신에게 명중시킨 두 번째 화살. 이쯤 되면 짐작할 만도 하지 않나.”
“아니. 그대의 지옥불은 대상의 의념을 강제로 흡수하는 힘일 터……!!”
로베라이드가 거칠게 소리 질렀다.
“의념의 흡수로 본관의 심상에 개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조작을 비트는 수준도 아니고 어찌……!!”
“아니. 지옥불 환상궁의 능력은 의념을 흡수하는 힘이 아니다.”
“……뭐?”
“지옥불이란 즉 음차원의 불꽃. 다시 말해 마이너스의 성질을 가진 불꽃이지.”
쩌저적……!!
온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서늘한 감촉에 굳은 군단장의 시선이, 레녹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환상궁의 능력은 마이너스의 성질을 이용해 플러스의 성질을 강제로 끌어내는 의념의 과부하. 그리고 그를 통해 소모값을 늘려나가는 과정에서 마침내…….”
천천히 지반 아래로 가라앉는 군단장을 보며 레녹이 말했다.
“소우주마저도 강제로 폭주시킬 수 있게 되는 거지.”
“……!!”
단순히 의념을 잡아먹고 흡수하는 능력이라면, 흡수된 만큼 더 강한 의념을 쏟아부으면 그만.
애초에 위계를 초월한 극위능력자의 의념은 흡수나 포식 같은 행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지옥불 환상궁의 능력은 음의 성질을 통해 양의 성질을 강제로 반발시켜 끌어내는 힘.
이미 존재하는 성질을 강제로 끌어내 폭주시키는 모순과 반발의 불씨 그 자체다.
대상의 의념을 끌어내 증강시키는 행위나 다름없기에, 로베라이드 역시 그 위화감의 본질을 눈치채는 것이 늦었고.
의념의 과부하를 통해 폭주를 시작한 소우주는, 로베라이드 본인조차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능력을 가중시키기 시작했던 것.
쿵!!
로베라이드의 몸이 무너진 크레이터 사이로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 육중한 거체에 가해지는 중력이 수십 수백 배로 늘어나며, 이제는 그 몸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짓눌렀다.
크레이터 아래 가득 찬 용암이 거대한 분화구가 되어 군단장의 몸을 잠식하고, 지반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혔다.
“끄으으으윽……!!”
데드라이즈 3군단장. 중장 로버트 로베라이드.
3군단에서 수행하는 모든 작전의 선봉에서 부대를 이끌고 진두지휘하는 맹장.
비현실적인 괴력과 내구성. 소우주의 능력을 보조하는 특수변형 중갑. 수많은 전장에서 살아남아 지금에 이른 풍부한 전투경험.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를 죽이는 것은 다른 강자나 타인의 술식이 아니라, 바로 그가 그토록 신뢰하던 소우주 그 자체다.
“여기서 그 기괴할 정도로 단단한 몸을 부숴보겠다고 노력할 이유는 없지.”
스스로의 심상에 짓눌려 자멸해가는 군단장을 바라보며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자신의 무게에 짓눌려 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