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38
38. 안녕하세요. 천만 작가입니다. (1).
CBS 제작 본부장 표봉수가 김시우를 소개받으려는 이유.
바로 드라마 때문이었다.
최근 CBS의 드라마는 다른 방송국들에 비해 처참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드라마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 죽을 맛이었는데, 최근 친한 사이인 박웅덕 감독이 이번에 새로 개봉하는 영화 작가를 칭찬하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소개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었다.
김시우도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이해했다.
하긴···. 내가 그거 말고 소개받을 이유가 있겠어? 그래, 나도 대본을 주고 사람들을 얻으면 되지.
표봉수의 말에 김시우가 멋쩍게 대답했다.
“써 놓은 게 하나 있기는 한데···.”
김시우의 말에 심지영, 정세연, 표봉수가 눈을 반짝였다.
그중에서도 심지영이 가장 놀란듯했다.
“뭐야? 너 드라마 대본은 또 언제 썼어?”
“그냥, 매일 조금씩 썼는데요?”
드라마 대본이 이미 완성되어있다는 말에 표봉수가 김시우의 손을 잡았다.
“혹시 괜찮으면 CBS에서 작가님의 작품을 촬영할 수 있을까요? 페이는 섭섭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아···. 네, 그런데 드리는 건 조금 나중에 드려도 될까요? 저작권 등록을 해야 해서···. 제가 최근에 좀 일이 좀 생겨서.”
“네? 어떤 자식이···. 그런 상도덕도 없는 짓을···.”
김시우는 최대호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창피해했다.
“아이고···.”
이야기를 들은 표봉수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탄식을 내뱉었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드라마 대본을 드리는 조건으로 뭐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시우는 표봉수에게 드라마 대본을 건네주는 대가로 한 가지 조건을 더 내걸었다.
“주·조연은 제가 직접 캐스팅해도 될까요?”
“네? 아···. 그건 조금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작비용에 한계가 있다 보니···.”
“물론 저 혼자 독단적으로 정하겠다는 건 아니고···. 가능하면 제가 고른 배우로 촬영할 수 있는지···.”
옆에서 보고 있던 박웅덕도 한마디 거들었다.
“봉수 국장. 이 녀석 한번 믿어봐. 눈썰미 하나는 괜찮아. 좀 멍청하긴 해도.”
“네?”
“맞잖아. 그냥 지인의 친구라고 기획서 보여줬다가 아이디어 도둑맞은 게 멍청한 거지 그럼 아니야?”
“맞죠···.”
김시우는 박웅덕의 놀림에 대꾸할 수 없었다.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행동한 것은 맞았으니까.
그래도 법에 걸리지 않는 행동이어도 나쁜 놈은 훔쳐 간 놈이었다.
“아무튼, 약속은 지키십시오.”
“약속? 사람 소개해준다는 거? 그러지 뭐.”
사실 약속을 잊어버리고 있던 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이 드는 김시우였다.
“아, 그리고 감독님 관객시사회 표 두 장만 얻을 수 있을까요?”
“2개? 왜? 부모님 보여드리게?”
“아뇨.
“이런 불효자 자식.”
“부모님은 개봉 이후에 따로 보여드리면 되죠.”
“쯧쯧···. 여자냐?”
박웅덕은 눈을 가늘게 뜨며 김시우를 바라보았고, 김시우는 이상한 표정으로 박웅덕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어···. 네. 여자라면 여자죠?”
“오···. 배우야? 아니면 스태프?”
여자라는 말에 주변의 정세연과 심지영도 관심을 보였다.
“변호사요.”
“변호사! 오! 김 작가 아주 능력자인데? 변호사는 또 언제 꼬신 거야?”
변호사라는 말에 박웅덕은 김시우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고, 심지영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정세연은 어딘가 초점이 풀린 듯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했다.
“아니, 그런 사이 아니에요. 그냥 너무 일 중독 같은 게 안쓰러워서···. 그리고 도움받은 것도 앞으로 받을 것도 있어서 그냥 작은 고마움의 표시랄까···.”
“에~ 여자랑 남자 사이에 그러게 어디 있어! 솔직히 말해.”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그렇게 어딘가 이상한 술자리가 끝나고, 다음날 김시우는 숙취로 아픈 머리를 감싸며 이해수의 메일로 자신이 쓴 대본들을 전부 보내 저작권 등록을 부탁했다.
드라마 1편과 영화 2편.
그렇게 되면 김시우의 앞으로만 영화 4편과 드라마 1편이 등록되는 것이었다.
1년 차 신인 작가로선 엄청난 경력이었다.
영화 2편 중 한편은 더블유 스튜디오에게 주기로 했다.
안 그래도 최대호 사건 이후 김동수는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당사자인 자신조차 민망할 정도로 사과를 했다.
김동수도 변호사를 통해 알아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김시우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법을 잘 피해 간 최대호가 오히려 똑똑하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가져가는 게 더 어렵다고 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이미 그쪽에서 제작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기에 변수가 너무나 많아 티저만 나온 지금은 알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이후 김시우는 더블유 스튜디오에도 대본을 건네주며 주·조연을 고를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권한은 김시우에게 주어졌고, 주연 배우는 합의를 통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대신 캐스팅 이외 모든 일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대본 리딩도, 촬영장도, 감독도, 전부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다.
컴퓨터 앞에 앉은 김시우는 배우들을 검색하며 그들의 이미지와 대본 속 인물을 비교하기 바빴다.
“바쁘다···. 바빠···.”
김시우는 당장에 캐스팅 일만 해도 너튜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렇다고 캐스팅 전권을 맡기자니 김민호 같은 놈이 자기 작품에 나올까 봐 신경이 쓰였다.
“이거 배우들을 잘 아는 사람도 필요하겠는데?”
***
어느덧 시간이 지나 금요일.
김시우의 아이디어를 가져가 만들어 낸 `돼지컬 100`의 1화가 나왔다.
1화를 보는 순간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져갔을 거라는 의심이 더욱 커졌다.
이유는 바로 너튜버가 오프닝을 진행하면서 한 말 때문이었다.
-사실은 제가 갑자기 이런 대형 콘텐츠를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회사에서 갑자기 좋은 제안이 들어와서. 한 2주 전쯤이었나? 여러분들이 보실 땐 3주 전쯤이겠네요. 갑자기 초콜릿 엔터에서 이런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기획서를 보여주었는데. 너무 재미있을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부랴부랴 준비해서 찍게 되었는데 조금 부족하더라도 재미있게 봐주세요.
우연히 시기가 겹쳤다?
그러기엔 저 너튜버의 공지사항엔 아무것도 올라와 있지 않았었다.
말 그대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촬영한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 먼저 올리면 안 된다는 듯이···.
합리적 의심에도 김시우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영상을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영상은 확실히 대형 제작사라 그런지 적당히 재미있었다.
“그래, 그거 하나 줄 테니까. 목 닦고 기다리고 있어라.”
오히려 이 일을 김시우의 의지를 불태워주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1화를 전부 본 김시우는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네, 김시우 작가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작가님. 이번 드라마를 맡은 김진만입니다. 그냥 편하게 김진만 PD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김시우가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표봉수에게 연락처를 받은 이번 드라마의 프로듀서였다.
“네, 알겠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드라마 캐스팅 관련으로 회의를 하고 싶은데 언제가 괜찮으실까요?”
“저희는 언제든 작가님 편하신 시간에 해도 좋습니다.”
너무 극진한 대접에 김시우는 부담스러웠지만, 견뎌야 했다.
“아 맞다. 대본은 받으셨죠?”
“네, 받았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까지 각자 어울리는 배우들을 고른 다음 회의하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괜찮고 말고요. 그럼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김시우는 온종일 컴퓨터에서 배우 이름을 검색하기 바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토요일이 되자 김시우는 차를 끌고 이해수가 사는 인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대학가 앞 원룸촌이었다.
이해수는 돈을 많이 버는 변호사라는 직업과 다르게 좁은 원룸에 살고 있었다.
“여기가 맞나?”
김시우가 차에서 내려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이해수가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쉬는 게 오랜만이라 잠을 좀 오래 자서···.”
“괜찮아요.”
사실 서울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이해수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집 앞까지 데리러 가겠다고 한 김시우였다.
“어떻게 해요? 저 때문에 영화 시간이 지나서···. 표는 제가 다시 사드릴게요.”
“네? 아니에요. 그건 표를 못사는 거라···.”
김시우는 이해수에게 영화를 보자고만 했지, 시사회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네? 아직 오후 3시인데 벌써 다 끝난 건가요?”
“그게 아니라···. 사실 시사회라서.”
시사회라는 말에 이해수의 표정이 더 울상이 되었다.
서둘러 시사회를 진행하는 서울의 한 영화관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김시우는 울상인 이해수를 열심히 달랬지만, 효과는 없었다.
영화관에 도착하자 이미 시사회는 끝이 났고, 사람들은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시우는 거의 울기 직전인 이해수를 보며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다 익숙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해수 씨, 잠시만요.”
김시우는 서둘러 달려가 인사를 건넸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어? 김 작가님? 여긴 어쩐 일로?”
익숙한 사람은 바로 `Don`t forget`의 편집팀장이었다.
“그 오늘 지인이랑 시사회를 오려고 했는데 제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조금 늦었는데···. 죄송하지만 한 번만 더 틀어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민폐라는 거 아는데 너무 보여주고 싶어서···.”
편집장은 김시우의 뒤에 서 있는 이해수를 보더니 약간의 오해를 하며 흐뭇하게 대답했다.
“아이, 당연히 틀어드려야죠. 어차피 이 상영관은 오늘 저희가 빌린 거라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른 들어가세요. 바로 틀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시우는 연신 편집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이해수에게 돌아갔다.
“갑시다.”
“네? 아···. 네.”
이해수는 자신을 데리고 반대쪽으로 향하는 김시우를 보며 역시 잘 안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팝콘 매장이었다.
“여긴 왜···.”
“영화 보려면 팝콘 먹어야죠. 아, 팝콘은 변호사님이 사주세요.”
“네! 오징어도 사드릴게요.”
그렇게 아무도 없는 빈 상영관에 이해수와 김시우 단둘이서 가장 중간의 자리에 앉았다.
이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해수는 팝콘도 오징어도 먹지 않으며 영화에 집중했다.
김시우는 한번 보았던 영화라 다소 집중력이 떨어졌지만, 확실히 2번째로 보는 영화임에도 배우들의 감정들이 와닿았다.
`말 걸면 안 되겠네···. 팝콘 좀 먹으라고 하려 했는데.`
너무 집중한 이해수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민폐인 것 같았다.
`그보다 영화 별로 관심 없다고 했으면서 되게 좋아하네?`
영화가 하이라이트로 갈수록 이해수는 점점 영화에 몰입했는지 어느새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스윽.
김시우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건넸고, 이해수는 꾸벅 목인사를 한 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시우가 말을 건넸다.
“해수 씨, 잘 봤어요? 어때요? 이 영화 그래도 제가 쓴 건데.”
“…”
이해수는 아직 감정정리가 덜 되었는지 눈물을 닦느라 바빴다.
잠시 후 눈물이 멈췄는지 조금 잠긴 목소리로 김시우를 부르는 이해수였다.
“작가님.”
“네?”
“저 영화 좋아하나 봐요.”
고개를 숙인 채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이해수는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며 김시우의 손을 잡았다.
“앞으로는 제가! 작가님의 작품을 지켜드릴게요.”
반짝거리며 바라보는 이해수의 눈빛은 조금 맛이 간 것 같았다.
“아···.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는 몰랐다.
이해수가 진심으로 영화에 빠지게 되어 엄청난 아군이 되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