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오만과 편견 (1)
“무…, 무슨 소리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잔뜩 당황한 남자는 차용석의 눈길을 피했다.
냉커피를 벌컥 들이마시며 평정심을 찾으려 하는 그에게 차용석이 덧붙였다.
“이번에 저희 팀에 사진 보낸 것도 그쪽이죠? 조 기자한테 사진 팔아서 번 돈으로는 부족하셨나 봐요. 아니면 이런 일에 맛 들이신 건가요, 이양섭 씨?”
“저기, 팀장님….”
“보아하니 지금 다니는 직장도 괜찮으시던데. 뭐가 모자라서 남의 SNS를 해킹하고 조작해서 이렇게 돈을 버십니까?”
차용석이 자신의 신상을 훌훌 읊자 이양섭은 급하게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만 하세요. 지금 그쪽이야말로 남의 신상 턴 것 아닙니까? 이러면 제 쪽에서도 가만히 있지…”
“우리가 그쪽을 고소하면 그만이죠. 윤지민 씨의 SNS를 해킹해서 얻어낸 사진들, 조삼식한테 팔아넘긴 죄. 그리고 한태주로 위조해서 우리 팀에 보낸 사진들로 돈 뜯어내려 한 죄. 이것만 합쳐도 형량 세게 나올 겁니다.”
푸근한 인상의 차용석이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하게 나오자, 이양섭은 이제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저 돈 좀 벌려고 했던 것뿐인데, 저쪽에서 고소를 때린다고 하니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아이씨….”
잠시 고민하던 이양섭은 빠르게 현실과 타협했다.
“팀장님, 우리끼리 조용히 해결합시다. 괜히 경찰 엮이면 그쪽도 나도 일이 복잡해져요.”
“그건 내가 결정할 일이고.”
차용석이 눈을 마주치며 그를 강하게 압박했다.
“말해봐요. 조삼식은 어떻게 만나게 된 겁니까?”
“뭐…, 돈 때문에 만난 거죠. 일 하나 해결해주면 거액을 준다기에, 냉큼 물은 것뿐인데….”
이양섭이 짜증 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연예인도 아니고 일반인 SNS 해킹하는 거라 별문제 없을 줄 알았어요. 그냥 사적인 의뢰라 생각했거든요.”
“윤지민 씨가 윤지호 씨 여동생인 줄 전혀 몰랐다, 이 말이군요.”
“당연히 몰랐죠! 그런 장애인이 톱아이돌 여동생이라니, 도저히 매치가 안 되잖아요.”
차용석의 매서운 눈길에 이양섭은 깨갱거렸다.
“아무튼 저는 돈 벌려고 한 것뿐입니다. 연예인 협박하고 사건 조작하고, 그런 건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조삼식한테 뭐 들은 건 없습니까?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의뢰를 했을 리 없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잠시 생각하던 이양섭이 고개를 들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연예계의 판을 흔들거리고. 무슨 연예 매니지먼트 대표와 손잡고 하는 일이니까, 잘해야 한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 말에 차용석이 눈을 번뜩였다.
“그게 누군지는 못 들었습니까?”
“네, 이름은 못 들었어요. 그저 모든 게 자기가 짠 판에 완벽하게 걸려들 거라고. 그 소리밖에 안 했어요.”
차용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더러웠다.
이제는 정말 이 똥구덩이에서 탈출할 때였다.
물론, 그 전에 처리해야 할 인간들이 있었지만.
* * *
“이제 조금만 버티면 돼.”
혼자 대표실에 있던 장희재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제 한태주가 FA로 나올 일이 얼마 남지 않은 이때.
장희재는 어떻게든 한태주를 묶어둘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이제 차용석이 어디로 가든 그건 알 바 아니다.
그때, 문을 열고 탁시준이 들어왔다.
그는 한껏 감정이 고조된 듯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대표님, 수안이가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던데요. 재계약 관련해서 일이 잘 안 풀린 겁니까?”
“안 풀리기는, 아픈 아버지 이야기 꺼내니까 고분고분하던데, 뭐.”
탁시준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자 장희재는 즐겁다는 듯 덧붙였다.
“역시 가족만큼 강력한 협상 카드는 없다니까. 아마 한태주한테도 통할 거야.”
“한태주요?”
“내가 술자리에서 말하지 않았었나?”
장희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한태주 재계약 카드로는 걔의 숨겨진 가족을 꺼내 들 생각이야. 법조계의 로열패밀리, 강씨 집안이 한태주 아버지와 고모랑 피를 나눴거든.”
“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가족을 건드리는 건….”
“그래서 한태주한테 한번은 기회를 주려고. 자기 앞날을 선택할 수 있게.”
음흉한 미소를 짓던 장희재가 덧붙였다.
“재계약하고 이 건을 묻어두느냐, 아니면 풀어주는 대신 세상에 공표하느냐.”
* * *
그날 저녁.
강승민의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태주는 그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
윤지호의 여동생 건으로 그를 찾는 언론의 요청은 내일로 미뤄두었다.
그만큼 강승민의 연락이 급했으니까.
그가 연락을 해왔다는 건 이중협의 일이거나, 아니면…….
[강 검사가 정말 네 사촌 형이란 말이야?]태주와 나란히 걷는 강승민을 보던 이중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눈매가 닮았나?]‘그렇게 닮았어요? 제 친구들은 도플갱어라고 하던데.’
[너희 둘이 형제라고 우기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할 정도?]“여기예요. 제 단골집.”
강승민이 걸음을 멈추며 태주에게 식당을 소개했다.
맛집이라며 태주를 허름한 백반집으로 데려간 그였다.
태주는 세련된 이미지의 강승민을 쭉 훑어보며 말했다.
“꼭 양식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만 써실 것 같은데, 이런 곳도 아니세요?”
“아, 예전에 조폭 관련 수사하다가 알게 된 집인데, 여기가 그렇게 맛있더라고요.”
강승민이 멋쩍은 듯 덧붙였다.
“여기 사장님이 참 인자하고 좋은 분이세요. 무엇보다 삼치구이를 잘하시고요.”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던 태주는 뭔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중협을 쳐다봤는데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여기, 권혁두 어머니가 하시는 밥집 아니냐?]‘맞아요! 뭔가 좀 바뀌기는 했지만. 그래도 특유의 포근한 냄새는 여전하네요.’
몇 없는 손님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태주와 강승민.
곧이어 주름진 할머니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녀는 태주와 강승민을 번갈아 보더니, 눈웃음을 지으며 매우 반가워했다.
“이게 누구신가, 강 검사랑 한 배우 아니야!”
태주를 알아보는 듯한 할머니에게 강승민이 놀란 눈을 치켜떴다.
“한태주 씨를 아세요, 할머니?”
“알다마다.”
할머니는 마치 친손자를 대하듯 태주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우리 태주 덕분에 내가 우리 아들놈 진심도 알고, 오해도 풀었잖아. 제대로 된 생일상도 받고.”
“권혁두 씨를 알아요, 태주 씨?”
사정을 모르는 강승민은 태주와 할머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설명을 원하는 그의 간절한 눈빛에 태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말하자면 길어요. 그런데도 듣고 싶으세요?”
“네. 이왕이면 디테일 하나도 빼지 말고 모든 것을 들려주세요.”
강승민이 눈을 반짝이며 덧붙였다.
“저녁 시간은 기니까요.”
* * *
두 젊은 남자가 앉은 테이블에는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태주와 강승민은 몇 번 안 만난 사이임에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처럼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리고 식사 내내 강승민은 태주를 챙겨주려 애썼다.
마치 의식적으로 형 노릇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달까.
반찬을 그의 수저 위에 놓아준다거나, 속은 괜찮냐고 물어봐 준다든지 말이다.
소주가 한 잔, 두 잔 늘어날 때마다 그들의 대화는 좀 더 깊어졌다.
“정말 한태주 씨는 제가 예상한 범위를 매번 벗어나네요. 아역배우를 하다가 그만둔 것도, 다시 연기를 시작한 것도 그렇고. 의지가 대단해요. 부모님 없이 살아간다는 거, 정말 어려운데.”
“부모님과 진배없는 고모가 계셔서 견딜 만하더라고요. 그리고….”
태주는 옆에 있던 이중협을 힐끔거렸다.
‘친형과 진배없는 이중협이란 남자도 있고요.’
[흐흐.]이중협이 기분이 썩 좋다는 듯 키득거렸다.
하지만 맞은편에 있던 강승민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의 눈에 태주의 눈이 오롯이 담겼기 때문.
마냥 자신감 넘치는 자신과는 다른, 형용할 수 없는 깊이가 있는 눈이었다.
아마도 그건 그의 인생에 굴곡이 많았기 때문일까?
그리고 모든 건 할머니가 태주의 아버지와 고모를 보육원으로 쫓아내면서 시작됐을 터다.
권리를 빼앗긴 그들에게 어떻게 보상해 줘야 할까?
왜 여태까지 아버지는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을까?
태주의 고모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왜 여태껏 연락을 안 했을까?
“강승민 검사님.”
여러 고민에 빠진 강승민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은 건 태주였다.
“오늘 절 이렇게 보자고 하신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사적으로 저녁 먹으면서 대화 나눌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잠깐만요, 태주 씨, 사실은 내가….”
강승민은 술기운을 빌려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태주야, 내가 형으로서 편하게 말할게. 무슨 소리를 해도 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우리 할머니 때문에 그동안 너희 가족을 찾을 생각 못 했어. 자신이 살아계실 적에는 절대로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우리 미련한 아버지가 그대로 따랐던 것 같아.”
자신의 아버지가 태주의 부모님 장례식에 왔다는 것을 모르는 듯한 강승민의 말.
태주는 씁쓸한 숨을 삼켰다.
“그래요, 그럴 수 있죠.”
“정말이야. 집안에서 너희 가족 이야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어. 나는 아버지가 말씀해주시기 전까지 작은아버지가 있는 것도, 고모가 있는 것도 몰랐거든. 그리고 국민배우 한태주가 내 사촌 동생이라는 건 더더욱 몰랐고.”
“사촌 동생 태희도 있죠.”
“아…. 그 사실도 최근에 알았어.”
강승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덧붙였다.
“아무튼 아버지가 그동안 못 챙긴 걸 후회하신다면서.이제는 태주 너희 가족도 우리 가족이라고 하셨어.”
“글쎄요. 새로 생긴 가족이란 존재가 지금 와서 필요한지 잘 모르겠네요.”
“그게 무슨 말이야, 섭섭하게.”
강승민의 말에 태주가 냉정하게 받아쳤다.
“저도 제법 이름 알려진 배우고, 강승민 검사님도 제법 이름 알려진 법조계 집안사람이죠. 그러니 우리가 가족이란 게 밝혀진다면, 그쪽 할머니가 저희 아버지와 고모를 버렸다는 이야기까지 알려질 텐데. 과연 그분이 이런 이야기가 세상에 밝혀지는 걸 달가워하실까요?”
“걱정하지 마, 우리 할머니는….”
“강승민 검사님의 아버지, 강원경 씨는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라고 하셨죠. 그래서 여태껏 제 가족도 찾지 않았던 거고요.”
태주가 씁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서로에게 득이 되지 않는 가족은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저희를 버렸던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강승민이 핏대를 올리며 태주를 설득했다.
“아버지, 너희 가족을 내버려 둔 것을 정말 후회하고 있어. 우리는 이제라도 너희 가족의 든든한 뒷배가 되고 싶다. 그러니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
귀신 보는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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