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현재와 미래가 교차하는 순간 (1)
추석대는 주변의 호들갑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어색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한 태주는 분위기도 풀 겸 말을 건넸다.
“감독님께서 추석대 씨 연기 잘하신다고 칭찬이 많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직접 뵙고 싶었는데. 와, 오늘 연극도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태주의 미소에 추석대는 입술을 콱 깨물었다.
그런 그들 옆에서 여자들이 재잘거렸다.
“우와, 태주 씨가 석대 오빠 진짜 좋게 봤나 봐요! 오빠, 이제 앞길 트였다.”
“좀 조용히 해, 남들이 오해하겠어!”
“오빠, 왜 그렇게 흥분해요. 태주 씨가 오빠 마음에 들어 하는 게 불법도 아닌데.”
추석대가 주먹을 꽉 쥔 채 재차 중얼거렸다.
“난 절대 주연배우 픽으로 꼽사리 낀 게 아니야. 맹세코, 나는 오디션에서 오직 내 실력으로만 승부했다고.”
추석대의 격한 반응에 태주는 당황스러웠다.
자신의 방문을 그가 썩 반기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괜히 온 건가? 같은 드라마에 들어가서 격려차 온 거였는데.’
그런 태주를 본 이중협이 정곡을 찔렀다.
[자존심 상해서 그래.]‘저한테요?’
[내가 딱 보니까 추석대는 너한테 괜한 자격지심과 질투심을 느끼는 거 같아. 너를 싫어하는 건 아냐. 다만 나이도 어리고 실력도 있는 네가, 아무런 사심 없이 자신의 연기를 칭찬하니까 자괴감이 드는 거지.]‘아,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때, 추석대가 벌게진 얼굴로 태주를 바라보다 눈이 딱 마주쳤다.
휙.
그런데 그의 눈에서 미안함을 읽은 순간.
태주는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이야기 좀 해요.”
결국 대기실 밖으로 나온 추석대와 태주.
얼떨결에 끌려 나온 추석대는 태주가 건넨 꽃다발을 든 채였다.
그 모습에 태주가 씩 웃었다.
“제가 꽃다발도 드렸는데, 연극 보러 온 손님한테 너무 야박하신 것 아닙니까?”
“안 그래도 커피 한 잔은 살려고 했어요. 저, 나 보려고 온 사람 쫓아내는 그런 야박한 놈 아닙니다.”
추석대가 어깨를 으쓱하며 태주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간 시선에는 일말의 호기심이 가득 서려 있었다.
* * *
얼마 후.
극장 내 복도 의자에 앉았던 태주는 추석대에게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받았다.
“이거 드세요. 카페라도 나가서 사드리고 싶은데 다음 타임 연극 연습 때문에 나갈 수가 없네요.”
“괜찮습니다. 추석대 씨 시간을 많이 뺏을 생각은 없거든요.”
태주가 종이컵에서 찰랑거리는 커피를 응시했다.
“그리고 저도 사실 커피믹스 좋아해요. 고등학생 때는 거의 매일 먹어서 살찐다고 고모한테 금지당할 정도였다니까요.”
태주가 종이컵 속 커피믹스를 원샷해 보였다.
그런 태주를 빤히 바라보던 추석대는 불쑥 물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너무 퉁명스러웠죠?”
“당황스럽기는 했는데, 이렇게 사과해주시니 다 풀렸습니다.”
태주의 말에 멋쩍은 표정을 짓던 추석대.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물어왔다.
“그런데, 진짜 왜 온 겁니까? 단순히 절 보러 오신 건 아닌 거 같은데.”
“흠흠.”
사실 충동적으로 추석대의 연기를 보러 온 태주로서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했다.
드라마 ‘굿맨’에서 조연출로 변장하고 본 추석대의 연기는 홀릴 듯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추석대에게 제대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사나다 유키의 존재 때문이다.
일평생 가부키를 하던 추석대가 한국으로 와 새로운 연기를 한다는 것에 관심이 끌려서.
언제나 솔직함을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없는 법.
그는 결국 솔직하게 내뱉기로 했다.
“석대 씨 연기를 보고, 제가 자극을 많이 받아서요. 그래서 또 보고 싶어졌거든요.”
“아하…….”
추석대는 태주의 칭찬에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에 태주가 갸웃하자, 그의 친구였던 유키가 대신 해석해 주었다.
[저 친구, 원래 칭찬에는 부끄러움이 많아요. 그래도 저거, 좋아하는 표정이에요. 귀가 붉어졌잖아요.]그러고 보니, 추석대의 귀가 붉어져 있었다.
태주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참으며 그를 응시했다.
획.
보이지 않는 시선을 느꼈던지 추석대가 잠시 고개를 흔들었다.
“저라는 배우를 보고 싶어서 굳이 여기까지 오셨다는 거죠?”
“네.”
“왜요? 한태주 씨 같은 주인공은 제 할 일에만 신경을 쓰면 되지, 굳이 저 같은 배우한테까지 신경을 쓰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작품을 같이 이끌어야 갈 동료이자, 배우니까요. 저는 주연, 조연 가리지 않고 다 같은 배우라 생각합니다. 더욱이 추석대 씨는 메인 악역으로, 작품 내내 저와 발을 맞춰갈 중요한 역할이시고요.”
쉴 새 없이 말을 계속하던 태주는 추석대의 사뭇 진지해진 눈을 마주쳤다.
“추석대 씨와 같이 연기할 날들이 기대됐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어떻게 연기를 하시나, 궁금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고요.”
“분명 한태주는 슈퍼스타에 주인공인데, 이러는 게 어색하고 이상하네요. 하지만…….”
추석대가 새침한 고양이처럼 팔을 쭉 폈다.
굳었던 그의 얼굴은 어느새 솔직한 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태주 씨의 그런 태도는 마음에 듭니다. 다른 배우들을 부품이 아닌 동료들로 생각하는 그런 마인드도요.”
“그렇습니까?”
“저는 태생이 거칠고 날것이라 태주 씨처럼 그런 낯간지러운 말 같은 건 못합니다. 대신….”
태주는 자기 손을 덥석 잡는 추석대의 온기를 느꼈다.
“태주 씨한테 지지 않을 좋은 연기로 보답할 겁니다.”
“당연하죠. 앞으로 즐겁게 연기해 봐요, 우리.”
그가 씩 웃으며 태주의 손을 흔드는 그때.
태주도 피식거리며 그의 손을 세게 잡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활어 같은 배우인 추석대와 재밌는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잔잔한 연기 생활에 들이닥칠 새로운 활력이라, 더욱 두근댔다.
* * *
그날 저녁.
태주는 서동락, 고성열과 만나 서울의 한 뮤지컬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 ‘탈출’을 촬영하며 친해진 서동락과 고성열은 제법 투덕거리는 모습이었다.
“난 태주랑 단둘이 가는 줄 알았는데. 동락이 너는 안 바쁘냐, 편집 일로?”
“머리 식히고 오라고 감독님께서 휴가 주셨어요. 성열이 형, 태주를 너무 독점하려고 하지 마세요, 원래 태주는 제 겁니다.”
남자 둘이서 투덕거리는 소리에 태주는 손을 들어 끼어들었다.
“자, 자. 둘이 낯간지러운 소리 그만하고, 이제 우리 자리 찾아갑시다. 진혁 씨, 우리 자리 어디예요?”
“저기 앞줄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미리 표를 예매해 준 장진혁의 안내로 태주는 남자 셋과 함께 극장 자리를 찾았다.
임강현이 주연으로 나서는 뮤지컬은 여러 팬으로 빽빽했다.
해당 뮤지컬의 인기도 상당한 데다가, 임강현의 연기가 제법이어서 더욱 인기를 끄는 모양이었다.
가득 찬 관중 속 태주는 유독 관심을 끌었다.
자유롭게 관람하러 모자와 마스크를 벗자, 주변에 있던 팬들은 자그마한 함성을 여기저기서 삼켰다.
“와, 한태주다! 이따가 사인받아야지.”
“임강현이랑 절친이라더니, 관람하러 왔나 봐.”
“그 옆에는 누구야? 고성열 아냐? 한태주랑 같이 영화 찍는다는 사람.”
“그 옆에는 매니전가? 다른 한 명은 경호원?”
여기저기서 자신을 향하는 관심에 태주는 괜히 뮤지컬 책자를 뒤적였다.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다.”
“넌 좀 뻔뻔해져야 해, 슈퍼스타 한태주 씨.”
옆에 있던 서동락이 혀를 차며 윙크했다.
“톱스타의 덕목은 ‘나르시즘’이라는 거 모르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남이 자신을 사랑해 주는 걸 즐겨!”
“너나 즐겨.”
태주가 피식거리며 서동락의 볼을 잡아당겼다.
곧이어 극장의 불이 꺼지고, 무대의 불이 켜졌다.
무대 위 임강현이 중세 시대 복장과 금발 가발을 쓰고 등장한 순간.
태주의 마음속에는 또 다른 불이 달칵, 켜졌다.
친구이자 동료 배우가 무대 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모습을 보자 감동과 함께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한참 극에 몰입하느라, 그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저 멀리서 자신을 노려보는 알 수 없는 악의를.
몰카를 찍고 핸드폰으로 무언가 바쁘게 치는 남자의 손길은 무척이나 바빴다.
* * *
몇 시간 후.
현필름 대표실에서 차용석을 독대하던 신예지 대표는 침을 튀겨가며 열변했다.
“이번에 칸 영화제 일정 말이에요. 아무래도 태주 씨는 개막식보다 2주 먼저 가서 준비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다들 당일에 도착하기보다는 일찍 도착해서 홍보에 돌입하더라고요.”
“글쎄요, 저희는 좀 정리해 보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차용석이 들고 온 수첩을 뒤적였다.
“이번에 태주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스케줄이 빽빽하게 잡혀 있어서요. 좀 복잡하게 됐습니다.”
“아, 이번에 XTV에서 하는 ‘영스터 뮤지컬’ 시즌 4에 주연으로 나간다면서요?”
“네?”
놀란 차용석에게 신예지가 다 알고 있다는 듯 눈을 찡긋했다.
“저도 미국에까지 다 소식통이 있어요, 차 대표님. 이번에 XTV에서 태주 씨가 노래도 되고 영어도 돼서 ‘영스터 뮤지컬’ 주연 자리로 노리고 있는 거, 다 알음알음 알고 있어요.”
“흐음…. 그렇게 알고 계신단 말이죠?”
차용석이 묘한 표정으로 턱을 쓸어올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 어차피 지금 나오는 것들은 다 썰들이니까요. 나중에 오피셜로 나오면 그때 정식으로 뵙겠습니다.”
“네? 그럼 ‘영스터 뮤지컬’이 아닌 다른 작품으로 태주 씨가 미드 데뷔를 한다는 말인가요? 차 대표, 말 좀 해 봐요, 우리 사이에 뭔 비밀이 있다고!”
입꼬리를 씰룩거리던 차용석은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그러는 신 대표님도, 칸에서 들려오는 소문들, 저희한테 다 말씀 안 해주시잖아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이번에 태주, 칸 영화제 폐막식에도 참석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직원들에게 말씀하셨다면서요.”
“흠흠. 아직 영화제 측에서 공식적으로 답변을 들은 건 없어요. 그렇지만 비공식적으로 들은 건 있죠. 차 대표, 이건 진짜 비밀인데….”
신 대표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차용석에게 말했다.
“태주 씨가 유력한 후보로 올랐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이거, 오프 더 레코드예요.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
“어휴, 당연하죠.”
차용석이 의욕이 가득한 눈빛을 이글거리는 그때.
지잉.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진동 소리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홍보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표님, 지금 태주 씨 임강현 씨 출연한 ‘멋진 백작’ 뮤지컬 관람하는 중인가요?
“그럴걸? 아마 진혁이하고 같이 갔을 텐데, 왜?”
-하, 지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제가 글 보내드릴 테니 좀 보시겠어요?
전화를 끊자마자 도착한 커뮤니티 캡처본.
글을 보던 차용석의 얼굴이 믿을 수 없는 듯 멍해지는 순간이었다.
“태주가 뮤지컬 관람 중에 비매너 행동했다고?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귀신 보는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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