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68
368화
톱스타의 자격 (4)
* * *
동시각, 원스타 엔터테인먼트.
소녀들로 가득한 연습실에 매니저 한 명이 들이닥쳤다.
“채빈이 나와봐. 설채빈!”
화가 단단히 난 매니저를 본 설채빈이 걸어 나왔다.
방금까지 춤 연습하느라 입고 있던 트레이닝 복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저희 지금 연습 중인데요.”
“잔말 말고 이리 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리더가 설채빈을 보호하고 나섰다.
“오빠, 저희 연습해야 해요. 채빈이 스케줄이 워낙 바빠서 지금 겨우 시간 맞춘 건데…….”
“지금 연습이 문제냐? 설채빈, 네가 지금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지 알기나 해!”
“언니, 나 잠깐 오빠랑 얘기하고 올게요. 돌아와서 연습할 테니까 기다려 주세요. 죄송해요.”
리더에게 고개를 깍듯이 숙인 설채빈이 매니저를 따라나섰다.
그 뒤에 남겨진 멤버들이 쪼르르 리더에게 달려왔다.
“언니, 매니저 오빠 왜 채빈이한테 저래요? 설마, 우리 어젯밤에 채빈이가 시켜준 치킨 먹은 거 들킨 거예요?”
“아니야, 그런 거.”
짐작이 가는 게 있었지만, 리더는 애써 입을 다물었다.
동생을 대신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게 미안했기 때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채빈이가 매니저에게 많이 혼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뿐이었다.
이번에 채빈이가 저지른 일은, 매니저의 허락 없이 벌인 일이었으니까.
* * *
한적한 복도에 마주 보며 서 있는 설채빈과 팀장급 매니저.
매니저는 자신의 눈을 피하지 않는 설채빈을 마뜩잖은 듯 바라보았다.
“그래서, 네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는 거냐? 네가 선구안이 뭐가 좋다고 네 멋대로 작품을 결정해?”
“하지만 보라 언니도 이 영화, 재밌다고 했어요. 오디션 준비한다고 한걸요.”
“퀸즈의 임보라? 야, JKP에서는 이미 본부장급 선에서 이 시놉 거절한 지 오래야!”
그건 미처 몰랐던 듯 설채빈의 예쁘장한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네? 정말요?”
“이제 알겠냐? 이 작품, 배우들의 무덤이라 불리고 있어. 그래서 다들 피하는 분위기라고.”
“하지만 태주 오빠가 주연으로 들어갔잖아요. 베일릭스가 투자로 붙었고요.”
“베일릭스는 돈이 넘쳐나니까 그런 거고. 한태주는 젊은 혈기에 실수하는 거지. 채빈아, 너 세상 물정을 이렇게 모르냐?”
한심하다는 듯 설채빈을 바라보던 매니저가 훈수를 두었다.
“이번에는 한태주가 잘못 생각한 거야. 아무리 톱배우가 주연이라 해도 이런 쌩 초보 감독 영화가 완성도 있게 그려질 리 있겠냐? 한태주가 연기력으로 멱살 잡고 끌어간다 한들, 이건 절대 성공할 리 없는 작품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오빠뿐 아니에요? 그리고 솔직히, 저희 회사도 이 작품 탐냈었잖아요. 원래 대표님도 이 작품에 투자하려고 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이런 건방진!”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오른 매니저가 손을 들어 올렸다.
금방이라도 때리려는 듯한 모양새에 설채빈은 눈을 부릅떴다.
“연습생 때처럼 뺨 때리시려고요? 어디 그렇게 해 보세요. 그런데 저 내일 화장품 광고 찍는데, 상처 나면 오빠 때문이라고 해명하셔야 할 거예요.”
“약아빠진 년, 데뷔하더니 머리만 커져 가지고.”
그때, 뒤에서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연습실 문을 살짝 열어둔 채 설채빈을 걱정스럽게 보던 멤버들이었다.
매니저가 그들에게 눈을 부라렸지만, 멤버들은 끝까지 문을 닫지 않았다.
어이없다는 듯 매니저가 설채빈에게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네가 지금 이런 단독행동 벌이는 거, 멤버들한테 피해 주는 거라는 거 알고 있냐? 블루밍이라는 그룹에 파동이 이는 거라고 너 때문에.”
“글쎄요. 저희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할 걸요.”
“너, 회사에서 잘리고 싶으면 알아서 해.”
“아이고, 무서워라.”
“너, 지금 폴라리스 보고 뭔가 단단히 착각했나 본데. 윤지호는 떨어질 떡고물이라도 많았지, 너네는 그런 것도 없어.”
“두고 보세요. 제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꼭 증명해 보이고 말 테니까. 제 모든 것을 걸고 오디션에 임할 거예요.”
설채빈이 지지 않겠다는 듯 매니저에게 이글거리는 눈을 마주쳤다.
평소 순하게 반짝였던 눈동자는 지금, 굳건한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 * *
다음날, 서울의 한 스튜디오.
물에 젖은 헤어스타일에 목까지 잠근 금욕적인 양복 차림의 태주가 ‘루이스 모드’ 엠버서더 화보 촬영 중이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태주는 조명 밑에 아닌, 물에 들어가 있다.
“푸하!”
1분간 잠수하다 물 위에 숨을 쉬러 올라온 태주.
그런 태주에겐 포토그래퍼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요! 조금 쉬었다 합시다”
30분째 촬영을 한 끝에 주어진 휴식.
태주는 서둘러 물에서 나와 포토그래퍼가 보여주는 사진들에 집중했다.
“이 컷, 좋은 것 같습니다.”
포토그래퍼가 한 사진을 가리켰다.
은빛과 푸른빛이 어우러진 물속에서 검은 양복의 태주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단추를 풀은 겉옷이 물결에 흔들리며 마치 날개처럼 펴진 모습이 신선했다.
“물속의 세이렌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원래 세이렌은 여자 아닌가요?”
“여자든 남자든 무슨 상관이에요? 보는 사람을 유혹할 수만 있으면 됐지. 입는 자를 유혹하라는 게 루이스 모드의 철칙이니까요.”
눈을 찡긋한 포토그래퍼가 드디어 컷을 건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이런 나른한 눈빛, 아주 좋아요. 그런데 딱 하나, 양복이 펄럭거리는데 양팔도 너무 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이 점만 좀 정리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1분만 쉬었다가 촬영 재개할게요!”
장시간의 수중 촬영으로 창백해진 태주에게 여러 명이 달려들었다.
큰 타월을 들고 그를 감싼 박인우.
그의 메이크업과 헤어를 수정하러 온 스태프들.
옆에서는 이중협이 안타까운 듯 그의 곁에 꼭 붙어 있었다.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물속에서 나의 숨을 네게 나누어주고 싶구나. 내가 입고 있는 트렌치코트로 널 감싸서 따듯함을 전해주고 싶고.]이중협의 능청스러움에 태주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맨날 말로만 그러니까 진심이 안 느껴지네요.’
파랗게 질린 태주의 입술을 본 이중협이 혀를 끌끌 찼다.
[해외 브랜드는 다 이렇게 힘들게 촬영하나? 의류 화보를 물에서 촬영한다는 건 처음 들어보네.] [형이 톱스타가 아니라 모르는 거예요. 원래 수중 촬영은 의류가 물 위에서 떠다니기 때문에 좀 더 우아하고 신비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요.]옆에서 끼어드는 온재훈의 말에 이중협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온재훈이 태주에게 충고했다.
[무작정 숨을 많이 들이쉰다고 물에서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입을 크게 벌리지 말고, 입을 오므려서 가늘게 호흡해야 더 많은 숨을 들이마실 수 있어요. 한번 따라 해 봐요.]긴가민가했지만 태주는 일단 그의 가르침에 따랐다.
입을 크게 벌려 무작정 공기를 많이 들이마시려던 이전보다 지금이 더 버티기가 쉬웠다.
‘진짜 효과가 있어요! 고마워요, 재훈 씨.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으면 더욱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겠어요!’
“태주 씨, 촬영 재개합시다!”
“네, 갑니다!”
다시 시작된 촬영에 태주는 얼른 수족관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태주는 가늘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곧장 물속으로 잠수했다.
시린 물결이 찰랑대는 수중에서 태주는 곧장 포즈를 취했고, 주변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야, 물속 세이렌 컨셉이 이렇게 잘 먹힐 줄이야.”
“난 바다에서 저런 세이렌 만나면 그냥 안겨버릴래. 도저히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 것 같아.”
계속되는 촬영은 태주의 긴 호흡 덕분에 더욱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런 태주를 흐뭇하게 보던 이중협이 옆에 있던 온재훈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맙다, 네 덕분에 촬영이 좀 더 수월해진 것 같네.] [뭘요.]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런 걸 아는 거냐? 톱스타라 아는 건가?] [……어머니가 해녀 출신이세요. 저도 어머니 따라서 일 도와드린 적이 몇 번 있어요. 그래서 알았죠.]장난스럽게 물은 질문에 진지한 답이 돌아오자.
이중협은 당황해서 눈동자를 세게 굴렸다.
[아…… 그렇구나.]이번에도 톱스타니까 당연히 알고 있는 거라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이 녀석, 이런 뜻밖의 과거가 있을 줄 몰랐다.
그런데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재훈의 이런 과거가, 스스로 자신이 톱스타라고 굳게 믿게 된 일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 * *
그날 밤.
화보 촬영을 끝낸 태주는 박인우가 안겨주는 뜨거운 핫초코를 마시며 집으로 향했다.
“흐앗, 이제야 몸이 좀 녹는 느낌이네.”
이제 7월인데도 몸이 이렇게 차가워질 수 있다는 걸, 태주는 처음 알았다.
운전석에서 박인우가 그를 알뜰살뜰 챙겼다.
“이제 좀 괜찮아? 상태는 어때?”
“괜찮아. 그보다 핫초코 너무 많이 마셔서 화장실 가고 싶을 거 같아 걱정이다.”
“내가 최대한 빠르게 집으로 데려다줄게. 아니면 중간에 회사 들러서 화장실 가면 되지.”
“내가 형이야? 난 급똥으로 맨날 화장실 가는 형하고는 다르다고.”
“같이 다니면 서로 닮는 거지, 뭐.”
킬킬거리던 박인우가 돌연 주제를 바꾸었다.
“태주 너 오늘 대단하더라. 어떻게 물속에서도 그렇게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냐?”
“누가 해녀 호흡법이라는 걸 알려줘서.”
“해녀 호흡법? 그런 호흡법도 있어?”
“응.”
태주가 백미러로 뒤에 이중협과 나란히 앉아있는 온재훈을 힐끔거렸다.
“아주 유용해서 잘 써먹었어.”
“그런데 태주야, 너 요즘에 유튜브에 떠도는 인기 영상들 봤냐?”
불쑥 생각난 주제에 박인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미스터 버터플라이 관련해서 난리도 아냐.”
“아직도?”
“아직도라니, 이제 곧 ABS에서 추석 특집으로 가왕전 하면 더욱 불이 붙을걸. 그래서 말인데.”
박인우가 태주를 살피며 물었다.
“너, 이번에 가왕전 나갈 거야?”
“흠……. 나가고는 싶지. 그런데 미스터 버터플라이는 미국판 마스크 스타 캐릭터라 그쪽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
“박진주 피디한테 아까 연락 왔는데, 미국 XTV의 허락을 받았다네?”
“그렇게 순순히?”
놀란 태주에게 박인우가 덧붙였다.
“지금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한국에서도 인기가 상당하다는 걸 그쪽도 안 거지. 허락 안 해주는 게 더 손해라고 생각한 거 아닐까?”
* * *
몇 시간 전, ABS 예능국, ‘마스크 스타’ 팀.
편집실에서 한데 모인 피디와 스태프들은 한껏 상기된 표정이었다.
“10%에서 정체된 시청률, 이번 추석 때 확 끌어올리는 거예요!”
박진주 피디가 흥분한 표정으로 스태프들을 마주했다.
“이번에 미스터 버터플라이하고 태양왕 대결은 제일 뒤로 빼죠. 사람들이 가장 기대할 테니까요.”
이번 추석 특집 ‘마스크 스타-가왕전’ 기획은 그들이 제일 공을 들여 준비하는 특집이었다.
“추석이 올해 빨라서 9월 초니까, 7월 말쯤에 촬영합시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출연 확답은 받은 건가요?”
마스크 스타 작가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박 피디를 바라보았다.
“아직이요. XTV 측에서 미스터 버터플라이한테 출연 의사를 물어보고 이번 주까지 답 주기로 했어요. 좀 더 기다려 봅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작 박 피디의 얼굴은 초조함으로 질려 있었다.
“진작에 미리 말해둘 걸 그랬네. 그분이 한태주 씨가 맞다면, 워낙 바빠서 스케줄 빼기도 어려울 텐데.”
지잉.
때마침 전화가 울리자 박 피디가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빼 들었다.
“네, ABS 박진주입니다. XTV의 마이크 씨? 네, 안녕하세요.”
차분하게 시작된 전화가 흥분의 도가니가 된 건 순식간이었다.
“아, 네. 미스터 버터플라이 씨, 출연 가능하다고요?”
그때였다.
스타뉴스, 홍은지 기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피디님, 미스터 버터플라이 출연 확답받으시면 저한테 제일 먼저 연락주세요.
* * *
얼마 후, 동이 트는 시각.
고요하던 연예란이 스타뉴스에서 올린 기사로 발칵 뒤집혔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