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542
외전 12화
프러포즈 대작전 (12)
저돌적인 태희의 고백.
송도준은 당황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태희가 잔잔히 읊조리듯 말을 잇자 그 눈이 더욱 커졌다.
“네가 전화로 고백했을 때부터 줄곧 생각했어. 너는 용기 있게 마음을 두 번이나 말해줬는데, 나는 비겁하게 뭐 하는 건가. 친구로 오래 지내고 싶다는 핑계로 비겁하게 네 고백에 답하는 걸 미뤄온 건 아닌가, 하고.”
“태희야.”
“그런데 기사 나니까 오히려 내 마음을, 감정을 정확하게 알겠더라.”
담담하게 자기 마음을 전하던 태희가 도준과 눈을 마주쳤다.
“난 널 좋아하고 있었어. 이제는 사랑하고 싶고.”
“지금 그 말….”
“그래, 사귀자고.”
무릎 위에 얹어진 도준의 손을 끌어와 태희가 덥석 잡으며 선언했다.
“오늘부터 1일이다! 잘 부탁해!”
“고마워, 태희야!”
도준이 진심으로 기뻐하며 태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앞으로 진짜 잘할게!”
“나도 앞으로 잘할게. 조신하고 얌전한 여자친구는 못 될 것 같지만….”
“내가 너한테 바라는 건 하나도 없어. 내가 사랑하는 건 차태희, 너 자체니까.”
“우웩, 너 왜 이렇게 느끼해졌어?”
“원래 사랑에 빠진 남자에게선 달콤한 말들만 나오는 법이야.”
한껏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태희를 바라보던 도준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우리…. 태주 형한테는 언제 말하지? 우리 사귄다는 거?”
“아, 맞다. 어떡하지? 오늘 오빠 전화 한 통도 안 받고 다 씹었어.”
놀란 토끼 눈으로 도준을 응시하던 태희는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에이, 괜찮아. 우리 연애한다고 하면 태주 오빠도 당연히 응원해 줄 거야. 누구보다 날 좋아하고, 너도 아끼니까.”
* * *
며칠 후, 오전.
루이스 모드 쥬얼리 광고 촬영을 위해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 와 있는 태주.
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그는 핸드폰 속 기사에 시선이 꽂혀 있었다.
인터넷 기사를 보던 태주의 눈이 점점 묘하게 변했다.
기사 내용은 일전에 황유나가 쓴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기사 말미에 송도준의 인터뷰가 포함됐다는 것.
-태희를 사랑하는 만큼, 태주 선배에게도 더욱 잘하겠습니다.
“말은 잘하네.”
딸 가진 아빠도 아닌데 괜히 입술을 비죽거리게 되는 태주였다.
정작 용석이 형이나 고모는 태희와 송도준의 연애를 축복하며 기뻐해 줬는데.
자신만 마음이 좁은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둘의 사이를 응원했는데, 막상 사귄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고개를 내민 것이다.
그때 옆에서 기사를 힐끔거리던 스태프들이 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한태주 씨, 축하드려요.”
“송도준 씨가 매제 되게 생겼네요. 호호.”
“사촌 여동생분도 미인이시던데, 도준 씨가 운 좋았네요. 그런 미인 분과 사귀다니.”
“혹시 예전부터 태희 씨랑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거 아니에요? 태주 씨가 도준 씨를 예쁘게 봐서 둘 사이가 이렇게 진전될 수 있었던 거고요!”
“하하, 글쎄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태희가 착각한 거라 의미가 다르긴 해도, 둘이 예전에 사귄 적 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
태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하루종일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라곤 태희와 도준이의 연애 소식뿐.
송도준은 연예인이니까 그렇다 쳐도 왜 태희한테까지 이렇게 관심이 많은지 도통 모를 일이다.
“자, 리허설 해 봅시다. 태주 씨 준비 다 됐어요?”
“네, 끝났습니다!”
태주는 거울이 가득한 촬영장 중앙으로 향했다.
이번 루이스 모드 쥬얼리의 콘셉트는 나르키소스.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 * *
몇 시간 후.
촬영이 끝나고, 태주는 포토그래퍼와 스태프들에 둘러싸여 찍은 사진들을 둘러보았다.
“이야, 오늘 샷 정말 멋지게 잘 나왔다.”
“몇 점은 패션 잡지, 노블에 보내서 다음 달 호에 실어달라고 하려고요. 이거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음….”
태주가 고민하며 포토그래퍼가 짚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반지를 낀 손으로 거울을 짚고, 거울 속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
눈동자는 마치 사랑에 빠진 듯 홀려 있었다.
“저희 고모가 아주 좋아하시겠는데요. 아마 이걸 메인으로 걸어주실 것 같아요.”
“아, 맞다. 태주 씨 고모님이 패션 잡지 ‘노블’ 편집장이셨죠?”
“그래서 말인데요….”
태주가 흠흠, 긴장된 기색을 숨기며 말을 이었다.
“이 사진들 저한테 보내 주시면 안 될까요? 다른 곳에 유출 시키지 않겠습니다.”
“오호호, 알았어요. 태주 씨 핸드폰으로 보내 줄게요, 대신 보안에 철저히 유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이는 태주의 얼굴에는 약간의 발그레함이 감돌고 있었다.
고모는 핑계고, 윤수안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화해도 좀 더 빨리할 수 있지 않을까?’
태주가 기분 좋은 망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화보 담당자가 그를 톡톡 두드렸다.
“이거, 태주 씨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선물이에요.”
그녀가 내민 자그마한 꾸러미를 태주가 멋모르고 받았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뭔가요…?”
“한번 풀어 보세요. 마음에 드실 거예요.”
유독 자신감에 찬 담당자의 말에 태주는 서둘러 선물을 풀어 보았다.
그곳에는 붉은 루비를 중심으로 섬세하게 세공된 반지가 들어있었다.
“미국에서 어제 배송된 반지예요. 쥬얼리 수석 디자이너께서 메인 모델인 태주 씨를 생각하면서 만들어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두 개네요?”
“그건 저희 쪽에서 부탁드렸거든요.”
담당자가 능청스러운 시선을 반짝였다.
“나중에 혹시라도 태주 씨가 수안 씨한테 프러포즈할 때 쓸 수도 있으니까요. 지난번 미팅 때 관심 있으신 거 같아서요. 호호.”
태주는 손에 든 반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마치 반지가 그에게 미래를 말해주듯,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집으로 돌아가는 길.
태주는 새벽부터 이어진 화보 촬영으로 피곤했는지, 입이 찢어질 듯 하품을 했다.
“어우 피곤해. 나 집에서 옷 갈아입고 좀만 자다가 갈게.”
“그래, 이따가 드라마 촬영하려면 좀 자두는 게 좋겠다.”
백미러로 태주를 살피는 박인우.
자신의 눈치를 보는 듯한 그의 기색에 태주가 말을 걸었다.
“왜 그래, 형. 나한테 뭐 숨기는 거라도 있어? 왜 이렇게 눈치를 봐?”
“아, 그게. 내가 저번에 말을 미처 못한 게 있는데…, 꼭 말해야 할 것 같아서.”
한숨을 삼키던 박인우가 말을 이었다.
“수안 씨…, 아직도 화 안 풀렸지?”
“그렇더라고.”
“이유도 모르고?”
“응, 몰라. 나도 미치겠어.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주더라.”
태주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덧붙였다.
“이럴 거면, 저번에 전화해서 나한테 결혼하자고 한 건 뭐냐고. 술김에 한 것도 아닌 거 같은데.”
“그게, 사실은….”
박인우는 긴장된 침을 꼴깍 삼켰다.
“저번에 소예가 네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수안 씨를 만났나 봐. 그리고 나한테 했던 말을 수안 씨한테도 똑같이 한 거 같고.”
“수안이를 데리고 그런 얘기를 했다고?”
“그리고 소예가 수안 씨한테 자기가 네 전 여친이라는 사실까지 밝힌 모양이야. 걔가 좀 나대는 성격이라…. 하, 나도 모르겠다.”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
왜 윤수안이 그렇게 화가 났는지, 왜 자신을 그렇게 피하는지.
“아, 미치겠네!”
자기 잘못이 분명한 상황에 태주는 잠이 싹 달아났다.
한시라도 빨리 어떻게든 윤수안의 화를 덜어내야 했다.
오늘, 촬영장에서 만날 때를 노려야 한다.
* * *
그날 밤, ABS 실내 세트장 안.
드라마 ‘프러포즈 대작전’은 순조롭게 촬영을 이어가다가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 중이다.
오늘도 도준과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태주는, 여러 스태프에게 둘러싸여 메이크업 수정을 받고 있었다.
“저 램프의 요정한테 이렇게 반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어요.”
“태주 씨 진짜 멋있어요. 특히 오늘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램프의 요정처럼 분장한 거, 진짜 멋있어요. 흐흐.”
“태주 씨하고 사귀는 수안 씨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스태프가 호들갑을 떨며 태주의 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태주 씨는 완벽한데, 다정하기까지 하니.”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수안 씨는 오늘 B팀 촬영인가요? 안 보이시네요?”
“아마 곧 올 겁니다.”
태주가 촬영장 입구를 힐끔거렸다.
그때, 송도준이 헐레벌떡 태주에게 다가와서 주스 한 잔을 건넸다.
“형, 이거 드세요. 보온병에 넣어와서 엄청 시원해요.”
“오, 맛있다. 근데 네가 웬일이냐, 이런 걸 다 챙겨오고.”
“이거 예영이가 싸 온 거예요.”
도준이 어깨를 으쓱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이쪽을 힐끔거리던 예영은 태주와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숙소에서 직접 오렌지 갈아서 만들어 왔대요. 그래서 그런지 좀 알갱이가 씹히는데, 좀 더 곱게 갈 수 없었나?”
“야. 맛있기만 한데, 뭘.”
태주가 예영을 향해 다 마신 주스 잔을 흔들며 잘 마셨다는 표시를 했다.
“고마워요, 예영 씨. 주스 맛있었어요.”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힘내서 촬영 잘 끝마칠 것 같아요. 오늘도 같이 파이팅합시다!”
태주의 말이 거듭될수록 예영의 얼굴은 점점 타는 듯 붉어졌다.
결국 태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떠나 버렸다.
그 모습에 도준이 혀를 찼다.
“형은 안 해도 될 말까지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여자들이 착각하면 어떡해요.”
“뭔 소리야. 후배 격려해준 것 가지고. 그나저나, 너….”
태주가 도끼눈을 뜨며 도준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나는 아직도 네가 태희랑 사귄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하하…. 네, 그렇게 됐어요.”
송도준이 못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기사가 난 게 오히려 저희 둘 사이 진전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태희도 그러더라고요. 이번 일 덕분에 저를 생각하는 자신의 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요.”
“안 그래도 태희한테 그 말은 들었어.”
태주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태희가 일반인이라 기사에 이름 오르내리는 것 자체를 걱정했는데…. 잘 이겨내서 다행이야.”
그때, 촬영장 입구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수안 씨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윤수안의 목소리에 태주가 급히 고개를 돌리자.
마침 자신을 보고 있었는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냉랭한 눈빛은 그대로였다.
‘이대로는 안 돼.’
단단히 결심한 태주가 주먹을 꽉 쥐었다.
촬영 후, 윤수안과 결판을 낼 참이었다.
* * *
“아, 피곤해.”
늦게까지 촬영을 거듭하던 윤수안.
그녀는 차에 올라타 잔뜩 예민해진 몸을 깊게 뉘었다.
평소라면 태주와 함께 돌아가는 그림을 꿈꿨겠지만, 오늘 그는 이미 귀가했을 것이다.
애초에 자신과 촬영 타이밍이 달랐으니까.
태주를 생각하는 윤수안의 얼굴이 복잡하게 변했다.
그가 보고 싶고, 얼른 화해하고 싶다가도. 오늘 촬영장에서 들은 일을 생각하면 다시 화딱지가 났다.
“직접 갈아서 만든 오렌지 주스를 극찬했다고? 진짜 웃겨서. 내가 만들어 줬을 때는 나한테는 그런 칭찬 안 해줬잖아. 그냥 잘 먹기만 했지.”
그러다 괜히 예영에게 질투하는 자신을 인지하자, 수안은 자괴감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때, 운전석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났다.
“오빠, 피곤하니까 얼른 집으로 가요.”
“그래, 집으로 가자.”
그런데 목소리의 주인이 매니저가 아니라 태주였다.
윤수안은 벌떡 일어나 운전석을 확인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태주가 운전대를 잡은 채 차를 출발시켰다.
“뭐야, 왜 네가 여기 있어? 이미 촬영 끝나서 간 거 아니었어? 오빠는 어디 가고?”
“내가 부탁드렸더니 자리 비켜 주셨어. 오늘 둘이 얘기 좀 하자.”
“나 아직 너랑 대화할 마음 없어. 우리 집에 데려가고 싶지도 않고.”
“오늘은 내가 하자는 대로 좀 하자, 수안아.”
태주가 백미러로 윤수안과 굳건한 시선을 맞추었다.
“우리 사이, 이대로 있을 수는 없잖아. 나, 너하고 이렇게 데면데면한 거 괴롭단 말이야.”
태주의 솔직한 말에 윤수안은 입술을 말더니, 이내 고개를 홱 돌렸다.
“…오늘만 봐주는 거야. 알아서 해.”
귀신 보는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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