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174
신을 만드는 방법 (4)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세상에서도, 시간은 여전히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었다.
매일같이 눈을 뜨고, 배급받은 아침식사를 먹고서, 삽을 들고 밖으로 나서는 인생.
나를 짓누르는 의무와 규칙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지탱하는건 이미 사라져버린 과거의 번영뿐이다.
지나버린 번영의 시절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면서, 모두가 저마다의 역할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유로우면서도 분주한 모순적인 풍경.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캠프의 풍경이었다.
“유성아. 요즘에 산책 자주 나간다며?”
창가에 멈춰선 내가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홀짝이고 있으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동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유리창에 비추어지는 동현의 손에도 믹스커피를 타놓은 종이컵이 들려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커피를 한모금 더 홀짝이고서, 동현을 향해 몸을 돌려 이야기했다.
“그래요?”
“그래.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자주 나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설마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거냐?”
동현의 질문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정체불명의 소녀를 만난지 어느덧 2주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배급된 식량을 들고 그녀를 찾아가고는 했다.
소녀를 찾아가서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대부분은 게임이었다.
만화카페에서 챙겨온 보드게임들을 플레이하며, 소녀와 시시한 대화를 나누고는 하는 것이다.
가끔씩은 어딘가에서 찾아낸 간단한 간식거리들을 그녀와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 소녀와의 만남이 잦아지다보니, 동현이 보기에도 수상함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요새 생각이 조금 많아지기는 했죠.”
그렇다고 해서 동현에게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은 때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나는 동현을 향해 적당한 말로 얼버무리고서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커피를 흔들며 웃는 내 모습에 동현은 복잡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형한테 털어놔라.”
“저야 고민이 있으면 항상 형부터 찾았잖아요?”
“요새는 옛날처럼 혼자서 끌어안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 하는말이야.”
“그런 고민은 아니고 그냥··· 일에 치이더라도 출근하던 시절이 행복했구나 하는, 그런 부질없는 생각들이 대부분인데요, 뭘.”
처음에는 설득하기 위해서 찾아간 것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둘이서 조용히 게임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서 소녀를 캠프로 데려와야만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괴상한 대화를 늘어놓으며 비밀을 쌓아나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세계의 진실이니, 신을 만드는 방법이니 하는 소녀의 헛소리야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자취방에서 떠들며 게임을 하는 순간만큼은 과거로 되돌아간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어디 으슥한 곳에 담배 한 보루 숨겨놓고서 혼자만 피는건 아니지?”
“저야 자주 안피잖아요? 냄새 한 번 맡을래요?”
“저리 가라. 내가 사내녀석 냄새 맡아서 뭐한다고.”
능글맞은 태도로 동현의 의심을 뿌리치려고 시도하면, 동현은 손서리를 치며 몇발자국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뒤에서 그를 지켜보던 그룹원 하나가 낄낄거리며 웃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룹원의 웃음소리에 동현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잠시.
동현은 잠시동안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너야 담배보다는 초콜릿을 더 많이 챙겨갈 사람이기는 하지. 혹시라도 담배 찾으면 이야기해라.”
“오··· 초콜릿이네요?”
“산책 나가서 몰래 먹으라고.”
주머니에서 나온 초콜릿이 내 손에 쥐어졌다.
이전처럼 커다란 초콜릿은 아니지만, 자그마한 초콜릿 하나가 내 손아귀에 잡혔다.
나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도 자취방에서 게임을 기다리고 있을 녀석에게 주면 괜찮을 물건이었다.
주머니에 들어간 초콜릿을 두드리며 만족을 표하고 있으면, 그 광경을 지켜보던 그룹원이 반쯤 장난섞인 야유를 보내며 이야기했다.
“아니, 형님. 섭섭하게 왜 유성이한테만 선물을 주고 그래?”
“거 참. 어린애도 아니고 왜 그래냐? 담배 한 대 줄테니까 따라나와라.”
“오, 역시 우리 사장님이야.”
눈짓을 보낸 동현은 곧장 그룹원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건물을 빠져나가는 동현의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부 그룹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어째서인지 가슴 한켠에 중압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비밀의 무게란 그런 것이었다.
단순히 가슴속에 말을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무게가 느껴지는 것이다.
“담배라도 하나 찾아와야겠네.”
흐릿한 창밖으로 리더의 넓은 등이 비추어진다.
그는 언제나 그룹원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나 역시 동현에게는 받은 것이 많았다.
언제쯤되야 그것들을 전부 갚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 * * * *
괴팍한 성격의 소녀를 마주한지 어느덧 3주차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산책을 가장한 핑계조차도 그룹원들이 내 루틴의 하나로 받아들일 무렵.
평소와 같이 산책을 이유로 자취방에 찾아왔던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침대에 기댄 채로 앉아있던 소녀의 손에 익숙한 물건이 존재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익숙하면서도 특별한 그 물건은 지금 세상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해서는 안되는 물건이었다.
“그거 뭐야······?”
깜빡. 깜빡.
나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몇차례고 눈을 감았다 떠보았다.
허나 얼마나 눈을 감았다 뜨던간에, 내 눈에 비치는 광경은 전혀 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눈앞에 있는 소녀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그것도 화면이 켜져있는 스마트폰을 말이다.
“중요한 물건.”
“아니, 스마트폰에 아직까지 배터리가 남아있다고?”
스마트폰을 마주한 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전력이 끊기고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소녀의 스마트폰은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화면이 켜져있는 스마트폰이라니, 정말 오랜만에 보는 물건이었다.
구시대의 유물들은 이미 하나같이 배터리가 남지 않은 채로 잠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사용한게 언제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신기해?”
“이게 신기하지 않으면 대체 뭐가 신기하겠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게 당연하던 시절도 있었다.
허나 이제 배터리가 있는 스마트폰은 결코 당연한 존재가 아니었다.
모두가 그토록 바라고 있음에도, 지금은 마주하기조차 어려운 광경이었다.
신발을 벗은 나는 곧장 스마트폰을 쥐고 있던 소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소녀의 옆자리에 앉아 그녀가 쥐고 있는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어디서 난거야? 설마 밖에서 배터리가 있는걸 주워온거야?”
“내가 만들었어.”
“뭐?”
“필요해서 직접 만들어봤어.”
스마트폰의 출처를 물어보는 내 질문에, 소녀는 태연한 모습으로 만들었다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언제나 이상한 대답을 늘어놓는 소녀였다.
그리고 오늘의 대답은 지금까지의 대답들보다 더 큰 불쾌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만들었다는 소녀의 대답에 뒷목을 붙잡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걸 만들었다고? 그것도 네가?”
“응. 마음에 들어?”
“아, 그래······.”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스마트폰을 손으로 만들 수가 있던가.
조립이면 몰라도 공장을 거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물건을 생산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럼에도 뻔뻔한 대답을 돌려주는 소녀의 모습에 나는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서 소녀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 시선을 향했다.
화면속에서 도트 캐릭터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임하고 있었나보네. 하기야, 인터넷이 안될테니까 영상같은걸 보는건 힘드려나.”
“게임 좋아해?”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살짝 흔들어보이던 소녀가 나를 향해 물었다.
게임을 좋아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놓고 싫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즐겨하지는 않는다고 대답한다면 몰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임··· 싫어하진 않지. 다른걸 다 제쳐두고 할만큼 열성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엄밀히 따져보면 게임을 좋아하는 부류에 속했다.
퇴근하고 나서도 가끔씩 모바일 게임정도는 돌리고는 했으니 말이다.
뭐, 그것도 옛날 일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지금에서야 배터리가 죽어버린지 오래였기에, 마지막으로 플레이한 기억이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소녀의 손에 들린 게임화면을 홀린듯이 쫓아가고 있으면,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입을 열었다.
“이거, 플레이 해보고 싶어?”
그녀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내밀면서 이야기했다.
나를 향해 내밀어오는 스마트폰의 모습에,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스마트폰을 따라 움직이던 시선이 그녀가 플레이하던 게임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그녀가 내민 스마트폰에는 오밀조밀하게 들어서있는 도트가 보이고 있었다.
도트로 표현된 캐릭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서로간에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트 게임이네. 이런 감성도 좋지.”
도트도 좋고 3D 그래픽도 좋아한다.
취향이야 어느정도 갈리겠지만, 지금이라면 어떤 게임이든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녀에게 넘겨받은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살펴보고 있으면, 소녀가 도트 그래픽에 대한 가벼운 첨언을 했다.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서 그래.”
“뭐가 성장하지 못했는데? 캐릭터 레벨이 아직 부족한거야?”
“네가 들고있는 그 물건.”
그녀의 말에 게임이 아닌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옆자리의 소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다마고치도 아니고 스마트폰이 대체 왜 성장을 한다는 말인가.
심지어는 그 유명한 다마고치조차도 기계 자체는 진화시킬 수 없었다.
난데없는 이야기에 나는 의문을 표하며 소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려고 했다.
“야, 상식적으로 스마트폰이 왜 성장을··· 어······?”
허나 소녀를 향해 뻗어나가던 손은 자리에 멈춰선 채로 가만히 정지한 모습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의 기운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내 손을 공간째로 붙들어놓고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허공에 정지해있는 손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 “잊어.”
“······.”
그리고는 금세 잊어버렸다.
내가 왜 손을 들어올렸더라.
기억을 더듬어봐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민망하게 떠오른 손을 내리고서, 한손에 쥐어져있는 스마트폰 속 화면에 집중했다.
스마트폰 속에서는 여전히 작은 캐릭터들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귀엽네. 무슨 말을 하는지는 하나도 못알아먹겠지만.”
그들은 머리위에 말풍선을 띄운 채로 알아보지 못할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조금 더 세심하게 게임 속 캐릭터들을 지켜보았다.
가만히 보고있으면 캐릭터들에게 무언가의 역할이 부여되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들만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느낌이었다.
“재미있어?”
“이런 게임도 나쁘지 않네.”
AI를 섬세하게 짜두었던 것인지, 저마다의 캐릭터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신의 할일을 한다.
때로는 그들을 움직이던 규칙에서 벗어나서는, 특이한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치 투명한 젤에 개미를 키우던 기분이다.
어린 시절에 어항속에 키우던 조그마한 씨몽키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멍하니 보고있으면 치유받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어.”
이런 마음가짐이 오래 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자, 소녀가 손가락으로 화면 속 캐릭터를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두드려보면 무언가 변화가 생길거야.”
“그래?”
나와 캐릭터간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소녀의 조언을 따라 화면 속 캐릭터를 향해 손가락을 움직여보았다.
툭.
손가락을 가져다대자 캐릭터의 머리 위에 -1이라는 숫자가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캐릭터가 데미지를 입은 모양이었다.
화면의 상단에 있는 게이지 역시 상당히 줄어들어있는 모습이었다.
“흐음··· 터치하면 캐릭터를 때릴 수 있나보네.”
“즐겁지 않아? 계속해보는건 어때?”
캐릭터를 때리는게 즐겁지 않냐는 질문에, 나는 가만히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은 썩 내키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 캐릭터들의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게임 자체의 목적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무작정 이것저것 일을 벌리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쎄. 지금은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어서 모르겠다.”
소녀를 향해 대답을 돌려준 나는 그 뒤로도 멍하니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해보는 게임은 대단한 조작 없이도 즐거운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