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173
신을 만드는 방법 (3)
소녀와 게임을 시작한지 어느덧 두 시간 가량이 지났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두 사람의 실력차이가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그 이후로 이어진 모든 게임에서 내가 패배했고, 대답을 돌려주는 것도 전부 내 몫이었다.
소녀가 꺼내는 질문은 대부분 간단하면서도 커다란 의미가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의 기분이나 그룹원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먹고 싶은 음식과 같은 것들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야.”
“듣고 있어.”
물론 게임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아무런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차례 게임을 진행하는 동안 나와 소녀는 제법 친해졌으니까 말이다.
기존에는 말조차 붙이기 어려웠다면, 이제는 어지간한 말들은 받아주는 관계가 된 것이다.
역시 거리감을 좁히기에는 게임만한 것이 없었다.
한바탕의 승부를 겨루고 나면, 서로간에 쌓여있던 것들은 대부분 무너져내리기 마련이었다.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글쎄. 그런 생각은 해본적이 없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런 대화까지도 가능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 사이에 수많은 패배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속이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게임의 승패보다는 소녀의 안전이 더 중요한 법이었다.
내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이 녀석을 어떻게든 다른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렇기에 나는 마주앉아있던 녀석을 향해 간단히 운을 띄워보았다.
단번에 수락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녀석의 생각을 알아보기에는 이만한 질문이 없었다.
“나랑 같이 회사··· 아니, 캠프에 가자. 설거지나 빨래정도만 하면 밥이야 먹여주겠지.”
개척작업이나 탐색작업에 소녀가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룹에 합류하더라도 한동안은 그녀의 편의를 봐줄 가능성이 높았다.
그나마도 별 대단한 일은 시키지 않을테고 말이다.
내가 소녀의 대답을 기다리며 기물을 정리하고 있으면, 내 눈을 마주하고 있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은걸.”
“그룹을 기피하는 이유라도 있는거야?”
“지금처럼 하나를 마주하는 정도야 괜찮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 장소는 곤란해.”
“왜?”
“숫자가 많을수록 보는 눈이 많아지니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야,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보는 눈도 늘어나겠지.
부끄러움에 대한 표현인가.
아니면 대인기피에 대한 이야기인가.
나로서는 어느쪽이 원인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냐? 싫다는 사람한테 억지로 들어오라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룹에 들어오라는 이야기는 포기해야겠네.”
거절의 의사를 확고하게 표현한 소녀였다.
그런 소녀에게 더 이상 그룹에 대해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녀의 대답을 들은 내가 곧바로 설득을 포기하자, 그녀는 의외였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의외로 순순히 포기하는걸.”
“이게 안되면 다른 제안이라도 하려고 찾아온거라서 말이야.”
그녀가 그룹에 합류하지 않을 가능성이야 충분히 생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다만 소녀가 그룹에 합류하지 않더라도, 이곳에서만큼은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소녀를 향해 그 다음의 이야기를 꺼냈다.
플랜 B.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이 위험한 장소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제안이었다.
“장소라도 좀 옮기는게 어때? 밖에서 봤을때는 여기가 상당히 위험해보이던데.”
“위험해?”
“위험하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던데.”
오늘 당장은 무너져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내일도, 모래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건물이 무너져내리지 않은 채로 여전히 이 자리를 지키고 서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언제라도 무너져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건물이 무너질 것을 확신하는 순간, 그때는 이미 늦어버렸을테니까 말이다.
“그래? 그럼 내가 어디로 갔으면 좋겠는데?”
그런 내 마음이 소녀에게 닿은 것일까.
내 이야기를 들은 소녀는 손에 쥔 기물을 내려놓으며 나에게 물었다.
툭.
체스판에 끼워넣은 기물이 둔탁한 소리를 주변에 퍼뜨렸다.
“나보고 추천해달라는 이야기야?”
“알고 있는 곳이 있다면 말이야. 가급적이면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는 곳이 좋겠는걸.”
나에게 머무를 장소를 추천받는 소녀의 태도는 예상외의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에게 차갑게 대하던 소녀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 머무를 곳을 추천받는다니, 어지간해서는 쉽게 하지 못할만한 행동이었다.
여전히 특이한 녀석이었다.
말도 행동도 사고방식도 전부.
평범한 사람의 신뢰관계와는 거리가 아득히 멀어보이는 모습이었다.
“정 갈데가 없으면······.”
소녀에게 질문을 받은 나는 그녀가 머무를만한 장소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머무를만한 장소라.
어지간해선 회사를 추천하겠지만, 그녀에게 그런 선택지는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어느 곳을 추천해야 할 것인가.
소녀를 앞에 두고 고민하던 도중, 이전에 거주했던 자취방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자취방이 있구나.’
지금은 회사에 머무르는 탓에 자주 찾아가지는 않지만, 가끔씩은 시간을 내어 청소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른바 나만의 비밀기지인 셈이다.
실제로 안에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지만 말이다.
식량이나 생필품같은 것들은 가능한 회사에 옮겨두었던 탓에, 남아있는 짐은 부피가 커다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찾아가면 마음의 안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나는 눈앞의 소녀에게 내가 살던 자취방을 추천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에 내가 쓰던 집이 있으니까, 거기로 가던가.”
“지금은 거기서 살지 않는거야?”
“다른 사람들이랑 회사에서 지내고 있으니까. 혼자보다는 그 편이 낫기도 하고.”
회사에 있어도 개인공간은 어느정도 주어지는 편이었고,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빠른 대처가 가능했다.
게다가 식량의 저장이나 분배는 전부 회사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밥도 회사에서 먹는 마당에, 굳이 집에 돌아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조용한 장소를 찾고자하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자취방에 찾아가는 일은 없는 편이었다.
생각보다 내 계획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확실히 그쪽에 있는 편이 들킬 걱정이 적을지도 모르겠는걸.”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안갈거야. 그 근처도 한 번 정리해둔 상태라서 자취방까지 망자들이 들어갈 일도 없고.”
“그럼 이번에는 네 의견에 따르는걸로 할까.”
스윽.
체스판이 놓여있던 테이블을 밀어낸 소녀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역시 소녀를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
들고 있던 책을 바닥에 던져놓은 그녀가 나를 향해 손짓하며 물었다.
“안내해줘. 따라갈테니까.”
“처음보는 사람을 함부로 따라가도 괜찮겠어?”
“상관없어. 문제가 생겨도 큰 문제는 아닐테니까.”
경계심이 짙은건지. 아니면 사람이 괴팍한건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은 성격이었다.
* * * * * *
“여기가 내가 말했던 곳이야.”
끼이익.
굳게 잠겨있던 문을 열어젖히면, 어두컴컴한 실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나는 오랜만에 찾아온 원룸을 바라보며 과거의 향수가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회사에 취직하고서, 출근을 위해 거주하던 원룸이었다.
지금이야 회사에서 지내느라 자주 찾아오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가끔씩은 찾아오고는 하는 장소였다.
“오랫동안 비워두기는 했지만, 청소는 가끔씩 해뒀으니까 먼지는 별로 없을거야.”
“생각보다 작은 곳이네.”
나를 따라 자취방에 들어온 소녀는, 생활감이 없는 공간을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취방이니만큼 혼자서 살기에 적당한 수준의 공간이었으니까 말이다.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과 비교해본다면 충분히 작은 공간이었다.
“뭐··· 크지는 않은 편이지.”
나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간 소녀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전원이 꺼진 채 침묵하고 있는 TV.
전기가 나가 불이 들어오지 않는 전등.
수도가 끊겨 물이 나오지 않는 싱크대.
멸망한 이후에 작동하지 않는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이곳에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한참동안 정적이 내려앉은 방을 둘러보던 소녀는 이내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향해 이야기했다.
“조용한 곳이구나.”
“옛날에는 밖에서 아이들이 뛰놀아서 조금 시끄러웠는데, 요새는 상당히 조용한 편이 됐지.”
“······.”
“작아도 나쁘지 않은 곳이야. 살던 사람들도 대부분 좋아하던 곳이었고.”
가격대비 나쁘지 않은 곳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많은 추억들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
친구들을 불러 이곳에서 잔을 나누거나.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몸을 이끌고 와서 다음날 두통과 함께 깨어나거나.
좁은 방에서 함께 스포츠 경기를 보며 환호하거나.
때로는 침대에 널브러진 채로 스마트폰에 몰두하거나.
그런 시간들을 이곳에서 보내고는 했다.
“너도 좋아해?”
짧은 추억을 되새기며 허전한 공간을 바라보고 있으면, 소녀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꺼내왔다.
예전의 나는 이 장소를 좋아했나.
분명히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의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었으니까.
“좋아하던 장소였지. 어쩌면 지금도 좋아할지도 모르고.”
“소중한 곳이구나?”
“글쎄. 나한테 소중한 곳이었나.”
피식.
방을 둘러보던 내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곳에 도착해 지난 과거를 되새기다보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뒤숭숭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출근하기 참 싫어했는데··· 요새는 여기서 일어나 출근하던 때가 그립네.”
절대 그리워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힘들다고 여겼던 순간마저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출근해,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는 삶.
시계태엽처럼 끊임없이 돌아간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니.
어리석은 이야기였다.
“생각이 많구나.”
고민하고 있는 나를 지켜보던 소녀가 말했다.
짙은 눈동자는 어둠속에서도 선명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간답지 않은 눈동자였다.
그녀와 눈을 마주한 채로 고개를 끄덕여, 부정하지 않은 채로 받아들인다.
소녀와 마주하는 동안에는 이유도 모른 채로 마음속의 방벽이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그게 사는데 도움이 되는 때도 있으니까.”
“확실히··· 어느정도 도움은 되는 것 같은걸.”
“그래?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여?”
“이제 한동안 허무하게 죽는 일은 없을테니까.”
소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게 아니라면 나에 대한 이야기인가.
어느쪽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녀가 전하고자하는 메세지만큼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회사가 위치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다 같이 끝까지 버텨냈으면 좋겠네.”
끝을 모르는 고난의 너머.
그 끝에 모두가 함께하는 해피엔딩이 찾아오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모두의 행복을 간절히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