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86
부유하는 성역 (1)
낙인.
저주받은 혈통을 타고 내려오는 악신의 표식.
숲의 요정들에게 주어진 그것은 정령계와의 연결을 약화시키는 저주였다.
낙인이 새겨진 요정은 정령을 소환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정령을 제대로 다루는 것이 불가능했다.
대부분이 정령사로 이루어져있는 요정들의 사회에서 이것은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이들은 다른 요정들보다 타고난 정령과의 감응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질적인 존재를 두고 요정들은 대부분 더럽다고 손가락질하며 기피하는 편이었다.
“페린. 렌델님이 너보고 물떠오래.”
“아, 알았어요······.”
페린 역시 낙인을 타고난 요정 중 하나였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왼손에 낙인이 새겨져있었으며, 그로 인해 정령과의 계약을 일체 거부당했다.
주변의 요정들 역시 항상 그녀를 멸시하며 차별하고는 했다.
특유의 성격 탓에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는 페린이었지만, 그녀의 뒷편에는 어두운 과거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투욱.
페린이 자신의 눈앞에서 굴러다니는 물통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물을 떠오라고 전한 요정이 그녀를 향해 내던진 물건이었다.
페린은 바닥을 굴러다니던 물통을 쥐고서, 자신을 향해 물통을 던진 요정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저기, 다음에는 조금 상냥하게······.”
“다가오지마!”
물통을 쥔 페린이 요정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자, 요정은 뒤로 물러서며 페린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순식간에 멀찍이 물러난 요정의 모습에 페린은 가까이 다가가려던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요정은 혐오하는 눈으로 페린의 손등에 새겨진 낙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녀는 페린을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페린! 네 더러운 저주가 옮으면 어쩌려고 그래!”
“낙인은 안 옮아요······.”
“시끄러워! 혹시나 무슨 일이 있을줄 내가 어떻게 알아! 조용히 하고 물이나 떠와!”
그렇게 말한 요정은 곧장 페린에게서 등을 돌려 마을을 향해 돌아갔다.
낙인을 타고난 페린에게 있어서 이러한 취급은 익숙한 편이었다.
자신을 경멸하는 요정의 모습에 페린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금색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페린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녀의 모친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해주던 금색 머리카락이었다.
비록 페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이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녀의 머리카락만큼은 지금까지도 페린의 자긍심으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던 페린은 이내 기운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을 퍼서 돌아가는 다른 요정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보이고 있었다.
“······빨리 물을 퍼가지 않으면 혼날지도 몰라요.”
물통을 쥔 페린은 호수를 향해 분주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요정들은 대부분 물을 퍼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페린이 지금 호수에 가더라도 가장 마지막에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녀에게 물통을 전해준 요정이 일부러 이야기를 늦게 해준 것이 틀림없었다.
언제나와 같은 페린을 향한 괴롭힘이다.
하지만 정령을 다루지 못하는 페린은 이곳을 벗어나도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괴롭힘을 감수하면서 그녀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빨리, 가야만······.”
탁. 탁. 탁. 탁.
가벼운 발걸음을 움직여 나아가던 페린의 시선에 멀리서 움직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올린 페린은 앞으로 달려가면서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살펴보았다.
하늘에 드리워진 새하얀 구름 사이에, 갈색 구름 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먹구름은 보았지만 갈색 구름이 존재하다니.
페린으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광경이었다.
갈색 구름을 마주한 페린의 가슴속에 커다란 호기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갈색 구름이 오고 있어요.”
갈색 구름은 이쪽으로 움직이는 모양인지 점점 크기가 커져가는 중이었다.
마침 그녀가 향하는 호수 방향에서 구름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호수를 향해 내달리던 페린의 발걸음이 이전보다 더욱 빨라졌다.
바람을 가르면서 나아가는 페린의 사뿐한 걸음이 순식간에 숲을 가로질렀다.
평소보다도 훨씬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기 때문일까.
페린은 순식간에 호수가 위치해있는 절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어차피 늦은거, 잠깐 보고가는 정도는 괜찮겠죠.”
호수에 도착한 페린은 물통을 내버려두고 곧장 절벽을 향해 다가갔다.
아득한 경치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페린의 뺨을 스쳐지나갔다.
그런 페린의 시야에는 멀리서 다가오는 무언가가 보이고 있었다.
갈색 구름인줄만 알았던 그것은 그녀를 향해 다가오면서 점점 크기를 키워가는 모양새였다.
페린은 자신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구름의 정체를 마주하고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와아······.”
페린이 있는 절벽을 향해 날아온 것은 하늘을 부유하고 있는 섬이었다.
먼곳에서부터 날아오던 자그마한 섬이 고도를 낮추어 페린이 있는 곳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섬을 마주한 페린은 한눈에 그것이 정령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천천히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 섬은 이내 페린의 바로 앞까지 내려왔다.
손이 닿을 거리에서 날아다니는 섬을 본 페린의 눈이 반짝였다.
자그마한 섬은 절벽의 끝자락에 멈춘 채로 천천히 회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저, 저기··· 안녕하세요!”
– “흙흙.”
꿀꺽.
침을 삼킨 페린이 정령을 향해 손을 흔들자, 그녀의 귓가에 정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령의 목소리는 요정의 귀로도 해석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정령과의 감응능력은 정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대로 알려주고 있었다.
페린의 눈앞에 있는 정령은 지금 슬퍼하고 있었다.
자신을 돌봐주던 오랜 친구가 사라져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이곳 저곳을 날아다니며 슬픔을 덜어내려고 하는 중이었다.
“소중한 사람이 떠나서 많이 슬픈건가요. 저도 그 마음 이해해요.”
페린은 손을 뻗어 그녀의 앞에 있는 흙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페린의 손길을 받은 정령의 감정이 공기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그녀는 손끝에서 전해지는 자그마한 떨림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령은 페린의 쓰다듬을 받아 기뻐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페린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는 정령을 마주한 것이다.
페린은 쓰다듬을 받는 정령이 불쾌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계속해서 정령과 대화를 나누었다.
“제가 잘 위로해줄게요.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 “흙.”
처음 만난 정령이지만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요정들이 정령과 계약을 맺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 페린이었다.
정령을 데리고다니는 요정들은 항상 그들을 아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페린은 자신을 반겨주는 정령을 얼싸안고서 흙덩어리에 귀를 가져갔다.
계속해서 이런 시간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페린 역시 평소에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정령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정령님은 이름이 뭔가요?”
– “흙흙흙.”
“그렇군요! 혹시 ‘유토’는 어때요?”
– “흙.”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에요!”
페린은 기쁜 마음에 정령에게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녀가 정령에게 지어준 이름은 ‘유토’였다.
정령이 이야기해준 정체에서 가장 가까운 이름을 정해준 것이었다.
이름을 받은 정령이 기쁜 모양인지 몸을 흔들었다.
그 과정에서 페린에게 흙이 조금 튀기는 했지만, 페린은 개의치않고 계속 유토를 쓰다듬었다.
페린의 손길을 받던 유토는 이내 뺨을 비비며 이야기를 꺼내왔다.
– “흙흙흙흙.”
“위에 올라타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 “흙.”
이름을 받아 기분이 좋아진 유토가 페린을 자신에게 태워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본 정령중에 하늘을 나는 정령은 많았지만, 하늘을 날면서도 이렇게 커다란 정령은 얼마 없었다.
이만한 정령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날아다니는 섬과 그 위에 서있는 페린.
동화속에서 볼만한 이야기가 그녀의 앞에 펼쳐진 것이다.
페린은 정령의 말에 맹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환호했다.
“좋아요!”
– “흙.”
하늘을 날게 해주겠다는 유토의 말에 페린은 곧장 유토의 위에 올라탔다.
부유하는 섬 위에 올라서자, 유토의 푹신한 흙바닥이 그녀를 반겨주었다.
유토는 페린을 태우기 무섭게 고도를 높여 고공을 비행하기 시작했다.
페린은 날아다니는 유토의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균형을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시작된 유토와의 비행은 해질녘이 되어서야 끝을 맺었다.
처음으로 정령과 친해진 그녀에게 있어, 물을 떠오는 일따위는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 * * * * *
– “유토! 더 빨리 달려요!”
– “흙.”
나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부유토]의 모습을 추적하고 있는 화면 속.요정 하나를 태우고 있는 [부유토]가 신나게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는 모습이었다.
[부유토]의 위에 올라선 요정은 신이 나있는 채로 이리저리 방향전환을 유도하고 있었다.듣자하니 녀석에게 유토라는 이름을 지어준 모양이었다.
물론 녀석의 이름이 ‘유토’가 되었건, ‘부유토유토’가 되었건 나와는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눈앞의 요정이 [부유토]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요정 태우니까 좋냐? 에반은 안태우더니.”
에반이 밥을 먹여주던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보이는 모습이었다.
에반에게는 자리에서 회전하며 흙튀기기밖에 안하던 녀석이, 이번에는 사람을 태우고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아니, 사람이 아니라 요정이라고 불러야 할까.
어찌되었건 나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어이없게 다가오는 광경이었다.
정령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굉장히 까탈스러운 성격이었다.
처음부터 녀석에게 정령사를 붙여주었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고공을 질주하는 유토를 보며 나는 앞으로의 대처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을 보니깐 무작정 떠나갈 것 같지는 않고.”
대략적인 상황을 봐서는 유토가 저 요정을 잘 따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요정 역시 NPC인 이상 어느정도의 일상 루틴이 존재할 것이다.
정해진 일과가 있는 NPC는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복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유토와의 비행이 끝나면 저 요정 NPC 역시 집으로 돌아가기위해 유토를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지금 녀석의 태도를 봐서는, 오늘 헤어지더라도 금방 다시 돌아올 것처럼 보였다.
저 요정이 있는 위치만 제대로 알아둔다면, 얼마든지 부유토의 위치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관리도 안되는데 그냥 며칠정도는 맡겨두는 편이 나으려나?”
어차피 제대로 된 마킹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 게임이다.
위치만 확인할 수 있다면 당분간은 내버려두어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령 자체가 의사소통이나 통제가 가능한 부류도 아니고 말이다.
카르마의 여유가 된다면 요정을 사도로 만들어 유토를 제어하는 방법도 있겠고 말이다.
하늘을 나는 섬은 누구에게 있어서든 로망과도 같은 것이다.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느쪽이든 고려해볼 필요가 있었다.
“보고있으면 골치아픈데··· 근처에 있는 마을만 확인하고 가야겠다.”
결정을 내린 나는 화면을 움직여 요정들이 있는 마을을 확인했다.
숲 사이에 존재하는 마을에는 그리 많지 않은 숫자의 요정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냥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규모지만, 지금 당장 정리할만한 메리트도 없었다.
사도에 대한 처분이 결정되고 나면, 그때 이곳에 누군가를 보내 요정들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찰칵.
지도의 화면을 축소해 스크린샷을 하나 찍어둔다.
그렇게 요정들의 마을이 위치한 장소를 확인한 나는 다시 화면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 명령을 받아 이동하고 있을 유테니아와 에반을 찾기 위해서였다.
“얘네는 또 어디에 있냐··· 아, 여기에 있네.”
나는 교단에 거의 다 도착한 유테니아의 모습을 확인하고서 에반에게 명령을 내려둔 상황이었다.
명령을 내린지 어느새 시간이 제법 지났기 때문일까.
화면을 움직이던 나는 명령을 받고 이동중인 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드를 쓰고 두터운 짐을 맨 에반과 유테니아가 둘이서 어딘가를 향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다만 평소에 유테니아가 움직이던 상황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유테니아와 에반이 이동을 위한 마차를 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 “이런건 처음 타보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
– “알파는 훌륭한 아이니까요.”
둘은 암영마수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알파의 머리 위에 앉은 유테니아는 책을 읽으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그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일어선 에반은 바람을 쐬며 주변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다른 캐릭터들의 시선을 경계하는 것일까.
유테니아는 사람이 다니는 길을 대신해, 험준한 산길 위를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 결과 산에 있는 수많은 나무들이 알파의 몸과 배리어에 충돌해 망가지는 중이었다.
– “이런 마법을 보고 있으면··· 나도 마법이나 좀 배워뒀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군.”
배리어가 씌워진 알파는 불도저와 같은 모습으로 험한 산지를 헤쳐가고 있었다.
유테니아가 배리어에 금이 갈 때마다 보강하는 모양인지, 배리어가 무너져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
대신 두 사람의 질주에 휘말린 숲이 처참하게 변해가는 모습이었다.
알파가 지나간 궤적에는 몸집에 치여 바닥을 뒹구는 마수들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돌진하는 알파의 모습을 보던 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멍한 얼굴이 되어야만 했다.
“이거 이런식으로도 사용이 가능한거였나.”
요정을 태우고 전투기마냥 하늘을 질주하는 섬.
그리고 불도저마냥 대지를 가로지는 그림자의 용.
내가 처음 뽑았던 시절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에,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좋아해야할지, 아쉬워해야할지.
어느 반응을 보여야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