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24
손대지 않고도
결과만 따진다면 초록 형이 제안한 방식은 효율적이다. 목표를 달성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면.
하지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어렵지 않다. 키바라는 작곡가를 응징하는 걸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잘못은 표절한 작곡가가 했는데, 피해는 프케이가 받는 구조가 된다. 아무 죄도 없는 이들을 피해자로 만든다는 거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눈앞의 목표에 혈안이 된다면 우리가 나중에 진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까? 편법으로 도배된 승리에?
그런 승리를 얻어서 탑 아이돌이 된다고 해도 그건 아이돌이라기보단 연예계 뒤편의 지배자가 어울리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완전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할 거다.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서.
머리가 복잡해지려는데 초록 형은 가볍게 웃음 짓더니 입을 열었다.
“농담이야. 내가 귀찮게 왜 그런 짓을 하겠어? 직접 손대지 않아도 저절로 해결될 텐데.”
“…저절로?”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없으니까 당연히 회사에 말해야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입단속이 제대로 될까, 과연?”
바로 이해했다. 초록 형이 관여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일어날 일이라는걸.
관계자 중엔 표절이라는 정보를 적당히 이용할 사람이 있을 테고, 그건 테오라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이겠지.
연예계, 아니 인간의 생리를 꿰뚫어 보는 그 시선이 어른 같았다. 인간관계를 스스로 만들어본 지 얼마 안 된 나와는 다르게.
“바빠서 웬만한 일엔 손 안 대. 그리고 손대지 않고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프로 아니겠어?”
“프로 아니어도 되니까 마음 조마조마하게 하지 마! 어느 날 초록 형이 연예계의 흑막이라고 짠 밝혀도 난 안 놀랄 거야!”
박하의 소스라치는 반응에 초록 형이 조금만 방향을 틀면 얼마든지 가능한 미래라는 게 피부에 와 닿았다.
“내가 아이돌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그치?”
“진짜 다행이야! 우리가 이 세계를 구했어!”
“박하준 오버 금지.”
“치. 오버와 과장이 한 숟가락 들어가면 얼마나 맛있는 건데!”
정도는 다르더라도 초록 형이 테오라의 멤버가 되어준 게 새삼 고마워졌다.
스케줄 빡빡한 연예인이 되어서 안심이다. 안 바빴다면 언제 어디서 무슨 계략을 꾸밀지….
“우리는 초록 형의 고삐를 잡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어!”
박하는 주먹을 꽉 쥐여 보이며 우리에게도 역할을 부여했다. 초록 형이 리더로서 우리를 이끈다면, 우리는 초록 형이 엇나가지 않게 단속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대화를 들은 초록 형은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아마 초록 형이 작정하고 숨기려 들면 소용없겠지.
“내가 대표로 가서 얘기하고 올 테니까 너희는 그동안 댓글 확인하고 있어. 적당히 걸러서 보고.”
댓글에 대해선 어느 정돈 안심해도 되겠다 싶었는지, 주의만 남기고 나갔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오란의 영상에 댓글이 달려 있었다. 테오라 채널에 알림 설정을 해두고 알림이 뜨자마자 봐야 나올 수 있는 속도인데.
– 오늘의 힐링영상!
└힐링하고 갑니다 귀도 눈도
– 어리고 귀엽게만 봤는데 볼수록 어른스러운 듯?
– 실제 성격은 안 발랄한데 노력으로 성격까지 바꿀 정도로 귀염받겠다고 애쓰는 아이돌. 오히려 애틋하다…
└반전매력
└평소와 카메라 앞이 다른 건 아이돌이라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지
– 취미 수준을 넘은 그림 실력인데? 재능이 예술 쪽으로 쏠렸나봄
– 오란이는 다 가졌는데 하나가 없어 코티지파 42대손 박뫄뫄^^
└오란이는 갖고 싶지 않다는데?
└ㅜㅜㅜ
– 멤버 초상화?! 누구 먼저 그리려나 두근두근
– 울 토깽은 옳다 무조건 옳다
– 알고리즘 때문에 봤는데 아이돌이에요? 그림 관련 뉴튜버인 줄.. 볼만하네요 구독하고 갑니다
…….
“댓글 창 분위기는 좋은 편이야.”
아직 개수가 적어서 댓글을 전부 확인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댓글이 많았다. 오란의 새로운 면을 봤다는 댓글도.
“회사에서 입장문 발표해서 악플러가 몸 사린 탓도 있겠지만, 괜찮네.”
“공개된 곳에선 악플 찾아보기 힘들걸. 거기다 초반이라 더 몸 사리겠지.”
오란이 냉정한 분석을 내놨다. 그래도 무미건조한 표정이 댓글을 읽을 때 풀어지는 거 다 봤다. 솔직하지 못하긴.
“인간은 자기 잘못을 망각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족속이지만, 아직 잊을 때는 아니지.”
팬들이 매섭게 악플을 찾아 PDF 파일을 만들 기세였으니 고소당하고 싶지 않으면 조심하는 게 당연한 반응. 입장문 발표의 효력이 떨어지려면 한참 걸리지 않을까.
“오란 형이 다음에 그리는 초상화, 이원 형 거지?”
“응원봉 내기에서 오란이 져서 나 먼저 그린댔으니까 그러겠지?”
“얼마나 잘 그리는지 지켜볼 거임! 저번에 이원 형 화나게 해서 홍오란 나한테 찍혔어!”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다음엔 2대1로 싸우면 되겠다.
우리가 한숨 돌리는데 문으로 매니저 형이 들어왔다. 그 뒤를 따라서 초록 형이 들어왔다.
“초록이한테 간단한 이야기는 들었다. 일단 너희는 연습실에 데려다주마. 긴급 회의를 해야 할 상황이라.”
매니저 형이 우리를 연습실에 데려다주고 떠나려고 할 때, 초록 형이 말을 꺼냈다.
“준현 형, 조심히 다뤄주세요. 테오라가 절대 연관되지 않게.”
“그래. 명심하지. 나도 테오라가 피해받지 않기를 바라니까.”
매니저 형이 떠난 후, 궁금한 기색을 보였다. 초록 형이 무슨 말을 하고 왔는지.
“별말 안 했어. 프케이 타이틀 표절 얘기가 하눌에서 시작됐다고 하면, 누군가는 의심의 눈초리로 볼 거라 그거 입단속 잘해달라고 부탁드렸어.”
“아.”
그럴 수 있겠구나. 굳이 하눌에서 표절을 언급할 이유라면 바로 떠오르는 게 있다. 활동 시기가 겹치는 하눌 엔터 소속의 남돌 테오라.
보통 테오라가 아니라 회사의 소행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엮이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무슨 수를 쓰든 상대를 짓밟고 올라가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음을 안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면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무의식적으로라도.
코티지들에게 그런 충격을 주고 싶지 않다. 코티지들은 항상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프케이 기획사에 직접 연락하실걸. 일본 밴드 측이랑 협상해서 소리소문 없이 작곡가 바꾸든지 하겠지.”
표절 관련 소문이 나기 전에 해결할 수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리라. 덤으로 남의 곡을 베끼는 작곡가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 사람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사실을 알게 되면, 대기업 소속 연예기획사에서 가만히 있을까. 콧대가 높은 만큼, 속았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할 텐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생각하지 말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안 그래?”
“골리앗에게도 아량을 베푸는 다윗이지. 우리 그룹은. 순해 빠져서는.”
“홍오란.”
내가 이름을 부르자 혀를 차던 오란이 못마땅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었다.
“사서 고생하자 이거지? 테오라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 어련하시겠냐.”
비꼬기 한 번으로 그 불만을 내리누르는 듯했다. 불만이 있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우리의 선택이 나중에 어떻게 되돌아올지도 모르고.
“정도? 정도를 걸어?”
지온이 오랜만에 모르는 단어를 만났다. 정도는 잘 쓰지 않는 단어긴 하니까.
“정도(正道)는 올바른 길이란 뜻이지. 그러니까 앞으로 테오라는 올바르고 정당한 길을 걷겠단 거야.”
서혼 형이 다정다감하게 설명했다.
“Got it. 한국어는 배울수록 어려워.”
“말하는 것만 들으면 누가 의심하겠어. 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발음이 완벽해서 자주 쓰지 않는 단어나 모르는 단어가 나오지 않으면 눈치채기 힘들다.
가끔 다른 언어가 튀어나오긴 하는데, 그건 래퍼의 독특함이라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서.
“지온이는 언어 지능이 높은 거 같아. 발음도 좋고.”
“칭찬은 always sweet. 혼.”
서혼 형이 발음 칭찬을 했다고 일부러 더 혀를 굴리며 천천히 발음했다. 거리낌도 없이 당당하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뻔뻔하다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온에게는 조금은 뻔뻔스럽고 느긋한 태도가 어울린다.
지온 특유의 그 여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코티지들도 많고.
초록 형이 손뼉을 마주쳐 주의를 집중시켰다.
“자, 이제 그 얘긴 접고 연습하자. 내일 방송 스케줄 있어서 오늘 연습은 더 집중해서 해야 해.”
테오라에 관한 관심이 식지 않도록 유지해야 해서 컴백 준비하는 와중에도 일부 스케줄은 소화하고 있었다.
내일 스케줄은 아이돌 예능이라서 테오라가 거절해선 안 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케이블 예능은 POT 엔터에서 손댔던 프로그램 중에 하나기도 했다.
이번 스케줄은 POT 엔터의 영향력을 확실히 이겨냈다는 증명이면서, 압력을 받았던 다른 프로그램에 보내는 신호다.
테오라가 POT 엔터의 부당한 압력을 무시해도 될 정도로 존재감을 키웠다는.
지금도 섭외는 쏟아지듯 들어오지만, 주요 프로그램들은 드물다. 내일 일정을 잘 소화하면 컴백 후의 스케줄의 질이 달라지겠지.
그런 생각을 끝으로 연습에 몰입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집중해야 한다. 컴백까지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갈 테니까.
* * *
우리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알 수 없었고, 관심도 둘 여유도 없었다. 다만 결과는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작곡가가 교체되어 앨범이 발매됐을 때, 한 커뮤니티에서 프케이의 타이틀곡이 표절이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에 불이 옮겨붙었고 크게 번졌다. 하지만 프케이의 소속사에서 원곡자의 허락을 받은 리메이크곡이라 재빠르게 밝히면서 순식간에 소강상태가 됐다.
일부는 티저가 공개됐을 당시의 작곡가는 저 사람이 아니었다면서 반박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유명세를 치르는구나, 하고 무관심해졌다. 프케이의 팬덤은 지금도 시달리고 있겠지만….
어쨌거나 프케이가 받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수습됐고, 큰 트러블 없이 마지막 활동을 이어 나갔다.
음원 차트 상단을 점령한 것은 물론이고, 메인 프로그램 여기저기서 얼굴을 비추면서.
그리고 그 키바라는 사람은.
“법적으로 처리하려다가 그러면 사정을 밝혀야 해서 그만뒀다던데? 영원히 작곡가로 활동하긴 어렵겠지. 관계자 사이에선 계획적으로 표절했다는 낙인이 찍혔을 테니까.”
표절은 창작자에겐 끔찍한 낙인. 오해가 아니라 정말 표절한 사람이었기에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두둔해줄 사람도 없으리라.
“표절해놓고 그 정도로 넘어간 게 대단하지. 안 그러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관계자를 전부 농락하고 미미하더라도 프케이에게 실질적인 이미지 타격까지 입혔으니까.
“아무리 급했어도 표절은 좀 아니지.”
“괘씸죄도 적용될걸?”
초록 형의 짐작으론 아마 간접적인 방법으로라도 되갚아주려고 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괘씸죄를 정의하긴 애매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죄였고, 감정에 좌우되기 때문에 감정이 풀리지 않는 한 영원히 이어진다는 점이 무서웠다.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지온은 그 사람을 간단하게 쓰레기로 표현했다. 그렇다면 그때 나는 쓰레기에서 나온 악취를 맡았을 뿐이겠지.
앞으로 다시 볼 일 없는 관계없는 사람에게 줄 관심은 오늘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