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23
무너뜨릴 기회
현재 프케이의 소속사는 이 방영되던 채널의 계열사. 대기업의 계열사인데다 투자한 만큼 돌아온다는 진리를 아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프케이의 티저는 돈 냄새를 잔뜩 풍겼다. 테오라의 뮤비도 자본이 꽤 들어가긴 했지만, 한정된 예산에서 가성비를 따져 알차게 썼다.
그런데 프케이는 뮤비가 아니라 티저에 불과한데도 대놓고 돈을 퍼부었다는 느낌이 났다.
노래에 관해서는, 멤버들의 의견을 들은 뒤에 말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들 어땠어?”
“티저 영상은 돈값을 한다는 생각? 노래도 꽤 좋고!”
“티저라 짧아서 판단하기 어렵긴 한데. 예상대로 반전이 없다?”
아쉽다면서 입맛을 다시는 오란이 바란 반전이 뭘지 궁금하다. 어떤 극한 상황을 상상했을지.
“호불호 갈리진 않겠어.”
“프케이 돈 쓸어 담겠다?”
서혼 형이나 지온까지 전부 정도는 다르지만 호평했다. 초록 형도 앨범이 발매되어봐야 알겠다고 하면서도 긍정적인 시선이었다.
“이원이는 왜 아무 말도 없어?”
멤버들의 프케이 티저 시청 소감을 들으며 말을 아낀 이유가 따로 있었다. 일을 크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서 조금 망설여진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멤버들에겐 말해야겠지. 초록 형이라면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최적의 방향을 제시해줄 테고.
“…짧은 티저라 확신하긴 어렵지만, 나 이 곡이랑 닮은 곡을 알아.”
“뭐?”
“…표절 같단 소리야?”
“이원 형이 닮았다고 할 정도면 표절 거의 확실하단 소리지! 음악 가지고 허튼소리 할 리 없으니까!”
많은 음악을 접하다 보면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하다. 무의식적으로 비슷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어느 정도의 익숙함은 넘어가야 한다는 점은 나도 이해한다. 그리고 히트곡이거나 존경받는 작곡가의 곡이라면 ‘오마주’ 기법을 쓰기도 한다는 것도.
하지만, 프케이의 티저에서 나온 하이라이트 부분과 비슷한 곡은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곡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들은 듣기 힘든 일본 아마추어 밴드의 곡.
국적도, 장르도 가리지 않고 무작정 음악이라면 다 듣던 과거에 들어본 적 있는 곡이다.
대중에게 유명하진 않아도 마니아가 있는 곡이라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됐었다.
“아! 혹시 정식 리메이크곡일 수도?”
뒤늦게 정식으로 리메이크해서 가져온 곡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슨 꼬투리라도 잡고 싶어서 괜한 의심을 한 걸까?
“일단 프케이 타이틀곡 작곡가 확인해볼게. 네가 들어봤다는 곡 작곡가 기억해?”
기억한다. 모든 음악을 들을 순 없더라도 한 번 들은 음악은 잊지 않는다. 음악 쪽으로는 이상하게 기억력이 발휘돼서.
작곡가나 편곡자, 작사가는 기억 못 하기도 하지만, 이 곡은 밴드 멤버가 작곡한 케이스라 확실히 기억한다.
“곡을 부른 Zirofilm 밴드의 기타리스트 키타무라 료스케가 작곡했다고 알고 있어.”
초록 형은 키타무라 료스케라는 이름을 되뇌면서 작곡가 정보를 찾았다. 그리고 곧 황당한 표정으로 변했다.
“…하? 어이가 없어서. 작곡가 이름이 어디서 들어봤던 이름이네? 내 허술했던 일 처리를 반성해야 하나, 아니면 칭찬해야 하나?”
웃음기를 완전히 지워낸 초록 형은 한쪽 입꼬리를 비스듬하게 올렸다. 그 모습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사람 하나 잡을 것 같다. 도대체 누구길래?
“누군데 그래? 나도 알려줘! 초록 형!”
“아는 사람?”
지온 말처럼 아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초록 형의 인맥은 연예계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으니까.
“너희가 이 이름을 알까? 태양훈.”
태양훈? 처음 듣는 이름이다. 여러 곡을 작곡한 유명한 작곡가라면 내가 들어봤을 법도 한데.
누구길래 초록 형이 이를 가는지 모르겠다. 나머지 멤버들의 표정에도 의아함이 잔뜩 묻어났다.
“누구길래 그런 반응이야? 원수라도 되나?”
초록 형에게 원수라면 벌써 처리되고도 남지 않았을까?
속으로 혼자서 짐작해보고 있는데 의외로 오란의 그 발언이 뒷걸음치다 쥐를 잡았다.
“원수라고 하면 원수지.”
“아직도 살아있어? 아….”
눈이 똥그래진 박하가 초록 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사적으로 물었다가 눈치를 봤다.
“내가 아이돌 됐다고 몸 사려서 그런가. 영 어설펐네.”
“그래서 어떤 사이?”
초록 형은 뜸을 들여서 궁금함을 증폭시켰다. 멤버들의 시선이 초록 형에게 가서 꽂혔다.
“이 사람 다들 기억해? 키바라고.”
…키바? 왜 나에게 일방적인 험담을 퍼부었던 그 작곡가 이름이 여기서?
* * *
폭탄을 던진 초록 형은 사정을 알아봐야겠다면서 폰에서 연락처를 뒤적거렸다.
저 휴대폰 속에 담긴 연락처의 인맥만 얻어도 연예계 정복은 순식간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초록 형의 인맥이 없는 곳을 찾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
“여보세요? 잘 지내셨어요?”
곧바로 통화를 시작하는 초록 형을 놔두고 나머지 멤버들과 이야기를 계속했다.
“키바면, 전에 이원 형한테 폭언했던 그 작곡가 맞지?”
“그 새끼 맞아. 근데 흑막 남초록이 이렇게 허술하게 처리했을 리가? 전에 사회적으로 매장했다고 하지 않았냐?”
나도 오란처럼 그게 의문이다. 밤바다를 보며 진실 게임을 했을 때, 초록 형은 자기 입으로 그 사람을 묻어버렸다고 했다.
초록 형은 절대 허술한 사람이 아니다.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사람이다.
무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속 시원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시는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그런데 이렇게 만나다니. 우연이라고 해도 공교로웠다.
“아, 그 작곡가가 작곡비 일체를 안 받는다고 했다고요? …네? 저작권료 양도?”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초록 형이 통화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작곡비? 저작권료 양도?
귀가 쫑긋 섰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도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가 진행되는지 알 수 있었다.
“하눌에서 어떤 짓 저질렀는지는 들으셨죠? …아, 소문 거기까지 났어요?”
초록 형의 마수는 프케이의 소속사에까지도 닿았구나. 그런데도 키바의 곡을 받아들일 만한 먹음직스러운 조건을 제시했다는 거다. 그게 아마도 작곡비 무료와 저작권 양도일 테고.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흠 있는 작곡가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지 않았을까. 대기업 산하의 소속사이기도 하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평판 나쁜 작곡가에게 굳이 곡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일단 알겠습니다. 정보 고맙습니다. 조금 신경 쓰였거든요. 아무래도 저희 멤버랑 엮였던 작곡가라서…. 네. 네.”
초록 형이 인사를 끝으로 통화를 마칠 때까지 우리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지켜봤다.
“…뭐야? 다 집중하고 있었어? 두 번 설명할 필요 없겠네.”
“아니! 정확하게 전달해줘!”
우리는 초록 형의 얘기만 일방적으로 들었을 뿐이라 빠진 이야기가 있을 거였다.
“처음엔 작곡비 안 받아도 되니까 노래만 한번 들어달라고 했다네. 경력 쌓으려고 그런 식으로 흥정하려고 했던 사람이 전에도 있어서 넘기려고 했는데, 저작권료까지 양도하겠다네? 솔깃하지 않았겠어? 게다가 노래까지 좋다면?”
예상대로의 뻔한 줄거리. 밥줄이 끊길만한 절박한 상황이었으니 극단적인 방법이라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초록 형이 한 일은 그저 그 작곡가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거였다.
키바 작곡가의 작곡 실력이 뛰어나다면 그 평판을 무시하고서 곡을 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실력이 중요한 세계니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건 실력 부족이라는 소리였다. 냉정하게 평가해서.
“대기업 자회사 콧대 높은 거야 하루 이틀 아닌데, 결정권자가 본사 쪽에서 온 낙하산이라네? 저작권료 꿀꺽하고 싶은 마음에 받아들인 거 같대. 아마 저작권료는 그쪽 소속사랑 연을 만들기 위한 뇌물이었겠지.”
저작권을 넘기지 않되, 앞으로 들어올 저작권 수입을 넘기는 방식이라는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노래 자체가 좋기도 했겠지만, 실제로 프케이의 타이틀곡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으니 뇌물의 값어치는 했다. 미래를 생각한 전략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곡이 본인의 실력으로 작곡한 곡이기만 했다면.
“근데 초록아, 그 작곡가는 왜 본명으로 작곡가 이름을 올렸을까? 다른 예명을 썼다면 우리가 알아볼 일도 없었을 텐데.”
“아. 그거. 내가 ‘태양훈’ 그 본명에 먹칠했으니까. 아무리 예명을 쓴다고 해도 일할 때 본명을 안 쓸 수가 없잖아. 관계자는 다 알기도 하고.”
적어도 계약서를 쓸 때는 본명이 드러나게 된다. 이름까지 특이한 편이라 기억에 잘 남는다.
그 사람은 아마 한 방에 명예를 회복할 수단을 찾지 않았을까? 그게 프케이 앨범의 작곡가로 이름을 올리는 방법이었을 테고.
“이원아. 그 일본 밴드 곡 찾아줄래?”
아마추어 쪽에선 그래도 인기가 꽤 있는 밴드여서 다행히도 음원 등록이 되어 있었다. 한국 음원 플랫폼에서 찾을 순 없고, 뉴튜브 뮤직 Japan에서 찾아야 하지만.
아마도 키바라는 작곡가는 이걸 노리지 않았을까. 뒤늦게 표절이 알려지더라도 그땐 프케이라는 그룹이 사라진 이후여서 책임을 묻기가 어정쩡해질 테니.
나는 폰으로 미리 찾아둔 곡을 재생시켰다.
“이 부분부터 유심히 들어줘.”
노래가 흘러나오는 중간, 여기부터 약 30초. 템포가 살짝 빨라지고, 밴드 음악의 색을 뺄 수 있게 악기를 변경한 것 빼고는 기본 멜로디에 코드 진행까지 똑같았다.
다시 들어도 여전히.
“…너무 똑같은데? 내 귀에도!”
“빼박이네. 반박의 여지 없이! 티저만으로도!”
비슷하다 정도가 아니었다. 곡 전체가 아니라 45초로도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똑같았다. 게다가 간주 부분을 편집해 담은 티저가 아니라 하이라이트 부분이었다.
“이거 우리끼리 다룰 일이 아닌 거 같아.”
표절은 예민하게 다뤄야 하는 문제. 회사에도 당연히 이야기를 해둬야 한다.
“…프케이를 무너뜨릴 기회인가?”
순간 귀에 들어온 중얼거림에 본능적인 소름이 돋았다.
“초록 형!”
표절 문제를 빌미로 커다란 논란을 만든 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초록 형의 수완이라면.
현실성이 넘쳐서 더 가볍게 들어 넘겨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초록 형을 막지 않으면, 정말로 연예계에 큰 파장이 일지도 모른다.
“뒤에서 부추기려고? 그것도 괜찮지. 걸리지만 않는다면.”
“그렇지?”
“오란아, 거기 동조하면 안 되지. 만에 하나라도 테오라가 연결되면….”
“우리 아이돌이야! 아이돌!”
만약을 걱정하는 서혼 형과 아이돌답게 행동하자는 박하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둘이 없었다면 테오라라는 그룹이 어둠 속의 흑막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일.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자고 할 건데, 이기고 생각하자. 프케이는.”
승부욕이 강한 지온은 수단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편법으로 이긴다고 해도 안 기뻐.”
내 의견으로 3:3 동점이 돼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다수결로 밀고 나갔을지도?
“함이원,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서 이 정글 같은 세계에서 잘 살아남겠냐?”
“홍오란 너는 원칙주의자 아니었어? 왜 원칙이 고무줄처럼 적용돼?”
“내가 내 입으로 원칙주의자라고 말한 적 없는데? 원칙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라면 모를까.”
홍오란 해석에 약간의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머릿속 한구석에 잘 기억해뒀다.
“이원아. 출처 모를 소문 하나 늘어나도 괜찮지 않을까? 그게 근거 없는 루머도 아닌데?”
초록 형은 오늘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할 생각으로 가득해 보였다.
이걸 어떻게 대답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