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81
보람차고 신기한
“이게 뭐야?”
“현오 형이 썼던 일기장이랑 유언장, 관련 서류예요. 말로만 전달하면 믿기 힘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준비했었어요. 일기는 다 보고 돌려주시면 좋겠어요.”
관련 서류는 유언을 공증했던 변호사에게서 받았는데 이럴 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 읽어보고 줄게. 연락처 알려줄래?”
연락처를 교환하고 조만간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다.
규영 형이 직접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권해주셨지만, 혼란스럽고 힘들어하시는 분에게 운전까지 부탁할 수는 없었다.
준현 형에게 픽업을 부탁드려서 숙소 앞 골목으로 돌아왔다.
숙소 현관문에 있는 도어락에 손을 가져다 대려다 멈칫했다.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면 멤버들이 반겨주겠지만….
발길을 돌려서 작업실로 향했다. 나에게도 혼자 감정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 * *
조용히 규영 형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에도 연예계는 바람 잘 날 없었다.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인 에서 만들어진 그룹, 프케이가 공식 해체 발표를 한 뒤의 여파가 거셌다.
처음부터 예고된 일이기는 해도 어떻게든 그룹이 유지되길 바랐던 팬들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수많은 학생이 밤새 울고 퉁퉁 부은 눈으로 등교했다는 카더라 소식이 들려왔다.
인기 그룹이 해체되며 생겨난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신인 그룹이 속속들이 데뷔를 예고하고, 기존 아이돌 그룹들도 컴백 일정을 잡았다.
연예계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다들 바쁜 시기이기도 했다.
바로 설날 때문이었다.
우리 또한 예능 촬영이 있어 방송국에 나와 있었다.
“설날이 설날 같지 않아! 설날엔 맛있는 거 먹고 세배하고 용돈 받아야 하는데!”
설날 인사를 무한 반복하는 앵무새가 된 기분이라고 박하가 툴툴댔다.
“우리 같은 아이돌한텐 일하는 설날이 행복한 설날이지. 설날에 하나도 안 바쁘다? 그건 그것대로 슬플걸.”
“난 설날 분위기를 내고 싶다구!”
“그럼 나한테 세배라도 해보든지.”
“세뱃돈 줄 거야?”
홍오란은 묵묵부답이었다. 자기가 먼저 세배 얘기를 꺼냈으면서 세뱃돈을 주기는 아까운 모양이다.
하긴, 아직 정산받기 전이라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진 않았다.
“설날 이벤트라….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뭔데? 얼른 말해줘, 초록 형! 나 궁금한 거 못 참는 스타일인 거 알잖아!”
“설맞이 자원봉사를 가자.”
“자원봉사? 초록 형이 자원봉사를 가자고 하는 거야? 혼이 형도 아니고?”
“날 뭐로 보는 거야. 남초록은 선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라고.”
“…Green?”
“지온아. 잘못 먹은 거 없으니까 그 눈빛은 치워줄래?”
지온이 어떤 눈빛을 보냈는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불신이 가득하고 떨떠름한 눈빛이었겠지.
“알았어. 사실대로 말하자면 준현 형이 추천한 거야.”
“그럼 그렇지!”
“씁! 요즘 스케줄이 있기는 한데 활동기보다는 훨씬 적잖아. 그래선지 우리가 안절부절못하는 거 같다고 추천하시더라. 마음 건강에도 좋을 거라고.”
“아니라고 반론할 수가 없네. 요즘 부쩍 불안해하는 모습들이 보여서. 어쨌거나 나는 찬성이야.”
서혼 형을 시작으로 만장일치가 나왔다. 새해를 맞이해서 봉사를 하는 셈이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초조함도 조금은 희석될 테고.
“어디로 갈래? 아, 참고로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다녀올 거야.”
“떠들썩한 건 무대랑 평소로도 충분해.”
나도 오란과 같은 생각이다. 굳이 봉사활동을 시끄럽게 알리면서 가야 할 필요는 없다.
테오라는 그런 수단을 쓰지 않고 실력으로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개인적으로는 유기견이나 유기묘 보호센터가 좋을 것 같은데. 소란스러워질 일도 적을 테고. 준현 형이 아는 곳이랑 연결해주실 수 있다고 했거든.”
“좋아! 강아지도 좋고 고양이도 좋은데 유기묘 보호센터 가면 현이가 질투할 테니까 강아지들 만나러 가자!”
현이가 질투하려나? 똑똑해서 그런지 주황이에게 질투하지는 않았는데 다른 고양이 냄새를 묻혀오면 질투할지도?
“그럼 되도록 빨리 갈 수 있는 날짜로 잡아볼게.”
초록 형의 실행력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다. 애초에 우습게 본 적도 없었지만, 바로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게 될 줄이야.
“미리 날짜 잡아둔 다음에 물어본 거 아니야? 의심스러워!”
“하루면 일 하나 처리하기엔 충분하지. 스케줄이 저녁에 딱 하나여서 오늘 가도 괜찮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스케줄이 바로 캔슬되는 게, 다녀오라는 계시 같더라고.”
“어쨌든 뭉뭉이들 만나러 간다! 히힛!”
“혹시 정기적으로 봉사 다닐 생각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
“옛썰!”
회사에서는 유기견 후원 물품을 지원해준다고 했다. 우리가 봉사활동 가는 곳에 후원하는 걸로 봐선 우리 테오라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가 담기지 않았을까.
테오라 멤버들을 태운 밴은 한적한 허허벌판에서 멈췄다. 서울에서 그리 오래 이동한 것 같지는 않은데 주변이 온통 논과 밭이었다.
그 허허벌판에는 유기견들이 지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건물이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신 규모도 있고 지은 지 얼마 안 돼서 깔끔해 보였다. 소음이나 예산 같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이곳에 유기견 보호센터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보호센터 정문으로 들어섰더니 센터 직원분이 우리를 마중 나왔다.
“안녕하세요! 오늘 오시기로 했던 분들이시죠? 이쪽으로 오세요.”
일부러 이른 시간에 온 보람이 있었다. 다른 봉사자들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을 듯했다.
“견사 청소 먼저 해주시고 애들 산책시켜주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사진 잘 찍는 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저요! 저 사진 예쁘게 잘 찍을 자신 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보호소에 있는 유기견들에게 제일 바람직한 방향은 좋은 가정으로 입양되는 것. 입양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매력을 돋보이게 해줄 사진이 중요했다.
박하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고 위풍당당하게 앞서 걸었다.
강아지들이 있는 견사는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편이어서 크게 힘든 일은 없었다.
의외의 복병은 산책이었다.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보호하고 있는 강아지들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이 아이들이 전부 버림받은 걸까….
자꾸만 폐부를 찔러오는 인간의 잔인함에 괜히 더 열심히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
우리는 매니저인 준현 형까지 포함해서 일곱 명. 한 번에 한 시간 정도씩은 산책을 시켜줘야 하니 한 사람이 여러 마리를 동시에 산책시키는 스킬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박하야, 괜찮겠어?”
“거뜬해!”
무려 대형견만 다섯 마리를 데려온 박하는 보기에도 불안불안했다.
애들이 순해 보이기는 해도, 덩치가 크니까 잘못하다간 질질 끌려갈 것 같은데….
자신감 넘치는 박하에게 잔소리로 기를 죽이기도 그래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혼이 형도 다섯 마리잖아. 준현 형도!”
“형들이랑 비교하면 되겠어? 너보다 훨씬 힘도 세고 요령도 있을 텐데.”
“어쨌거나! 나도 괜찮아!”
그리고 큰소리를 친 결과는 뻔했다.
“우아악! 얘들아 천천히! 천천히이! 흐아아?!”
다행히 목줄을 놓치는 일은 없었지만, 바깥 공기에 흥분해서 달려가는 개들을 따라 강제로 전력 질주했다. 그나마도 순한 아이들이라 익숙한 산책 코스로만 다녀준 덕분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박하가 파김치가 된 것 말고는.
“헥헥헥….”
“분명 개들 산책시켜주는 시간일 텐데 왜 네가 산책 당하고 오냐. 뭐, 애들은 만족스러운 거 같으니까 됐나.”
오란이 흙바닥에 엉망진창으로 뻗어버린 박하에게 냉정한 소리를 던지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괜찮아?”
박하는 숨이 차서 헐떡이는 상태로 울상을 지었다.
“이원 형은 귀족처럼 산책시키는데 왜 난! 흐엉?”
“그러게, 욕심부리지 말았어야지.”
초록 형은 박하를 혼내면서도 손을 내밀어줬다. 이래서 초록 형이 리더인 거 같다.
박하는 초록 형과 서혼 형에게 기댄 채로 칭얼거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가자.”
센터 로비에는 준현 형이 사진 장비를 챙겨서 미리 와 있었다. 초록 형은 박하에게 이온 음료를 건네고, 서혼 형은 박하의 팔다리를 주물러줬다.
지금부터는 박하의 활약이 필요한 시간이라 마치 중요한 경기를 앞둔 선수 같은 대우를 받는 중이었다.
“하핫! 박하 님 나가신다! 멍뭉이들 인생 컷은 내게 맡겨줘!”
잠깐의 휴식으로도 금방 체력을 회복한 박하가 카메라 스트랩을 어깨에 걸었다. 그러곤 가슴을 한껏 펴고 대장처럼 앞서 나갔다.
그 뒤를 지온을 제외한 멤버들이 따랐다.
지온은 숙소에서 만들어온 수제 간식을 나눠주러 쌩 가버렸다. 왠지 뒤에 일어날 귀찮은 일을 예감한 게 아닐까 싶다.
“애들 빗질부터 해줘! 사람에게 머리 빨이 있다면 멍뭉이들에겐 털 빨이 있는 법!”
박하의 지시에 따라 강아지들 털을 빗기고 사진 배경이 될 곳을 청소했다.
“이 각도가 아니야!”
빛이 영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결국은 야외에서 사진을 찍게 됐다.
이럴 거면 청소는 왜 또 시켰는데?
예술가의 변덕이란 게 바로 이런 거였나 보다. 한 번의 경험으로 완전히 깨달아버렸다.
찰칵찰칵찰칵?
그래도 한번 찍기 시작하고는 느낌이 왔는지 거침없이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최상의 사진을 건지겠다면서 자세를 바꿔가며 연속촬영을 했다.
한 마리 한 마리를 정성 들여 찍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서 다른 자원봉사자와 마주치는 일이 있긴 했지만, 사인 앨범으로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다.
“보람차! 뿌듯해! 시간 날 때마다 올래!”
아까 개들에게 농락당했던 건 이미 기억에서 지워버렸나 보다. 개들도 만만한 사람을 알아보고 짓궂게 군다고 센터 직원분께 슬쩍 들었지만, 박하에겐 말하지 말아야겠다.
“애들이 눈에 밟혀서라도 자주 와야겠어.”
아픈 아이들, 불안해서 꼬리를 만 아이들, 심지어는 두려움을 표출하며 공격적으로 구는 아이들까지도 서혼 형 앞에서는 순해지는 마법이 걸렸다.
개들도 본능적으로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거겠지.
좋은 일을 한다는 보람도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어서 좋았다. 머리까지 상쾌해진 기분이 들었다.
오란도 사람들 이목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한결 편해 보였고, 지온도 강아지 수제 간식을 만드는 스킬을 레벨업시킨 것 같다.
강아지들과 놀면서 즐겁기까지 했으니 이번 봉사활동은 대성공이었다.
* * *
“…이게 뭐야? 야! 함이원! 이리 와봐! 제톤! 박하준!”
형들이 자리를 비운 숙소에 홍오란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이 생겼나? 웬만한 일에는 소리를 높이지 않는 오란인데?
“왜 그래?”
“저거 봐.”
손가락으로 가리킨 TV 화면엔 뉴스가 한창 방송 중이었다. 자료화면과 함께 강도미수 피해자가 모자이크로 가린 얼굴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뉴스가 왜? 아는 사람은 아니지?”
“뭐야? 뭔데?”
박하도 지온도 방에서 나와 TV 앞에 쪼르르 섰다. 뭘 말하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동안 뉴스는 다른 내용으로 넘어갔다.
“자세히 설명해봐. 뭘 보라던 거였는데?”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 미수로 끝난 상황이었거든? 근데 집에 있던 호신봉으로 방어했다고 피해자가 인터뷰하면서 호신봉을 보여줬는데 그게….”
“그게?”
“테오라 응원봉! 그거였다고!”
“…!”
“틀림없어! 거기 적힌 테오라 이니셜 똑똑히 봤다고!”
홍오란답지 않게 흥분한 모습이 나올만했다.
테오라보다 테오라의 응원봉이 먼저 뉴스를 타 버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