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1
데뷔조 발표
데뷔조가 발표된다는 말에 세미나에 남자 연습생이 전부 모였다. 세미나실은 다 같이 영상자료 볼 때 주로 사용되는 장소로 계단형 강의실에 가까웠다.
내 운명이 달라질 수 있는 날이라는 생각으로 발표를 기다렸다. 심장이 점점 더 크게 두근거렸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도 전부 굳어있었다. 다들 긴장해서 낯빛이 새하R다. 간이 커서 별로 긴장하지 않을 것 같던 오란도 오늘만큼은 잔뜩 긴장한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하긴, 오란은 이번에 떨어지면 연습생을 그만두겠다고 했지. 나보다 더 긴장하는 게 정상일지도 모르겠다.
연단에 데뷔조 발표를 위해 대표님과 신인 개발 팀장, 그리고 지나가다 몇 번 봤던 남자가 서 있었다. 발표를 주도하는 사람은 마이크를 잡은 대표님이었다.
“데뷔 평가를 치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보름간의 심사를 통해 연습생들의 실력이나 인성, 성실함 등을 엄격하게 평가하여 데뷔조 멤버를 결정하게 됐습니다. 이번에 데뷔조가 된 연습생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그렇지 못한 연습생들에게 심심한 유감의 말을 전합니다. 오늘은 정해진 일정이 없으니 발표 후엔 데뷔조 멤버만 남고 집으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두구두구두구?
시상식 발표 직전에 나오는 드럼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그럼 발표하겠습니다. 하눌 엔터의 새로운 남자 아이돌 그룹의 데뷔조가 된 연습생은….”
안 그래도 덜컹거리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내 이름이 나올 수 있을까. 그러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연습량이 한참 부족하지 않았을까. 평가 당일에 아팠던 걸 들키진 않았을까….
떨어지면 어쩌지. 다른 기획사에 가야 할까? 박하나 초록 형, 서혼 형, 지온, 오란은 데뷔조에 들어가겠지? 나만 떨어지면 축하해줘야겠지? 표정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표님이 이름을 꺼내기 전 수많은 상념이 나를 괴롭혔다.
“박하준. 홍오란. 서 혼. 남초록. 김지온. 그리고 함이원. 이상입니다.”
귀가 이상해진 건 아닌지 의심했다. 내 이름이 불린 거 맞지? 내 이름 함이원이지?
“와! 와! 으아아아!”
옆에서 박하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일어서서 팔을 마구 휘둘렀다. 초록 형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어깨를 떨었다.
오란은 일어섰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지온은 몇 번이고 자기가 맞냐고 되묻는 중이었다. 그리고 서혼 형은 얼어붙은 채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코가 찡했다. 노력이 보답받는구나. 나보다 훨씬 노력해온 이들이었다. 내가 데뷔조가 된 건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얼떨떨했지만,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큼은 너무나 기뻤다.
솔직히 거짓말 같았다. 현오 형의 목소리를 얻은 후에 아이돌이라는 꿈을 갖게 됐다. 그 길로 무작정 기획사를 찾아 연습생이 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뷔조에 뽑히게 된 거다.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일이 술술 풀렸다.
이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볼이 따갑게 느낄 정도로 누군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름이, 구대명이었던가? 왜 노려보는지 짐작 가는 부분이 없었다. 별로 마주친 적도 없는 연습생이었다
그 연습생은 나를 잡아먹을 듯 무섭게 노려보다가 몸을 홱 돌려서 세미나실을 빠져나갔다.
데뷔조로 발표된 멤버 외에 나머지 연습생들은 실망감을 숨기지 못한 채로 세미나실을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대표님은 어쩐지 세미나실의 문을 응시하면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리 모여주세요. 공지할 사항이 있습니다.”
신인 개발 팀장이 우리를 불렀다.
정신을 차린 초록 형이 멤버들을 하나하나 추슬러 앞으로 데리고 나갔다.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던 서혼 형이 눈가를 소매로 대강 닦아내며 발을 옮겼다. 박하는 신나서 쫄래쫄래 나갔고 지온도 덩달아 끌려갔다.
나는 오란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평소라면 내 손을 치워버렸을 오란은 정신이 빠진 채 내가 이끄는 대로 끌려 왔다.
“먼저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거 알죠? 데뷔 준비는 빠르게 진행될 거예요. 정신없겠지만 잘 따라와 주길 바랍니다.”
이제야 출발선에 섰다. 꿈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셈이다. 설렘과 기대로 가슴이 뛰었다.
“몇 가지 당부할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 학교 다니는 분들 일정 조정해 주세요. 일정이 빡빡해서 학교 제대로 다니면서 준비하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둘째, 이제부터는 합숙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스케줄 관리가 쉽고 움직일 때 편하니까요.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짐 챙겨서 알려주는 주소로 되도록 빨리 짐을 옮겨 주세요.”
데뷔 준비까지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린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하눌 엔터는 그 모든 절차를 압축해서 진행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려면 우리도 그만큼 굴러야 했다.
“셋째, 우리 회사는 아티스트 의견을 중시합니다. 그만큼 여러분도 주체적으로 데뷔 과정에 참여해주기 바랍니다. 그룹명이나 세계관 같은 걸 고민해봐도 좋고 뭔가 필요하다면 바로 요청해주세요. 여러분과 우리는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입니다. 넷째, 문제 될만한 행동은 하지 말아 주세요. SNS는 삭제하길 바라고, 스포일러는 금지입니다. 다섯째….”
우리는 한참 신인 개발 팀장이 늘어놓는 당부를 새겨들었다. 생각보다 빡빡하구나.
“이쪽은 데뷔조로 지내는 동안 여러분의 생활을 도와줄 최현준 매니저입니다. 뭔가 궁금하거나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매니저님을 통해서 전달해주세요.”
“안녕하세요. 매니지먼트 3팀 최현준입니다. 잘 지내봅시다.”
우리는 다 같이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매니저님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강하게 생긴 데다 덩치가 크셨다. 키가 190을 넘길 것 같았다. 길에서 지나가다 마주치면 보디가드나 군인으로 볼 것 같은 외모였다.
“대표님, 따로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크흠. 데뷔조를 뽑는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통과한 여러분이 앞으로 잘해줄 거라 기대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회사의 재산이나 마찬가집니다. 항상 건강 유의해요. 오늘만큼은 마음껏 기쁨을 누리고.”
대표님은 말을 마치고 세미나실을 나가셨다. 신인 개발 팀장님이 나가기 위해 문을 열다가 멈춰서 뒤를 돌아봤다. 무언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을까.
“참, 가족에게 연락 먼저 하세요.”
아! 우리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냈다.
* * *
데뷔조가 되었다는 소식에 부모님은 축하한다면서 파티 준비를 하겠다고 야단법석이셨다. 집에 돌아가면 시끌벅적한 파티를 절대 피할 수 없겠지.
나는 금방 전화를 끝냈다. 통화 자체도 익숙하지 않은 데다 용건 외에 뭘 또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슨 화제를 가지고 몇십 분씩 통화하지?
‘용건만 간단히 파’인 나와 달리, 박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제야 통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엄마…. 나 드디어 데뷔조 됐어. 이제 진짜 데뷔할 수 있어. 응. 엄마도 고생 많으셨어요….”
오랜 기간 연습생 생활을 한 박하에겐 더더욱 감격스러운 날이겠지.
나는 편하게 통화를 할 수 있게 자리를 비켜줬다. 서혼 형과 오란은 통화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초록 형은 다시 울컥했는지 비상구 계단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연락할지 말지 고민 중인 걸까. 손에 핸드폰을 가지고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그 옆에 가서 앉았다.
“연락 안 하려고?”
“…해봐야 좋아하지도 않으실 텐데. 우리 부모님은 나 아이돌 하는 거 반대하셔서.”
“…그래도 통보는 해둬야 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모르다가 나중에 TV에서 발견하면 얼마나 놀라시겠어.”
“그러려나? 그럼 연락 안 할래. 놀라셨으면 좋겠거든.”
진짜로 연락 안 하기로 정했는지 초록 형은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뒀다. 괜찮으려나…?
“짐은 언제 옮길 거야? 나는 오늘 옮길까 하는데.”
“오늘 바로?”
“어차피 나 학교 근처에서 혼자 살거든. 짐도 별로 없고 빨리 들어가서 너희랑 같이 지내고 싶어.”
외로움을 타는 듯했다. 초록 형은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부분이 약하구나.
“초록. 나 오늘 들어가고 싶다. 그런데 짐 많아서 못가.”
비상구 문을 열고 들어오던 지온이 초록 형 오른쪽에 앉으며 말했다.
“얼마나 많길래 못 와. 도와줘? 근데 지온, 우리 숙소 그렇게 크지 않을 거야. 짐 조금만 가져가야 해.”
“아예 집 취소하려고 했는데? 안 돼?”
단어 선택이 바르진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이해가 됐다.
“집 빼려면 나머지 짐을 따로 보관해야지. 어디 짐 둘 곳 있어?”
“몰라.”
짐을 보관할 장소가 필요하지만, 대책은 없다는 뜻이었다. 초록 형이 지온의 대답을 듣고는 가슴이 꽉 막힌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지온. 우리 집에 보관할래? 빈방 있는데 거기 보관하면 될 것 같아.”
내가 대책을 내놓았더니 초록 형이 지온보다 더 반색했다. 그 후, 나의 오늘 일정이 강제로 정해졌다.
먼저 초록 형의 집에 가서 짐을 싸놓고, 지온의 집으로 넘어가서 숙소로 가져갈 물건을 분류하기로 했다. 그다음 보관해야 할 짐을 챙겨서 지온, 초록 형과 함께 우리 집에서 하루 묵는 일정이었다.
본가가 멀어서 친구와 같이 살고 있다는 서혼 형도 끼어들었다. 박하와 오란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기쁨을 나누기로 했다.
튼튼한 일꾼이 넷이나 있으니 웬만한 짐은 거뜬히 옮길 수 있을 테지. 당연히 아무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초록 형이 자취하는 집에서는 딱히 건드릴 게 없었다.
초록 형은 미니멀리스트였다. 원래 집에 있던 가구 빼고는 개인 짐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준비한 상자에 짐을 착착 분류해 모아둔 뒤 간단한 배낭만 메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이사가 이렇게 만만한 일일 줄이야.
“여기가 우리 집.”
지온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사에 대한 자신감이 한껏 치솟아있었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자마자 우리는 경악하고 말았다. 여기서 산다고?
지온은 초록 형과는 정반대로 극도의 맥시멀리스트였다. 별로 크지도 않은 집인데 옷과 물건들로 가득 찬 정글이었다.
지온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사이를 손으로 헤치며 들어갔다. 초록 형은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이해 불가의 뭔가를 목격한 표정이었다.
“…이거 나만 막막해?”
“어디서부터 건드려야 하지?”
그래도 초록 형과 서혼 형은 무언가 시도해보려고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물건을 조금 옮겨봤지만 티도 안 났다.
“절대 오늘 안으로 해결 못 한다고 봐. 서혼 형. 초록 형.”
“이원이 말 듣자. 견적이 안 나와. 프로에게 맡겨야겠어….”
우리는 결국 숙소로 가져갈 짐만 골라두고 정글에서 빠져나왔다. 나머지 짐은 포장이사를 불러서 우리 집으로 옮기기로 했다.
마지막 종착지는 우리 집. 갑작스럽게 손님을 초대한다고 했는데도 부모님은 기쁘게 멤버들을 맞아주셨다.
“뭐라도 들고 가야 하지 않나? 지온이는 부탁하는 처지기도 하고.”
“부케.”
“부케? 지온아 부케가 우리나라에선 보통 결혼식에서 사용하는 꽃다발을 말해.”
“알아들었어. 서혼. 그럼 꽃.”
따로 준비할 필요 없다는 데도 셋은 커다란 꽃다발과 케이크 하나를 샀다.
“아빠. 저 왔어요.”
앞치마를 맨 아빠가 우리를 맞이했다. 평일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아직 회사에 계실 시간이었다. 대신에 칼퇴근을 하고 오신다고 하셨다.
아빠와 셋이 살갑게 인사를 나눴다. 선물을 받아든 아빠는 꽃다발을 받고 화려한 색감에 감탄하며 꽃병에 꽂아두셨다.
나는 먼저 지온에게 짐을 보관할 장소를 알려주기 위해 일행을 데리고 지하로 내려왔다.
“여기야. 내 연습실 만들려던 공간인데 환기가 잘 안 돼서 내버려 뒀었어. 쓰는 사람 없어서 마음껏 사용해도 돼.”
문을 열어 공간을 보여주었다. 현재는 잡동사니 몇 상자와 가구가 들어가 있었다.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전부 버려도 괜찮을 거다. 그러고 나면 지온의 짐이 들어갈 공간은 충분히 나오겠지.
“생각보다 환기 잘 되는데? 채광도 괜찮고.”
초록 형은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청소해야겠다고 중얼거렸다.
“이원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부자구나 싶긴 했는데 예상을 뛰어넘네.”
“나 그냥 여기 살아도 되겠어, 이원.”
지온은 아예 우리 집 지하에 터를 잡으려나 보다. 왠지 어떤 영화가 생각난다.
“어차피 짐도 여기 있으니까 가끔 놀러 와.”
“이 공간 렌트 하면 안 되나?”
“내가 집주인이 아니라서….”
우리 엄마, 아빠가 있는 자리에서 정말 물어봐야겠다고 지온이 혼잣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러다가 같이 살게 되려나. 그런데 숙소에서 합숙하니까 여기 올 기회도 없을 텐데….
하지만 지온의 기분에 찬물을 뿌릴 것 같아서 그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