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38
광고해버린다고?
긴 연습 끝에 수분을 보충하면서 쉬는 시간에, 초록 형이 말을 꺼냈다.
“우리 데뷔 얼마 안 남았잖아. 그래서 상의하고 싶은 게 있어.”
멤버들 모두 초록 형에게 주의를 집중했다.
“우리가 아이돌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하지 않아야 할지. 그런 것들.”
리더로서 꺼낼 수 있는 중요한 발언이었다. 지금까지는 데뷔한다는 그 목표에 급급해서 차분히 생각해볼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순식간에 진지해진 자세로 초록 형의 말에 집중했다.
“하나씩 생각해보기 전에 내가 먼저 얘기 좀 할게. 나는 팬들이 있어야 우리가 아이돌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해. 팬이 하나도 없는 아이돌이라면 아이돌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고.”
Idol. 우상.
지금은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 그룹을 표현하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돌이라는 단어는 많은 사랑을 받는 대상을 지칭하고, 신처럼 숭배받는 존재를 뜻하기도 했다.
신처럼 숭배받다니…. 무엄하지만, 실질적으론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리를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우리가 어떤 태도여야 할까? 우리는 아낌없는, 아무런 대가 없는 사랑을 받겠지. 그 사랑에 우리는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뭐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만 있었다. 나도 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구나. 그저 먼 나라의 일처럼 생각했다.
팬이 생기면 감사하겠지. 태도 논란 일어나지 않게 똑바로 해야지. 그런 막연하고 단편적인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아직 데뷔 전이라 감을 못 잡겠지? 하지만 결국은 팬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될 거야. 나는 다른 아이돌 그룹이 어떻게 진심이 되어가는지 지켜봤거든. 예외도 있지만, 일반적으론 그럴 수밖에 없어.”
반대로 팬들을 가볍게 보고 무시하는 사람은 그만한 대가를 치렀다.
“팬들은 그 존재만으로 우리가 무대에 서게 해주고. 그런 우리의 모습을 응원하고 함께 즐겨주고. 우리에게 돈과 시간, 에너지를 아낌없이 소비하고. 우리와 같이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슬퍼해 줄 테니까. 특별한 대가 없이도 자발적으로.”
친구라도, 부모님이라도 쉽지 않은 일. 나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이라면 나도 그만한 진심으로 대해야 했다. 그게 이치에 맞기도 하지만, 저절로 우러나서 행동하게 되지 않을까.
“나도 그런 생각 해봤어. 우리를 좋아하게 되면 우리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지지. 우리를 선망해서 행동을 따라 할 수 있고, 우리가 가진 물건을 따라 살 수도 있지. 그러니까 우리는 모범이 되어야 해.”
서혼 형의 말대로 영향력이 커지면 그에 따른 여파가 생긴다. 연예인의 죽음이 우울증을 불러올 수 있듯이.
우리의 영향력이 부정적일지 긍정적일지는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었다. 뒤에 따라올 여파에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적어도 저 아이돌은 저래도 되고 우리는 안 되느냐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아이돌의 의미처럼 우리가 우상다운 우상이 됐으면 좋겠어.”
아이돌로, 그것도 모범이 되는 아이돌로 살아가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결백한 행동을 요구받으니까.
“팬들이 한순간에 우리를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팬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기도 하지만 변덕스럽기도 하다는 걸.”
아이돌로서 팬들의 뇌리에 우리를 각인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 물 아래로 가라앉지 않으려면 필사적으로 버둥거려야 했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엔 구체적으로 뭐가 있을까?”
“연애?”
“연애?”
박하와 거의 동시에 외쳤다. 괜히 소속사에서 연애 금지를 조건으로 내세우는 게 아니니까.
“우리 전부 연애에 한참 관심 많을 나이지만 재계약 전까지는 연애 금지야. 재계약 후에나 생각해보자. 연애해도 절대 들키지 않는다면 해도 되는데, 사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봐. 팬들도 다 알고 있지만 눈감아주는 거라더라. 우리 커리어에만 집중하자. 한눈팔 틈 없어.”
“다들 봤잖아. 선배님들이 스캔들 터지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서혼 형 말대로, SEED의 멤버는 극단적인 케이스이기는 했지만 스캔들 때문에 상당한 팬이 빠져나갔다. 게다가 그룹 이미지도 나빠져서 다른 멤버들도 싸잡아서 ‘쟤네들은 연애하려고 아이돌 한다.’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연애하다 걸리면 나랑 상담 1시간 행이야.”
초록 형이랑 상담 1시간이면 밑바닥까지 무자비한 팩트 폭행을 당하며 너덜너덜해지고도 남겠지.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정론으로.
“사회면에 나올 만한 일은 절대 안 돼. 음주운전, 마약, 도박, 성관련 추문 등등. 그리고 서혼 형이랑 나 빼고는 데뷔할 때 미성년자니까 음주, 담배 이런 것도 절대 안 돼. 술 마실 수 있는 나이 되면 다 같이 주량이랑 술버릇 확인한 후에 허락할 거야.”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이미지를 지켜주겠다나. 술에 대한 호기심이 크지 않아서 별로 불만은 없었다.
“내가 제일 오래 기다려야겠네. 형들이랑 같이 술 마셔보려면. 힝~.”
박하가 징징거렸다. 술 마시는 날이 기대된다기보단 ‘형들’이랑 같이 마시는 술자리를 기대하는 듯했다.
“술 마셔도 별거 없어. 박하 너는 술 별로 안 좋아할 거 같은데?”
우리 중에 유일하게 음주 경험이 있는 서혼 형이 박하를 달랬다. 너는 쓴맛을 싫어하니까 술도 별로일 거라고.
박하는 이것저것 타 먹으면 되지 않냐고 반론을 펼쳤다. 서혼 형은 그럴 거면 왜 술을 먹냐고 의아해하며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잠시 대화의 주제를 벗어났지만, 곧 돌아왔다. 초록 형이 웃음기 가신 얼굴로 둘을 쳐다봤기 때문에.
하루 중에 자는 시간만 빼고 웃고 있다고 봐도 될 초록 형이 정색하면 그 무게부터 달랐다.
“집중해. 논란을 일으킬 빌미를 제공해선 안 돼. 역사와 관련된 민감한 행동은 나한테 확인 후에 해.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 일은 아이돌이 해선 안 되고 욕설도 혐오 표현도 안 돼.”
비단 아이돌만이 아니라 공인이라면 지켜야 할 암묵적인 규칙. 실수라도 하면 순식간에 논란이 생길 수 있었다.
“나중에 연예인 병 걸리는지 아닌지 지켜볼 거야.”
연예인 병은 한 번쯤 겪고 지나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랬다간 나중에 놀림 받을 게 뻔했다. 저절로 경각심이 들었다. 내 생각엔 내가 스스로를 연예인이라고 인식을 하는 데에도 한참은 걸릴 것 같지만.
“나머지는 때 되면 차차 얘기해줄게. 팬미팅에 임하는 자세라거나 라이브 방송할 때 주의사항이라거나.”
초록 형은 연예계의 생태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이쪽 세계에 익숙했던데다가 아이돌이 되기로 하면서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던 것 같다. 아이돌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구조를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걸 빼먹으면 안 되지. 문제가 생기면 재깍재깍 털어놓기. 우리가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아무런 빌미를 주지 않아도 문제가 생기기도 하잖아. 그럴 때 다 같이 의논해서 풀어나가자.”
멤버가 여럿이어서 좋은 점은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내 고난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내가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해결 방법을 얻을 수도 있고.
“아프거나 컨디션이 안 좋으면 꼭 말해. 내가 어떻게든 도와줄 테니까.”
‘아프거나’라고 말하면서 초록 이 나를 힐긋 쳐다봤다. 아무래도 내가 데뷔 평가 무대에 설 때 아팠던 일을 지적하는 듯했다.
내심 찔려서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초록 형은 픽 웃고 시선을 다른 멤버들에게 돌렸다.
문제를 빨리 인식할수록 빨리 대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초록 형은 아프기 전에 예방하거나 조금 아플 때 쉴 수 있게 조치해줄 것이다. 한 명이 스케줄에서 빠지게 되더라도 그에 따른 처리까지 완벽하게 해주지 않을까.
“여기까지 나온 이야기에 덧붙이고 싶거나 반박하고 싶으면 말해.”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다른 멤버들은 덧붙이고 싶은 규칙을 짧게 말했다.
테오라가 지켜야 할 규칙이 점점 늘어났다. 처음엔 강한 것부터 시작했는데 나중엔 청소와 쓰레기 당번까지 정하게 됐다.
공동생활을 한참 한 후에야 이야기가 나오다니. 일정이 너무 바쁘다 보니 불만을 말할 틈도 없었나.
“잊지 않게 적어서 보이는 곳에 붙여.”
오란의 말대로 매일매일 보면서 마음에 새겨야 했다. 그리고 지온에게는 한 번에 받아들이기 힘든 사항들이기도 해서 적어놓는 편이 좋았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연예인에 대해서 까다롭게 따지는 경향이 있으니까.
결국, 우리 숙소 문에는 번호를 단 규칙이 적힌 커다란 종이가 붙었다. 테오라가 지켜야 할 규칙 리스트는 크게 적어두고 합숙 생활 규칙은 작게 아래에 따로 붙여 두었다.
“숙소 나갈 때 한 번씩 읽고 나가면 되겠네.”
큼직하게 적힌 글자가 시선을 강탈했다. 숙소에서 나갈 때 눈에 딱 들어오겠네. 세뇌되는 수준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지온이 글자 하나하나를 분석하듯이 읽다가 초록 형에게 질문했다. 단어의 의미는 문맥적으로 이해하지만, 구체적으로는 다가오지 않는 것 같았다.
초록 형은 박하와 함께 실제 예시를 들어가면서 지온에게 설명했다. 구연동화 수준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둘을 보고 나와 오란, 서혼 형은 웃음을 실실 흘리면서 세 명을 지켜봤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네.”
“초록이랑 박하는 구연동화도 잘하겠다. 누가 박하 보고 연기 못한다고 했어?”
초록 형과 박하 모두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서혼 형의 말처럼 박하는 이미지가 망가지는 연기 말고는 준수한 연기력을 보여줬다.
아이돌이 얼굴 근육을 못생기게 일그러뜨려 가며 열연을 펼칠 일은 드물 것이다. 그럼 연기도 잘한다고 평가받지 않을까?
“다 알겠어. 완벽하게 이해했어. 그만, 그만.”
“아니야. 아직 부족해. 이게 상황만 조금 달라져도 대응이 달라져야 한단 말이야.”
“맞아! 지온 형은 더 공부해야 해!”
둘은 지치지도 않고 지온을 붙잡고 늘어졌다.
결국 두 사람의 끈질김에 질린 지온이 도망치는 것으로 그날의 이야기는 일단락되었다.
* * *
어느 날 저녁 매니저 형이 우리를 작은 회의실로 데려갔다. 형의 손에는 어김없이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무언가 찍을 만한 거리가 있다는 의미겠지.
“회의 있어요?”
박하가 물었다. 보통 회의가 필요하면 우리에게 먼저 시간을 알려준 다음 우리를 부르셨다. 그 때문에 이유도 듣지 못하고 회의실로 데려온 건 이상하게 느껴질 만한 일이었다.
“아니. 얘들아, 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봐.”
회의실엔 우리뿐이었다. 우리는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기다렸다. 매니저 형은 TV를 켜두고 뒤로 물러났다. 카메라를 든 채로.
“왜 갑자기 TV를….”
저녁 드라마를 시작할 시간이라서 TV에선 한참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라고? 어쩌면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가 생기기라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는지 다른 멤버들도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우리가 실컷 김칫국을 마실 동안 몇 개의 광고가 지나갔다. 슬슬 집중력을 잃고 시선을 돌리려고 할 때 화면에 나오던 광고가 바뀌면서 테오라의 로고가 떴다.
“…?!”
TEORRA의 철자가 하나씩 나타나더니 화면 정 가운데에 박혔다.
박하가 화면을 가리키며 어버버했다. 지온은 놀람을 섞어 신을 찾았고 서혼 형은 눈만 동그랗게 뜨고 얼어버렸다. 상황 파악이 빠른 초록 형과 오란은 잠깐 놀라다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눈만 깜빡였다.
이거 우리 광고야? TV에서 아이돌을 광고해버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