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97
다 같이 심야 영화
아이돌로 데뷔한 이후에 바쁘게 연습하고 활동하느라 시간이 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영화관에 가기가 조심스럽기도 했다.
영화관을 마비시킬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소란은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지온을 따라간 마트에서 체험해봤으니까.
그런데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혼 형이 그런 제안을 한다면 방법을 찾아뒀을 가능성이 컸다.
“어떻게?”
“사람들이 잘 안 가는 영화관에 평일 자정 넘어서 가면 관객 거의 없어. 나 혼자 그렇게 영화 자주 봐서 알아. 때만 잘 맞추면 영화관 전세 낸 것처럼 볼 수도 있긴 한데, 우리가 출연한 영화는 막 개봉한 영화라 그래도 관객이 어느 정돈 있을 거야.”
“새로운 정보를 알았어!”
“어차피 다 가리고 갈 거잖아.”
지온 말대로 우리를 알아볼 수 있을만한 요소들은 전부 가리고 갈 테고, 관객도 적다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이번 모험이 성공하면 종종 같이 영화를 보러 갈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인지도가 부족하긴 해도 연예인이라는 자각이 생겼는지 공공장소에 가기가 불편했는데 좋은 정보를 알게 됐다.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더라도 집중되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는 하니까.
“좋아. 그럼 다들 동의한 거지? 청소년관람불가 영화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잘못했으면 너희는 볼 수도 없었겠다.”
영화 장르가 스릴러라 진짜 위험했다. 잔인한 장면은 많이 덜어냈는지 다행히 15세 관람가였다.
옛날에 어떤 배우가 자기가 찍은 영화도 못 봤다던데 그런 경험을 할 뻔했다.
서혼 형은 모레 밤 12시 50분에 영화 예매를 마쳤다. 멤버들과 심야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만으로도 설다.
이전에는 부모님과 같이 보거나 혼자만 봤고, 이렇게 친구랑 단체로 가서 본 적은 없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되고 나서 세계가 넓어진 것 같다.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멤버들과 만났기 때문이겠지.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아도 나는 우리 멤버들에게 항상 고마웠다.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돼주어서. 여러모로 서툰 나를 소외시키지 않고 관심을 기울여줘서.
멤버들과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현재를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현오 형이 왜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멤버들을 버릴 수 없다고 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우리 멤버들을 찾을 테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좋은 사람만 만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운이 엄청나게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하지만 나쁜 사람들이 나타나서 나에게 시련을 주더라도 멤버들이 곁에 있으면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테오라’의 함이원이니까.
* * *
테오라의 공식 SNS 계정에서 진행되는 응원봉 투표를 시간 날 때마다 구경했다.
1번과 3번, 6번이 막상막하였고 5번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나머지 두 개도 아주 낮은 득표율을 보이진 않았다.
어느 하나가 특출나기보단 우선으로 두는 요소가 각각의 후보에 흩어져있는 듯했다.
“이대로면 아무래도 여러 응원봉 도안의 장점을 합쳐서 제작하게 되겠다.”
“그러면 ‘진짜’ 테오라와 코티지의 응원봉이네!”
보통 응원봉은 소속사에서 전문가에게 맡겨서 디자인을 정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디자인과 기능에 우리의 손길이 묻어있고, 팬들이 선택했으니 진짜 공동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의미가 깊네. 어떻게 제작될지 기대된다.”
형들도 우리의 응원봉과 굿즈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투표 결과 나오면 몇 번 후보가 누구 그림인지 밝히는 거냐?”
“그래야지?”
“흐.”
짧은 웃음과 눈짓으로 오란은 우월감을 드러냈다.
오란 도안이 몇 번이었길래?
팬들의 반응은 전부 호의적인 편이었고, 난 아직 오란의 글씨체를 잘 몰라서 몇 번인지 가늠해내기가 어려웠다.
의외로 1번이라던가? 오란과 변신 합체 응원봉은 어울리는 듯, 안 어울리는 듯 애매했다.
“내일이면 투표 끝나는데 우승자 상품 없냐?”
“도대체 얼마나 자신이 있길래 상품까지 찾아?”
“보면 모르냐, 함이원?”
홍오란의 자신감이 지붕을 뚫고 나갈 지경이다.
박빙의 투표율을 보이는 후보 중에 내가 3번. 그러니 홍오란의 응원봉은 1번 변신 합체 응원봉이거나 수준급 그림 실력을 보여준 6번.
그러고 보니, 오란은 그림 그리는 뉴튜브를 찍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6번이겠다.
도안 하나로 알 수 있었다. 오란이 가진 수준급 그림 실력을.
“네 게 뭔지 알겠는데 홍오란 도안이 우승할 수 있을까, 과연?”
“나 무시하냐? 내가 적어도 함이원 너보단 투표율 높을걸? 내기할래?”
숙소 구석에서 우리 둘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자 다른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투표 우승 상품도 걸고, 둘이 내기도 하고. 어때?”
초록 형은 말리기는커녕 우리를 부추겼다. 나도 질 마음은 없어서 내기를 받아들였다.
응원봉 투표의 우승 상품은 멤버들 전부에게 한 가지씩 심부름시킬 수 있는 권한으로 정해졌다.
그리고 나와 오란은.
“그럼 홍오란 네가 지면 내 초상화 그려.”
“그러지 뭐. 너도 지면 내 솔로곡 만들어라?”
“원래 만들려고 했거든?”
“물러터져서는. 쯧쯧.”
맨날 물러터졌다고 해서 순간 욱했다. 자기는 얼마나 단단하길래?
“어차피 난 안 질 거라서.”
“웬일로 도발을 다 하네, 울 애기가?”
자존심 싸움에 물러섬은 곧 패배. 최선을 다해 받아쳤다. 우리는 서로가 제시한 벌칙을 받아들였고, 내기가 성립됐다.
“하하. 다들 영화 보러 갈 준비는 끝났지?”
자정이 가까운 시간, 우리는 외출 준비를 마쳤다. 편한 옷에 모자와 안경, 마스크로 꽁꽁 싸맨 차림새로 숙소를 몰래 빠져나왔다.
서혼 형이 골라준 인적 드문 영화관은 걸어서 30분 거리라 걸어서 갈 만했지만, 택시를 타기로 했다.
얼굴을 가린 시커먼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광경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아서.
두 팀으로 나눠 택시를 타고 영화관에 도착했다.
“서혼 형 말대로 사람이 적네?”
평일인 수요일 늦은 밤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도심의 영화관치고는 사람이 적었다.
이 주변이 주택가가 아니라 그런가? 팝콘 판매도 마감된 영화관은 썰렁했다.
“우리 팝콘도 못 먹어…?”
오랜만에 온 영화관에서 팝콘조차 못 먹는다는 슬픈 현실에 박하가 울상을 지었다.
“그럴 줄 알고 형이 준비했지. 팝콘 과자지만.”
어쩐지 서혼 형의 가방이 두둑하고 묵직하더니 2인당 하나씩 팝콘 과자와 개인 콜라를 사서 가져온 모양이다.
한밤중에 영화를 자주 보러 왔다더니 이런 부분에서 경험이 묻어나오는 것 같다. 역시 서혼 형.
우리는 한 손에 콜라와 팝콘 과자를 든 채로 영화관에 들어섰다.
상영시간이 되고 광고가 시작할 즈음 상영관 안에는 우리를 제외하고 10명 남짓한 관객이 있었다.
이 정도면 앞으로 가끔 우리끼리 영화를 보러 와도 괜찮겠다. 조용히 영화를 감상하면서 괜히 즐거웠다.
* * *
영화가 끝나고 나와서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우리는 들떠 있었다.
돌아갈 때는 이미 2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라 행인이 없어서 마스크도, 모자도 벗고 걸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어둑한 밤을 밝히는 가로등과 네온사인 불빛 때문에 아득한 꿈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주인공 그 대사 인상적이었어! 그윽한 저음으로 대사 치는데 소름이 쫙! 너는….”
“너는 심판되었다!”
멤버들이 영화 속 명대사를 동시에 외쳤다. 이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대사이면서, 제목이기도 해서 기억에 콱 박혔다.
“영화 흥행하겠다! 그치?”
범죄자들을 응징하는 안티히어로. 그 안티히어로를 뒤를 쫓는 형사와 기자들. 그들의 심리전과 추격전이 주 내용인데 액션이 시원시원하고 박진감 넘쳤다.
“손에 땀 났어! 중간중간에 코믹한 장면도 적절했고! 능청스럽게 웃기기가 쉽지 않은데! 물론 우리 이원이 형이랑 혼이 형 연기도 한몫했지만!”
나는 말만 카메오지 대사 한 줄짜리 단역이었다. 그마저도 영화 감독님이 서혼 형을 알아보고 신경 써서 편집해주신 거였다.
언젠가 서혼 형이랑 한번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는 감독님은 다음 작품에 부르면 와주겠냐는 제안까지 하셨다.
서혼 형은 다음 작품엔 그래도 꽤 비중 있는 역할로 출연하게 되지 않을까?
내게는 역할 주기가 쉽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그 말을 하면서 얼굴 부근에 손을 아래위로 왔다 갔다 하셨었는데, 내 얼굴에 무슨 문제가…?
서혼 형은 내게 그 감독님은 스토리와 연기력을 중요시하는 분이고, 비주얼로 분량을 잡아먹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나랑은 관련 없는 이야기 같지만, 일단 알았다고 해뒀다. 내가 감독님의 기준에 못 미쳤다면 어쩔 수 없지.
“역시 촬영장 분위기도 중요하네.”
“나도 그 생각했어! 초록 형! 촬영장 구경 갔을 때 화기애애해서 예감이 좋았달까!”
서혼 형과 내가 촬영장에 갈 때 멤버들도 같이 갔었다.
저번처럼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행운은 없었지만, 멤버들은 마음껏 구경한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새벽 공기! 시원해~.”
박하는 두 팔을 펼치고 빙글빙글 돌면서 멤버들 주위를 돌아다녔다.
누가 보면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행히 멤버들 외에 다른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마스크랑 모자 없이 오랜만에 걸어 보네.”
“그러게.”
연예인의 삶을 살게 된 이상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었다. 서혼 형과 초록 형은 느긋하게 걸으면서 잡담을 나눴다.
“이원. 나 가사 썼어.”
“지금 있어?”
“여기.”
지온이 내미는 휴대폰을 넘겨받았다. 메모 앱에는 랩 가사가 빼곡했다.
지온이 가사를 썼다면 이제 녹음만 남았다. 그 문제의 ‘연습곡 No. 5’ 편곡 버전이 곧 합합 음악으로 다시 탄생하겠구나.
‘어색하고 불편하다’가 아니라 ‘힙하고 참신하다’라는 인상을 심어줘야만 한다.
가사를 훑어보니 도전에 관한 주제. 그런데 그 주제를 간신히 유추해볼 수 있을 정도로 난해하고 어려웠다.
원래 지온은 자기 스타일을 억누르지 않으면 심오한 가사가 나오는 편인 것 같긴 했다. 그런데 이번엔 음악의 느낌에 맞추려고 했는지 그 정도가 심했다.
곱씹어 하나하나 파고들면 그만큼 빠져들 수 있는 가사라는 점은 알지만….
개인적 만족이라면 모를까, 대중에게 들려주기엔 부적합했다.
“일단, 내일 작업실로 같이 가자. 들어보고 나서 얘기하자.”
“너만 믿을래. 이원.”
어깨에 팔이 턱 올라왔다. 우리 멤버들이 유난히 내게 치대는 느낌인데, 착각인가?
그만큼 나를 친근하게 여겨준다는 뜻이면 기쁘겠지만….
“함이원 또 쓸데없는 생각 하냐?”
시비를 걸려고 시동을 거는 오란을 무시로 대응했다.
“무시하시겠다?”
홍오란은 다 알면서도 내가 가진 줄도 몰랐던 성질을 꺼내서 긁는 신기한 능력을 오란은 가지고 있었다.
시간 낭비를 싫어하는 오란이 별다른 목적 없이 대화를 건다는 건 친근함의 표시일 거다. 아마도.
“홍오란 넌 내가 만만하지.”
“만만? 글쎄. 그보단 옆에 딱 붙여두고 싶은데?”
“뭐…?”
“넌 내 토템이거든. 행운 토템. 정확히는 마스코트.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냐?”
여전히 내가 자신의 불운을 중화시킨다고 믿나?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지만, 오란의 저 행동들에는 선명한 호의가 섞여 있었다.
마냥 좋아하자니 성질이 나고, 싫어하기엔 의도가 나쁘지 않았다. 내가 바꿀 수도 없는 일이라 결국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내게 오란이 활짝 웃어 보였다. 젖살이 덜 빠진 볼에 콕 찍힌 보조개가 무시무시하다.
애써 모르쇠하고 멤버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 기분 좋게 잠들었다.
다음날, 일어나 여느 날처럼 매니저 형이 숙소에 방문했을 때까지도 나는 우리가 완전범죄를 완성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어제 같은 외출 정도는 괜찮아 보인다. 앞으론 통보만 제대로 해두고 다녀오도록.”
“…?!”
다들 흠칫 놀라서 쳐다보는데 초록 형만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알고 보니 초록 형이 매니저 형에게 알려뒀다고 했다. 우리끼리 아무 말도 없이 나가면 문제가 생겼을 때 위험하다고 판단해서.
그래서 매니저 형은 그 새벽에 우리를 몰래 따라왔다고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던 서혼 형이 먼저 사과했다. 나와 나머지 멤버들도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동안 착실히 일했으니 이 정도 자유는 누려도 된다. 나한테 미리 얘기만 해준다면.”
그런데 어떻게 아무도 눈치 못 챘지? 인적도 없어서 사람들 사이에 숨지도 못하는데?
매니저 형의 은신 실력에 의문을 품은 채로 하루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