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Singer RAW novel - Chapter 108
108
#108. 일도 아니죠(2)
“여기 조용하고 좋지 않아?”
조용하긴 하네.
하아, 그야 그럴 밖에 없는 게 어느 빌딩 지하에 있는 술집이었으니까.
게다가 전세를 낸 건지, 아니면 아직 낮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손님은 우리말곤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눈앞의 소파에 참새들처럼 줄지어 앉아 있는 레이크헬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시선을 돌려보다가 움찔하고 말았다.
레이크헬에 꽂혀 있는 세 사람의 눈빛이 참…….
크리스티나와 조안나는 열망이 가득한 시선으로 레이크헬을 바라보는 중. 그나마 나은 게 에단인데, 바짝 쳐든 고개 하며 물컵 하나 드는데도 삐걱거리는 게 꼭 무슨 로봇같이 군다.
한마디로 얼었다는 거지.
속으로 혀를 차다가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언제나처럼 멤버들을 대표해 콜린이 나섰다.
살가운 웃음이 반갑긴 하네.
“커피믹스 때문에 초에게 전화했었는데, 재밌는 얘기를 들었지 뭐냐. 큭큭큭. 한 놈 완전 보내 버렸다며?”
소문 참 빠르기도 하지.
마루 누나한테 들은 모양인데.
설마 이런 얘기나 하려고 여기까지 와서 이 난리를 친 건가?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이 자식들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으니까.
뭐, 조금은 어울려줄까?
아, 그러기 전에 우선은…….
아무래도 이 자식들, 이젠 아예 커피믹스를 대놓고 먹고 있는 모양인데.
“콜린. 이건 충고니까 잘 들어.”
“응?”
“믹스 커피라는 게 중독성이 엄청 강해. 담배보다 더.”
“그, 그래?”
“요새 막 잠도 안 오고, 배가 별로 안 고프고, 입맛도 없는 게 자꾸 담배만 당기고 그러지 않아?”
“그……그걸 어떻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봐. 하루에 몇 잔이나 마시는 거야? 석 잔? 넉 잔?”
말을 못한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머지 멤버들 얼굴을 바라보니, 다들 찔리는 게 있는지 딴청을 부리고 있다.
대충 알만하다.
시도 때도 없이 마시고 있구만.
“설마 다섯 잔 이상 마시는 건 아니지?”
“그런 건 아니고……. 가끔…밤샘 작업할 때만……. 그래도 유진보단 조금 마시는데?”
“왜 난 끌어들이는 건데!”
“뭐? 내가 틀린 얘기 했어?”
다시금 한숨이 나온다.
안 그래도 시니컬한 녀석이 커피를 물처럼 마셨댔으니 얼마나 예민해져 있을지 눈에 훤하다.
자세히 보니까, 볼도 살짝 패인 게 밥은 안 먹고 커피만 줄창 마셔댄 모양이다.
이 정도쯤 되면 거의 중독인데…….
외할아버지껜 죄송하지만, 커피는 얘들이 안 사 먹어도 많이 팔리니까.
한마디 안 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이쪽에서 너무 깊이 간섭할 문제도 아니니 강요할 순 없지만.
“될 수 있으면 줄이도록 해봐. 아, 참! 마루 누나한테 듣고서 전화했다고 했었지? 그럼 동영상들도 봤겠네?”
콜린 역시 뒤늦게 날 찾아온 이유를 깨닫곤 다시 한 번 웃었다.
“다 봤지. 알렉스인가? 네 커버곡 올린 거부터 시작해서 전부.”
그때였다.
옆에서 제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팀의 막내답게 장난감 공을 본 강아지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도준! 왜 얘기 안 했어! 진짜 재밌었을 거 같은데! 그렇게 재밌는 일 있으면 나도 좀 끼워줄 것이지!”
녀석만이 아니다.
디알로도 서운하다는 표정이 역력한 얼굴로 거들었다.
“줄리아드 갔다고 클래식으로 연주하기야? 그런 일 있으면 우릴 불렀어야지!”
“바랄 걸 바라야지. 얼마나 냉정한 자식인지 몰라서 그래?”
심사가 베베 꼬인 듯 차가운 음성을 토해내는 유진까지.
오직 베릴 만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역시 멤버들 중에선 그나마 가장 점잖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실망이야, 도준.”
큭, 베릴 너마저…….
다시금 흘러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겨우 그런 말들이나 하려고 이 난리를 친 거야?”
콜린이 끼어들었다.
“그야 사람들이 알아보면 너한테 피해가 갈 테니까…….”
“야이! 그렇다고 대낮에 도심 한복판에 납…. 하아, 말을 말자. 내가 잘못했지. 잘못했어. 이런 놈들인 줄도 모르고 괜히 엮여서는…….”
“어? 도준 삐친 거 같은데?”
“진짜?”
“그럼 안 되는데…….”
“콜린! 바통 터치! 어서 베릴 투입해! 빨리!”
뭔가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멤버들에게 등 떠밀린 베릴이 나섰다.
“잘 지냈지?”
느닷없이 인사는.
그래도 레이크헬 멤버들 중에선 이 녀석이 가장 낫긴 하지.
뭐랄까. 그나마 사람 같다. 정상적인.
“알다시피.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 나는 그렇다 치고, 베릴도 잘 지내고 있지?”
“별로. 요즘 좀 지쳤어.”
그래 지쳐 보이긴 하네.
확실히 이 녀석들이랑 있으면 하루하루가 다이나믹할 것 같긴 하다.
베릴의 심정이 백분 이해가 돼서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대답하기 전 콜린을 한차례 흘겨보던 베릴이 눈살을 찌푸렸다.
“콜린이 사고를 쳤거든.”
“사고?”
대답은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제대로 쳤지.”
“확실히 대형사고지.”
“크크큭. 그래도 재밌어지긴 했잖아!”
음, 얘들이 좀 사고뭉치스러운 경향이 있긴 하지만, 베릴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설마 또 도진 건가?
아닌 게 아니라 브라이언이 보이질 않는다.
살짝 걱정이 돼서 물었다.
“가출?”
“그랬으면, 지금쯤 네 방에 있겠지.”
아니,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건데?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일단은 넘어갔다.
궁금했으니까.
대체 무슨 사고를 쳤는지.
잠시 기다리자, 베릴이 사정을 설명해준다.
그 얘기를 한참 동안 듣다가 되물었다.
“그러니까, 뭐야. 영화 출연? 게다가 OST까지?”
“정확해.”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만 해도 그런 얘기 없었잖아.”
“사고는 늘 갑자기 일어나는 법이지.”
대충 알만하다.
한마디로 콜린이 삘 받아서 밀어붙인 거네.
거기에 브라이언까지 말려든 거고.
지금 여기에 그가 없는 건 한창 수습 중이란 얘기일 터.
나머지 멤버들이야 재미만 있으면 뭐든 오케이니까, 오히려 환호를 내질렀을 거고.
어떻게 흘러간 상황인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근데, 괜찮은 건가?
“저번 앨범, 투어는 전부 끝난 거야? 몇 군데 남았다고 하지 않았었나?”
“대충 마무리는 지었어.”
“그럼 문제없잖아?”
“OST가 문제지.”
오호라. 그러니까, 나한테 전화한 게…….
일제히 모여든 다섯 쌍의 눈동자.
기가 막혀서 말했다.
“안 해.”
쥐죽은 듯 고요하다.
베릴은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멤버들도 조용히 입 다물고 내 눈치만 보고 있다.
다시금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얘기했다.
“베릴. 영화에 콜린 혼자 출연하는지, 아니면 니들 전부가 출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바빠도 너희가 부를 노래는 직접 만들어야지 않겠어?”
“맞는 말이긴 한데……. 어쩌겠어? 도저히 시간이 안 맞는 걸.”
아니, 이게 말이야 방귀야? 지들이 시간 내에 못해내는 걸 나한테 왜? 난 시간이 팡팡 남아도는 줄 아나 보네?
울컥해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이었다.
레이크헬 멤버들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게 다 준! 너 때문이잖아!”
“맞아! 너 때문에 우리 눈이 너무 높아져서 그래!”
“책임져라! 책임져라! 도준은 책임져라!”
“우린 너처럼 노래 하날 1분 만에 뚝딱 만들어내는 천재가 아니라고!”
헐! 황당해서 말도 나오지 않는다.
1분 만에 노래를 만들어내는 건 대체 어디의 누구야?
그리고 초딩들이냐?
왜 나한테 책임을 미뤄?
뭐, 날 바라보는 눈빛에 웃음기가 섞여 있는 걸 보니, 반쯤은 장난인 거 같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영화에 출연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OST에 쓰일 곡을 만들고, 그걸 또 연습해서 녹음까지 마쳐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주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부족할 건 뻔한 일.
한숨을 내쉬다가 물었다.
“그래서 크랭크 인은 언젠데?”
시나리오는 나와 있을 거라고 믿고 물었던 건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고막이 터질 지경이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며 귀를 막았다.
그러곤 녀석들이 진정됐다 싶을 때 얘기했다.
“비싸게 받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렇게 말하곤 소파에 몸을 묻다가 흠칫했다.
세 군데에서 날아드는 눈빛들.
하아, 여기도 있네.
해결해야 할 애들이.
크리스티나는 말할 것도 없고, 조안나와 에단까지.
부담스러운 눈길들을 느끼며 말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
식사는 물론 에단이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지니하운드에서 해결했다.
덕분에 돈 굳었다.
레이크헬이 있는데, 내가 돈을 쓸 까닭이 없잖아.
다행인 건 그들도 마음에 드는 모양.
하긴, 입안에 들어가기 무섭게 살살 녹는 스테이크를 비롯해 음식들이 여간 맛있었으니까.
그래서 와인까지 주문시켜주자, 다들 즐거워한다.
좋네.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거.
한도 없는 카드를 가지게 되면 이런 기분이 들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시켜!”
내 말에 에단이 무척이나 만족스럽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에 반해 크리스티나와 조안나는 여전히 눈을 반짝이며 무언의 압박을 해왔다.
레이크헬과 인사를 시켜달라는 눈빛.
“얘들은 내 동기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들이 꺅꺅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그녀들이 창피했던지, 에단이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부렸고.
그런다고 해서 레스토랑 안에 있던 사람들이 우릴 쳐다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
진짜 친화력 쩌네.
거의 골든 리트리버 수준이다.
크리스티나와 조안나는 금세 레이크헬과 친해졌다.
그렇게 그녀들과 한참이나 수다를 떨다가 레이크헬이 그 어설픈 변장을 한 채 먼저 레스토랑을 빠져나가고 난 후였다.
밖으로 나오자, 조안나가 물어왔다.
“많이 친한가 봐?”
별이라도 박힌 줄 알았다.
그녀, 아니 그녀들의 눈구멍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별로.”
콜린이 들었다면 진심으로 화냈을 거 같지만, 어쩌겠냐? 여기서 이실직고했다간 계속해서 귀찮아질 것만 같은데.
“아니던데? 완전 친해 보였어!”
“비즈니스일 뿐이야.”
“와! 멋지다!”
“근사해!”
그래, 그래. 지금 니들 귀에 뭔 소린들 근사하게 안 들리겠냐?
속사포처럼 끊임없이 물어오는 그녀들에게 대강대강 대답해주곤 말했다.
“먼저들 가. 나 일하러 가야 해.”
“어디? 아, 찰리스?”
“굉장해!”
크리스티나와 조안나가 이전과는 또 다른 눈빛을 해 보였을 때, 에단이 이죽거렸다.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 하다니까!”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는 몰라도, 이쯤에서 헤어져야 했다.
찰리스에 가야 했으니까.
“간다.”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아쉬운 눈길이 등짝에 꽂혀 들고 있었지만, 모른척했다.
오늘따라 더럽게 부담스러워서.
***
조금 일찍 온 감이 있었지만,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
종소리가 반갑게 날 맞아준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진짜 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회사 사람들이 떠오른다.
“저 왔어요, 찰……. 응?”
언제나처럼 찰리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손을 치켜들다가 멈칫했다.
가게 안쪽을 가로지르며 길게 뻗어 있는 바를 사이에 두고 안쪽엔 찰리가, 바깥쪽엔 처음 보는 남자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근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굳이 표현하자면 갑과 을.
머리가 희끗희끗한 백인 남자에게 찰리가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뭐야? 돈이라도 꾼 거야?
아니면 찰리의 막내아들이 도둑질이라도 하다 걸린 건가?
저번에 보니까, 착하게 생겼던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쪽에 앉아 지켜보았다.
다들 단골이라 그런가. 가게 안에 몇 안 되는 손님들도 힐끔거렸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더 얘기를 나누던 초로의 남자가 가게를 떠난 후였다.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찰리.
그를 보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다가갔다.
그리 오랫동안 알고 지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 와서 사귄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더구나 그는 인종차별은커녕 고용주로서의 권위도 내세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알게 모르게 간단한 음식이나 음료들을 챙겨주곤 했다.
그러면서 어딘지 모르게 기특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끔은 내가 연주를 하는 걸 보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 될 거야!’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누군들 나 몰라라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 왔나?”
뒤늦게 날 알아보곤 인사해오는 찰리.
그러곤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웃기만 할 뿐이다.
저러면 더 이상 나서기도 뭐하지.
“식사 안 했으면 뭐 좀 먹겠나?”
“아뇨. 지금까지 친구들하고 밥 먹다가 오는 길이에요.”
“아, 그래? 그럼 주스라도 한잔 줄까?”
“그럼 저야 고맙죠.”
언제나처럼 찰리가 챙겨주는 주스를 받아 마시면서도 더는 묻지 못했다.
***
연주하는 내내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가게 분위기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찰리는 확실히 다른 때와 달랐으니까.
내가 연주할 때면 어지간하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고 날 바라보며 기분 좋은 표정이 되어 피아노 소리를 듣곤 했는데, 오늘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처음엔 그래도 가게 안에서 통화를 하더니, 나중엔 아예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전화는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한 번씩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걱정스러웠다.
이제껏 보아온, 유쾌하면서 화끈한 성격의 찰리와는 다르게 여유라곤 없는 얼굴이었으니까.
결국, 일이 끝나고 난 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찰리. 뭐 때문에 그러는 거에요? 무슨 문제 있어요?”
찰리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씁쓸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건물주가 연장 계약을 하지 않겠대.”
아, 월세였나 보구나.
그럼, 아까 그 초로의 남자가?
얘기를 들어보니, 건물을 매각할 모양이다.
아직 계약을 한 건 아닌데, 사려는 측에서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모든 세입자와 재계약하지 않는 조건.
즉, 올해 안에 빈 건물로 만들 수 있도록 하라는 얘기였다.
무슨 용도로 쓰려는지는 몰라도 찰리로선 난감한 상황임에는 분명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찰리에게 물었다.
“저, 찰리.”
“……?”
“이런 건물은 얼마나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