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72
72. 강호의 지략가가 모두 모이니
심목풍은 소요자에게 전력으로 일장을 먹이는 순간 잇따라 두 자
루의 비도를 던졌다. 그 비도 끝에는 역시 극독이 발라져 있었다.
그가 두 동자를 죽인 것은 소요자를 격퇴시킬 확률이 적음을 계산
한 소치라 하겠다.
소요자가 동자들의 모습에 눈을 팔고 있는 순간, 다시 이번에는
어른들의 비명이 일어났다.
소요자는 급히 시선을 돌렸다. 보니 이미 흑백이노의 왼팔이 모
두 잘라진 게 아닌가?
심목풍이 두 아이를 죽인 것은 단순히 흑백이노의 심신을 혼란시
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그 서슬에 재빨리 장검으로 두 늙은이의
팔을 내려쳤던 것이다.
소영은 몸을 은신한 채 이 모양을 보자 간담이 떨렸다.
‘심목풍이 저렇게 악독한 위인일 줄이야!’
심목풍은 단칼에 흑백이노의 팔을 잘라 버림으로써 두 늙은이의
배신을 예방한 것이다.
심목풍의 목쉰 듯한 소리가 들려 왔다.
“두 분의 왼팔의 상세는 비록 영약이라도 치료하기 어려우니 이
심목풍은 두 분을 대신하여 쓸데 없는 것을 잘라 버려 우리의 돈독
한 우의를 유지하게 한 것이외다.”
흑백이노의 잘라진 팔꿈치에서 시뻘건 선혈이 그치지 않고 흘러
갑판을 어지럽혔다.
고통스러움에 두 늙은이는 얼굴색이 변했지만 그래도 입으로는
여전히 뇌까리는 것이었다.
“심대장주의 말씀이 옳소이다.”
심목풍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두 분은 어서 운공하여 피를 멈추게 하십시오. 우리는 다시 일
장의 악전을 치러야 합니다.”
만일 두 늙은이가 가슴이나 허리에 암기의 극독을 맞았다면 어떻
게 되었을까? 심목풍은 가차없이 두 노인의 목을 잘라 버렸을 것이
다. 흑백이노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더니 급히 옷자락을 찢어 상처
난 팔을 싸매기 시작했다. 갑판에 떨어진 두 개의 팔뚝은 이미 흑
자색으로 변해 있었다. 또한 팔에서 흘러내린 피도 흑자색이었다.
심목풍은 이때 소요자를 건너다 보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도장의 두 시동을 죽임으로써 두 친구의 팔을 대신하였으나 그
것으로 다행이라 여겨서는 안 되오.”
소요자는 그 말상 같은 얼굴에 담담히 미소를 띠었다.
“빈도는 심대장주의 악랄한 수단에 경탄한다. 또한 두 벗의 그와
같은 호기에도 감탄했다.”
“흥! 대단한 칭찬이시군. 도장온 다시 어떤 귀계와 음모라도 시
전하라. 나 심모가 진정 한번 시험해 보겠다.”
소요자의 입에서 돌연 큰 웃음소리가 터졌다.
“하하핫…. 심대장주, 머리를 돌려 보시지!”
“무엇을 보란 말인가?”
“이 배가 어디까지 왔는지 그걸 보라는 말씀이야.”
심목풍은 머리를 들어 강 위를 바라 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라곤 오직 출렁이는 강물뿐, 어디까지 왔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심목풍은 다만 눈살을 찌푸렸을 뿐이었다.
“이 오색 거선은 가면 갈수록 백화산장과 멀어지오. 심대장주께
서 흥취가 있으시다면 우리는 한번 남해로 멀리 나갔다가 다시 중
원으로 돌아 와도 늦지 않을 것이오.”
“흥, 도장의 뜻은 이 심목풍이 수영을 할 줄 모른다고 비웃는 것
이겠지?”
“하하…. 그대가 비록 헤엄을 칠 줄 안다고 할지라도 우리 군주
와 물 속에서 겨루기는 어려울 것이오.”
이때 손불사 노인 역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는 소영 등을
돌아 보며 낮은 소리로 이르는 것이었다.
“이 오색 거선은 갈수록 멀어지오. 우리에게는 또한 불리한 일이
아닐 수 없소이다. 이 늙은이는 실로 물오리에 뒤지지 않으나 여러
분의 헤엄치는 솜씨는 어떠한지?”
소영이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저도 또한 수영을 그다지 할 줄 모릅니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하 사정을 보면 쌍방은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소. 우리 몇
사람은 실로 백 량 무게의 조예가 있으니 형세가 급해지면 우리도
부득불 수단을 쓰지 않을 수가 없소이다.”
“무슨 수단을 씁니까?”
손불사는 입가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대들은 다만 이 늙은 거지가 하는 대로만 하면 되오.”
말을 마치자 그는 돌연 몸을 나타내어 뚜벅뚜벅 큰 걸음으로 갑
판으로 나갔다.
“심대장주, 오랜만이외다.”
심목풍의 음침한 얼굴에 일순 헤아리기 어려운 빛이 스치고 지나
갔다. 그러나 심기가 깊은 위인이라 평온을 회복하는데는 빨랐다.
“손형 또한 여기 계셨구료.”
소요자는 손불사를 바라 보며 물었다.
“다른 세 분은?”
“그들은 이미 기다리기에 지쳤소.”
“누구를 기다리기에 지쳤소?”
“그것까지 이 늙은이가 밝혀야 하는가?”
“음-”
소요자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빈도가 생각을 미처 못했소이다.”
“좋소. 도장은 이 늙은 거지더러 굳이 말하라는 모양인데 내 밝
혀 말하리다. 그들은 도장이 씌운 형구의 열쇠를 기다리고 있는 중
이오.”
심목풍은 뭐라 말할 듯한 표정이었으나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무슨 형구냐고 물어 보려는 듯했다.
소요자는 그 말상 같은 얼굴에 엷은 웃음을 떠올렸다.
“알았소. 네 분은 위험한 기회를 포착한 것이로군.”
“하하…. 도장, 도대체 무슨 위난이 있다고 이 늙은 거지를 살
피지 않으려 하시오.”
심목풍이 돌연 입을 열었다.
“손형, 저 고집쟁이는 아주 미치광이올시다. 손형까지도 안중에
두려고 하지 않는구료.”
손불사는 부지중에 욕지거리가 나올 것 같았다.
‘이 심가놈아, 대간대악와 역정을 보면 네놈이야말로 저 사해군
주보다 몇 배나 죽일 놈이지!’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천연덕스럽게 감추고 그저 큰 소리로 웃었
을 뿐이었다.
소요자는 눈을 돌려 선창 안을 바라 보며 마치 혼자말로 중얼거
리듯 내뱉었다.
“손형이 도와 주신다면 이 일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텐데….”
손불사는 헛기침을 한 번 토해 내고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목하의 정세로 논할진대, 이 늙은 거지는 기이한 화폐라 할 수
있지. 그러니 도장은이 거지와 돈의 가치를 따져 몇 냥 몇 냥 헤아
려 봐야 짐작이 잘 안 갈 거요.”
“당신 손대협이 하고자 하면 되지 않겠소. 그러면 우리는 우세한
입장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손불사가 이어 말했다.
“도장은 나를 협박하여 이용하려 하는군.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심목풍이 그 말을 받았다.
“손형이 나의 한팔이 되어 주신다면 이기는 건 문제가 아닐 거
요.”
“이 늙은 거지 혼자서 결정키 곤란하오. 그들과 먼저 상의해서
결정하도록 하겠소.”
“뭐라고? 그럼 개방 중의 사람이 또 이곳에 있다는 말인가요?”
“개방 중의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마침 소영과 중주이고가 나란히 걸어 들어 왔다. 소영의 일
행이 나타나자 가장 놀란 것은 심목풍이었다. 소영이 이곳에 나타
났다는 것은 손불사를 만난 것보다 더욱 의외였다. 심목풍이 놀라
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평소 그의 사람됨이 음흉스럽기 비길 데
없기 때문이었다.
중주이고는 각기 하나의 목판을 받쳐 들고 있었다.
그들은 소영의 눈치를 한번 살펴 보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는 깊은 상처를 입기는 했으나 이 목판으로 독침과 독수를
막아 낼 수 있습니다.”
손불사가 말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군.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어!”
소요자는 그 말을 듣고는 돌연 품 속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냈다.
그는 여전히 능글맞게 그 열쇠꾸러미를 높이 들어 흔들며 말했다.
“이것은 금사슬의 열쇠지. 천하엔 교묘한 재주를 가진 솜씨꾼이
많다. 하나 이처럼 복잡미묘하게 만들 수는 없을 거야. 만약 여러
분이 나를 못살게 군다면 이 열쇠를 강물 속으로 빠뜨리고 말 테
다.”
손불사는 그의 말에 놀랐다.
‘소영은 깨어진 술잔으로 나의 몸에서 우근을 끊어 낼 수 있었
지. 그의 팔힘은 여간한 게 아냐. 하지만 금사슬의 형구를 끊어 버
릴 방법이 없다면, 그리고 저놈이 열쇠를 정말 강물 속으로 던져
버린다면 정말 곤란하게 되겠는데.’
손불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일이 난처해졌다는 결론밖에 얻지 못
했다.
심목풍이 목쉰 소리를 내며 입을 떼었다.
“나 심아무개는 고의로 사람을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소요자가
가진 열쇠로는 결코 소영의 몸에 걸친 형구를 딸 수 없어.”
심목풍은 잠시 말을 중단했다가 다시 계속했다.
“소영! 만일 심아무개와 합력한다면 밥 한 그릇 먹을 동안이면
저 오색 거선 위에 남아 있는 잔적을 소탕할 수 있을 것이오. 그리
고 사해군주를 사로잡아 그들을 위협한다면 열쇠를 차지하는 것은
여반장이지.”
소요자는 만만치 않게 대들었다.
“만일 손불사와 중주이고가 그 꾀임에 쉽사리 넘어간다면 강호동
도의 비웃음을 사는 수밖에 없을 거요.”
손불사는 소영과 중주이고를 번갈아 쳐다 보며 물어 왔다.
“세 분의 의견은?”
상팔이 말참견을 하고 나섰다.
“우리 형제는 이미 손노선배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생사를 막론
하고 손노선배의 말씀을 따를 따름입니다.”
“당신들이 그토록 이 늙은 거지를 믿는다면 잘 생각해 봐야겠는
걸.”
소요자가 말했다.
“손대협! 생각할 필요가 없소. 당신이 나서기만 한다면 심목풍쯤
은 사로잡을 수 있지. 그렇게 하면 빈도는 세 분의 형구를 풀어 주
겠소.”
손불사는 걱정스런 빛을 띠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늙은 거지 혼자서는 심목풍의 적수가 될 수 없지.”
소요자가 다그쳐 말했다.
“그렇다면 중주이고의 형구를 풀어 당신을 돕도록 하겠소.”
상팔이 걸쭉하게 소리쳤다.
“우리 중주이고의 형구를 푼다 하나 헛수고일 뿐이오.”
“어째서?”
“세 사람이라 할지라도 심목풍의 적수가 될 수 없으니까.”
소요자는 내심 찔끔 놀랐다. 그러나 곧 거침없이 웃어제쳤다.
“하하핫핫, 알 만하오. 여러분의 뜻은 소영 신상의 형구를 풀어
달란 말씀이신가요? 하하핫…..”
두구가 서릿발이 선 듯 노해 외쳤다.
“그렇다. 지금 세상에서 우리 소영형님을 제외하고는 누가 심목
풍의 적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심목풍이 돌연 폭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핫, 두구가 말하는 것은 바로 소요도장과 사해군주를
깔보는 것이로군!”
이 몇 사람들이야말로 온갖 풍상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들이
었다. 비록 표면적으로 직접 양립되어 적으로 대항치 않는다 하더
라도,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겨 있는 계기는 변화가 무쌍할 뿐만
아니라 그 출중함이 끝이 없었다.
소요자는 문득 결연한 표정을 짓더니, 게걸음으로 두어 걸음 소
영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형구를 풀며 말했다.
“빈도는 손대협과 소대협이 두터운 신의를 가졌다고 믿고 있소.
한 번 대답을 한 것이니 변할 리는 없겠지요. 이번만은 빈도 스스
로가 작정하여 형구를 푼 것이오.”
소영은 두 팔을 쫙 펼쳐 사방으로 휘둘러 봤다. 속이 후련했다.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토했다.
심목풍은 사태가 어쩔 수 없어 소영과의 대결이 불가피하게 되어
가자 뭔가 위축되어 몇 걸음 물러섰다.
상팔은 기쁨을 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소요자는 소영을 힐끗 쳐다 봤다. 그의 눈빛은 후회하고 있음에
틀림 없었다. 그에게서 형구를 푸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다. 그
렇지만 다시 그를 사로잡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일
이라는 것이 지금에야 생각났다.
새장을 열어 봉황을 날려 보내고 자물쇠를 풀어 용을 달아나게
한 것과 같은 지경이었다. 만약 이들이 심목풍과 손을 잡고 공격해
온다면 이를 어쩐단 말인가! 스스로 화를 부른 것인지라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그대는 왜 웃는 거요?”
더구나 상팔의 웃음소리가 심상치 않아 그의 불안한 마음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팔이 문득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틀림없지요. 우리 형님은 말한 것은 언제나 지키고 약속을 깨뜨
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도장에게 승낙한 일도 없고 대답한 말
도 없습니다.”
소요자의 불안한 심중은 드디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났다. 이어
노한 음성으로,
“이 엉터리…..”
소영은 확실히 한 마디도 승낙하지 않았음을 생각하고 그대로 침
묵을 지켰다.
상팔이 비웃듯 말했다.
“도장! 자세히 생각해 보시오 내 말이 틀리는지……”
“빈도는 누가 뭐라 해도 소영과 중주이고는 성실히 명예를 지킨
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어기는 일은 없을 줄로 생각한다.”
상팔이 말했다.
“손노선배님께서는 아직도 도장을 도울 것인가 아닌가, 생각중이
시니 너무 상심 말기를! 우리 중주이고는 원래 이해를 따지려 드는
장사치가 아니오? 결코 상관치는 않겠으나 친구의 우정을 먼저…”
소요자는 상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뇌까렸다.
“아무리 이해만을 생각하는 장사치라 할지라도 신용만은…..”
“도장! 말씀해 보십시오. 우리 중주이고가 다른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를……”
소요자는 기가 찼다. 그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음을 깨닫자 맥이
풀렸다.
“너희 중주이고는 아직 형구가 풀리지 않았음을 알아 둬라!”
화를 억누를 길 없어 되는 대로 지껄여 댈 뿐이었다.
상팔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도장 염려 마십시오. 중주이고는 결코 당신에게 형구를 풀어 달
라고 조르지 않을 것이니. 하하핫….”
손불사가 말했다.
“도장이 도량이 넓다면 이 때야말로 중주이고의 몸에서 형구를
풀어야 마땅할 것이오.”
소요자는 다소 침통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까짓 것, 뭐가 어떻겠소? 하하핫……”
그리고는 뚜벅뚜벅 중주이고에게 다가가서 형구를 풀어 주었다.
두구는 오랜만에 자유로이 두 다리를 폈다 오므렸다 해 보았다.
“도장! 이처럼 해 주시니 고맙소.”
상팔은 너무 쉽게 형구가 풀어진 게 재미없다는 듯 말했다.
“도장! 우리를 오랫동안 묶어 두셨으니 아무리 보상을 한다 해도
비싸지는 않겠지요.”
소요자는 미간에 깊은 주름을 지으면서 억지로 화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실성한 듯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창문 쪽으
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두구는 싸늘하게 말했다.
“도장! 아직도 한 가지 일을 잊으셨군요!”
소요자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 보았다.
“무슨 일이오?”
“우리의 무기를 도장께서는 응당 돌려 주셔야지요.”
소요자는 초연해지면서 말했다.
“사람까지 풀어 줬는데 그까짓 무기를 뭣 때문에 지니고 있겠소!
잠깐만 기다리신다면 즉각 돌려 드리겠소.”
뚜벅뚜벅 문으로 걸어 들어 가더니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손불사는 낮은 소리로 소영에게 말했다.
“저 고집쟁이가 돌연 이처럼 너그러워졌으니 이 늙은 거지가 난
처해졌는데…..”
소영이 대답했다.
“오늘과 같은 일은 미묘한 균형이 작용해서 그렇게 된 것이오.
우리들은 일시의 호기로써 출수해선 안 될 겁니다.”
“그렇다. 심목풍과 소요자는 모두 생각이 깊고 그 꾀를 헤아릴
수 없으리만큼 교활한 놈들이지. 그러나 소요자의 속셈은 뻔하지.
승냥이를 몰아 내고 호랑이와 싸우는 것이 바로 가만히 앉아서 어
부지리를 노리는 것이니 우리는 꾀임에 빠져선 안 될 것이오.”
그즈음 심목풍은 책상다리를 하고 뱃전에 기대 앉아 있었다.
흑백이노는 그의 양쪽에 버티고 서 있었다. 햇살이 뜨겁게 그들
의 머리 위를 비추고 있는데 암암리에 그들 위로 흰기운이 솟아 올
랐다.
손불사가 이 기운을 알아차리고 가벼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심목풍은 우리와 일전도 불사할 모양이야. 가만히 앉아서 운동
을 하고 있으니….. 전력으로 출수할 준비를 하는 모양이군. 우리
가 먼저 예봉을 막을 수는 없지.”
이때 소요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여러분의 무기를 가져 왔소.”
상팔은 시선을 돌렸다. 두 명의 청의비녀가 손에 중주이고의 무
기를 받쳐 들고 서 있었다.
“두 분 무기이옵니다.”
두구는 팔을 뻗쳐 철필과 은전을 집어 들었다.
상팔은 금산반을 집어 들고 그 여비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두 분은 물러가도 좋소.”
그는 이미 소요자의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두 비녀
에 대해서도 철저한 경계를 했다.
두 비녀가 그 말을 듣고 가벼이 절을 하며 물러갔다.
이때 소요자와 오색선 주위에 있던 그의 부하들은 모두 선실 안
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창문을 단단히 닫아 버렸다. 갑판 위에는
소영과 손불사 일행과 심목풍, 흑백이노만이 남았다.
소영은 줄곧 심목풍의 거동에 신경을 모으고 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여전히 흰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농도는 짙어졌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났을까.
그 흰기운이 돌연 보이지 않았다.
“조심하시오. 심목풍이 거동할지 모르오.”
상팔이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와서 낮게 말했다.
“큰형님! 우리들은 어떻게 할까요?”
“저 심목풍의 동정을 엿보고 얘기합시다. 그가 거동하는 것을 보
아 틈을 타 제거해 버리는 거요.”
갑자기 심목풍이 상팔을 노려 보았다. 그리고 흑백이노에게 뭔가
를 소곤거리고는 곧장 걸어 나왔다.
소영이 얼른 장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낙엽 위를 지나는 뱀소
리와 같은 한 가닥의 바람소리가 들려 왔다.
“두 분 형제에서는 이곳에서 지키고 계시오.”
소영이 중주이고에게 말했다. 이 순간 소영의 마음 속은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착잡했다. 이곳에서 심목풍과 결전을 벌여 승패를 가
린다면 결국 소요자에게 어부지리를 줄 뿐이잖은가!
착잡하게 생각하는 중에 그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이
윽고 서너 자로 좁혀 들었다. 두 사람은 그쯤에서 동시에 멈추어
섰다. 심목풍은 마른 침을 삼키면서 말을 꺼냈다.
“셋째 아우!”
소영은 멈칫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퍽 오랜만이군!”
소영은 어리둥절했다.
“심대장주, 무슨 말씀이신지? 기탄 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심목풍은 빙그레 웃으며,
“셋째 아우라는 부름이 낯이 선가?”
“도가 같지 않으니 함께 하기는 어렵지요. 우리는 형제의 의를
응당 끊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셋째 아우는 나와 적이 될 작정인가?”
“심대장주의 무공이 고강하다 함은 소아무개도 이미 다 알고 있
는 터이옵니다. 몇 초 가르쳐 주신다면 소영은 기꺼이 배우겠습니
다.”
심목풍의 안색이 무섭게 변하며 엄숙하게 말했다.
“얘기해야 할 게 몇 마디 있네. 생선의 가시가 목에 걸려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지경이니.”
“소영은 귀를 씻고 듣겠습니다.”
“아우의 양친께서는 또 형에 의해서 백화산장으로 모셔졌지.”
소영은 깜짝 놀랐다. 쇠뭉치로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 맞은 것 같
았다. 그는 저절로 온몸이 떨렸다.
“저는 믿지 못하겠습니다.”
“저번엔 우리의 행동이 거칠어 백부에게 예의 없는 짓들을 했지.
이번엔 아우가 이미 그들을 잘 가르쳐 놓아 조금도 불편하게 하지
않지. 형은 네 명의 미비와 두 명의 동자를 보내어 두 노인을 모시
게 했네. 금란, 은란도 여전히 백모 곁에서 시중들고 있네.”
소영은 거친 소리로 외쳤다.
“거짓말 마시오.”
심목풍은 시종 조금도 노여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형의 말은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말이야. 아우가 믿으려 않는다
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심목풍은 몸을 돌려 흑백이노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사람에게 물어 보게. 당장에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니.”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소영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신투 향비는 그토록 총명하더니 일순간 돌았단 말이야. 하하하
핫…. 글쎄, 그가 그 두 노인을 더욱 멀리 데려가지 않고, 가석하
게도 백 리 안에서 붙잡히고 말았거든. 더욱 멀리 보냈더라면 아우
도 찾을 수 없었겠지만…. 과장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백 리 안은
손바닥이나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처럼 다 알 수 있단 말이야.”
소영은 이 말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백화산장의 탐정과 밀정들
은 쌍방 백 리 내에 배치되고 있어 향비와 같이 얼빠진 사람이라면
그들에게 발각되는 것도 대수로운 일이 아닌 것이다.
심목풍은 소영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그의 표정으로 보
아 어느덧 그의 말을 믿고 있음이 틀림 없는 것 같았다.
심목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엄숙한 목
소리로 말했다.
“주이제는 작은 일에는 총명했으나 대사에는 흐리멍텅하단 말이
야. 형은 그에게 두 노인을 모셔 오는 것을 주관하지 못하도록 했
단 말일세. 형은 당시에 너무도 바빴으므로 물어 볼 틈도 없었지.
한 번 틀리고 두 번 틀려 결국은 난처한 일을 만들었단 말이야! 지
금도 생각하면 형은 여전히 불안하단 말이야!”
소영은 그의 말에 마음이 동요했다. 어느덧 그는 그의 말을 점점
믿고 있었다. 당장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심목풍은 가벼이 탄식하는 투로 말했다.
“셋째 아우가 만약 형과 손을 잡고 합작한다면 형은 얼마나 기쁠
지…..”
소영이 선뜻 말했다.
“비록 저의 부모님이 당신의 보호하에 있다 할지라도 다시는 나
소영을 위협할 생각은 마시오.”
“하지만 사람의 일이란 무상한 것이라 단언하기가 아주 어렵지.
형은 이 오색 선상에서 아우를 만날 줄은 정말 뜻밖이었어…..”
그는 말끝을 흐리더니 잠깐 말을 끊었다가 잠시 후 다시 힘주어
말했다.
“내가 할 말은 이제 다 했네. 아우는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도 좋아.”
“나는 할 말이 없소.”
“그럼 좋다. 네가 간악한 소요자의 꾀임에 빠져 꼭 형과 몇 초를
겨루어 보고자 하니, 좋다. 먼저 출수하라.”
소영은 심목풍을 뚫어져라 노려 보며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의 발걸음이 한 발짝 한 발짝 무겁게 물러나고 있었다.
상팔이 급급히 걸어 와서 물었다.
“형님, 심목풍과는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소영은 체념한 듯 한 마디 내뱉았다.
“다 됐소. 우리의 이번 노력은 헛수고인가 보오!”
“무슨 일인가? 이 늙은 거지에게도 들려 주게!”
손불사는 눈을 치뜨고 궁금해서 다그쳐 물었다.
“저는 아홉 마리 황소와 두 마리의 호랑이를 합한 힘을 소비했습
니다. 더군다나 노선배님의 힘을 빌려 백화산장에서 부모님을 구출
했으나, 지금 또 저 심목풍에 의해 백화산장에 잡힌 몸이 되었습니
다.”
손불사와 중주이고의 놀라움은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 얼굴만 멍하니 바라볼 뿐 할 말을 잊고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상팔이 침통한 소리로 말했다.
“큰형님,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거 참! 굉장히 난처하게 되었는데!”
손불사가 말했다.
“그 심목풍이 자네의 원을 무엇이든 들어 주고 난 다음 이곳을
떠나 함께 자네의 대인을 뵈러 가려는 건가?”
“아닙니다.”
“이 일은 늙은 거지가 보기엔 그 심목풍이 간교를 부리고 있음이
틀림없어! 그러나 결코 소홀히 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소대협이
잘 생각해서 결정을 하도록 하게!”
상팔이 성급히 나서며 말했다.
“자! 제가 그와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는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소영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 심가는 무공이 고강하니 상형은 각별히 조심해야 하오.”
“큰형님, 염려 마십시오. 그는 지금 저에게 하수할 리가 없습지
요.”
그는 곧장 심목풍 앞으로 걸어 나갔다. 손을 치켜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심대장주, 저는 금산반 상팔이올시다.”
“내 벌써 당신을 보았소.”
상팔이 크게 웃고는 말했다.
“하하핫….. 심대장주, 저의 이름을 들은 지 오래라구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지.”
“저는 심대장주의 이름을 들은 지 오래지 않습니다.”
심목풍은 불끈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여러 번 헛기침을 하며 진
정하려 애를 썼다.
상팔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소대협의 부모님께서는 정말 백화산장에 계십니까?”
“내 이미 소영에게 말했다.”
“그러나 믿지 않고 있소. 저에게 다시 말씀드리라는군요.”
“말해 봐!”
“저의 소형님께선 증거라도 될 만한 물건을 보시기를 희망합니
다.”
심목풍은 화가 치밀어 버럭 외쳤다.
“믿지 못하겠으면 그만이지, 왜 자꾸 귀찮게 구는가?”
상팔은 눈 하나 깜짝 않고 말했다.
“우리가 만약 당신을 죽여 버린다면 소형님의 부모님을 구출하는
것은 조금도 어려울 게 없지요.”
심목풍은 약간 멈칫했다.
“나는 소아우를 만날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무슨 증거물을 지니
고 다니겠소?”
“마음이 착해야 재물이 생기는 법, 우리같은 장사꾼들은 이 말을
둘도 없는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는 심목풍을 빤히 쳐다 보고는 계속 말을 해 나갔다.
“소영형님이 심대장주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오늘중으로 부자가
만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오.”
“생사를 알 수 없는 이 판국에 그 말은 너무 이르지 않은가?”
“생사에 관한 문제라면 우리들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심
대장주께서는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심목풍이 가벼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만약 오늘 이 오색선에 타고 있는 사람이 모두 죽는다면 나야말
로 반드시 그 최후의 인물이 될 것이다.”
“하하핫…. 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의외의 일이란 있는 법입
니다. 심대장주께서는 제가 먼저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심목풍의 눈초리엔 싸늘하게 그늘진 기운이 떠올랐다.
상팔의 얼굴을 주시하는 그의 눈매가 파르르 떨리면서 아무 소리
도 못했다.
상팔도 그를 주시했다. 이상하게도 그의 눈초리에선 사람으로 하
여금 소름이 끼치고 무섭게 하는 일종의 강인한 힘이 서려 있었다.
상팔은 얼른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심대장주, 결정하십시오. 그래야만 빨리 가서 다시 명을 기다릴
테니까요.”
심목풍은 착 가라앉은 소리를 냈다.
“가서 일러라. 내 이미 그에게 대답했다고….”
“빈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심목풍은 노하여 소리쳤다.
“너도 심목풍의 맹세를 믿지 못한단 말이냐?”
“맹세를 하셨다 하나 우리는 또한 결코 믿을 수 없습니다.”
“심목풍은 이 배를 떠난 뒤 반드시 너희들 중주이고를 죽이고 말
겠다.”
“그것은 차후의 문제요. 지금 당신은 낮은 나무 밑에 있으니 머
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목풍이 말했다.
“네 의견은 장차 어떻게 된단 말이냐?”
“그건 대단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말이 막 끝나자마자 돌연 날랜 비둘기 두 마리가 쏜살같이 날아
왔다. 그것들은 공중에서 두어 바퀴 선회하다가 심목풍의 어깨에
내려와 앉았다.
심목풍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한바탕 웃어젖혔다. 그리고는 품 속
에서 작고 가느다란 어떤 물건을 꺼내 비둘기의 날갯죽지 속에 끼
워 주었다. 두 마리의 날랜 비둘기는 두 날개를 활짝 펴고는 하늘
높이 날아 갔다.
그 때였다. 어느새인지 꽉 닫혀 있던 창문이 활짝 열리는 듯하더
니 두 개의 한성이 번쩍 하며 하늘로 쏘아졌다. 심목풍의 노한 음
성이 순간 그 한성을 뒤따르는 듯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 쥐새끼같은 놈들이……”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이 한 번 원을 그렸다. 두 줄기의 광선이
공중을 가르고 날아갔다. 쩡! 하고 청명한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
가 들렸다.
잠시 후 일검의 한성은 심목풍의 비도를 맞고 떨어졌다. 다른 한
개의 한성은 공중을 날아 오른쪽 비둘기의 엷은 가슴에 꽂혀 동시
에 수직선으로 강물에 떨어졌다. 이들 건장한 비둘기는 특수한 훈
련을 받은 것임에 틀림 없었다. 한 마리가 죽은 것을 보더니 다른
한 마리는 즉각 두 날개를 거두고 재빨리 날아 내려 와서 강면을
스칠 듯 지나갔다. 그리고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더니 순식간에 사
라지고 말았다.
열려진 창문에서는 뜻밖에 소요자가 나타났다. 긴 장검을 들고
맨 앞에 걸어 나왔다. 그 뒤로 열두 명의 청의동자가 따랐다. 그들
중 두 사람은 비침과 독침과 독소가 든 철통을 들고, 나머지는 장
검을 들었다.
상팔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소요자 뒤의 두 청의동자가 들고 있는 철통 속에는 독침, 독소
가 들어 있어 무섭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
습니다. 심대장주께서는 우물쭈물하다가 화를 당하고 후회해도 소
용없습니다.”
호기는 하옥을 삼키고 악명은 강호를 진동시킨다는 심목풍도 워
낙 사태가 급박해짐을 깨닫고는 할 수 없이 천천히 몸에서 하나의
금패를 꺼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몰아 쉬면서 말했다.
“이것이 바로 백화산장 가운데 최고의 영패이다. 누구를 막론하
고 이 영패를 지니고 있다면 나 심목풍이 친히 임하는 것과 같이
대할 것이다. 너희가 만일 이 금패를 가지고 백화산장에 갈 것 같
으면 감히 막을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공손히 영접하며 명
령을 기다릴 것이다.”
상팔은 그의 무공이 고강함을 알고 감히 다가갈 생각을 못했다.
“던져 주시오.”
심목풍은 금패를 던져 주면서 말했다.
“너는 참으로 담이 약하구나!”
“제가 약한 것이 아니라 심대장주의 악명이 너무도 소문이 난 탓
이지.”
“또 한 가지 알려 둘 게 있다. 이 금패는 다만 한 가지 일, 한
가지 요구만을 들어 줄 수 있다. 소영의 금패를 돌려 주는 날 바로
중주이고는 사망하는 날이다. 나 심목풍은 여태껏 악하게 협박에
그친 일은 없었다. 말은 법을 따라 나왔고, 칼은 말을 따름에 미칠
뿐이니라.”
상팔은 심목풍에게 그 이상 참견하지 않고 소영에게로 돌아 왔
다. 이때 소요자는 장검을 칼집에서 빼어 들었고 열 명의 청의동자
들도 검을 빼어 들고 일좌의 검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다.
상팔은 금패를 들고 돌아 와서는 나지막하게 경과를 설명했다.
소영은 말했다.
“지금 우리 몇 사람은 실로 중대한 입장에 놓이고 말았군!”
“심목풍을 돕는다면 사해군주는 또한 이길 길이 없음을 스스로
알고 있다. 소요자를 돕는다면 심목풍이 대단히 위험함을 느낄 것
이다. 우리가 누구의 편을 들더라도 원수를 지게 됨은 어쩔 수 없
는 일이다. 심목풍을 죽이더라도 사해군주는 우리를 놓아 줄 리가
없지. 평생을 잔꾀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오늘같은 상황하에선 별
도리가 없겠구나!”
두구가 말했다.
“이놈들이 싸움에 지쳐 어쩔 수 없는 틈을 타서 강호를 위해 제
거합시다.”
“소요자는 일시 오산하여 형구를 풀어 준 것을 후회막심하게 생
각하고 있다. 너희 중주이고의 형구를 풀어 준 것은 더욱 형세가
핍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련한 모략과 깊은 계산하며 심
목풍의 음침함과 험악한 성질로 보아 결코 우리들에게 어부지리를
안겨 줄 리는 없지.”
이때 소요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손불사! 너는 바로 개방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살아 남은 가장
훌륭한 장로요, 명성이 강호에 막중하다 할 것이다. 빈도는 네게
한 말을 천금과 같이 귀하게 믿는 바이니 결코 저버리지 말기를 바
란다.”
손불사가 느릿느릿 걸어 나갔다.
“그렇다. 이 늙은 거지는 무슨 말이든 내가 스스로 한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실천한다.”
“빈도가 소영, 중주이고에게서 금사슬을 풀어 준다면 힘을 합하
여 저 심목풍을 생포한다고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니 설마 잊지는 않았겠지?”
“하하하…. 그것 말이냐? 하하….. 도장의 동작이 나의 말소리
보다 더 빠르더군. 막 대답하려 할 때 벌써 형구는 풀어져 버렸더
군. 그래서 이 늙은 거지는 애석하게도 미처 대답을 못했지. 이놈,
잘 생각해 봐라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