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122
122. 백악관에서 초대장이 왔습니다.
김원식 사장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되물었다.
“방금 메가시티 분양을 맡고 싶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평정을 되찾은 김원식 사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재성이 공명심에 메가시티 분양을 맡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분양했을 때보다 상황이 안 좋다는 건 알고 하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금융위기로 인해 경기는 크게 가라앉았고, 호황기 때 우후죽순 지었던 아파트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
전국적으로 미분양 주택이 엄청나게 쌓이고 있었다.
메가시티는 너무 고가에 이미 한번 미분양이 났었기 때문에 더욱 상황이 안 좋았다.
개인적으로 재성을 좋게 보던 김원식 사장은 괜히 일을 잘못 맡아 승승장구하던 이력에 오점이 생길까 우려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솔직히 지금 메가시티는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네. 오죽했으면 아예 일반 분양을 포기하고 조건부 전세로 돌릴 생각까지 하고 있겠나.”
조건부 전세, 즉 매매보장제는 분양가의 2~30%를 보증금처럼 납부한 뒤에 3년간 거주해 보고 마음에 들면 매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손해였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미분양 물량을 털어내야 할 정도로 지금 상황이 안 좋았다.
‘건설 회사들의 연쇄 도산을 막기 위해 정부에서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활용하자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니까 걱정되기도 하겠지.’
하지만 재성이라고 무턱대고 덤벼드는 건 아니었다.
“저 역시 아무런 대책 없이 이런 이야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분양을 성공시킬 묘책이라도 있다는 건가?”
“네.”
너무 쉽게 나온 대답에 오히려 김원식 사장이 당황했다.
“……정말로 방법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잠시 재성을 가만히 쳐다보던 김원식 사장이 이내 진심이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물었다.
골칫거리인 메가시티 미분양을 해결할 수 있다 하니 흥미가 생긴 것이었다.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이야기를 해보게.”
“간단합니다. 국내 분양 시장이 얼어붙어 있으니 중국에서 분양하는 겁니다.”
“중국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방법에 김원식 사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경제 발전에 성공하면서 큰 재산을 모은 백만장자들이 중국에 대한민국 인구만큼 많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들어본 것 같네.”
“돈을 가진 중국 부자들이 해외 투자, 특히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더군요. 그걸 이용해서 분양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게 가능하겠나?”
시선을 받은 재성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애초에 메가시티의 컨셉이 최고급 주거공간이었지 않습니까. 제대로 홍보를 한다면 분명 중국 부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흐음. 중국이라…….”
뒤로 몸을 기댄 김원식 사장은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면서 고심했다.
뜬금없기는 했으나 설명을 듣고 보니 아예 터무니없는 계획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빙하기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국내에서 재분양을 하는 것보다 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혹시 모르니까 한번 시도해 봐도 나쁘지 않겠어.’
김원식 사장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여태껏 놀라운 실적을 보여준 재성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게다가 자리에서 물러나기 전에 그의 큰 오점이나 다를 바 없는 메가시티 미분양 건을 해결하고 홀가분하게 나가고 싶은 마음 또한 한몫했다.
생각을 끝낸 김원식 사장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그의 결정을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재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분양을 성공시킬 수 있겠나?”
“자신이 없었다면 애초에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긴 메가시티 분양 건은 지금 회사 내에서도 서로 기피하는 문제였다.
사실상 폭탄 돌리기를 하는 상황에서 본인이 직접 하겠다고 나섰으니 말릴 이유는 없었다.
김원식 사장은 머리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전권을 줄 테니까 한번 해보게.”
“감사합니다.”
“어차피 시험 삼아 해보는 거니까. 결과가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게.”
재성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살짝 웃어 보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 * *
박경수 회장은 보고 있던 서류에서 시선을 떼었다.
“막내놈이 뭐라 했다고?”
그의 맞은편에는 정태규 비서실장이 서 있었다.
“본인이 직접 메가시티 분양을 맡겠다고 했다 이건가?”
“예.”
“나 참…….”
박경수 회장은 서류를 탁 내려놓으며 등을 기댔다.
“내 자식이지만 대체 그놈 머리통에 무슨 꿍꿍이속이 들어앉아 있는지 모르겠군.”
남들이 다 맡기 꺼리는 일을 스스로 한다고 나섰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시중에 미분양이 넘쳐나는 상황이라 물량을 털기가 쉽지 않을 텐데.”
“그래서 국내가 아닌 중국에서 분양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중국?”
“그렇습니다.”
대답을 들은 박경수 회장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어. 하다 하다 이제 별짓을 다 벌이는군.”
“처음에는 저도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예 허무맹랑한 계획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박경수 회장은 앞에 서 있는 정태규 비서실장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자네가 보기에도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
“최근 중국 부자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 열기는 일본에서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뜨겁다고 합니다. 그 수요를 일부라도 가져올 수 있다면 분양을 성공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요.”
“흐음.”
팔짱을 낀 채 듣고 있는 박경수 회장을 보며 말을 덧붙였다.
“최소한 분양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국내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지금 국내는 답이 없는 상황이지.”
“김원식 사장은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미분양 물량을 일부라도 해소할 수 있다면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미분양 물량이 얼마나 되지?”
“3200세대 정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답을 들은 박경수 회장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9할이 넘게 남아 있는 거군.”
이러다 보니 매달 수백억씩 쏟아부어 건물을 올리곤 있는데 분양자들로부터 중도금이 들어오지 않아 공사비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박경수 회장은 잠시 고심하다가 말했다.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것보다 뭐든 해보는 것이 낫겠지.”
“그럼…….”
“어디 막내 녀석이 아파트를 몇 채나 팔 수 있는지. 그냥 놔둬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정태규 비서실장이 나간 후 혼자 남은 박경수 회장은 참 신기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메가시티 분양이라니.”
형이 친 사고를 동생이 수습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두에게서 골칫덩이라며 구박받던 재성을 떠올리면 완벽하게 역전된 상황이었다.
“이것 참 종잡을 수가 없군.”
산전수전 다 겪은 박경수 회장도 앞으로 재성이 뭘 어떻게 할지 짐작이 안 됐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재성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 * *
한편 재성은 동대문에 새로 만들고 있는 씨네박스 극장을 찾아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저쪽이 스낵 코너인가요?”
머리에 안전모를 쓴 재성이 묻자 옆에 붙어 있던 담당자가 얼른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자체 스낵 코너 외에도 카페 체인점 하나가 입점할 예정입니다.”
영화관에서 운영하는 스낵 코너가 있는데 카페가 옆에 생기면 서로 경쟁이 되어 매상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본 결과는 정반대였다.
스낵 코너에서 파는 음료와 음식은 상영관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반면 카페는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 대기 장소로 이용되는 경향이 컸기 때문이다.
서로 매출에 큰 영향을 안 주는 데다 카페를 두면 입점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이득이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새롭게 기획한 전용 굿즈 판매 코너가 생겼다.
유리 전시장 안에는 지금까지 제작한 굿즈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고, 포토 카드 출력기와 연인이나 가족들이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별도의 포토 존도 마련되어 있었다.
팝콘통이나 텀블러같이 일반적인 아이템 외에도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이젠 키링, 담요, 핸드폰 케이스 같이 품목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극장 안에서 몇 시간이라도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재성의 계획이다.
착실하게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재성은 담당자에게 재차 당부했다.
“안전사고에 특히 주의하세요. 차라리 공사 일정이 조금 밀리더라도 인명 사고가 일어나선 안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재성이 눈짓하자 권혁재 과장이 바로 품에서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회식비입니다.”
인부들이 전부 모여 삼겹살로 회식을 벌이기에 충분한 돈이었다.
“감사합니다!”
담당자를 포함해 현장 직원들은 전혀 예상도 못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내려진 회식비에 크게 반색했다.
그렇게 현장을 다 둘러본 재성이 회사로 돌아오자 바로 비서가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부사장님. 미국에서 우편물이 왔습니다.”
막 옷걸이에 웃옷을 걸고 있던 재성은 정효정의 표정을 보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요?”
이상하게 팔다리가 뻣뻣하고 얼굴도 경직되어 있었다.
정효정은 흰 봉투를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두며 뒤로 물러났다.
누가 보면 꼭 폭발물이라도 만지는 모양새였다.
“그게…… 백악관에서 온 건데요.”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서 긴장이 묻어났다.
“아, 그래요?”
반면 재성은 별 대수롭지도 않은 태도로 봉투를 들었다.
한가운데 미국을 상징하는 리본을 물고 날개를 양쪽으로 활짝 펼친 독수리 문장이 선명했다.
“그렇네. 초대장이네요.”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 투에 정효정은 속으로 경악했다.
청와대도 놀라서 뒤집어질 판에 무려 백악관이다.
그런데 그걸 보고 아무렇지도 않다니!
이 사람은 심장이 강철로 되어 있나 싶었다.
“초대장이요?”
“그래요. 취임식에 참석해야 하거든.”
재성은 단단히 봉인되어 있는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꺼냈다.
안에 든 건 예상대로 백악관에서 발송한 대통령 취임식 초청장이었다.
“저기 계속 물어봐서 죄송합니다만…… 취임식이라니 설마 미국 대통령 취임식인가요?”
“맞아요.”
히이익, 하면서 경악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나 재성은 대충 흘려들었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라.’
담담한 낯을 하고 있지만 재성 역시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라출라 의원과의 친분이 아니었으면 초대받지도 못할 자리였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올까.’
처음 겪는 상황에 기대감도 들었으나 무엇보다 취임식에 참석할 거물들을 떠올리자 인맥을 늘릴 다시없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참, 취임식은 내년 1월 20일이에요. 앞뒤로 일주일 정도 일정을 미리 빼두도록 하세요.”
“네, 네! 알겠습니다.”
정효정은 혼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 할 이야기가 없으면 나가서 일 보시고요.”
“예.”
서랍을 열어 초대장을 넣어둔 재성이 한쪽에 놔둔 결재 서류를 집어 들려고 할 때 핸드폰 진동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방금 시노펙과 추가 계약을 끝내 연락을 드렸습니다.]기다리던 소식이었기에 재성은 손에 든 핸드폰을 고쳐 쥐면서 물었다.
“얼마나 팔았죠?”
[지난번처럼 배럴당 90달러에 원유 선물 3천만 배럴을 매각했습니다.]“기대한 것보다 물량이 더 많군요.”
[최근 국제유가가 소폭 반등하면서 지난번에 매입한 선물의 평가차익이 커지자 욕심을 내는 것 같습니다.]“하긴 1달러만 올라도 수천만 달러씩 수익이 오르니까. 이게 웬 떡인가 싶을 겁니다.”
[거기다가 한번 계약할 때마다 몰래 수수료를 두둑하게 챙기는 것도 한몫하지 않을까요.]“그렇겠죠.”
지난번 봤을 때 탐욕에 가득 차 있던 장중란의 얼굴을 떠올린 재성은 삐딱하게 미소 지었다.
[계약을 끝내고 나서 더 남은 물량이 있으면 얼마라도 괜찮으니까. 자신들한테 넘기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잘됐군요. 그러면 1월을 넘기지 말고 나머지 2천만 배럴도 다 팔아버리도록 해요.”
자진해서 더 깊은 수렁 속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는데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