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637
637. 때로는 주판을 엎어야 할 때가 있어요.
오성홍기와 회사 깃발이 휘날리는 북경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본사.
양용은 과시하길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에 맞춰 넓고 화려하게 꾸며진 회장실 책상에 앉아 원유 선물 차트가 띄워진 컴퓨터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배럴당 20달러 선이 붕괴됐던 원유 선물 가격은 잠깐 반등하는가 싶다가 이내 다시 추락해 18달러 27센트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가 쥐고 있는 5월물 원유 선물 평균 매입가가 38달러대인 걸 생각하면 반토막도 못하게 남은 상황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떨어지려는 거야.”
모니터를 보는 양용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여기저기에서 유가가 폭락하는 역(逆)오일쇼크를 경고했었다.
하지만 양용은 산유국들의 생산 마진을 고려한 적정 유가가 60달러 언저리였기에 아무리 코로나 충격이 있다고 해도 배럴당 40달러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공포심에 선물이 폭락하지만 금방 적정 가격을 찾아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물이 배럴당 40달러 아래로 내려가자 롱포지션을 잡고 물량을 마구 매수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원유 선물 가격은 브레이크가 풀린 듯 계속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때라도 손실을 감수하고 손을 털었어야 했지만 양용은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오히려 더 많은 선물을 매수하며 보유 물량을 늘려 버린 거였다.
평단가를 낮추는 것과 동시에 가격이 반등했을 때 더 큰 수익을 노린 것이다.
극적인 반전을 노렸지만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양용이 기대한 대로 원유 선물 그래프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 지지선이라고 생각했던 20달러 선마저 뚫리고 말았다.
배럴당 19달러 87센트까지 내려오자 마지막 남아 있던 자금까지 전부 밀어 넣어서 선물을 밀어 올리려고 했지만 의미 없는 몸부림에 부과했다.
결국 모니터에 떠 있다시피 원유 선물은 18달러 27센트까지 떨어지며 완전히 물려 버렸다.
“설마 여기서 더 떨어지지는 않겠지.”
양용이 미간을 찡그린 채 중얼거렸다.
이미 말도 안 되는 가격까지 폭락한 상태였지만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온통 공포에 휩싸여 있는 시장 분위기가 그를 자꾸만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입은 손실이 자꾸만 결정을 망설이게 했다.
손절을 한다면 이대로 손실이 확정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젠장.”
짧게 욕설을 내뱉은 양용이 얼굴을 쓸어내릴 때 노크를 하며 여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상품사업부 이사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예.”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양용의 모습에 여비서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상품 거래를 담당하는 장원홍 이사가 방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자 장원홍은 책상 앞으로 서둘러 다가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골드만삭스와 HSBC에서 마진콜이 들어왔습니다.”
양용의 두꺼운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진콜(Margin call)은 선물 계약 기간 중에 가격 변동이 일어나면 그에 따른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는 걸 뜻했다.
매입한 원유 선물 가격이 폭락하면서 이미 두 차례나 마진콜에 대응한 상황이었기에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이번에는 얼마가 들어왔나?”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양용이 묻자 장원홍 이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22억 6천만 달러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끄으응.”
액수를 듣고는 자신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CNOOC의 규모와 자금력을 생각하면 감당 못할 액수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장원홍 이사가 얼굴을 구기고 있는 양용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회장님. 상황이 너무 안 좋습니다. 안타깝지만 손실이 더 커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포지션을 청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뭐!? 여기서 손절하면 손해가 얼만지 알고 하는 소리야!”
양용은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절로 움찔할 만큼 험악한 기세였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는지 장원홍 이사도 쉽게 물러나진 않았다.
“물론 손해가 크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이대로 선물을 계속 쥐고 있으면 손실만 계속 커질 뿐, 절대 줄어들진 않을 겁니다.”
“뭐야?”
“지금 시장 분위기를 보십시오. 공포감에 매수 주문이 사라졌고 무엇보다 만기를 하루 남겨두고 이제부터 6월물로 갈아타는 롤오버 물량이 쏟아질 겁니다. 그럼 선물 가격이 또다시 폭락할 가능성이 아주 큰데 계속 위험을 감수하고 손에 쥐고만 계실 겁니까?”
화가 났지만 장원홍 이사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양용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입술을 질끈 깨물 뿐 반박하질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불리해지는 건 명확한 사실입니다. 앞으로 마진콜 대응이 힘들 정도로 가격이 폭락한다면 최악의 경우 엄청난 손실을 떠안고 포지션을 강제 청산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장원홍 이사는 몇 번이고 말을 반복하면서 양용을 설득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실이 커져 증거금 부족분을 채워 넣으라는 마진콜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면 거래소는 자동반대매매, 즉 강제 청산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강제 청산을 염두에 둬야 될 정도라는 건가?”
시선을 받은 장원홍 이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최악의 경우 선물 가격이 배럴당 10달러 아래까지 내려갈 수도 있을 겁니다.”
“말도 안 돼!”
양용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원유 현물 거래 가격이 배럴당 24달러 안팎인데 반도 안 되는 10달러 밑으로 떨어질 거라니!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나!”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양용 회장을 앞에 두고 장원홍 이사가 침울한 낯으로 말했다.
“현물이 아닌 선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자 고함치던 양용의 입이 딱 다물렸다.
“산유국 증산으로 원유 재고가 넘쳐나는 상황에 코로나 때문에 소비까지 크게 꺾였지 않습니까. 선물을 받아줄 수요가 완전히 사라진 게 치명타였습니다.”
“젠장!”
입에서 절로 욕이 나왔지만 선물 거래를 지시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 다른 사람 탓을 하지도 못했다.
양용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참으며 이마를 짚었다.
“여기서 손절하면 손해가 얼마나 되지?”
그러자 장원홍 이사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정확한 건 매도를 끝내고 난 뒤에 알 수 있겠지만 최소한 60% 이상 손해를 감수해야 될 겁니다.”
“그 정도나?”
양용이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입을 벌렸다.
현재까지 CONNC가 쥐고 있는 5월물 원유 선물 액수가 226억 달러였다.
거기서 60%라고 하면 대략 135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CNOOC라고 해도 이 정도면 회사가 휘청거리고도 남을 정도의 타격이었다.
“우리가 다 현물로 받는 방법으로는 안 되겠나?”
양용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듯 머리를 굴려 말했다.
“그러면 선물 가격이 훨씬 낮으니 현물로 가져와서 팔면 그만큼 손실을 줄일 수 있을 텐데.”
배럴당 24달러 안팎에 거래되는 현물과 달리 선물이 훨씬 싸니 원유를 가져와서 팔면 그만큼 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
너무나 간단한 산수였지만 장원홍 이사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말씀대로 한다면 손실을 일부 메꿀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희가 보유한 원유 저장 탱크가 이미 가득 찼다는 겁니다.”
“빈 유조선을 임대해서 거기다가 임시로 채워두는 건 어때?”
장원홍이 머리를 가로저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유가가 폭락하면서 원유 저장을 위한 유조선 수요가 급증해 하루 용선료가 20만 달러를 넘긴 상황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까딱 잘못했다가는 용선료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우려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근본적으로 수요가 폭증해 빈 유조선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고요.”
척당 원유를 한 달만 보관해 둬도 무려 600만 달러의 용선료가 들어갔다.
여기에 정박료 등 각종 비용이 추가되면 액수는 훨씬 더 커졌다.
그리고 보유한 선물량을 생각하면 유조선이 여러 척 필요했다.
이걸 모두 감안한다면 최악의 경우 혹 떼러 갔다 혹 붙여 오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소비가 극단적으로 줄어들어 기존에 들어오는 원유도 처치 곤란인데 여기서 물량이 더해진다면 수급이 완전히 꼬이게 될 겁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건 어떻게든 피해야 될 일이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양용 회장은 길게 한숨을 내뱉고 의자에 등을 턱 기댔다.
“어쩔 수 없군. 포지션을 정리하도록 하게.”
사약이라도 마신 듯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내심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던 장원홍 이사는 안도한 기색으로 허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 전에 마진콜을 넣어줘야 되는데 어떻게 할까요?”
“재무이사한테 말해서 요구하는 액수를 보내주라고 하지.”
“예.”
장원홍 이사가 바로 회장실을 떠나자 혼자 남은 양용 회장은 입술 끝을 실룩거렸다.
“제길!”
마지못해 허락했어도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솟구쳐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친 양용 회장은 분한 듯 몇 번이나 욕설을 내뱉었다.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선물을 매도하기로 했지만 매수세가 사라진 상황에서 과연 포지션을 제때 정리할 수 있을진 미지수였다.
* * *
유니콘 타워 168층 회장실.
재성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왼편 소파에 앉아 있는 정범진 유니콘 병원 원장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번에 외할아버지께서 무사히 퇴원하실 수 있었던 건 다 정 원장을 비롯한 의료진들이 고생해 준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정범진 원장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무엇보다 어르신께서 무사히 쾌차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단청백이 병원에서 죽기라도 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갑자기 회복한 건지 의문이란 말이야.’
단청백이 VVIP라서 망정이지, 만약 평범한 환자였으면 아직도 온갖 검사에 끌려다니고 있을 터였다.
“오늘 정 원장을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병원 의료진들에 대한 처우 문제 때문이에요.”
“아, 네.”
정범진 원장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전국에 있는 유니콘 병원들을 코로나 전담 센터로 운영한 지 이제 벌써 두 달째죠?”
“그렇습니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돌보느라 고생이 많은데 의료진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위험수당과 함께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고 가족에게 전염되는 걸 막기 위해 희망자에 한해 별도의 숙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미 보고를 받은 내용들이었다.
다른 병원에 비하면 상당히 좋은 처우였지만 그렇다고 고생하고 있는 의료진들의 희생을 생각할 때 충분한 건 아니었다.
“추가로 지급되는 수당을 합치면 평균 100만 원 정도 되죠?”
“네, 맞습니다.”
“이건 내 생각인데. 앞으론 좀 더 체계적이고 확실한 보상 방안이 필요할 것 같아요.”
“무슨 말씀이신지……?”
정범진 원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자 치료를 위해 의료진들이 많은 희생을 감내하고 있는데 보상이 너무 적은 거 아닌가 싶어서요. 그리고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될 것에 대비해서 지금부터라도 계획을 세워두는 게 좋지 않겠어요.”
재성은 미리 생각이라도 해둔 것처럼 술술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의사와 간호사를 추가로 더 채용해서 현재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최대한 줄이도록 하죠.”
1급 전염병인 코로나19 환자는 음압병동에서 좀 더 세밀한 치료를 받아야 했다.
특히나 중환자실에 들어가게 되면 환자 1명당 간호사가 5명 이상 붙어서 관리를 해야 됐기에 업무 부담이 컸다.
“그리고 지금 받는 수당 외에 코로나 환자 치료에 투입된 의료진 전원에게 매달 특별 격려금으로 월급 100%에 해당하는 돈을 추가 지급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많이요? 괜찮겠습니까.”
“일선에서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인데 그 정도 보상은 해줘야죠.”
정범진 원장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간호사 평균 월급이 250만 원 정도인데 말씀대로 한다면 수당에 특별 격려금을 합쳐서 매달 600만 원이 넘는 돈을 지급받게 됩니다.”
게다가 한두 명이 아니라 의료진 전원에게 주는 돈이니 지출이 몇 배로 늘어나는 셈이었다.
“가뜩이나 일반 환자를 받지 않고 코로나 전담 센터로 운영하는 탓에 병원 수익이 크게 줄었는데. 이러면 매달 적자를 봐야 할 겁니다, 회장님.”
의료진의 노고를 알아주고 보상을 해주려는 재성의 마음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하지만 병원 운영을 맡은 정범진 원장 입장에서는 난감한 지시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나도 알고 있어요.”
재성도 진지한 얼굴로 맞받아쳤다.
“하지만 애초에 돈을 벌려고 병원을 운영한 게 아니에요. 기업을 하다 보면 때로는 주판을 엎어야 할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이에요.”
팬데믹 상황 속에서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을 거라면 처음부터 병원을 코로나 전담 센터로 바꾸지도 않았을 거다.
“적자가 나도 상관없으니까 코로나 팬데믹이 끝날 때까지는 오직 환자만을 생각합시다.”
재성은 눈을 빛내면서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범진 원장은 내심 크게 감복하고서 고개를 숙였다.
“말씀을 들으니 제가 부끄러워지는군요.”
하마터면 의료인으로서의 본질과 사명을 잊을 뻔했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
그것보다 세상에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범진 원장은 젊었을 적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했던 걸 떠올리며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따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