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638
638. 어떻게 이런 일이…….
뉴욕 현지 시간 4월 20일.
5월 인도분 WTI 원유 선물 만기를 앞두고 뉴욕상업거래소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산유국들의 치킨게임으로 인해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코로나 펜데믹이 발생하면서 수요가 급감하는 쇼크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상 저장고뿐만 아니라 바다 위 유조선까지 원유가 가득 들어차 더 이상 보관해 둘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원유시장 선물 만기까지 겹치면서 수요가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오늘 5월물 원유 선물이 배럴당 10달러 밑으로 내려갈까?”
옆자리에 앉은 라틴계 동료의 말에 HSBC 선물 트레이더인 트러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뗐다.
“시장에서 매수세가 완전 실종됐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당장 우리만 해도 롤오버를 포기하고 만기일 전에 물량을 다 털었잖아.”
매수가보다 선물 가격이 높으면 매도해서 차익을 내거나 아님 다음 달로 갈아타는 롤오버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변동성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상당수 트레이더들이 손해를 감수하고 물량을 터는 손절을 실행했다.
물론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극적인 반전을 노리고 저가 매수에 들어간 야수의 심장들도 있었다.
그리고 낙폭을 과소평가하고 성급하게 들어갔다가 꼼짝없이 물려 버린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어찌 됐든 보유한 물량이 없었던 트러스는 비교적 느긋한 마음으로 시장을 지켜볼 수 있었다.
“설마 한 자릿수까지 떨어지지는 않겠지?”
트러스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대꾸했다.
“현물이 23달러대인데 아무리 매수가 없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되겠어.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시장이 완전히 미친 거지.”
“하긴 10달러 밑으로 가는 것도 역사적인 일인데 그건 어렵겠지.”
동료 역시 수긍하고는 원유 선물 가격 그래프가 띄워진 모니터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10달러까지만 가도 매수만 하면 앉은 자리에서 바로 50%를 먹는 건데 아깝네.”
“원유를 쌓아둘 공간이 있으면 그렇게 해도 되지.”
“그게 없으니까. 이렇게 구경만 하고 있지.”
동료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참. 골드원에 대한 소문 들었어?”
“빈 유조선 수십 척을 싹 다 쓸어간다는 이야기?”
“그래. 코로나가 터지자마자 이럴 걸 미리 예측하고 선수를 치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아?”
침을 튀기며 말하는 동료를 보며 토러스 역시 동의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용선료가 폭등하기 전에 싸게 장기 계약을 했다고 치면 이번에 헐값이 된 선물을 싹 긁어가서 처분하면 차익이 장난 아니겠어.”
“이런저런 비용을 제하더라도 최소 3~40%는 먹을 수 있겠지.”
그러자 동료가 짧게 휘파람을 불며 부러운 듯 말했다.
“10억 달러만 해도 40% 수익이면 4억 달러를 버는 거네. 이번 주식 폭락장에서도 숏을 쳐서 엄청 벌었다던데 골드원 친구들 보너스가 아주 짭짤하겠어.”
몇 년간 JP모건, 골드만삭스, 블랙록 등 쟁쟁한 투자은행과 펀드를 제치고 골드원은 월가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렸다.
직원들이 받는 보너스 역시 제일 많았는데 말단 트레이더도 3~40만 달러는 기본으로 받아갈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샌가 골드원이 월가에서 가장 선망하고 들어가서 일하고 싶은 곳이 됐다.
토러스 역시 매번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추며 큰 수익을 올리는 골드원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거기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동료의 놀란 목소리에 토러스는 상념을 지웠다.
“어? 이거 너무 떨어지는데.”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보자 선물 만기 시간이 임박해서인지 매도량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예상한 일이었는데 문제는 매수 주문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거래 체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매도 물량이 폭증하자 선물 가격 그래프도 아래로 수직 낙하하기 시작했다.
[18달러.] [17.85] [17.23].
.
.
[10.02]심상치 않은 폭락에 토러스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트레이딩 센터 역시 팽팽한 긴장감 속에 다들 말 한마디 없이 모니터를 뚫어질 듯 쳐다봤다.
[9.73] [9.11] [8.66]“어어……”
“계속 떨어지는데?”
“설마 더 내려가는 거야?”
마지노선이라고 여기던 배럴당 10달러를 깨고도 멈추지 않고 선물 가격이 내려가자 트레이딩 센터가 크게 술렁였다.
설마하니 배럴당 10달러 밑으로 떨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달러만 해도 현물보다 절반이나 싼 가격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선물 가격이 10달러를 깨고도 멈출 생각 없이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계속 아래로 추락하자 충격에 휩싸였다.
“벌써 5달러 밑으로 내려왔는데 이거 받아야 돼? 말아야 돼?”
“미치겠네.”
“이건 계산 밖인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트레이더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토러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이번 만기는 그냥 관망하기로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폭락에 저가 매수의 유혹이 마음을 흔들었다.
앞에 있는 키보드까지 손이 갔지만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선뜻 주문을 넣지는 못했다.
“미치겠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선물 가격이 4달러가 붕괴되는가 싶더니 이내 3달러 밑으로 폭락이 쭉쭉 이어지자 그때부터는 욕심보다 공포감이 머릿속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0달러까지 가는 거 아냐?”
평소 같으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했겠지만 무섭게 급락하고 있는 선물 가격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고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모니터만 바라봤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추락에 이제는 감히 저가 매수를 생각조차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원유 선물 가격이 0달러를 깨고 마이너스로 떨어지자 토로스를 비롯한 트레이더들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다.
* * *
북경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 본사.
자정이 훌쩍 지난 늦은 시간이었지만 원유 선물 만기를 앞둔 상품사업부 트레이딩 센터는 완전 패닉에 휩싸여 있었다.
“마이너스 1달러가 넘어갔습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왕위성 선임 트레이더의 비명 같은 외침에 장원홍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치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듯 수직으로 내리꽂히고 있는 선물 그래프를 봤다.
“마이너스 2달러, 아니, 이제 4달러입니다!”
5달러 대가 무너진 이후부터는 패닉셀이 쏟아져 하락폭이 더욱 커졌다.
마이너스 유가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지금 그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쭉쭉 내려가는 것이 보이는 원유 선물 그래프에 누구도 감히 버텨보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그러진 얼굴로 선물 그래프를 보던 장원홍은 이내 황급히 주위에 있는 트레이더들에게 소리쳤다.
“더 떨어지기 전에 어서 물량을 전부 던져. 빨리!”
그러자 컴퓨터 앞에 앉은 트레이더들 가운데 한 명이 몸을 뒤로 돌리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주문을 계속 내고 있지만 매수세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젠장!”
하긴 자신 같아도 이런 상황에서 매수 주문을 내지는 않을 터였다.
만약 원유 선물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놈이거나 엄청난 강심장이 분명했다.
그 순간에도 선물 그래프는 쭉쭉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걸 보며 장원홍이 입술을 질끈 깨물 때 선임 트레이더인 왕위성이 한쪽 손바닥으로 수화기를 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사님. HSBC와 골드만삭스에서 마진콜이 들어왔습니다.”
선물 가격이 폭락한 순간 예정된 수순이었다.
“요구 금액이 얼마야?”
왕위성이 선뜻 대답하지 못한 채 머뭇거리며 말했다.
“오. 오십억 달러입니다.”
“뭐야!”
눈을 부릅뜨며 쳐다보던 장원홍은 이내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걸 떠올리고는 앞에 있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제기랄!”
“10분 안에 입금해 주지 않으면 바로 강제 청산에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씨발! 누군 안 팔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주문을 내도 가져가는 곳이 없는데 어쩌라는 거야!”
장원홍은 크게 짜증을 내면서 소리쳤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
“하지만 이사님.”
장원홍은 왕위성의 말을 무시하고 황급히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지금 즉시 양용 회장에게 연락해야만 했다.
이른 새벽이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번호를 찾아 막 통화 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 손에 든 스마트폰이 갑자기 부르르 떨었다.
“회장님?”
장원홍은 놀란 표정으로 얼른 전화를 받았다.
“예, 접니…….”
[물량은 다 털어냈나?]다짜고짜 묻는 말에 장원홍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직 매도하지 못했습니다.”
[뭐야? 이제 마감이 얼마 안 남았는데 여태 뭘 하고 있었어!]양용 회장은 버럭 소리를 치면서 장원홍 이사를 재촉했다.
‘내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모르고!’
자신은 현장에서 사태를 수습하느라 이리저리 뛰고 있는데, 정작 일을 악화시킨 장본인은 저택에 편히 앉아서 입만 나불거리고 있으니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불안하니까 포지션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몇 번이나 충고했던가.
그때마다 미련을 못 버리고 포지션을 계속 쥐고 있던 건 양용 회장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 탓을 해?’
화가 솟구친 나머지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장원홍은 꾹꾹 눌러 담은 어조로 말했다.
“그것보다 지금 마진콜이 들어온 것부터 해결해야 될 것 같습니다.”
[미치겠군. 이번엔 또 얼마야?]“오십억 달러를 10분 안에 입금시키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
[얼마라고?]“오십억 달러입니다.”
[빌어먹을, 돈이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져? 뭐가 그렇게 많아!]뭐라 말할 틈도 안 주고 길길이 날뛰는 양용 회장을 장원홍이 겨우 진정시켰다.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로 추락해서 그렇습니다. 이대로 계속 떨어진다면 마진콜 액수가 더 커질지도 모릅니다.”
[선물 매수 가격이 226억 달러잖아! 그런데 무슨 마진콜이 그렇게 많이 나온단 말이야.]말도 안 된다고 소리치는 양용 회장의 말을 들으면서 장원홍 이사는 속으로 온갖 욕을 했다.
그러게 진즉에 손절했으면 이런 사단도 없었을 거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왜 애먼 사람에게 난리인지 확 멱살이라도 잡아 날려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선물 가치가 0을 넘어 마이너스가 되어버렸지 않습니까.”
어쩔 수 없다는 장원홍 이사의 말에 양용 회장은 젠장, 하면서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지금쯤 살길을 찾느라 머리가 팽팽 돌아가고 있을 테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수는 없을 거였다.
[당장 그만한 자금을 지불할 방법은 없어.]결국 억지로 쥐어짜낸 대답에 장원홍 이사가 말했다.
“그럼 포지션을 강제 청산 당하게 됩니다.”
[나도 방법이 없는 걸 어떡하라고! 자넨 어떻게든 물량을 털어내, 알겠어!]양용 회장은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고는 혼자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
깊은 한숨과 함께 스마트폰을 든 손이 아래로 축 처졌다.
모니터에서는 여전히 선물 그래프가 멈추지 않고 쭉 추락 중이었다.
“이제 다 끝났군.”
장원홍 이사는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 * *
유니콘 타워 220층 펜트하우스.
푹신한 가죽 소파에 앉은 재성은 얼음이 든 위스키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얼음 조각들이 맞부딪치면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꽤 듣기 좋았다.
동시에 눈으론 탁자 위에 놔둔 노트북을 봤다.
-10달러마저 무너진 5월 인도분 WTI 원유 선물은 만기 직전 –40.32달러까지 폭락하는 기록을 세웠다가 결국 배럴당 -37.6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 거래일인 지난 17일 종가보다 보다 무려 306%나 떨어진 55.90달러가 급락한 가격이었다.
천천히 기사를 훑어보던 중, 데이비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데이비드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로 마이너스까지 폭락했습니다. 그것도 마이너스 40달러를 찍었다고요!]엄청나게 기뻐하는 데이비드와 달리 재성은 한없이 느긋했다.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했잖아요.”
[설마 선물까지 대폭락을 기록할 줄이야. 정말 대단하십니다.]감탄을 거듭하는 데이비드에게 재성이 침착하라면서 물었다.
“매수는 잘 끝냈겠죠?”
[물론입니다. 최저 가격에 가까운 평균 –38달러에 물량을 싹 긁어 넣었습니다.]“수고했어요.”
[선물 폭락으로 공매도를 한 원유 ETF와 정유사 주식에서도 상당한 수익이 날 것 같습니다.]“유가 선물이 마이너스까지 내려간 충격이 클 테니 그럴 테죠.”
재성은 위스키를 홀짝이면서 말했다.
“내가 전에 말해둔 대로 공매도 포지션은 바로 정리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다시 한번 오너의 안목에 감탄하게 되는군요.]데이비드의 칭찬을 대충 흘려들은 재성은 그건 그렇고, 하면서 중간에 끼어들었다.
“돈 쓸 데가 생겼으니까 공매도 수익이 들어오면 10억 달러를 먼저 나한테 송금해요.”
[예, 바로 처리해 두겠습니다.]재성은 전화를 끊고서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선물 가격 그래프를 봤다.
데이비드가 말한 대로 마치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수직으로 뚝 처박히는 모양이었다.
“어디서는 곡소리가 나고 있겠군.”
건배라도 하듯 위스키 잔을 살짝 들어 올린 뒤 단숨에 털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