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Gaming RAW novel - Chapter 2
밥만 먹고 레벨업 2화
폭식 결여증.
먹어도 먹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세계에 단 두 명만 존재하는 희귀병의 일종.
음식 종류는 가리지 않는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어떠한 음식이든지 먹어치운다.
하루 평균 먹어치우는 칼로리는 약 1.5만~2만 칼로리 사이.
강민혁은 그런 폭식 결여증 환자였고 키 185㎝에 몸무게 170㎏에 육박하는 거구였다.
그리고 민혁 앞에 있는 남자.
서울병원의 정신의학과 교수인 이진환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정신과로 명망 있는 의사로 통했다.
민혁은 일주일에 한 번 그를 찾아온다.
그는 하루가 지날수록 무릎 통증이 심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숨은 갈수록 가빠져 왔고 목도 당기기 시작했다.
고도비만에 따른 합병증이 나타나는 거다.
“요즘 방울토마토 계속 먹고 계시죠?”
“예.”
민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이 가져온 가방을 열어 보였다.
가방에는 밀폐 용기에 담겨 있는 방울토마토가 한가득이었다.
“방울토마토도 먹으면 살이 찌네요.”
대표적인 다이어트 식품으로 알려진 게 바로 방울토마토다.
하나에 2kcal 정도다.
“다이어트 식품도 많이 먹으면 찌니까요. 하루에 몇 개 정도 드시죠?”
“한 5천 개?”
“……채식하는 돼지네요.”
“쌤, 너무 팩력배 아니십니까?”
이진환은 쓰게 웃었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두 사람이 봐온 것이 벌써 5년이란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아시겠지만 저 운동도 열심히 해요. 하루에 네 시간 정도?”
“채식하는 건강한 돼지네요.”
“……저 전에 봤던 수능도 1등이었던 거 아시죠?”
“공부 잘하는 채식하는 건강한 돼지네요.”
“이 병원, 저희 아버지 겁니다.”
민혁은 이건 어떻냐는 듯 이죽 웃어 보였다.
“아아…….”
진환은 고개를 주억였다.
그건 위험하구나.
하지만 곧 웃었다.
“돈 많은 집 자식이고 공부도 잘하는 어딜 가도 빼놓을 것 없는 건강한 돼지네요.”
“됐어요. 제가 선생님하고 무슨 말을 해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웃었다.
희귀병인 민혁을 후벼 파는 것 같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나았다.
삭막한 분위기에서 앞으로가 어떻고 치료 방향이 어떻고.
그렇게 말하기에는 민혁의 상태가 너무나 암울했다.
그리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기 전, 진환은 분위기를 조금 풀어줄 필요도 느꼈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
“민혁 군.”
“예.”
“이제 이대로 가면 정말 위험합니다.”
“…….”
민혁도 알고 있었다.
그나마 민혁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버틴 것이다.
매일매일 네 시간씩 운동을 한다.
그리고 최대한 식욕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항상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불안한 폭식 결여증 환자치고는 170㎏의 무게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인 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저도 알아요.”
“힘들죠?”
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가장 힘들어요?”
“먹고 싶은 걸 못 먹는 거죠.”
그러면서 민혁은 제스처를 취한다.
“쌤, 생각해 봐요.”
그러면서 입맛을 한 번 다시었다.
“새벽 1시에 띠리릭, 가스 불을 키고 물 담긴 냄비를 얹어요. 그리고 라면을 반으로 쪼개서 넣는 거죠.”
“오.”
진환의 감탄사에 민혁은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젓가락을 쥔 제스처를 취했다.
“면을 휘휘 들어주면서 잘 익혀요. 그리고 다 익어갈 때쯤에, 계란을 탁! 하나 까서 넣는 거죠. 여기서 포인트.”
그는 결정적이라는 듯 진지한 표정이다.
“서둘러 TV 앞에 세팅을 하고 좋아하는 무한도전 재방을 틀어놓는 거죠. 그다음 라면 먹으면……!”
꾸울꺽-
진환 뒤에 있던 간호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상상이 돼서.”
민혁은 피식 웃었다.
“개꿀이죠.”
진환은 작게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웃음 잃지 않으려는 민혁이었기에 다행이다.
“역시 먹는 게 가장 힘들죠?”
“하루에 방울토마토만 5천 개씩 먹어봐요, 힘들죠.”
“그래도 아주 잘 하고 있는 겁니다.”
분명히 민혁은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폭식 결여증 환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이 죽었다.
그는 열네 살 소년이었는데, 식욕을 이기지 못해 식단 조절에 실패해 키 160㎝에 몸무게 200㎏에 육박해 꽃다운 나이에 죽은 거다.
“먹고 싶은 걸 먹는 순간…….”
진환은 뒷말을 잇지 않았다.
그땐,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를 진행하던 중 진환은 양손을 깍지 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제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하려고 해요.”
“치료법이요?”
치료법.
이제까지 무수히도 많은 치료를 시도했고 번번히 실패했다.
“예, 가상현실게임 아테네.”
“……그거 실패했잖아요.”
아테네는 현존하는 가상현실게임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동시 접속자 수가 900만 이상.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비고 있다.
하지만 이미 민혁은 가상현실게임을 통해 폭식 결여증 치료를 시도했었다.
“그 게임은 베르사르였잖아요.”
진환이 말했다.
베르사르.
아테네 이전의 세계를 점령했던 게임.
“맛도 못 느끼는 가상현실게임 하면 요요현상만 더 오던데요?”
그랬다.
베르사르는 현실과 비슷한 가상현실 게임이었다.
하지만 먹는다는 느낌은 있어도 맛을 구현하진 못했다는 거다.
그에 진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테네는 실제로 맛이 느껴집니다.”
“예?”
“제가 해봤어요.”
“…….”
그 순간.
민혁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진환은 책임감 있는 의사였다.
아테네의 출시는 6개월 정도 되었다.
진환과 함께 폭식 결여증 치료법을 연구하는 의사들은 그 질병이 정신적인 질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에 베르사르에서 먹는 행위를 반복해서 현실의 체중을 감량 하자가 목표였다.
하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는 포만감은 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진환이 직접 뜯고 맛보고 즐겼다는 거다.
“그곳에선 새벽 1시에 라면 100개 먹어도 살 안 찝니다.”
* * *
연예인 전문 헬스 트레이너.
A급 식단 관리사.
국가대표선수 재활훈련사.
세 사람이 거구의 민혁이 물속에서 운동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일화그룹 회장님이었고 그 때문에 꽤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뚱뚱한 민혁은 물장구를 치듯이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그가 물 안에서 움직이는 이유는 하나다.
‘뛰면 무릎이 망가진다.’
이미 민혁은 고도비만 그 이상에 들어섰다.
뛰게 되면 몸이 부서진다.
그나마 몸이 워낙 뚱뚱해 물속에서 이런 운동을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분명히 칼로리 소모가 뛰어나다는 거다.
“허억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는 민혁을 보던 이중 헬스 트레이너 오창욱이 말했다.
“민혁아, 좀 쉬었다 할래?”
“아니요. 헉헉, 조금 헉헉, 더 할게요.”
민혁을 지켜보는 세 사람 중 누구도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그가 살을 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출렁
그가 움직일 때마다 뱃살이 출렁거린다.
숨이 터질 듯 차오른다.
민혁은 세 사람이 바라보는 가운데에 병원에서 진환과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민혁 군도 알겠지만 베르사르 게임을 했을 때 오히려 요요현상 때문에 20㎏이 더 쪘었죠.’
먹어도 맛은 느껴지지 않고 게임 속 포만감만 채워진다.
그것은 끔찍한 요요로 다가왔다.
무엇을 먹든, 아 진짜 맛을 느끼고 싶다.
억누르던 욕정을 터뜨리게 해버린 것이다.
그때 민혁은 20㎏ 가까이 쪘다.
끔찍한 요요현상이었다.
민혁에겐 그마저도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맛을 보면 그에 따른 요요현상도 올 수가 있어요. 가상의 세상의 맛을, 현실에서도 충족하고 싶은 거죠.’
그 말을 민혁은 알았다.
선택하라는 거다.
‘뭘 선택하든 민혁 군 마음이에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진환은 굉장히 씁쓸한 표정이었다.
‘더 이상의 선택이 우리에게 남아 있느냐는 겁니다.’
진환은 우리라는 표현을 써줬다.
자신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린 것이다.
치료를 선택하는 건 섣불러선 안 된다.
정말 잘못하다가는 그 요요현상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후우.”
운동을 마친 민혁이 물에서 나오려고 하자 서둘러 오창욱 트레이너와 몇몇 사람이 그를 물속에서 끄집어냈다.
그다음 수건으로 그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줬다.
운동이 끝나자마자 민혁은 느꼈다.
‘이 빌어먹을 식욕……!’
운동하는 동안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운동이 끝나면 식욕은 곧바로 찾아왔다.
마치 머릿속에서 누군가 계속 먹으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정말 끔찍한 질병이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운동실에 음식이 준비되었다.
커다란 그릇이었다.
그 그릇에 양배추, 양파, 썬 방울토마토로 만들어진 샐러드가 있었다.
소스 없는 샐러드 말이다.
이것과 방울토마토, 또는 영양제나 단백질 보충제 같은 것이 민혁이 먹을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음식들이었다.
우적우적-
민혁은 미칠 듯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하지만 먹어도 먹어도 공복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한 접시를 비워내고 두 접시.
두 접시를 비워내고 세 접시.
세 접시를 비워내고 네 접시.
이런 먹는 행위가 잠을 자기 전과 운동할 때를 제외하고 항상 반복된다.
먹지 않으면 발작 증상이 생긴다.
불안해지고 심장이 빠르게 뛴다.
호흡은 더욱더 가빠지며 식은땀이 난다.
예전에 민혁은 스스로 최악의 치료에 들어선 적이 있었다.
홀로 방에 갇혀 음식과 자신을 결여시킨 것이다.
그리고 벌어진 일은 자신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고 끔찍했다.
방 안에 있는 휴지를 먹어치웠다는 거다.
이내 다섯 그릇째를 먹고 방울토마토가 든 밀폐 용기를 들었다.
“형, 아테네 재밌어요?”
“아테네?”
오창욱 트레이너는 아테네에서 준랭커라고 들었다.
“재밌지, 요새 그것만큼 재밌는 게임은 없으니까.”
“저도 한 번 해볼까 하는데.”
“아테네라.”
오창욱 트레이너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민혁의 하루는 똑같다.
운동하고 먹고, 자고.
운동하고 먹고, 자고.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창욱으로서는 민혁이 일반 사람들처럼 인생 좀 재밌게 살았으면 싶다.
“또 와서 무슨 기록을 달성하려고?”
“크흐, 역시 저란 남자. 손대면 랭커 각입니까?”
“완벽하지, 했다 하면 뭐든 최고는 찍고 그만두는 놈이니까. 대체 안 가진 게 뭐냐?”
“날씬함이요.”
“…….”
창욱이 피식 웃었다.
“너 가끔 너무 웃픈 개그 치는 거 아니냐?”
“그렇다고 울어요?”
“아니, 뭐…….”
창욱은 말끝을 흐렸다.
“웃는 게 낫지.”
“읏차.”
민혁은 빙긋 웃곤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지금 어디 계세…….”
그 순간.
사방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어지러웠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가빠진다.
그리고 이어.
풀썩.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미, 민혁아!”
“의, 의사 불러!”
순식간에 운동실이 난장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