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 Duke of Powder Keg Empire Genius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 똑똑 제국입니다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겪는다면 잠깐 앗 하는 사이에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활기 넘치는 항구도시 트리에스테. 시민들의 표정에는 걱정 하나 없으며 밝고, 그것을 아는지 하늘조차 푸르렀다.
그리고 요시프 브로즈는 잠깐 생각했다. 내가 언제 트리에스테까지 왔지?
그는 근위대의 일원으로서 대전쟁에 참가했고, 수많은 전선을 오가며 활약했다.
그리고 전쟁은 끝났다. 제국은 수백만 규모의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고, 하나둘 해체되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많은 공을 세운 근위대는 선택지가 넓지만, 요시프 브로즈는 전역을 희망했다.
‘나가서 뭘 할 생각인가?’
‘뭐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한 게 있는데.’
상관이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한 것 같았다.
아무런 계획이 없어 보이는 대답에 당황하지 않은 상관.
사실 전역을 희망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랬다. 무슨 이유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영광스러워도 군대보단 사회가 좋지 않은가.
‘무언가 하고 싶은 건 없고?’
‘하고 싶은 거 말입니까?’
꼬치꼬치 캐묻는 상관의 말에 고민하다가 장난스럽게 나온 건.
‘근위대의 일원이었으니 나중에 정치라도 해볼지 생각 중입니다. 누가 알아봐 주지 않을까요?’
부하들과 농담하다가 나온 이야기였다. 그냥 근위대면 누구라도 좋아해 주니까 정치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어울릴 것 같지도 않고, 당연히 진지하지도 않았지만, 상관은 그 대답을 무척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리고 요시프 브로즈는 전역을 하자마자 납치되었고, 지금까지 수많은 교육을 받고 트리에스테로 오게 되었다.
“신입, 매우 얼빵한 얼굴이군. 누구에게 뺨이라도 맞았나?”
나이 지긋하게 먹은 사람이 말을 걸자 요시프 브로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가 봐도 귀족으로 보이는 사람은 보헤미아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고 현재 요시프 브로즈의 상관이기도 했다.
“아, 아닙니다. 긴장되어서…”
“전선에 오래 있던 사람도 긴장을 하나?”
당연한 말을 하네. 경험 많은 군인이라고 감정이 메마른 건 아니다.
지금 요시프 브로즈는 미칠 것만 같았다. 수많은 전선을 오가고, 수많은 전장을 겪었지만, 오늘만큼 긴장되는 일은 없었다.
비슷한 수준이라면 섬뜩한 중대장이 잘했다며 어깨를 두드려 줄 때만큼 부담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중대장이었던 자이스잉크바르트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다른 건 몰라도 유능한 인물이라 군에서도 붙잡고 싶을 인재였을 텐데.
하지만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 가서 잘 먹고 잘살겠지.’
섬뜩한 양반이지만, 능력이 워낙 출중하여 걱정해 줄 필요는 없었다.
아무튼 지금 긴장 때문에 죽어 나가는 건 요시프 브로즈였다. 어제 먹은 음식도 제대로 소화가 되지 않은 느낌이다.
“오, 저기 오시는군.”
상관의 말에 그의 허리가 바짝 섰다. 요시프 브로즈가 보좌해야 할 사람이 오고 있으니까.
상관의 이름은 즈덴코 폰 로브코비츠이었고, 저기서 걸어오는 사람은.
카를 폰 합스부르크.
요시프 브로즈가 오늘부터 보좌해야 할 사람이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도대체 왜? 귀족 출신도 아닌 내가 황족의 보좌라고? 그게 말이 돼?’
물론 보좌관이 한두 명이 아니다. 황족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요시프 브로즈는 잡일이나 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이해될 수준은 아니다. 카를 대공은 평범한 황족이 아니라 제국군 총사령관이면서 제위 계승자다.
차라리 자이스잉크바르트면 모를까 적어도 요시프 브로즈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이곳에 올 사람은 아니라고 여겼다.
“전하, 오늘따라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착잡합니다.”
뭐지? 무슨 안 좋을 일이라도 있으셨나?
요시프 브로즈의 표정은 살짝 굳어졌다.
그가 처음으로 합류한 날인데 기분이 좋지 않으시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이제 막 셋째가 태어났는데 멀리 갈 생각을 하니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군요.”
아. 그러시구나.
“하하, 그래도 중요한 일이 아닙니까? 어쩔 수 없이 전하께서 나서야지요.”
“이제 제국 정도라면 나 없어도 될 텐데요.”
“이런, 아직도 제국은 전하가 없다면 안 됩니다.”
귀족의 적나라한 아부가 펼쳐졌다.
이게 바로 아부? 그도 이제 배워야 하나? 높은 분을 모시게 될 텐데?
하지만 이게 또 아부라고 하기에는 상대가 워낙 대단해서 그런 느낌도 잘 없었다.
요시프 브로즈는 입을 꾹 다물고 그를 바라봤다.
근위대를 이끌어, 제국의 승리를 이끈 군신.
근위대에 있었던 요시프 브로즈는 당연히 그에 대한 감정은 긍정적이다 못해 치솟아 오를 수준이었다.
카를 대공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요시프 브로즈를 이제야 제대로 봐주었고, 즈덴코가 소개해 주었다.
“오늘부로 합류할 보좌관입니다. 전하께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요? 기대되는군요. 잘 부탁합니다. 티… 요시프 브로즈.”
카를 대공은 요시프 브로즈를 믿는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나.
제국에서 누구보다 높은 사람이다. 곁에서 보좌하다가 인맥도 넓어지다 보면 그놈의 정치라도 할 수 있겠지.
***
오늘의 만남은 대충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빰빠라빰! SSR 브로즈 요시프 ‘티토'(전쟁 경험 다수, 충성심 만땅)를 얻으셨습니다!
그 유명한 티토다. 세계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맞서 게릴라전을 이끌었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건국, 조지아의 인간 백정 스탈린과 힘에 눈을 뜬 미국과 연합국 사이에서 끝내주는 줄타기를 선보인 진짜 재능.
이게 끝이겠는가. 유고슬라비아는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구성된 국가다.
듣기만 해도 머리가 핑핑 돌아가지 않은가. 이딴 국가를 통치하라고?
발칸의 미친개 세르비아만 해도 미칠 것 같은데 들어줘야 할 목소리가 한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티토는 해냈다. 그들을 만족시키고, 국가 발전, 성장도 하고 외교도 하면서 똘똘 뭉치게 했던 것.
이게 진짜 재능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이건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전역한다고 하니 데려올 수밖에 없다. 전역하고 나서 평범하게 산다면 재능을 낭비하게 되는 격이다.
안 그래도 전역하면서 정치에 관심이 있어 보이니 내 옆에 붙어서 많은 경험을 하다 보면 재능이 알아서 싹 트지 않겠나.
원 역사에서 1980년까지 살았던 양반이니 죽을 때까지 써먹어야겠다.
생각해 보니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겠는데?
“멕시코에 쳐들어가는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고개를 돌려보니 무엄하게 내 생각을 끊은 사람은 전쟁해군 장교복을 입은 내 동생 막시밀리안이었다.
“멕시코를 생각한 게 아니야.”
멕시코는 안중에도 없었는데.
쉽게 얻을 수 없는 인재가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멕시코쯤은 적으로도 생각 안 한다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게 대단한 적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방심할 생각은 없지만, 굳이 심각하게 긴장할 상대는 아니잖아. 미국한테 두들겨 맞은 놈들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건 환경이지, 멕시코 자체는 아니다.
거리가 멀긴 하지만, 독일이 적극적으로 도와줄 예정이라 부담도 많이 줄어든 상태다.
멕시코 내부에서 우리를 지지해 줄 세력도 있으니 더더욱 상황이 좋다.
이번 원정 함대에 교황청에서 보내온 사람들이 탑승할 예정이니까.
“전쟁해군의 준비는?”
“부족한 게 많지만, 어찌어찌 끝낼 수 있었어.”
막시밀리안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번 원정은 꽤 다사다난했는데 전쟁 이후에 전쟁해군은 큰 변화를 겪으면서 여기저기서 문제점이 드러났다.
당연히 근본적인 원인은 항구에 있는 수많은 함선이다. 군함의 숫자는 빠르게 늘었는데 선원은 빨리 육성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빠르게 성장할 거야.”
막시밀리안은 자부심이 가득 찬 말을 하고는 항구를 바라보았다.
항구에는 원정 함대의 전투함, 보급선 등 다양하게 있었는데 누가 뭐래도 시선을 이끄는 건 함대의 중추가 될 전함이다.
아무래도 함대는 전함의 속도에 맞출 수밖에 없고, 멕시코까지 원정을 떠나야 하니 속도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대전쟁을 겪은 군함은 이번 원정에서 다수 빠졌다.
그래서 이번 원정 함대의 전함은 경험을 쌓아야 할 프라하, 자그레브, 센트 이슈트반, 프린츠 오이겐, 라데츠키로 구성되었다.
프라하와 자그레브는 영국에게 받은 배상함 퀸 엘리자베스급 워스파이트, 밸리언트였고, 센트 이슈트반, 프린츠 오이겐은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나운, 리펄스, 라데츠키는 일본 해군의 순양전함 공고였다.
스펙상으로만 보면 숫자는 적어도 전쟁해군 전함 전력의 절반에 육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튼 전쟁해군은 영국의 배상함을 받아 크게 확충되었으며 당연히 기존 승무원들은 넓게 퍼져야 했다. 그 공백을 막 들어온 신입이 채워야 한다.
이번 원정은 하나의 기회였다.
특히 운용해 본 적이 없으면서 성능은 좋은 배상함, 영국의 기술을 전수 하여 만든 신형 순양함, 구축함을 차출하고, 이번 기회에 숙련도를 크게 늘릴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제국이 먼 대양까지 힘을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전쟁해군의 숨은 노림수였다. 이런 게 모여 해군 전통이 되는 법.
“너는 괜찮겠어?”
“내가? 왜?”
“첫째 황녀가 있잖아.”
내 말에 막시밀리안은 살짝 얼굴을 붉힌다. 첫째 황녀는 당연히 니콜라이 2세의 첫째 딸 올가 여대공을 말한다.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빈에는 막시밀리안과 올가 여대공의 이야기가 좀 퍼졌다.
아무래도 니콜라이 2세의 가족들이 빈에 도착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막시밀리안이 붙어 있으니 유심히 살펴보면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막시밀리안의 말을 들어보면 서로 깨가 쏟아지고 있을 시기인데 이번 원정에 참여하면서 꽤 오랫동안 멀리 떨어져 있게 됐다.
“이 정도는 괜찮아. 어차피 일 때문에 떨어져 있는 시간은 많았어.”
동생은 괜찮다고 말하면서 어떤 장애물도 가로막을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렇게 사이가 좋다면 서로 맺어지는 건 어렵지 않을 터.
이미 두 사람의 사이는 나나 큰아버지도 알고 있고, 큰할아버지도 들었을 게 분명하다.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귀천상혼 한 큰아버지도 결국 제위에 올랐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으니 만약 둘의 결혼에 문제가 생긴다면 큰아버지가 크게 지지해 줄 것이다.
니콜라이 2세는 우리의 지원을 받아 내전을 치르고 있으며, 동시에 나이가 찬 딸의 결혼을 반대할 리가 없다.
내 동생이 어디 신분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합스부르크의 일원이면서 아버지가 모데나 공국의 군주로 있다.
당연히 미래에 동생은 모데나 공국을 물려받을 터.
큰할아버지도 이제 와서 반대할 리가 없다. 합스부르크와 로마노프의 결합을 포기할 리가 없지 않은가.
“형이야말로 괜찮아?”
“나? 나야 괜찮지…”
막 태어난 셋째 얼굴이 아른거리지만, 황족으로서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이건 각오했던 일이고, 금방 끝내고 와서 보면 그만 아니던가.
멕시코의 일도 어떻게 진행할지 대충이나마 계획했다. 만약 꼬이면 진짜 베라크루스 봉쇄하고 과거에 했던 진짜 외교를 보여주면 된다.
외교의 기본은 함포가 아니겠는가.
“미국은 괜찮겠어?”
미국? 괜찮고말고.
멕시코만에 함대를 이끌고 가는 건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리 고립주의가 팽배했어도 앞마당까지 오는 건 미국도 참지 않고 반드시 항의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반응하기 어려울걸.
국내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을 테니까.
***
‘전쟁 패배의 원인은 흑인 때문이다!’
이 한심하고도 웃긴 이야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미국 전역으로 퍼졌다.
원래부터 피부색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저 흑인을 혐오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미국 내에 생각보다 많았다.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 어떻게 노예였던 놈들과 우리가 같아?”
“흑인이 근처에 살면 불안해서 안 돼. 그들은 짐승이라고.”
“도대체 흑인이 미국에서 하는 게 뭐야? 치안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라고!”
흑인은 오해를 가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누구도 흑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흑인 스스로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들은 명예도, 하다못해 쌓아놓은 재산도 없었다.
당연히 흑인 혐오가 만연해지고, 린치당해 죽어도 딱히 저항할 수 없었다.
“난 도저히 여기서 못 살아. 다른 곳이라도 갈 거야!”
“우리한테 고향이 어디 있다고 그래. 미국 바깥은 더 지옥이야.”
“최소한 미국 남부는 안 돼.”
“북부도 만만치 않아.”
흑인들은 어떻게든 움직여야 했다. 백인들의 린치, 성폭행, 살인을 견딜 수 없고, 누군가가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도망가기라도 해야 하지 않은가.
흑인 대이동. 미국 남부에 쏠려 있는 흑인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선택지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도 있었다. 흑인이 봐도 무척 과감한 선택지.
“유럽? 거긴 더 미친 짓이야.”
“분명 차별이 있을 거야. 거기도 똑같은 지옥이라고.”
“차별? 그 정도면 행복 아니야? 여기에 남아 있다가는 맞아 죽는다고! 나야 괜찮아. 하지만 자식이 당한다면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오스트리아로 가면 최소한 맞아 죽지는 않잖아?”
“시간이 지나면 거기서도 우리를 향한 폭력이 날아올 거야.”
“시간을 벌 수 있다면 다행이야. 내 자식들이 성장할 시간이라도 벌 수 있으니까.”
“먼저 이주한 친구한테 들었어. 적어도 우리가 맞아 죽을 것 같으면 경찰이 구경하지는 않다고 했어.”
“경찰이 흑인을 보호해 준다고? 거짓말하지 마! 세상에 그런 국가가 어딨어!”
흑인에게 낙원은 없다. 어디를 가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죽을 수 없으면 살아야 했고, 서로 옳다고 여기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모두가 도망간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살았던 고향을 쉽게 버릴 수 없거나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은 남았다.
남은 이들을 덮친 것은.
“시발, KKK단이다! 도망쳐! 잡히면 죽을 거야!”
“개자식들! 저게 사람이야?”
지금까지 백인들의 린치는 충동적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 흑인이 지나가면 뺨을 때린 다음에 ‘오, 찰진데? 더 때려야겠다!’ 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백인들도 서서히 조직적으로 변해버렸다. 그 중심에는 KKK(Ku Klux Klan)단이 있었다.
흑인에 불만을 품은 6명의 사람이 모여서 술이나 마시고 불평불만이나 하던 조직이었고, 과거에 공권력에 의해 해산되었다.
하지만 남부에서 재창설되었고, 그들은 조직적으로 모여 흑인은 물론 아일랜드, 이탈리아, 유대인 등을 적대시했다.
그들은 일개 친목질하던 조직과 차원이 달랐다. 무섭게 숫자가 불어났고, 조직적으로 변해 악밖에 남지 않은 흑인들도 공포에 떨어야 했다.
문제는 숫자였다. 아무리 잘못된 조직이라도 숫자가 많아지면 정치인도 신경 쓸 수밖에 없어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숫자만큼 폭력적인 게 어디 있는가.
흑인 폭행? 요즘 세상에 그게 그리 큰 흠은 아니지 않나.
“깜둥이가 지나가다가 죽을 수도 있지.”
“우리가 깜둥이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잖아?”
“KKK단이 심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적대할 수는…”
KKK단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부풀면서 남부에서는 정치인의 정치생명을 좌지우지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당연히 정치인도 클랜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졌고, 흑인들은 더더욱 절망해야 했다.
KKK단은 더 조직적으로 선동과 날조를 앞세워 흑인을 핍박했다.
“콜록콜록! 요즘 독감은 너무 심한데?”
“이봐, 괜찮은 거 맞아?”
“으아아, 죽겠다!”
때마침 미국에서 시작된 독감은 곧 전역으로 퍼졌고, 심각할 정도로 사람들이 사망하기 시작했다.
KKK단은 이것 또한 이용했다. 사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은 흑인을 미국에서 쫓아내기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종자들이다.
“흑인이다! 흑인이 독감을 퍼뜨렸다!”
“흑인입니다! 흑인이 독감을 퍼뜨려 백인들을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
“흑인들이 미국을 지배하기 위해 독감을 퍼뜨려 우리를 죽이고 있다!”
개소리 중의 개소리. 하지만 독감은 생각 이상으로 미국 전역으로 퍼지면서 어마어마한 사망자를 낳고 있었다.
소중한 사람이 죽어 무언가 혐오할 것이라도 필요했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생겨났고, 그것이 흑인이 되었을 뿐이다.
아니면 그냥 흑인을 혐오하고 싶다거나.
당연히 흑인 혐오는 시간이 흘러 더더욱 크기를 키웠고, 흑인들은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희망이 없지는 않았다.
“이건 술이잖아? 어디서 얻어온 거야?”
“뉴욕에서 받아왔어. 나는 정기적으로 술을 공급받아 팔 거야.”
“뉴욕에서 받아왔다고? 누가 우리 흑인들한테 물건을 팔아준다는 거야. 그것도 술을.”
이상한 일이었다. 백인들에 의해 두들겨 맞고 있는 흑인이다.
그런 이들에게 금주법 때문에 구경하기도 힘든 술을 공급해 주고, 돈벌이를 만들어 준다고?
예수가 아닌 이상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기적은 뜬금없을 때 찾아오는 법.
“흑인인데 괜찮습니까…?”
“깜둥이가 소문대로 멍청하다면 좀 문제가 있겠군. 설마 술을 파는 것도 못 할 정도로 열등한가?”
“그건 아닙니다!”
“그럼 됐다. 하나만 명심해라. 오래 살아남아야 뭐라도 할 수 있다. 최대한 비밀을 지켜.”
이건 기회였다. 안 그래도 미국 전역에서 두들겨 맞고 있는데 먹고 사는 일이 쉽겠는가.
이번 일은 불법이지만,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비밀? 자기 목이 걸린 일에 비밀을 안 지킬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비밀은 반드시 지켜야 해. 이게 우리 흑인들의 마지막 동아줄이라고!”
“고마워서 고문받아도 입을 열지 않을 거야.”
고통받는 흑인들이 모여 마피아를 형성했다.
그리고 마피아는 더 많은 흑인을 불러 모아 단단하게 뭉쳤다.
“뭉쳐야 산다! 우리가 보호해 줄 테니 우리 일을 도와라!”
“국가는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 무장해야 한다!”
마피아를 중심으로 흑인들은 생존을 위해 무장했다.
생존을 위해. 그리고 존중을 위하여.
존중은 공포에서 나오고, 공포는 총구에서 나오는 법이다.
“쏴, 쐈다! 흑인들이 우리를 쐈다! 흑인이 사람을 죽였다!”
“이 개자식들아 너희가 먼저 쐈잖아!”
“경찰! 경찰! 빨리 이 흑인들을 잡아 죽여! 백인을 죽였다고!”
“깜둥이들. 미국은 우리 백인의 나라라는 것을 잊지 마라!”
“우린 참지 않을 것이다! 무장하고, 그들에게 존중을 알려줘라!”
“이 빌어먹을 노예 새끼들이!”
분열의 씨앗이 여기저기 퍼지고 있었다.
***
“보이는 거 있어?”
“뭐가 있겠냐.”
멕시코 해군 소속 군함 탐피코. 선원인 두 사람이 여유롭게 웃으며 대화한다.
해안 순찰을 위해 나왔지만, 특이 사항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멕시코 담당 일진 미국은 대전쟁에서 개박살이 나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 더 이상 멕시코의 공포로 군림할 수 없었다.
당연히 해안 순찰을 하는 멕시코 해군은 지겨운 바다나 구경해야 했다.
“너머에 있는 섬들이 전부 독일 제국에게 넘어간 건 알지?”
“알지.”
멕시코 해군의 관심은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갖게 된 독일 제국이었다.
그들은 식민지 관리를 위해 군함을 배치했고, 멕시코 해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독일 제국과 멕시코가 바다에서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멕시코 해군은 바다로 나갈 능력이 없었으며 독일 제국 해군은 멕시코만까지 기어들어 올 필요가 없었으니까.
미국만 사라진다면 멕시코는 무척 평화롭다.
그때였다.
“근처에서 통신이 왔습니다. 전함을 발견했다고…”
“전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탐피코는 근처 상선에서 온 통신을 받았고, 함장은 비웃으며 넘겨버렸다.
분명 장난일 것이다. 아니면 거대한 상선을 착각했을 수도 있고.
아무튼 전함은 아닐 것이다.
전함? 전함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아는가.
멕시코 해군은 구축함보다 못한 배밖에 없는 나라다.
당연히 전함은 상상 속의 동물이나 마찬가지고, 있어 봐야 미국 정도인데 거기는 지금 멕시코를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가볍게 넘긴 것을 곧 후회했다.
“전방에 매연 발견! 대규모로 보입니다.”
“상선 아니야?”
“저쪽으로 오는 대규모 상선을 보고 받은 적이 없습니다…”
꿀꺽.
탐피코에 탑승한 선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럼 저 매연은 어떤 배가 뿜어내는 것이며, 어디서 왔단 말인가?
하지만 해안 순찰을 해야 하는 군함이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그들은.
“마, 맙소사…”
멕시코만으로 들어오는 대규모 함대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