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43
제243화
윌리엄은 렌 아르젠이 피워낸 기세를 받아내며 웃음을 흘렸다.
“큭! 하하하!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장난이 지나쳤던 것 같군요.”
순순히 한발 물러서는 윌리엄.
“소문대로 브릴런트에 인재들이 많이 모여들었네요.”
그가 손짓하자 그의 호위들이 납검하며 뒤로 살짝 빠진다.
“대단합니다. 이제는 과거의 브릴런트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는 그가 루이즈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브릴런트의 국왕이시여. 저희 황제 폐하께서 앞으로 그대의 행보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또다시 일변한 그의 분위기. 한 사람에게 여러 개의 인격이 존재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유자재로 변하는 그의 분위기에 사람들이 쉽사리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사뭇 진지해진 윌리엄을 지긋이 노려보며 루이즈가 렌의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내 의지를 말하겠습니다. 윌리엄 세르펜티우스 대사.”
그가 들고 있던 서약의 검을 움켜쥐며 말했다.
“나는 불의에 맞서 싸울 것입니다. 대륙을 어지럽히는 흑마법사들의 세력을 처단할 것이고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이들을 내칠 것이오. 내 백성들의 고난을 가볍게 여기지 않을 것이니…….”
그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시선이 윌리엄의 시선과 마주치면 불똥을 튀게 만든다.
“제국 또한 올바른 길을 간다면 나 루이즈 헤르티아와 브릴런트 왕국은 기꺼이 제국을 따르고 협조할 것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에겐 그렇게 전해드리도록 하죠.”
윌리엄이 그대로 루이즈와 그의 신하들을 쭉 훑어보다가 뒤를 돌아 나갔다.
알현실의 대문을 열어젖히는 그의 얼굴이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금 일그러져 있었다.
“렌, 여긴 어떻게 온 거지?”
“폐하, 제국 사절단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 따라왔습니다.”
“……그런가.”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씁쓸함.
고작 이 정도 일에도 렌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과 그의 걱정을 사야만 한다는 사실이 루이즈의 입맛을 쓰게 만들었다.
“렌 아르젠.”
모건이 투기를 끌어올리며 렌에게 다가갔다.
“이 자는 누구지? 왕이 계신 곳이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자를, 그것도 이렇게 위험한 자를 함부로 들이는 건 아무리 너라도 용납되지 않는다.”
모건이 말하는 이는 암황, 에드리크 로스를 말하는 것이었다.
천하의 모건조차도 존재감만으로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에드리크의 살기는 날카롭고 위험했다.
그가 작정하고 존재감을 숨긴다면 모건조차 쉽게 파악하지는 못했을 테지만, 에드리크는 사절단을 압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일부러 기세를 드러냈다.
그것이 애꿎은 모건을 자극한 것이 문제였다.
“제가 믿는 분입니다. 하지만 제 불찰이었던 것 같군요. 앞으로는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렌이 눈짓하자 에드리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모건이 막지만 않았다면.
“정체를 밝히고 가라. 왕국에 내가 모르는 마스터가 있었나.”
“……감이 좋군.”
에드리크는 기세를 발산했을지언정 투기를 내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건은 그의 기세만으로 그가 마스터급이라는 걸 파악했다.
“정제된 살기가 매우 날카로워. 검을 들지도 않았는데 온몸이 칼날에 둘러싸인 기분이군.”
“그만하시죠.”
렌은 지난 싸움 이후 뒤바뀐 모건의 태도가 마치 젊은 시절의 그를 보는 것만 같았다.
딱히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모건은 이제 루이즈 국왕을 위해서 렌조차도 물어뜯을 수 있는 개가 되었으니.
“지금 당장 싸우기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럴 수밖에.”
“모건 경! 그만하십시오.”
보다 못한 루이즈가 그를 말리며 나섰다.
그에게 렌은 각별한 인물이었고 왕국을 되살린 주역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충성을 맹세한 그라고 해도 렌에게 이런 식의 행동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렌, 미안하다.”
“아닙니다. 폐하. 제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아까 물어보셨지 않습니까?”
“그래.”
“사실 긴히 말씀드릴 게 있어 온 것입니다.”
“……뭐지?”
“저는 알란 왕자와 교류하는 인물을 찾기 위해 사람을 풀어놓았었습니다.”
“사람을 풀어놓았다?”
“예, 알란 왕자가 사라졌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렌의 말에 루이즈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
그도 알고 있었다. 알란 헤르티아가 계승식 이전에 왕성에서 모습을 감췄다는 것을.
하지만 왕위에 올랐기에 그에 대한 걱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알고 있다. 형님께서는 내게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지.”
“그게 너무 길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건 형님이 판단할 것이다.”
“그렇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렌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가 왕성에 온 진짜 이유, 그리고 그동안 낭인 부대와 용병 부대를 이용해 시켜놓았던 임무.
그건 바로 흑성이 왕성에 접근하는 것을 알아내는 것과 알란의 행적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만약 알란의 움직임만 주시할 수 있다면 그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든 대처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왕성에 있는 알란을 감시하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 그의 행적을 놓쳤다.
다만 바실의 용병 부대가 흑성의 소재를 찾아냈다.
“흑성이 알란 왕자님을 납치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알란 왕자님은 스스로 사라진 게 아닌 흑성의 모략에 당해 사라지신 거라고 생각됩니다.”
흑성의 인물들이 알란의 방과 왕성에 침입했다는 흔적이 발견되었다.
다만 저항의 흔적은 딱히 없었다. 더구나 알란의 방은 왕성의 제법 깊은 곳에 있다. 만약 알란이 그곳에서부터 납치를 당했다면 이렇게 아무 소란 없이 빠져나가지는 못했을 터.
그건 분명 알란이 상대방에게 협조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흑성이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알란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을 것이란 건 알 수 있어.’
“흑성에서 형님을…….”
충격받은 얼굴로 표정을 굳힌 루이즈. 신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몇몇 이들은 속으로 차라리 잘되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알란은 결국 루이즈의 앞길을 막을만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
흑성이 무엇 때문에 그를 데려가려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좋은 상황이었다.
손에 피 묻히지 않고 경쟁자를 완전히 제거해버릴 수 있었으니.
“확실하지 않은 정보로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았으면 좋겠군.”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모건이 렌을 제지하려 하자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코헨이 나섰다.
“아까부터 자꾸만 딴지를 거는 군, 모건.”
“……코헨 트레비스. 폐하가 계신 곳이다. 네가 지금 누굴 따라야-.”
“잠깐. 그만해라. 렌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루이즈가 제지하자 모건이 입을 다물고 물러선다.
“동부의 정보상이라고 아십니까?”
“동부의…정보상? 처음 들어보는군.”
“대륙 동부에서 암중의 권력을 쥐고 있는 정보상입니다. 대외적으로 나서지 않기에 정보도 많이 없는 인물이죠.”
“……그런 이가 있었군.”
모건이나 코헨도 아는 눈치였지만 루이즈 본인은 전혀 몰랐기에 그가 새삼 부족하다는 것을 또 한 번 절감했다.
“그자가 얼마 전 알란 왕자와 내통했다는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정보로 보아선 그자가 알란 왕자를 납치했을 확률이 유력합니다.”
“동부의 정보상이 흑성이라는 이유는 무엇이지?”
“왕성에 마기가 흐른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애스턴 캐쉬 교황 성하께서 그것을 발견하고 제게 말해주셨습니다.”
“마기의 흔적이라…….”
마기가 나왔다는 건 빼도 박도 못 할 증거였다. 흑성이 알란의 납치를 주도했다는 증거는 되지 못할지라도 그들이 왕성에 왔었다는 증거로는 충분했으니.
이번 장례와 국왕의 계승식이 진행되는 동안 성국의 도움을 받아 흑성의 견제를 철저하게 막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성에 침입할 수 있었다는 건 웬만한 실력으론 불가능하다는 뜻.
동부의 암중 권력을 쥐고 있는 정보상이라면 그럴듯한 후보가 될 만했다.
“제가 이미 부하들을 보내 그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추적이 끝내면 내게도 알려다오. 내가 가겠다.”
“안 됩니다! 폐하!”
“폐하가 직접 나서시다니요?”
“너무 위험합니다!”
루이즈의 말에 모건과 신하들이 발작하듯 앞서 그를 말렸다.
하지만 루이즈의 눈빛은 조금의 동요조차 없었다. 이미 결심한 결정을 절대 되돌릴 생각이 없다는 듯이.
“폐하, 제가 가겠습니다.”
원래라면 루이즈의 곁을 절대 떠날 생각이 없던 모건이 그를 말리고 나섰다.
“모건, 너는 나의 호위다. 내가 가면 너도 가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다들 나를 말리지 않기를 바란다. 내 직접 선언했다. 모두의 뒤에 있지 않고 앞장서기로 말이다. 내 다짐을 벌써부터 어기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군.”
“내일 당장 로자리아와 성국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과의 접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폐하. 그들의 추적에 나선다면 알란 왕자를 구해내는 데에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의전장관의 만류에 루이즈가 멈칫했다.
다른 이들이 위험하다고 말리는 것과는 달리 이건 분명한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이즈는 당혹스러웠다. 자신이 선언했던 그 다짐을 지키기 위해 위험도 불사를 생각이었지만, 왕이란 자리는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 간단한 작전의 투입조차 막혀버릴 줄이야.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다급하게 알현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추레한 복장의 낭인.
“찾았습니다! 렌 님!!”
칼리 아르젠이 짜증스레 뒤따라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냄새…, 이 자식은 씻지도 않나?”
칼리의 짜증을 무시하며 낭인이 품에서 지도를 꺼내 보여주었다.
“여기…, 여기에 놈들의 임시 거처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리 멀지 않군.”
지도를 본 루이즈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 신하들은 그 순간 직감했다. 더 이상 그를 막을 명분이 없음을.
“테리 번스.”
“……내일의 일정을 최대한 뒤로 미뤄보겠습니다. 폐하.”
“고맙다.”
모건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렌 일행을 보았고 렌은 무시하며 말했다.
“대외적으로 움직이는 건 안 됩니다. 아무리 알란 왕자라 해도 그는 국왕 폐하의 자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인물. 그런 그를 구하려 하는 행동은 타국에서 그리 좋게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관없다.”
“상관있습니다. 폐하. 스스로의 자리가 가지는 무게를 인지하십시오.”
“……내 생각이 짧았군. 미안하다.”
“사과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브릴런트의 주인이 되신 만큼 너무 쉽게 고개를 숙이지는 마십시오.”
“그러지.”
“별동대를 꾸리겠습니다. 저와 바실, 폐하와 모건 경 그리고 코헨 경까지만 움직이겠습니다. 제프먼은 금사자 기사단과 함께 왕성을 지키길 바란다.”
“예.”
“저자는 같이 가지 않나?”
루이즈가 에드리크를 가리키며 물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에드리크 또한 렌을 보았다.
“이분은 저희 왕국과 관련이 없는 분입니다. 이번 작전에서까지 도움을 청할 필요는 없습니다.”
“알겠다.”
에드리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빠졌다.
“바로 준비하고 출발하겠습니다.”
“채비를 갖춰라.”
루이즈의 명에 신하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별동대의 인물들이 알현실 밖을 나가고, 남아 있던 금사자 기사단의 부단장 도미닉이 제프먼에게 물었다.
“상대는 동부의 정보상이지 않습니까? 거기다 흑성 소속일지도 모를 이들을 잡으러 가는데 다섯이면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단장님.”
“풋! 근래 들어 가장 웃긴 소리군. 앤드류,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옆에 있던 금사자 기사단원들 중 최고 실력자인 앤드류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부단장이 머리가 나쁜가 봅니다. 단장님.”
“뭐? 그게 네가 할 소리-.”
“저기 렌 경이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렌 경이 위험하다는 건 상상도 가지 않는데?”
“……그것도 맞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제프먼은 창밖의 별동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렌 경도 괴물이지만, 저 늙은이들도 괴물 중의 괴물이다. 내가 저 사이에 들어간다면 애 취급이나 받을 정도지.”
“……그러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저 넷을 뚫고 폐하의 털끝이나 건드릴 수 있으면 그 사람이 대륙의 최강자겠습니다.”
“……플레처 아르젠이나 1검주 정도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