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284
제284화
[메인 퀘스트 – 신검의 칼날] [최후의 결투로 인해 생겨난 화산에 잠겨 주인을 기다리는 신검의 칼날을 획득하십시오.] [보상 – 신검의 칼날, 영력 +10]절벽에 뛰어내리니, 퀘스트가 생겨났다. 이곳은 절벽 위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끄어어어…….
검게 타버린 듯 재가 되어버린 대지가 발을 디딜 때마다 퍼석거리며 부서졌다.
어디는 아래로 푹 꺼지고 어디는 평평하며 어디는 늪처럼 빨려 들어간다.
사방 천지에서 들려오는 이 기괴한 울음소리도 발아래, 땅속에서 흘러나왔다.
“도대체 여기는 뭐 하는 곳입니까?”
렌을 따라 내려온 그녀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보아하니, 마계를 따라 한 거 같은데? 뭐 내가 아니? 나도 여기 처음이야.”
할 말은 다 해놓고 내가 아냐고 말하는 건 뭔지.
렌은 발바닥에 마력을 흘려보내 사방으로 쫙 퍼트렸다.
마력이 지형지물을 따라 사방으로 쭉 펼쳐졌다. 그곳을 전부 훑으며 파악한 정보들이 마력과 함께 돌아온다.
“역시, 아엘리나 님 덕분입니다.”
아엘리나에게 배운 마법이었다. 그녀의 옆에서 꾸준히 마법을 배우니 엄청난 속도로 늘었다.
더구나 마력은 이미 30을 넘어간 탓에 마력이 부족할 일도 없고 성취도 더 빨라졌다.
“흥, 그것도 마법이라고. 마력에 생동감을 넣어야 한다고 했지. 네가 일일이 다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마력 스스로가 움직여야 한다고.”
한심하다는 듯 보면서도 그녀는 이렇듯 상세하게 조언을 해준다.
그 하나하나의 조언이 머리에 콕콕 박히도록 정확하고 핵심을 딱 집어주니, 마법 실력이 늘지 않으려야 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 듯 말 듯합니다. 그게 가능한 건가 싶기도 하고.”
“쯧, 벌써 1년이나 흘렀는데 아직도 이걸 못하니?”
“이게 원래 1년 만에 되는 겁니까?”
“저기 봐라. 뭐 온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에 땅바닥을 기는 무언가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온통 검어서, 바닥에 동화되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마치 머리 없는 인간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 같은 모습.
기괴하게 생긴 그놈을 향해 렌이 마력을 쏘아냈다.
[레디언트 피어스(Radiant pierce)]검지 끝에 모인 푸른 마력이 빛살처럼 뻗어가 놈의 몸을 꿰뚫었다.
콰직!
죽어버린 괴물을 보며 렌이 말했다.
“말 돌리는 기술이 그새 많이 느셨습니다?”
“흠, 마력의 속성 변환이 느려. 조금 더 타이밍을 앞당겨야지.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못 하니?”
“무시하는 기술도 많이 늘었고요.”
“흥.”
그녀는 끝까지 모르는 체하며 걸었다.
“죄다 처음 보는 놈들뿐입니다.”
이곳을 걸으며 만나는 괴물들은 하나 같이 이상한 놈들뿐이었다.
대륙에서는 전혀 보지도 못했고 딱히 뭐라 그 형상을 칭하기도 힘들 만큼 기괴하게 생긴 놈들이었다.
“마족이야.”
“……이게 마족이라고요?”
“엄밀히 말하면 마수라고 할 수 있지. 마계에 사는 괴물들.”
“마계는 어떤 곳입니까?”
“나도 몰라. 그저 이 세계로 넘어온 악마들과 마족들을 보며 추측할 뿐이지.”
“그 추측이라도 말해주십시오.”
“알아서 뭐 하게?”
“악마와 싸울 때 도움이 될지 누가 압니까?”
“그런 거 알아도 도움 안 돼. 그 시간에 수련을 더 해.”
그녀는 딱히 말하고 싶지 않았다. 렌은 그녀의 말처럼 훈련에 집중했다.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갈수록 화산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저 화산 구덩이 속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신검의 칼날은 잘 보존되어 있을까. 혹시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들이 다 떠올랐다.
“레디언트 스피어.”
하늘에 떠오른 마수를 향해 렌이 또 한 번 마법을 쏘아냈다.
“키익!”
놈은 그것을 가볍게 쳐내며 씨익 웃었다.
“봤어? 그렇게 하면 저런 놈도 막는 거야.”
“칫, 이 마법이 약한 거 아닙니까?”
“뭐? 이 또라이가!”
그녀가 발작하듯 렌을 노려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와 달리 그녀의 감정 표현이 점점 더 풍부하고 적나라해졌다.
렌은 그녀에게 보란 듯이 혈검을 꺼내 기운을 불어넣었다.
피바람이 부는 것처럼 그의 시야에 붉은 선이 사방팔방으로 그어졌다.
렌은 그 선을 따라 가볍게 하늘을 나는 마수를 베었다.
“이리 약한 놈인데.”
“이제 네가 아주 나 놀려먹는 재미에 빠졌구나? 너 미쳤니?”
“하하하, 그럴 리가요.”
렌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말았다.
‘확실히 안쪽으로 갈수록 마수들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
처음 이 땅에 내려섰을 때 만나던 놈들과 지금 만나는 놈들의 강함이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도대체 이곳에 마수들이 왜 있는 걸까. 그건 이 세계의 설계자인 아엘리나도 알지 못한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녀가 렌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무슨 봉변 당할까 봐 잠도 안 옵니다.”
“뭐 오면 내가 깨워줄게.”
“그러면 5분에 한 번씩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그냥 빨리 신검의 칼날을 얻고 돌아가서 자겠습니다.”
렌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 세계는 시간도, 공간도, 상식도 비틀려 있다.
분명 하루 이틀이면 도착할 것 같이 보이는 곳도 한 달이 걸리기도 하고 1시간 만에 도착하기도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세계였다. 아엘리나의 말로는 결계가 한계에 달하며 균형이 무너져서 그리된 것 같다고 했다.
이 악마의 땅에 도착한 지 벌써 열흘이 흘렀다.
렌은 그동안 몇 번의 쪽잠을 잔 게 전부였다.
“이래서 신검의 칼날을 가질 수 있겠어?”
“제가 못하면 아엘리나 님께서 하게 만들어주신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래서 좀 쉬라잖아.”
“안 됩니다.”
“왜 그리 고집을 부리는 건데?”
사실 조금이라도 더 자려면 잘 수 있었다.
주변의 마족들을 싹 쓸어버리고 최대한 안전한 곳을 찾아 1, 2시간이라도 자면 되니까.
하지만 목적지에 거의 다다르자, 잊고 있던 바깥세상이 다시금 떠올랐다.
시간의 축이 비틀린 만큼, 바깥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방법은 없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바깥은 하루가 지났을 수도 있고 1년이 지났을 수도 있고, 10년이 지났을 수도 있다.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건 어찌 되었든 바깥도 시간은 흘러간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렌이 공중으로 뛰었다. 조금 전 죽였던 마수와 똑같은 놈들 수백이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왔다.
하벤베르크 검술
– 오의(五意) 3검
혈검이 빙그르르 돌며 하늘에 떠오른 태양을 향해 검기를 날려 보냈다.
그러자 마치 일식이라도 일어난 듯, 렌의 검기가 태양을 가리고 빛을 집어삼키며 주변을 어둠으로 뒤덮었다.
키야아아아악!!
케엑! 켁!
키이이이익!
마수들이 갑작스레 사라진 빛에 괴성을 내지르며 갈팡질팡한다.
빛을 삼킨 어둠이 그것을 넘어 마수들에게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 일절(日絶)
자신을 옥죄어오는 어둠에 있는 힘껏 발버둥 쳐 보는 것이 무색하게 어둠에 먹힌 마수들에게서 절삭음이 일시에 쏟아져 나왔다.
촤아아아아아아악!!
어둠이 가시고 수천의 조각으로 변해버린 피륙이 하늘에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아엘리나가 놀란 눈으로 렌을 보았다.
혈검을 집어넣는 렌의 모습에서 과거의 하벤베르크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코 앞입니다.”
여전히 멀게만 보였던 화산이 어느새 두 사람의 앞에 놓여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어둠이 펼쳐지기 전에는 분명 멀어 보였기에 아엘리나가 물었다.
“제가 벤 건 마수들뿐만이 아닙니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한 그녀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녀가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로 렌을 보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렌은 분명 초월에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공간을 베어낸다는 것. 그것은 곧 초월에 다다랐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초월로 넘어가는 벽에 구멍이라도 뚫었다는 거다.
“역시, 내 시스템이 실패할 리가 없지.”
시스템이 렌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고작 1년 좀 넘었을 뿐이다. 초월이란 건 마스터부터 시작한 갓난아기가 평생이 걸려도 도달하지 못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 그것을 10년도 아니고 고작 1년 만에 해냈다.
무슨 특별한 것을 한 것도 아니었다. 이 안에서 시스템의 퀘스트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근데 렌이 해냈다.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완벽하기까지 했다면 난 놀라 쓰러졌을 거야.”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조상님을 뛰어넘어야 하지 않습니까?”
렌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초월(超越)의 경지.
이제야 조상님과 비슷한 출발 선상에 선 셈이었다.
이게 출발선이라는 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아직 올라갈 곳이 확실히 있다는 뜻이었으니.
“이제 진짜 끝입니다.”
두 사람 앞에 화산이 보였다.
이곳을 오르기만 하면 신검의 칼날이 나온다. 그리고 이 기나긴 여정이 끝이 난다.
“이제는 마수가 아니라 마족들이 나오네.”
화산에 도착하니 마족들이 마기를 풀풀 품어내며 내려왔다.
렌은 파멸을 꺼내 들었다.
“자, 속도 좀 올리겠습니다.”
* * *
아라카라차를 제물로 시작된 악마 소환식.
단장이 후퇴하고 파도처럼 밀어붙이던 제국군은 이제는 정말 이 전쟁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또 한 번 전황이 뒤바뀌었다.
악마 소환식이 진행되며 레이지의 몸에 새로운 악마가 강림한 것이다.
제국의 회색 물결 사이로 붉은 줄기가 생겨났다.
흑성이 빼앗은 영토의 모든 식물들이 붉은 핏줄기를 드러내며 제국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윽! 아니 이게 왜!”
“나, 나무를 조심……!”
“나무뿐만이 아니다! 식물들을 모조리 베어라!”
“땅에서도 튀어나온다! 발밑을 조심해!”
아비규환이었다. 아라카라차의 힘을 빼앗은 레이지가 일대를 장악하며 제국군을 유린했고, 결국 제국군은 그곳을 불 질러 우림 지대를 완전히 지워버리려 했다.
“불을 질러라!”
“마법사들은 보이는 모든 곳에 화염 마법을 퍼부어!”
애초에 불을 지르며 밀고 들어왔다면 모를까.
이미 우림 한가운데 있던 제국군의 피해는 이미 한계치를 넘어선 상태였다.
이제는 전쟁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기 위해선 최소 십수 년은 투자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젠장! 3검주님! 아직 악마가 남아 있습니다!”
불을 질러 식물들을 어느 정도 처리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은 상태.
수하의 말에 3검주가 괜찮다며 어딘가를 가리킨다.
“이미 그가 갔다. 우린 기다리면 된다.”
3검주가 말한 이는 플레처 아르젠이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악마를 죽일 수 있는 이는 그가 유일했으니.
“우리는 최대한 그가 악마와의 싸움에 집중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아니, 우리 앞가림만 잘해도 된다.”
“하지만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아무리 플레처 아르젠이라도…….”
“나도 예전이었다면 그리 생각했을 거다.”
3검주는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 악마에게로 달려가는 플레처를 보며 말했다.
“아르젠은 우리들의 상식으로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을.”
모든 아르젠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르젠 중 극소수는 상식을 넘어서는 인간들이 나타난다.
그게 바로 렌 아르젠과 플레처 아르젠이었다.
“우린 기다리면 된다.”
플레처 아르젠은 화염 속을 여유롭게 거니는 레이지 앞에 섰다.
이미 얼굴과 몸의 형태가 상당 부분 바뀌어버린 그가 기괴하게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플레처 아르젠…….”
“악마라…, 나도 한번 싸워보고 싶었다.”
그가 활활 타오르는 투기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악마와 싸워보고 싶었다고? 흐하하하하하!!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플레처 아르젠.”
그의 비웃음 가득한 시선을 태연하게 받아내는 플레처.
그가 검을 꼬나쥐고는 그림자를 펼쳐낸다.
“아들 녀석도 이겼는데, 내가 못 이기면 면이 서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