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84
제84화
하벤베르크는 렌의 대답에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벤베르크 검술 오의 – 종검 말살.
그가 만들어낸 최고의 검이자, 처음으로 완성하지 못한 미완의 검.
그 누구도 그것을 미완이라 생각지 못했으며 웬만한 이들은 그 검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고작 상급 기사에 이르지도 못한 렌 아르젠이 그것을 본 것이다.
심지어 미완이라는 것마저 꿰뚫어 보았다.
아무리 자신의 피를 이었다고 한들 이게 가능한 일인가. 가장 피를 진하게 이은 초기 아르젠의 검사들도 눈치채지 못했던 검이었다.
– 그걸…보았다는 게냐?
“예. 하아……. 조상님답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요.”
몇 번의 심호흡 끝에 몸을 진정시킨 렌이 그것을 천천히 설명했다.
“하벤베르크 검술은 항상 그 의도와 심상이 검술에 고스란히 드러났었습니다.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그 기술을 완성하는 동안의 조상님의 심정이 어땠을지도 느껴졌죠.”
– 이것은 아니라는 건가?
“예. 그저 무언가를 갈망하는, 그것을 반드시 이뤄내겠다는 열망과 의지, 결의만 느껴질 뿐. 검 그 자체를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렌의 말에 생각에 잠긴 하벤베르크가 렌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 눈빛에 부담스러움을 느낀 렌이 손을 저으며 시선을 피했다.
“그냥, 제 느낌입니다. 제가 감히 평가하기에는 너무 높은 수준이라 할 말도 없었고요.”
– 그것으로 충분하다.
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네놈의 말이 맞다. 이건 미완의 검. 네가 이 미완의 검을 완성할 수 있겠느냐.
“제, 제가 말입니까? 에이! 그걸 어떻게 합니까?”
혹여나 퀘스트가 나올까 식겁한 렌이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부탁이었다.
지금 당장의 결전기나 절기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있는데 최종 오의를 어떻게 완성하겠는가?
지금 생각해봐도 그 무지막지한 검은 이 세상에서 만들어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따라 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완성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야.’
조상님조차 완성하지 못했던 검이다.
그것을 완성하라는 건 조상님을 뛰어넘으라는 소리.
너무 아득히 먼 경지라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 지금의 네 녀석에게 부탁할 생각은 없다. 쯧, 반응이 맘에 안 드는구나.
“아, 그러셨습니까?”
– 이 검술은 앞으로 펼치지 않을 것이다. 수준이 안되는 네가 보기엔 너무 위험해 보이는군.
하벤베르크는 렌이 왜 저런 반응을 보였는지 알았다.
너무도 강렬한 심상이 검에 깃들었기에, 그 대적자 또한 렌이 보게 된 것이다.
아직은 아득히 멀고도 먼 위치에 있는 괴물.
그것을 환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렌의 심상에 무리를 줄 확률이 높았다.
– 하지만 네가 나와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그때 부탁하겠다. 내 미완의 검을.
그 말에 렌의 두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하벤베르크와 같은 경지에 이른다는 게 쉬이 믿기지 않았고, 그 하벤베르크가 자신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도 어색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 너도 보았겠지만, 이렇게 강렬한 심상과 의지는 보는 이들에게도 환상을 보여줄 정도로 강력하지.
“예.”
– 그러니 약한 마음 먹지 마라. 항시 강인한 마음과 의지력이 검에 깃들어야 하는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 그래, 오늘부터 매 순간 검을 드는 거다. 두 달 동안 하벤베르크 검술 숙련도를 50%까지 올리기 전까지.
“알겠습니다.”
* * *
트레비스 저택의 자그마한 창고.
쓰지 않는 곳을 개조하여 코헨이 얼음을 뿜어내 내부를 완전히 얼음 창고로 만들고는 그 안에 물을 가득 담은 풀장을 만들었다.
“야! 이 자식들이! 벌써 나오면 어떡해! 다시 들어가!”
그리고 렌은 금사자 기사단을 데리고 와 그곳에서 하루 종일 굴렸다.
“너무 춥습니다!”
“바깥은 한창 서늘한 가을인데 여기는 도대체 뭡니까? 어떻게 이렇게 추운 거야?”
“이러다 얼어 죽습니다! 단장님!”
“시끄러워! 이 정도 추위도 못 버티면 북부에서는 어떻게 버티려고?”
“아무리 북부가 추워도 이거는 너무하지 않습니까? 단장님?”
렌의 옆에 선 도미닉이 몸을 바들바들 떨며 물었다.
이미 한차례 먼저 했던 추위 견디기에서 1등을 했기에 도미닉은 열외인 상태였다.
“오, 옷이라도 입으면 안 됩니까?”
팬티 차림의 도미닉이 양팔로 몸을 감싸고는 간절하게 물었지만 렌은 가볍게 무시했다.
“너만 안 입었냐?”
“……죄송합니다.”
그들이 대놓고 반발할 수 없는 이유.
그건 이미 렌도 저 얼음으로 가득한 물속으로 기사단원들과 함께 들어가 제일 오래 버텼고 옷 또한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괴물!’
‘아니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아 할 수가 있지? 기도 안 쓰잖아?’
‘상급 기사들은 다 저런 건가? 이게 말이 돼?’
단원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보았고 렌은 그런 단원들의 의구심에 코웃음으로 답해주었다.
‘너희들이 백날 생각해봤자지.’
[냉기 저항]
# 냉기에 강한 저항력을 가집니다.
지난 트레비스의 무덤에서 얻은 특성이다.
추위를 아예 안 느끼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 정도의 얼음 창고에서는 끄떡없었다.
‘조금 쌀쌀하긴 한데, 옷을 입으면 그다지 춥지는 않겠어.’
북부로 가기 위해서는 추위에 잘 견디는 게 매우 중요하다.
현재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브릴런트는 서늘할 뿐이지만, 그걸 믿고 북부에 갔다간 제 기량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죽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버텨! 버티라고! 죽겠다 싶을 때까지 버티란 말이야! 북부의 추위가 너희들의 사정을 봐줄 것 같아? 네놈들이 춥다고 덜덜 떨면 내려오던 폭설이 멈추냔 말이야!”
악귀처럼 인상을 일그러트린 렌이 계속해서 단원들 채찍질했다.
그들은 괜히 렌을 단장으로 남게 해달라고 한 것 같아 크게 후회했다.
“안 그래도 검술 안 늘어서 스트레스받았는데 잘됐군.”
렌이 옆에 있던 도미닉도 다시 얼음물 속에 집어넣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열외 됐는데 왜……?’
‘방금 스트레스받았는데 잘됐다고 한 거 맞지? 내가 제대로 들은 거지?’
‘이런 망할! 이러려고 우리 구해준 건가?’
‘도대체 어떤 놈이 저 악마를 단장으로 남기자는 의견을 냈었던 거야?’
단원들이 저마다 지난 결정을 후회하며 얼음 창고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끼익.
한창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데, 문을 열고 코헨 트레비스가 들어온다.
그가 내부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군, 얼음이 슬슬 녹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내보낼 수 있는 냉기도 한계가 있어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코헨의 말을 들은 금사자 기사단원들이 얼굴에 화색을 띄웠다.
“오늘은 그럼 이만하도록 하지.”
“와아! 드디어 끝났다.”
“죽을…것 같아…….”
“코헨 경, 감사합니다!”
기사들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피부와 함께 창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게 삶인가……?”
“그저 아무것도 안 해도 행복할 수가 있다니.”
“부모님, 브릴런트에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원들이 서늘한 날씨에 감격에 겨운 감상을 내뱉고 있을 때, 렌이 뒤에서 혀를 찼다.
“쯧, 쯧. 너희 북부에 가면 24시간을 이런 추위에서 버텨야 한다.”
“……처음으로 기사가 된 것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
“내가 생각해보니 지병이 있어서 기사단을 그만둬야 할 것 같은데.”
“나도 그러고 보니까-.”
“야 이 자식들아! 고작 이것 때문에 그딴 소리를 지껄여?”
앤드류가 동료들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는 자긍심도 없어? 금사자 기사단에 대한 자부심도 없냔 말이야!”
동료들이 장난스레 내뱉은 말이란 건 알지만 앤드류는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음에는 훈련 더 길게 해주십쇼!”
앤드류가 렌에게 부탁했다.
렌은 그 의외의 반응에 헛웃음을 흘리고는 그 부탁을 받아주었다.
“좋아. 다음 훈련 전에는 철저하게 준비해주지.”
그 말에 단원들 사이에서 얕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건 꼭 필요한 훈련이야.’
기를 쓰지 않고 추위를 버티는 이 훈련은 자칫 무식해 보일지 모르지만, 위기 상황에서 저들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렌은 북부에 가기 전까지 금사자 기사단원들을 쓸만한 수준으로 어떻게든 만들어놓을 생각이었다.
* * *
두 달은 빠르게 흘러갔다.
북부로의 지원.
사막과 다르게 북부는 기사급의 실력자가 아닌 이상 전력으로 써먹기 힘들었다.
물론, 북부에서 자라나고 생활한 이들은 그 강추위를 버틸 능력이 되기에 굳이 기사급이 아니어도 괜찮았지만.
“이번엔 바란에서도 제대로 된 지원을 하기 힘들다고 하는군.”
“들었습니다.”
가는 내내 알란 헤르티아의 호위 명목으로 같은 마차에 올라타 있던 나는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흑해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기엔 너무 공교로워. 마치 북부의 괴수들이 움직일 때를 맞춰 바란의 발을 붙잡은 것 같은 모양새이지 않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나는 최대한 말을 아꼈지만, 알란은 내가 마치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내비쳤다.
나는 그와 함께하며 왜 알란이 레브에 대적할 만큼 많은 세력을 모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식견이나 지식은 평소의 행실과 다르게 매우 깊고 뛰어났다.
하물며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더욱 매력적이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자신에 대한 경계를 풀고 친밀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느낌.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면 어느새 알란이란 인간의 매력에 감화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특성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
[매력(魅力)]
상대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힘.
# 서로를 인식하는 힘이 강해질수록 호감도가 올라갑니다.
알란의 상태창에서 이 특성을 확인했을 때부터 나는 그와 최대한의 대화를 자제하려고 했었다.
근데 이렇게 알란과 나 그리고 그의 호위까지 이렇게 셋만 있으니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다.
‘본능적으로 자신도 알고 있는 게 분명해. 자신의 능력을.’
그리고 그와 더불어 그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게 느껴졌다.
단순히 특성의 힘만이 아니었다.
그냥 알란 헤르티아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전생에선 레브에게 왕위 경쟁에서 밀리고 결국 불구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했었지.’
알란, 그 또한 왕위 계승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여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견제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알란은 그리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매력이라는 특성에 나도 감화된 걸까.’
시스템으로 그 특성을 본다고 한들 그 능력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니.
‘조금 더 지켜보자.’
“도착했군.”
사색에 잠겨 바깥을 보고 있는 사이, 어느새 저 멀리 제법 커다란 성채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인 바이에르…….’
북부의 괴수들을 막아내는 철혈의 방벽.
그곳에 드디어 도착했다.
브릴런트의 지원 행렬을 맞이하는 아인 바이에르의 병사들.
“충!”
군기가 바짝 든 병사들의 완벽한 제식에 알란이 조금 감탄한 듯 눈을 빛냈다.
“일개 병사가 이 정도의 기세를 가지다니……, 대단하군.”
브릴런트의 군기 빠진 병사들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아인 바이에르의 병사를 보니 감탄할 수밖에.
나조차도 병사들의 능력치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여기 병사들은 기본이 준기사급 수준인가?’
고작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이 이 정도 수준이면, 일선에서 북부의 괴수들을 막아내는 이들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제국의 병사들보다도 수준이 높다니,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군.”
“그게 느껴지십니까?”
“그래. 나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그건 아닙니다.”
“농담이다. 농담. 너무 내게 딱딱하게 대하는 거 아닌가? 언제쯤 자네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알란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나는 애써 시선을 내렸다.
좀 더 오래 지켜봐야 한다. 벌써부터 저 매력에 흔들릴 수는 없으니.
“여기가 저희 성채의 사령관님이 머무르시는 곳입니다.”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은 투박하고 평범한 저택이다.
그 크기는 일반 거주지의 저택에 비하면 컸지만, 성채의 규모를 생각하면 작은 편이었다.
끼이이익.
너무 추운 환경에 경첩이 삐걱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문이 열리자 거대한 풍채의 사령관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반갑습니다. 아인 바이에르의 성주이자 북부의 사령관인 스테판 아이벤슈츠라고 합니다.”
“브릴런트 왕국의 2왕자인 알란 헤르티아입니다.”
알란은 스테판에게 공손히 존대하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 태도에 기분이 좋은지 웃음을 짓던 스테판에게 나도 인사를 건넸다.
“금사자 기사단의 임시 기사단장 렌 아르젠이라고 합니다.”
“뭐? 아르젠?”
아르젠이라는 이름에 스테판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하, 또야?’
나는 이 익숙한 상황에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내뱉을 변명들을 머릿속에 빠르게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