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73
* * *
소록도,
작은 사슴을 닮았다는 이름만큼이나 한적하고 아름답고 고요했던 섬······.
이곳 중심부의 지하에선,
지금 악마소환만큼이나 사악하고 부정한 의식이 한창이었다.
주인을 알 수 없는 핏물로 그려진 큼지막한 오망성.
그 꼭짓점마다 세워놓은 백골의 탑, 마법진의 테두리를 장식한 이름 모를 짐승의 창자들까지.
도대체 이 의식을 위해 몇이나 되는 생명이 희생되었는지 수를 헤아리기도 어려울 지경이었고.
컴컴한 한쪽 벽면에 대강 쌓아놓은 시체 무더기의 무참한 모습은······.
마치 이곳에서 진행 중인 의식이 ‘생명’ 그 자체를 지독하리만치 모독하는 만행임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듯했다.
이 처참한 광경의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있는 건,
다름 아닌 흑룡 말락서스였다.
정확히는, 말락서스의 유해.
금속처럼 번들거리는 새카만 비늘로 온몸이 뒤덮인 흑룡은 온몸이 자상(刺傷)투성이였다.
군데군데 비늘이 떨어져 나간 곳도 많았고, 허연 뼈까지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도 한둘이 아니었다.
저벅저벅―
한 백발의 노인이 죽음보다 무거운 정적을 뚫고, 흑룡의 사체로 가까이 다가섰다.
어둡고 축축한 공간, 새카만 흑룡과 대비되는 새하얀 사제복을 걸친 노인은, 바로 [악령술사] 안드레아.
그는 흑룡의 육신을 뒤덮은 상처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탐욕에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흑룡의 매끄러운 비늘을 쓰다듬었다.
“오랜 삶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고룡이여. 이깟 상처 따위에 굴복하지 말고 일어나라, 죽음과 함께 진정한 영원을 누려라.”
다음 순간, 안드레아의 발밑에서부터 어두운 녹색의 기운이······.
기나긴 비명을 뽑아내며 흘러나와, 일부는 흑룡의 사체로 또 일부는 바닥의 오망성으로 빨려 들어갔다.
쿠―구―구―구······
그렇게 안드레아의 마력을 머금은 말락서스의 유해와 마법진이 묘한 진동, 아니 공명을 일으켰고.
우드드득―!
부러진 뼈가 소름돋는 음성과 함께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으며,
크르르르······
분명 바싹 말라붙어 버렸던 흑룡의 기도에서 가래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흐흐. 그래, 어서 눈을 떠라. 이젠 흑룡이 아니라 사룡(死龍)으로서 네 힘을 가치 있는 곳에 쓰는 거다.”
원래대로라면 용족이 인간의 명령을 들을 리가 만무하겠으나.
이제 흑룡의 혼과 육은, 온전히 악령술사 안드레아의 손아귀에 떨어져 죽음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주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니, 눈을 뜨라는 안드레아의 말은 실효성을 지닌 언령이 되어 사룡에게 지배력을 행사했고.
크르르륵······
쿠구궁―
사룡은 이미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안구를 움직이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하하하! 마침내 용족까지 권속으로 부리게 되었다. 그 잘난 신단수의 버프 따위······ 가볍게 짓밟고 안락한 죽음을 전도해주마!”
흑룡은 본디 태생적으로 ‘독’에 친연성을 지닌 존재.
다른 그 어떤 속성보다도 ‘죽음’과 가까운 것이 바로 이 흑룡.
이젠 자애로운 죽음의 품에 안긴 흑룡은, 본래 갖고 있던 독성에 시독까지 더해진 죽음의 숨결로······.
이 땅을 영원한 잠에 빠뜨리는 데에 앞장서는 최종병기가 될 터였다.
“자! 날아올라라, 사룡이여!”
크워어어어어―!
안드레아의 명령에 따라, 사룡이 길게 포효하며 활개를 펼쳤다.
펄럭!
그리고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커다란 몸을 띄워 흙으로 덮인 천장을 뚫고 솟구쳤다.
“죽음이······ 날아오른다.”
감개가 무량한 듯,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안드레아가 뇌까리기가 무섭게······.
끼에에에엑―!
쿵!
사룡이 볼품없는 꼴로 도로 떨어져, 지하 구덩이 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게 무슨······? 의식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을 텐데?”
두 번 다시는 얻을 수 없을 귀중한 유해.
심지어 숭배하는 주인께서 직접 하사하신 선물.
몇 번이나 확인했던가?
분명히 마법진의 술식은 정확했다.
제물은?
그건 단지 술식의 발동을 원활하게 해줄 일종의 촉매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강령술이 틀어졌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
주인께서 하사한 용의 유해를 망쳐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이 안드레아의 노구를 휘감았다.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나의 강령술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어!”
그가 바닥에 처박힌 사룡을 살피려는 순간,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넌 실패하지 않았다. 운 나쁘게도 날 만났을 뿐.”
흠칫.
고개를 든 악령술사 안드레아는, 허공에 떠 있는 남자를 곧장 알아보고 이를 갈았다.
“이성우? 네놈이 왜 벌써 여기에······. 냉룡을 버려두고 달려온 거냐?”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용.
개중 하나를 죽여서 획득하고, 다른 하나로는 이성우의 발을 잡아두는 것.
그렇게 혼란이 일어난 틈에 일을 도모하는 것이 그와 그의 주인, 카인의 계획이었다.
“소식이 느리구나? 난 너처럼 파충류 붙잡고 오래도록 주물럭거리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지.”
안드레아의 미간이 구겨졌다.
“······냉룡을 벌써 죽였다고? 그럴 리가 없지. 그런 거짓된 혀놀림 따위로 죽음이 다가오는 걸 멈춰 세울 수는 없다. 이성우.”
이성우를 향해 날을 세웠으나, 안드레아는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그는 김포에 S급 게이트가 발생하기 하루 전날부터 이 지하에 틀어박혀 흑룡 부활에 매달리고 있었기에, 바깥소식에 관해선 깜깜한 상태였다.
“믿든 말든 맘대로 해라. 살아있을 때도 내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했던 용 따위를 되살려 봐야 아무 쓸모도 없을 테니까. 애 좀 쓴 모양인데, 안타깝게 됐네.”
“크윽······. 지금 실컷 조롱해둬라, 이성우.”
안드레아의 양손에서 녹색의 사기가 맹렬하게 피어올라, 늘어져 있던 사룡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일어나라! 저 개자식을 물어 뜯어어!”
크워어어어!
허옇게 죽어있던 사룡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이더니, 그 거대한 몸뚱이가 쏜살처럼 날아올랐다.
“어딜.”
이성우는 가볍게 몸을 뒤로 젖히면서, 사룡이 날아오르는 방향으로 중력 축을 뒤틀었다.
막대한 가속력이 붙은 바람에 사룡은 제때 제동하지 못하고, 이성우의 뒤쪽에 떠 있던 교회 건물의 밑바닥을 들이받았다.
쿠워어어억!
언데드를 거부하는 ‘성소’의 능력은, 사룡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빠르고 강하게 들이박은 만큼의 반발력이 사룡을 도로 튕겨냈다.
키에에에에······
허무하게 도로 바닥에 처박힌 용이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그제야 안드레아의 눈에 공중에 빽빽하게 들어찬 온갖 건물들이 들어왔다.
소록도 안에 있는 모든 건물을 합친 것보다도 많은 수가, 상공을 돔처럼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아까도 강령술이 잘못된 게 아니라, 성소에 충돌한 충격으로 추락한 것이었다는 걸.
안드레아는 뒤늦게 깨달았다.
“저것들은······? ‘성소’들을 죄다 들고 온 거냐?”
안드레아는 신부의 신분으로 강령술을 다뤘으므로, 성당 같은 ‘성소’ 내부에선 언데드가 활동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성우가 그 사실을 대체 어찌 알았단 말인가?
어떻게 저 많은 건물을 모조리 들고 있을 수 있는가보다 의문스러운 지점이었다.
“······널 과소평가한 모양이구나. 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기필코 네 목숨을 거두어야겠다!”
다시 한 번 악령술사의 손에서 사기가 치솟는 걸 보고, 이성우가 손을 내저었다.
“잠깐만, 나는 지금 너랑 싸우러 온 게―”
“문답무용이다!”
다음 순간, 사룡이 안광을 빛내며 아가리를 쩍 벌리더니.
지독한 시취(屍臭)가 뒤섞인 맹독 숨결을 뿜어냈다.
콰가가가가가······
“흥······ 아무리 중력을 다룬다고 해도 독연(毒煙)까지 어찌할 수는 없겠지.”
그래, 살아서 숨 쉬는 존재라면 사룡의 시독까지 더해진 맹독 숨결에 중독되어 죽어가야 마땅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빌어먹을······ 이거 저항력이 악취까지 막아주지는 못하는군.”
이성우는 가볍게 손부채를 부치며 인상을 약간 찡그렸을 뿐.
독에는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듯이 보였다.
“앙냥냥.”
심지어는 그의 어깨에 앉은 고양이조차도, 태연하게 뭔갈 열심히 깨물어 먹고 있었다.
“······.”
할 말을 잃은 악령술사 안드레아에게, 이성우가 말을 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너랑 지금은 싸우고 싶지 않다. 아니, 싸우면 안 돼.”
저건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안드레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저놈에겐 사룡의 육탄전도, 맹독도 통하지 않는다.
더욱이 이렇게나 성소에 둘러싸여서는 언데드 군대를 일으켜 봐야, 이성우의 옷자락조차 스칠 수가 없을 터.
안드레아는 자신이 말 그대로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음을 깨닫고 따져 물었다.
“설마하니 인간은 죽이지 않는다, 그런 어쭙잖은 불살주의라도 지키고 있느냐? 나를 막으러 왔으면 죽여서 막아라. 그게 아니라면 내 뜻에 동참하든가, 방해하지를 마라.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
이성우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뭐 하는 짓이긴. 네 주인 속을 긁어놓으려는 거지.”
“뭐라고?”
잘못 들은 건가 싶었던 안드레아가 말을 보탰다.
“이성우, 내가 모시는 분은 지옥의 드높은 칠십이 개의 위좌 가운데 앉은 분이시다. 우리 같은 인간 따위가 거스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그런 분의 심기를 거슬러 뭘 어쩌려는 거냐? 아니······ 그분이 너 따위의 도발에 눈 하나 깜짝하실 성싶으냐?”
그 소리에 해독 앰플을 삼키던 레라지에가 사레들렸나 기침을 하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흐흐흐······ 저 사이비 교주 자식, 카인이 뭐 대단한 놈이라도 되는 줄 아는가 보군?”
그 말은 이성우도 의아했다.
한국을 노리는 고위 악마 3체.
레라지에, 아스타로스, 카인.
개중에서 가장 강한 놈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성우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보자, 레라지에가 뜻을 알아차린 듯이 설명을 덧붙였다.
“분명 강하기는 하다. 우리 셋 중에서 가장 제정신이 아닌 놈이고. 그런데 그건, 놈이 잃을 게 없기 때문이야. 그놈은 영지도 없고, 직위도 없고, 거느린 군단도 없는······ 그래, 방구석 백수란 말이다.”
‘아하······ 대강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지 알 듯도 하군.’
그래, 할 일이 없으니 필멸자들끼리 싸움 붙여놓고 그 구경이나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마치 어린애들이 잠자리 두 마리를 잡아다가 서로 대결을 붙이듯이.
하필이면 주인이랍시고 숭배 대상으로 삼은 게 고작 그런 놈이라니.
이런 사실은 굳이 악령술사 본인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너는 그 대단하신 주인 나으리가 어떤 부정(不正)을 담당하고 계시는지 알고 있나?”
“뭐?”
“숭배자가 되어 가지고 그런 것도 모르나? 네 주인님은 동족상잔을 즐기시지. 영겁을 사는 주제에 도파민에 뇌가 망가졌는지,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 인간 같은 필멸자들의 귀에 달콤한 말을 속삭여 분열을 일으키고 서로 죽창 꽂고 목을 자르는 꼴을 즐기신단 이야기야.”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이냐? 그런 어설픈 모독으로 내 믿음을 꺾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이성우가 코웃음을 쳤다.
“뭔 소리야, 내가 널 개종이라도 시키려는 줄 아나? 기껏 네놈을 공들여 선동해서 커다란 패싸움 판을 만들어놓고 팝콘 씹을 준비까지 마쳤는데, 너와 나의 빅매치가 성사되지 않으면 네 주인님 심기가 어떨지 상상해보라고.”
“······.”
악령술사는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되는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하기야 이쪽에선 전심전력을 다해 섬기는데,
정작 주인은 자신을 한낱 유흥거리로 여긴다는 걸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성우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자 너머에서 이곳의 광경을 실시간으로 즐기고 있을 카인을 향해 말했다.
“이봐, 기껏 몸소 나서서 흑룡까지 잡아다 후원하고 판 깔아놨는데 이렇게 돼서 어쩌냐? 불만 있으면 직접 찾아오시든가.”
아직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악령술사가 무슨 소리냐고 따지려는 사이.
이성우가 두 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러자 사룡과 안드레아가 들어있던 지하 공간이 거대한 삽으로 떠낸 것처럼 허공으로 떠올랐고.
허공을 돔처럼 둘러싸고 있던 성소들이 일제히 간격을 좁히며, 아예 구(球)처럼 전방위를 틀어막기 시작했다.
“너도 그 안에서 굶어 죽기 싫으면, 네 주인에게 빨리 와서 도와달라고 읍소해라. 참, 이 땅을 더럽히고 있는 네 수하들도 전부 거둬들이고 말이야.”
이전 회차에선 그토록 맹위를 떨쳤던 악령술사.
그는 이제 독 안에 든 쥐가 아니라, 숫제 밀폐용기에 갇히게 된 꼴이 되었다.
“이성우―! 이게 무슨 짓―”
악령술사의 분에 찬 외침이 안쪽으로부터 터져 나왔으나.
이성우가 섬으로부터 젖은 흙을 끌어 올려 건물들 사이의 틈새를 모조리 막아버리자······.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올 수 없는 완전 봉인이 완성되었다.
“인간으로 치면 신나게 유튜브 보다가 인터넷 끊긴 셈 아니냐? 크흐흐, 카인 그놈이 발광하는 꼴이 눈에 선하구나.”
그때, 낄낄거리던 레라지에의 웃음이 뚝 그쳤다.
“온다.”
레라지에의 신호.
동시에 저 아래, 이성우로 인해 생긴 구덩이에 시뻘건 마그마가 들어차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그리고 그 속에서,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성우는 미간을 찡그렸다.
‘인간?’
필시 고위 악마, 카인이 분명할 상대는······.
평범한 20대 청년의 모습에 위아래로 트레이닝을 걸치고, 헐떡거리는 삼선 슬리퍼를 신은 몰골이었다.
‘완전히 방구석 백수 스타일이잖아, 정말로.’
그때, 시커먼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상대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입을 열었다.
“······한창 재밌게 구경하고 있었는데. 귀찮게 구네, 진짜.”
비록, 기대했던 것과 달리 우습기 짝이 없는 꼴이었으나.
이성우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껏 마주친 그 어떤 상대보다 강하다.’
그는 대룡거검을 불러들여,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전력을 다해야 할 정도의 상대.’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지만,
이성우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이놈만 처리하면 적어도 대한민국은 게이트로부터 안전한 땅이 된다는 거지?’
그가 이전 회차의 그 처참한 멸망의 현장에서 생명력을 태워가면서까지 바랐던 염원.
그게 이뤄질 중대한 고비가 눈앞에 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