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126
“아, 그렇지. 보통은 군벌이 나쁜 거고 독군이 좋은 거지. 헤헤. 내 소속을 자꾸 헷갈리네.”
“어차피 싸움은 없을 거요. 그간 쓰촨의 독군은 권력도 없는 유명무실한 자리였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정당하게 쓰촨군의 군권을 얻게 될지도.”
“그, 그럴 수는 없어! 슝커우란 놈은 교활해서 예전에 내가 상관으로 모실 때도 항상 내 월급을 삥땅쳤단 말이야. 날 바보로 아는 게 아니라면 어찌 그럴 수 있나!”
바보는 맞잖아.
라고 생각하던 김경천이었지만 조선의 신사답게 예의를 지켰다.
“사단장 중의 한 명이 총대를 메고 폭로하지 않았으면 백 년이고 천 년이고 계속 내 월급을 훔쳐 갔을 걸? 그때 내 월급을 제대로 받았으면, 지금쯤 나도 자동차를 샀을 텐데···.”
류샹의 말을 듣던 김경천은 문득 의문이 생겼다.
“당신이 쓰촨군에 있을 당시에는 슝커우는 독군도 아니었잖소. 어째서 슝커우가 상관이라는 거요?”
“아아, 그거? 형씨가 쓰촨이 돌아가는 원리를 잘 몰라서 그래. 그깟 관직은 하나도 안 중요해. 누구의 연줄이 있느냐가 중요하지.”
“연줄? 슝커우에게 연줄이 있소?”
“응. 나도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우거인(吳巨人)의 지명을 받았다더군.”
우거인은 저잣거리에서 부르는 우페이푸의 별명.
김경천은 문득 자신의 안일한 생각에서 깨어났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사 늘 평탄하지만은 않다.
그의 예민한 촉수가 있을지도 모를 위험을 감지하였다.
곧바로 부하를 호출했다.
“총사령부를 담당하는 전령은 출발했나?”
“예. 조금 전에···.”
“새로 전령을 지정해라. 총사령관께 보낼 급한 전갈이 있다···.”
***
나는 충칭에서 조달한 말을 타고 청두에 들어갔다.
쓰촨성을 양분하는 대도시답게 충칭만큼이나 북적였다.
익숙한 환호음 같은 것은 없었다.
꾀죄죄한 차림에 바싹 마른 몰골을 한 쓰촨인들이 새로운 정복자가 들어오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정복자가 아니다.
이번 출병은 국제연맹의 주관하에 치르는, ‘전쟁’이 아닌 ‘평화유지’활동이다.
따라서 군대의 정식 명칭 또한 공화군이 아니라 LN평화유지군이었다.
그러나 외국인이면 몰라도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내 출병을 쓰촨 통일전쟁의 개전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국제연맹군 안에서도 그랬다
장교들 사이에서는 ‘마라탕 새끼들에게 진짜 매운맛을 보여주는 전쟁’으로 불린 지 오래였다.
중국의 언론은 새로운 전쟁에 열광했다.
어떤 신문은 한신의 군대가 대장정의 서막을 올렸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평가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말에서 내렸다.
따르는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어이, 사위가 적막하여 재미가 없으니 노래라도 부르며 걷자고.”
“노래 말씀입니까?”
“그래. 내가 어렸을 적에 부르던 노래인데. 아나?”
나는 조용히 곡조를 흥얼거렸다.
광둥 출신의 몇 명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다 같이 부르자! 다 같이!”
행군하는 발에 맞춰 군가가 아닌 민요가 제창되었다.
“배고픈 소리가 어둠을 가득 채우며(餒腹之聲, 暗黑充斥其間).”
“허전한 식탁. 힘없이 흐느끼지만(虛空之餐桌, 無力而嗚咽).”
“서로 응원하며 함께 나아가자(相互支持, 一起前進).”
“새로운 세상, 모두가 행복한 날을 위해(嶄新的世界, 每個人都幸福的日子)!”
흔하지 않은 광경에 청두의 시민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구경을 하였다.
이빨이 다 빠진 잇몸을 드러내며 웃는 아이도 보였다.
쓰촨성의 성도인 청두는 본래 ‘하늘이 내린 곳간’이라고 불릴 정도로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이토록 곤궁해진 것은 대책없이 불어나는 인구와 끊임없이 발발하는 내전 탓이었다.
나는 쓰촨성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다.
공업만큼이나 농업도 중요하니, 쓰촨성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천한철도를 통해 운송 판매하면, 쓰촨성 뿐 아니라 이웃의 후베이성 또한 더불어 부유해질 것이다.
민요를 같이 따라 부르는 쓰촨 시민들을 뒤로하고 거리를 빠져나왔을 때.
나는 무후사(武侯祠) 입구에 기대어 서 있는 김경천을 발견했다.
“쓰촨 독군은?”
“안에 계십니다. 전갈은 받으셨습니까?”
“그래.”
“준비는 해두었습니다.”
“한번 보자고. 우리 류샹 예언자께서 경고한 슝커우가 어떤 녀석일지 말이야.”
사당에 들어서자 주변이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 사당안을 한참 걸어가도 슝커우는 보이지 않았다.
사당의 뒤편에 도달하자 그제야 뒤돌아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쓰촨 독군이오?”
“그렇소. 내가 슝커우요. 양호 독군이시오?”
“그렇소.”
슝커우는 풀이 무성한 둔덕 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이 묘가 세워진 지 자그마치 1,500년이 지났소. 믿어지오?”
“못 믿을 건 뭐요. 역사가 고증하는데.”
“나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언제나 이 한소열묘(漢昭烈廟)에 와서 생각을 정리하곤 한다오. 십수 세기 전 영웅들의 기상을 떠올리면, 나 또한 그 대열에 동참할 수 있을 것 같아 번뇌가 사라지고 자신감이 차오르오.”
슝커우는 무게 잡기를 좋아하는 자로 보였다.
아직 30대 같은데 어째 세대차 같은 게 느껴진다.
“내가 왜 공명의 사당이 아닌 현덕의 묘에서 양호 독군을 만나자고 했는지 아시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소.”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공명에 비해 현덕을 낮게 보지. 촉의 후예들도 마찬가지요. 쓰촨성에는 수십 개의 제갈무후사가 있지만, 유현덕을 기리는 사당은 오직 이곳 뿐이오. 다들 세상을 놀라게 하는 절세의 기재에만 관심을 가질 뿐, 제갈공명을 부하로 삼고 촉의 황제에 등극했던 유현덕의 공은 쉽게 잊는다오.”
슝커우의 말은 맞았다.
청두의 이 사당은 유비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지만,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으로 더 유명하여 무후사라 불리니.
죽어서는 유비와 제갈량의 군신 관계가 역전된 셈이었다.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였지만.
밖에서는 쓰촨 통일전쟁이 한창인데, 한가롭게 삼국지의 영웅담이나 나누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자연히 말이 까탈스럽게 나왔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요? 항복 조건으로 나와의 독대를 청했으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시오. 나는 바쁜 사람이오.”
갑자기 슝커우가 껄껄 웃어댔다.
“그렇소! 바로 그거요! 제갈량도 생전에 얼마나 바빴는지 모르오! 사마의가 괜히 천고의 기재라 찬탄한 것이 아니오!”
“삼국지 덕후시오?”
“응? 뭐라 했소?”
“됐고. 얼른 할 말이나···.”
“그러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요. 오늘날 천하에 감히 제갈공명을 자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당신일 거요. 양호 독군.”
사실 나는 한신이 더 좋다.
물론 제갈량도 좋지만.
“고맙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오늘 죽을 거요.”
“내가?”
“무릇 제갈량과 같은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인물은 모난 돌이 정 맞듯 일찍 고꾸라질 수밖에 없소.”
“하지만 공명은 쉰 살도 넘게 살았는데.”
“그건 유현덕의 공이오. 현덕과 같은 세상사 아우르는 덕이 있는 이가 곁에 없었더라면 제갈량 또한 방통처럼 단명하고 말았을 거요. 지금 당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지.”
참신한 해석이긴 하지만.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품에 권총이라도 숨겨둔 거요?”
“아니. 당신이 키우는 잘난 조선 놈이 몸수색을 어찌나 까다롭게 하던지. 새끼손가락만한 단도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하게 하더군.”
“그런데 날 어찌 죽이겠단 거지.”
슝커우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청두는 내 안방이나 다름없소. 야산에 병사 몇 명 숨겨 놓는 것은 일도 아니지.”
“저 산에 저격수가 있나?”
“그렇소. 내 신호 한 번이면 단번에 당신의 가슴에 구멍이 뚫릴 거요.”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걸 묻기 위해 참 오래도 참았다.
“누구의 사주냐?”
“누구일 것 같소?”
“우페이푸.”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했는데.
슝커우가 기분 좋아하는 걸 보니 틀린 모양이다.
“푸하하! 천하의 한신도 죽을 때가 되니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군!”
“말해줘.”
“흐음. 그저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저격수가 당신을 노리는 위치가 산맥의 중산(中山)이라는 거요.”
“···!”
슝커우의 입에서 나온 말에.
심장이 덜컹했다.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 길고 어두운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중산은 쑨원의 호.
상상도 못한 이름이 튀어 나왔다.
“잘 가라고, 한신.”
슝커우가 손을 높이 들더니 힘껏 밑으로 그었다.
나는 여전히 충격에 휩싸인 채 서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당황한 슝커우가 손을 재차 그었다.
“뭐, 뭐지? 내가 안 보이나? 뭐 하는 거야! 멍청한 자식들!”
슝커우는 고래고래 소리치기 시작했다.
“자식들아! 뭐 하고 있냐! 얼른 쏴라! 잘 안 보이면 내려와서라도 쏴!”
“그만해. 멍청한 건 너다, 슝커우. 죽을 때가 되니 머리가 안 돌아가나?”
“뭐야?”
“네가 숨겨둔 병사 따위는 옛날 옛적에 잡아 족쳤다고. 이 일대는 두겹으로 포위되어 있다. 그중에 네 병사는 한 명도 없어.”
“그, 그럴 수가···!”
슝커우는 유비의 묘를 발로 밟으며 올라가더니 손짓발짓을 해가며 부하를 찾았다.
“···어딨느냐! 서너 명쯤은! 아니, 한 명쯤은 숨어 있을만하잖아! 제발! 나와다오!”
“말을 이해 못했나? 이미 포위되어 있다니까. 네가 살아나갈 길은 없어. 슝커우.”
“아냐! 밖에서는 안심하고 짐을 푼 네 병사들을 내 군대가 도륙하고 있을 거다! 네 목만 취해서 나가면 쓰촨성은 내거나 다름없어!”
“진정 그럴 거라 믿나?”
“젠장! 제발 아무나···!”
그때.
풀숲이 뒤척였다.
무언가 희끄무레한 물체가 나무 사이에서 움직였다.
“그, 그래! 한 명쯤은 있을 거였어!”
순간 모골이 송연해진 나는 재빨리 사당 안으로 피하려 했으나.
나타난 생명체는 슝커우의 부하가 아니었다.
심지어 인간도 아니었다.
“판다잖아?”
졸라 귀여운 생명체가 두 발로 서서 발광하는 슝커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청두에 판다가 많다고는 들었지만, 야생 판다를 목격하게 될 줄이야.
나는 그대로 사당을 나와 김경천에게 슝커우를 넘겼다.
“류샹의 제보가 맞았군요. 그자 영 쓸모없는 줄 알았는데. 한 건 했습니다.”
“글쎄. 그냥 뒷걸음치다 잡은 것 같은데.”
“예?”
우페이푸는 무슨.
쑨원이 슝커우를 사주하여 나를 암살하려 했다니···.
지금껏 정치적으로 다투기는 했으나.
양쪽 모두 선을 넘은 적은 없다.
이번 일은 명백한 전쟁 선포다.
쑨원의 맑은 눈이 떠올랐다.
적어도 그가 바라는 중화민국의 밝은 미래는 진심이라 여겼는데···.
노래가사처럼 새로운 세상, 모두가 행복한 날을 위해 함께 노력하던 것 아니었나?
권력이 그리 갖고 싶었나?
손에 더러운 피를 묻힐 만큼 타락해버린 건가?
당신이 그러고도 중국의 국부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아직 7월인데.
오슬오슬 오한이 들었다.
쑨원의 차가운 총탄이 심장을 간지르는 것 같았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토록 냉랭해질 수 있는 무엇이었나.
쓰촨 통일전쟁3
쓰촨 독군 슝커우의 계획은 엉성하고 허술했다.
그는 유비의 묘에서 나를 암살하고, 청두에서 국제연맹군 지휘부를 단번에 붕괴시킬 작정이었겠지만.
계획은 초장부터 어그러져 암살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설사 암살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국제연맹군이 나 하나 없다고 곧바로 무너질 군대가 아니니.
반란은 어쨌든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슝커우가 지나간 곳에는 깊이 패인 흔적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