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260
601화 모든 일에는 규칙이 있기 마련이다 (2)
범한이 고개를 들어 저택 한쪽 구석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위통을 벗고 나무를 패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 젊은이는 호랑이처럼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대체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미간에는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었다.
등자월의 눈빛이 범한의 시선을 따라가더니 이맛살을 찌푸렸다.
“해당타타 낭자는 자연히 계획이 있겠지요. 하오나······ 북제 사람들이 알게 되면 다른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범한이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북제 사람의 생각은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어요. 나는 그저 사람만 보내줄 뿐이니까요.”
등자월이 한참동안 머뭇거리다가 떠보듯이 물었다.
“하오나 저자를 사리리에게 보내면······ 나중에 어찌 통제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등자월은 범한의 측근이었다. 그러니 제사 대인이 원장 대인에게서 저 젊은이를 빼앗아 온 과정을 다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저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젊은이가, 이 작은 집 안에서 거의 2년 동안 갇혀 있던 젊은이가 실은 북제 귀비마마인 사리리의 남동생이란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통제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하나 지금 내게는 그런 방법들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예 풀어주는 겁니다. 그래야 양쪽이 훨씬 더 홀가분하게 협력할 수 있으니까요.”
범한은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설명해 주었지만 속으로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나와 북제 간에는 일찌감치 이익으로 얽혀버렸어요. 그러니 인질 하나 있고 없고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고요. 다시 말해, 사리리의 남동생은 예전처럼 중요한 사람은 아니에요.’
등자월은 이번에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범한이 손을 내저어 젊은이를 불렀다. 그리고 아직 불평과 원망을 삭여내지 못한 젊은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따스하게 말했다.
“자네는 곧 상경으로 가게 될 거네. 누나에게 주고 싶은 물건은 없는가?”
그러자 젊은이는 땅바닥에 ‘퉤!’ 하고 침을 뱉었다.
젊은이의 반응에 범한과 등자월 모두 웃기 시작했다. 범한이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상경으로 간 후에는 성질머리 좀 고치게. 자네 누나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말일세. 그밖에, 2년간 가둬 둔 나를 탓하지 말고. 자네도 자네 신분과 관련한 문제를 알지 않는가. 자네를 가둬두지 않으면 진즉에 죽었을 테고 말이야. 그렇지, 상경에서 누나를 만나면 내 안부 인사도 대신 좀 전해주게.”
문득 범한의 머릿속에 2년 전 북제 행에서 사리리와 한 마차에 탔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에 기분이 살짝 황홀해졌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말을 이어 갔다.
“고맙다고도 전해주고.”
범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젊은이는 머리를 잠시 긁적였다. 그는 범한을 본 적이 몇 번 없을뿐더러 줄곧 이 작은 저택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니 외부에 어떤 소문이 퍼져 있는지 알 턱이 없었다. 하지만 이 젊은 권력자가 경국에서 중요한 대신일 거란 건 알고 있었다. 단지 젊고 나이가 어려서······ 좀 의외로 다가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범씨 성의 권력자가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한 누나와 매우 잘 알 뿐만 아니라 교분 같은 것도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자의 말을 듣고, 설마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거야?’
젊은이는 다시 한번 머리를 긁적였다.
* * *
해 질 녘.
범한과 왕계년이 그 작은 저택에서 나와 마치에 올랐다. 마차에서 범한이 전방을 주시하며 웃으며 놀리듯 말했다.
“왕씨, 요 근처에 살면서 왜 집에 초대도 한 번 안 하는 겁니까?”
범한이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데 왕계년은 마음이 쓰라렸다. 그의 머릿속에 전에 훔쳐본 대인과 해당타타의 연애편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에 있던 대인의 위협 구절이 생각나 떨리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대인, 제 딸이 아직 여려서······ 몇 년 후에나 하겠습니다.”
범한은 깜짝 놀라 하마터면 피를 뿜을 뻔했다.
이에 불같이 화난 표정으로 늙은이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생각했다.
‘그 꼴로 딸은 요정 같은 아이를 낳은 겝니까?’
범한으로서는 농담을 한 것뿐이었는데. 왕계년은 너무 걱정한 나머지 전혀 재미있게 받아치지 못하고 있었다.
* * *
마차는 왕계년 집 후문에 서 있었다. 마차에는 이미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왕계년의 집에도 아무도 없었다.
그 시각, 평범한 외모의 거친 천으로 된 솜저고리를 입은 백성들이 성 남쪽에 위치한 모 외척의 저택 옆에 있는 골목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양손을 소맷자락 안에 넣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한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결코 잡담 수준이 아니었다.
“이 집이에요. 황후마마의 친척은 거의 다 돌아가셨으니까, 여기는 먼 친척인 거지요.”
“그걸 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 약을 보냈다면, 분명 일정 주기가 있을 겁니다. 황궁에 있는 사람이 한 번에 며칠 분의 약을 원했는지 알아야겠어요.”
백성으로 변장한 범한이 바닥에 가래침을 퉤 뱉고 말을 이어 갔다.
“그 약이 양기를 북돋아 줄 수는 없어도, 그래도 담력을 키워줄 수 있더라고요. 저 어르신의 담력이 약 때문에 커졌다는데. 교활한 자를 잡으려면 저 교활한 자가 움직이는 시간이며 주기 같은 것부터 파악해야겠지요······.”
당연히 범한 입장에서는 꼬질꼬질한 백성의 모습을 한 채 황실 외척의 집 앞에서 18일간 지키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저 왕계년과 함께 숨어 있는 그 선과 자신이 생각한 게 맞는지만 확인 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 선을 타고 계속 조사를 해나갈 생각은 없었다.
오늘은 정월 초이레였다. 그리고 범한은 22일에는 홍죽과 만나고, 2월 초에는 경도를 떠나 강남으로 가야 했다. 다시 말해, 경도를 떠나기까지 그에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고, 그러니 무슨 주기 같은 걸 찾아낼 여유는 없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범한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건 신출귀몰한 왕계년의 추적 기술뿐이었다.
목표를 확인한 후 두 사람은 외척 저택 문 앞을 떠나 옛 성 쪽에 자리 잡은 저택 후문으로 돌아왔다. 범한은 안으로 들어가 왕계년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너무 빠듯해 그럴 여유를 부릴 새가 없었다. 이에 왕계년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바로 마차에 올랐다.
이 검은 마차에는 범한에게 필요한 모든 장비가 있었다. 범한은 일단 겉옷을 벗고 소매에 장착한 쇠뇌와 약이 든 주머니를 확인했다. 그런 후 화장품이 든 상자를 꺼내 꼼꼼하게 얼굴 분장을 한 후 감찰원의 특수 고무를 이용해 눈썹꼬리 부분을 아래쪽으로 내렸다.
그러자 범한의 눈 사이 거리와 눈썹 모양이 변했다. 이어 범한은 아래턱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사마귀 같은 점도 추가했다. 그러자 잘 생긴 공자가 순식간에 눈이 가지도 않는 일반 행인으로 변했다.
마차가 성 서쪽에 위치한 연꽃 연못 거리 외곽에 섰다. 범한 쪽 사람은 일찌감치 마차에서 내려 성 서쪽에 몰려 있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경도 성 서쪽은 그다지 넓은 곳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과 비교해 그다지 부유하지도, 조용하지도, 귀족적인 느낌도 없는 곳이었다. 특히 연못 거리 일대는 빈민 지역이라 이 지역 거주자들은 하루 종일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연꽃 연못 거리 일대 사람들에게서는 연(蓮)처럼 탁한 세상에서 태어났어도 청청하게 살고자 하는 기개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이런저런 사람이 섞여 사는 탓에 여기에서는 떳떳하지 못한 온갖 거래가 성행했다.
행인으로 변장한 범한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을 막으려 옷 뒤에 달린 모자를 둘러썼다. 그리고 한껏 음침한 얼굴로 골목길 진흙을 밟으며 깊은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데 그의 표정은 이곳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거리에 있는 백성이며 상점의 주인들이 굳이 범한에게 눈길을 주거나 하지 않아서였다.
골목길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그리고 부친상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한껏 음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돈을 받으러 갔다가 돈도 못 받고 돌아왔다거나, 경도부에서 잡으러 들이닥치는 바람에 누군가가 잡혀 가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들은 거칠게 의리를 지키는 거리의 사나운 사나이들이었다. 그러니 한껏 음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낡은 암막새 기와가 늘어서 있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 범한은 기생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골목으로 들어왔다. 한데 다행히 아직 날이 저물지 않아서인지 싸구려 연지분을 바른 기생들은 일을 하러 나오기는 했어도 연신 하품만 해대며 적극적으로 손님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이에 범한은 자신을 둘러싸고 길을 막고 있는 그녀들 사이를 쉽게 빠져나와 등 뒤쪽에 있는 작은 목조 건물로 들어가 자신의 목적지로 찾아갈 수 있었다.
나무 건물 안에는 견디기 힘든 냄새가 가득했다. 이에 범한은 들어서는 순간 코부터 문질렀다. 그는 모자를 그대로 쓴 채 곧장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품에서 증표를 꺼내 자신을 경계하고 있는 반신불수의 사람에게 그것을 건넸다.
반신불수의 사람은 아직 손은 움직일 수는 있었다. 그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불청객을 주시하며 증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증표의 뒷부분을 한동안 자세히 살펴본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편인데 왜 이렇게 경솔하게 행동한 건가?”
범한은 그런 문제로 그와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최근 안쪽에서 뭐 좋은 게 나왔나?”
그러자 반신불수인 사람의 낯빛이 잠시 변했다. 앞에 있는 이 밉살스러운 놈은 대체 패거리 내에서 뭐 하는 놈이기에 이리 대놓고 묻는 건지 알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머리 쪽 일을 알고 있는 걸로 보아 분명 패거리 두목의 측근 정도 되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가 악취가 나는 이불 속을 한참 동안 더듬으며 상자 여러 개를 꺼내 놓았다. 범한은 그것들을 모두 열어 일일이 살펴보았다. 한데 상당히 불만스러운 사람처럼 계속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러자 반신불수인 자가 범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베고 있던 도자기 배게 안을 한참을 뒤져 반쪽짜리 옥결(玉玦: 동그란 모양의 한쪽이 좁게 뚫린 옥 장신구)을 찾아 범한에게 건넸다.
범한은 반쪽짜리 옥결을 받아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영롱하니 상당히 좋은 옥이었다. 더군다나 구름무늬가 조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황가의 물건이었다. 범한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정말로 좋은 물건이야. 이런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반신불수의 사람이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범한도 속으로 웃고 있었다. 앞에 있는 반신불수의 사람이 겉보기처럼 불쌍한 이가 아님을 범한은 잘 알고 있었다.
경도는 천하의 풍류와 돈이 몰리는 곳인데, 황궁은 더욱 그러했다. 한데 예부터 지금까지 백성들이 황제와 여러 귀인들을 먹여 살린 것처럼, 황제와 귀인들을 모시는 내관과 궁녀들은 몰래 그들의 물건을 훔쳐다 팔아 백성들 중 어둠속에 활동하는 사람들을 먹여 살려주고 있었다.
황궁도 이러할진대 각 대부들의 집은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대놓고 쓸 수 없는 은전이며 보물을 세탁해 그것으로 각주와 군에 있는 땅을 사들였다. 그리고 그 일은 자연스레 가장 밑바닥 층에 있는 전문 인사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