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296
637화 내리치는 천둥과 쏟아지는 빗물 (2)
번개가 아주 빠른 속도로 먹구름 안을 스쳐 지나가자 곧이어 경도 황궁 전체가 떨릴 정도로 엄청난 천둥소리가 울렸다. 콸콸 쏟아지는 비에 황성의 모든 것이 젖었고, 순식간에 모인 빗물이 궁전 유리기와 틈을 따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 봄이었으니 예년 같았다면 번개가 치더라도 비를 동반하지 않은 마른번개가 쳤을 것이었다. 오늘처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고 이상한 일이라서 사람은 하늘이 노했거나 아니면 천자가 노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광신궁에 들어온 황제가 천천히 궁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손목에 차고 있던 끈으로 자신의 젖은 머리카락을 묶었다. 단 한 가닥도 놓치지 않고 정갈하게 묶은 머리는 지금 그의 심리상태와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낮은 평상에 반쯤 기대앉아 있는 장 공주는 황제를 보고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 넓은 광신궁 안에서 갑자기 은방울 같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웃음소리는 비바람 소리에도 묻히지 않고 사방에 퍼져나갔다.
황제가 아무런 표정 없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천천히 낮은 평상에 앉아 있는 장 공주 앞까지 다가갔다.
그의 뒤에 찍힌 발자국은 걸음 간격이 일정하고 발 형태도 또렷한 것이 손으로 그린 것 같았다.
잠시 뒤 황제가 차가운 눈빛으로 이운예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런 짓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
하지만 장 공주 이운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며 가녀린 손가락으로 낮은 평상을 가볍게 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마치 나이 어린 소녀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오늘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녀가 고개를 들어 천하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남자를 바라보더니 붉은 입술을 달싹이며 가볍게 물었다.
“이유가 뭐냐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제가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장 공주가 대답하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황제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황제가 계속 물으려 하자 이운예가 갑자기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으로 자신의 입술을 가렸다.
“왜 그랬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그런 짓을 한 이유가 뭐냐?”
그녀가 갑자기 웃으면서 일어났다. 황제 앞에서도 전혀 주눅이 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가 원망하는 눈빛으로 황제를 노려보며 천천히 물었다.
“황제 오라버니께서는 이 누이가 서른이 넘도록 혼인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물으시는 겁니까? 아니면 이 누이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장원 급제한 남자를 유혹해 15살의 나이에 아이를 낳은 이유를 물으시는 겁니까? 아니면 이 누이가 노리개 남자들을 많이 둔 이유를 물으시는 겁니까?”
그녀가 입술을 살며시 깨물며 한 발자국 정도 앞으로 걸어갔다. 황제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뼈를 에는 듯한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랬냐고요? 장 공주 이운예는 어째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편안히 살지 않고 조정을 위해 오랜 시간 황실 금고를 관리해온 걸까요? 어째서 그녀는 멍청하게도 자신의 마음은 억누른 채 경국 황제를 위해 인재들을 끌어모았을까요? 어째서 그녀는 옆 나라들과 사귀기 위해 갖은 방법을 나 동원하며 힘을 쏟았을까요? 어째서 그녀는 몰래 군산회를 조직해 황제 오라버니가 죽이고 싶어도 죽이지 못한 사람들을 대신 죽여주고, 조정에 드러낼 수 없는 일들을 대신 처리해줬을까요?”
이운예가 서글픈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왜 그랬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감정이 복받친 그녀가 소매를 휘두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황제 오라버니, 지금 왜 그랬냐고 물으시는 겁니까? 저에게 멍청하게 왜 이런 상황에까지 몰렸냐고 물으시는 건가요? 황제 오라버니가 천하에서 가장 밝고 영예로운 역할을 맡으실 동안 제가 뒤에서 가장 어둡고 더러운 역할을 맡은 이유를 물으시는 겁니까? 제가 이런 더러운 짓을 감당한 이유를 물으시는 거예요?”
황제는 아무 말 없이 가엽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장 공주가 갑자기 신경질적인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이게 전부 황제 오라버니를 위한 것이 아닙니까? 제가 가장 아끼는 오라버니는 역사에 현명한 황제로 남기 위해서 더러운 것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처리하게 했지요······. 하지만 오라버니는 한 번도 제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지요?”
“너를 생각해 봤느냐 묻는 게냐?”
화가 난 장 공주가 황제의 용포를 꽉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저도 오라버니께 왜 그랬냐고 묻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것들을 빼앗은 이유가 뭡니까! 어째서 제게 조금의 애정도 보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어째서 오라버니는 사생아······ 그놈에게 제가 가진 모든 걸 빼앗아 주신 겁니까? 오라버니가 원하신다면 가진 걸 모두 잃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놈은 안 됩니다! 왜 하필 그놈에게 전부 주신 겁니까!”
이운예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동정 어린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봤다.
“안타깝게도······ 오라버니가 그렇게 아끼시는 그 사생아 놈은 범씨 성을 원하더군요.”
줄곧 아무 말 없이 장 공주를 바라보고 있던 황제가 나지막이 말했다.
“너는 미쳤다.”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이운예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가 지난 십여 년 동안 미친 상태로 살기는 했지요!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너는 미쳤다.”
황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모든 걸 짐의 탓이라 원망할 뿐 자신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권력을 원한다는 건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구나.”
“비정상적이라고요?”
미간을 찌푸리는 이운예의 얼굴에 순간 경멸하는 기색이 보였다.
“여자가 권력을 원하는 게 비정상적이라면 천하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쥔 사람은 정상이란 말입니까?”
“방자하구나!”
황제가 으르렁거리며 손을 들어 그녀를 때리려 했다.
장 공주가 고개를 뻣뻣이 들고는 맞아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다.
“네가 가진 모든 건 짐이 준 것이다.”
황제가 천천히 손을 내리며 말했다.
“그러니 짐이 모든 걸 빼앗아 갈 수도 있는 거지.”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은 저 스스로 노력해 얻은 것입니다.”
장 공주가 그를 노려보며 반박했다.
“제가 가진 모든 걸 빼앗아 가시려면 먼저 저를 죽이셔야 할 겁니다.”
광신궁 밖에서 다시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비가 더욱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자신의 누이를 바라보던 황제가 갑자기 웃으면서 살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짐이······ 너를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오라버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저를 죽이시겠지요.”
장 공주 이운예가 조롱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천하에서 오라버니가 죽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줄곧 침착하던 황제는 순간 장 공주가 자신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어느 부분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운예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 정신 차리세요······. 천하 사람들에게 인정과 의리를 가장 중시하는 군주인 척 연기하는 것 좀 그만하세요. 분명 이미 동궁에 갔다 오셨겠지요. 거기서 아마 마음에 상처를 입은 군주인 척 연기를 하고 오셨겠지만······ 누굴 속이려 하십니까? 스스로를 속이려 하지 마십시오. 오라버니는 줄곧 저를 없앨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계셨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냥 죽이기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에 정당화할 만한 이유를 찾고 계셨던 거지요.”
그녀가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자신을 설득할 이유를 찾고 계셨지요······ 자신의 친누이를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될 만한 이유 말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오라버니를 졸졸 쫓아다녔고, 자라서는 오라버니를 위해 오랜 시간 헌신해온 누이를 죽일 이유를 찾으셨다면······ 죽이십시오. 기꺼이 죽어 드릴 테니까!”
기꺼이 죽어 주겠다고 말하는 이운예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동궁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부터 눈을 감고 있었던 황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짐의 친누이이자 어마마마가 가장 아끼는 딸이지. 그러니 상황이 이 지경까지 되지 않았다면 짐은 네가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해줬을 거다······. 너는 조정의 기강을 흔들고 사병을 양성했으며 명씨 집안을 움직여 군산회를 조직했다. 이것들 모두 황제를 기만한 대역죄이지만 짐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너는 짐의 친누이이고 짐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짐은 네게 죄를 묻지 않았어······. 몇 년 동안 네가 언빙운을 팔아넘기는 짓을 저지르고 범한을 암살하려 하는데도 짐은 너를 탓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짐은 이런 일들이 그리 큰일이 아니라 여겼거든.”
그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침착하게 앞에 있는 누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네가 조카들 사이에 끼어드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잘 숨기고 있기는 하다만 너 때문에 둘째가 이미 잘못된 길에 들어선 걸 알고 있어.”
이운예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 애를 미치게 만든 건 제가 아니라 오라버니십니다.”
“승건이는 어떠냐?”
황제가 살기 어린 눈빛으로 이운예를 노려봤다.
“그 애는 황태자야! 짐이 용상을 물려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교육한 황태자란 말이다! 짐이 천하를 평정한 뒤 짐을 대신해 천하를 태평성세로 이끌어야 할 사람이란 말이다······. 짐은 네가 그 애를 보좌해주길 원했는데, 너는 그 애의 꼬드겨 사리 판단을 하지 못하는 바보로 만들지 않았느냐!”
밖에서 또다시 천둥소리가 들렸다. 이전보다는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광신궁 안을 울리기에는 충분히 컸다. 하지만 천둥소리에도 가려지지 않을 만큼 황제의 분노에 찬 목소리는 날카롭게 장 공주의 귓가를 때렸다.
이어서 번개 빛이 창문을 뚫고 광신궁 안을 순간 비췄다. 그 순간의 찰나에 황제가 오른손으로 장 공주의 목을 조르는 모습이 보였다. 황제는 장 공주의 목을 조른 채 낮은 평상을 넘어 뒤에 있는 병풍까지 걸어갔다. 경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벽에 붙어 핏대 선 손을 버둥거리며 발악했다.
장 공주는 숨이 막혔지만 도움을 요청하거나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저 동정 어린 눈빛으로 화가 난 중년 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커다란 손이 백조처럼 하얀 목을 꽉 움켜쥐자 그녀의 얼굴은 피가 통하지 않아 빨개졌고, 그러자 오히려 사람을 유혹하는 매력도 더 짙어졌다.
“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적자를 내칠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승건이의 미래만을 생각하며 모든 걸 해왔다. 짐이 이룰 천하를 계승하려면 인정 많고 유능한 군주가 필요하니까······. 그런데 네가 전무 망쳐버렸어!”
머리끝까지 화가 난 황제가 소리쳤다.
“왜 그런 것이냐!”
얼굴 전체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짖던 장 공주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어렸다.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인제 보니······ 이 모든 게 오라버니의 연극이었군요. 범한도 오라버니의 노리개에 불과한 것이죠? 아마 저보다 더 처참하게 죽을 운명이겠군요.”
벽에 내몰린 장 공주는 처량하게 발끝으로 땅을 디디려 버둥거리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승건이에게 용상을 물려주지 않으시겠다면, 설마 범한에게 물려주실 생각이신 겁니까······. 아니죠. 제가 아는 오라버니는 절대 범한이 용상에 오르는 모습을 보지 못하실 겁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의 손이 살짝 풀어졌다.
장 공주가 그를 바라보며 즐거움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 오라버니는 의심이 너무 많으시고, 자신을 너무 감추려 하세요······. 오라버니의 교육은 황태자를 겁 많은 생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 애는 오라버니가 언제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황태자가 이렇게 겁에 질려 불안에 떨고 있는데, 기댈 ‘품’을 내어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운예는 전혀 두렵지 않은 듯 서슴없이 ‘품’이란 단어를 꺼내······ 황제의 신경을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