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459
800화 두 동강이 난 칼 (1)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입니까?”
“장담하건대, 내 휘하에 있는 정예 기마병은 절대 이민족의 유격대 기마병에게 패하지 않습니다. 한데 그건 양측이 날카로운 칼날로 서로를 겨누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하나 각자 목표가 다르니 그들은 내 기마병을 감히 건드리지 못할 것이고, 나는 그들의 기마병을 잡지 못하겠지요.”
범한이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말을 이었다.
“또한 서쪽 이민족들은 거처를 계속 이동 중인데 우리 백성은 전답에 얽매여 있어 계속 죽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우리에게 준 피해가 우리가 그들에게 준 피해보다 당연히 클 수밖에요.”
이홍성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서 내가 청주로 가려는 거예요. 타초곡(打草穀)이라는 이런 염병할 곡물 약탈 전법을 만든 고수가······ 대체 누구인지 좀 만나 봐야겠습니다.”
범한의 눈에는 한기가 가득했지만 그 싸늘함 속에서는 어느새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범한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안 이홍성이 그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며 물었다.
“왜······ 감찰원에서 서량(西凉) 일에 그리 주의를 기울이는 것인가?”
“감찰원 업무가 아닌 제 개인적인 일 때문입니다.”
범한이 엉망진창인 기분으로 지도 위의 붉게 표시된 점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 단순히 개인적인 일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년이 오기 전에 저는 서쪽 정세를 안정시켜야만 하거든요. 그래서 세자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물론 동시에 초원 이민족들이 얻게 된 후원을 끊어버리려는 생각도 있고요.”
“내년이 오기 전까지라고?”
이홍성이 의혹에 쌓인 시선으로 범한을 바라보았다. 범한이 대체 왜 서쪽 국면 때문에 이렇게나 초조해하는 건지 그로서는 알 길이 없어서였다.
“내년이라고 말한 이유는, 사고검이 기껏해야 내년 봄까지밖에 버티지 못 해서예요.”
범한이 고개를 숙이고는 말을 이었다.
“사고검의 부상 정도를 관찰하기 위해 사방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을 풀었습니다. 대종사라 그런지 정말 잘 버티던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버티고 있더라고요. 비록 요 2년 동안 사고검은 외부인을 만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내년에 죽으리란 것도 알고 있지요.”
“사고검의 죽음이 서쪽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나!”
이홍성이 화를 내며 물었다.
그러자 범한이 고개를 들어 이홍성을 바라보았다.
“사고검이 죽으면 황제 폐하께서 나를 동이성으로 파견하실 텐데······ 그러면 더는 서쪽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없어서 그럽니다.”
이홍성이 싸늘하게 웃었다.
“세상만사를 자네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인가? 자네가 능력 있다는 건 내 인정하네. 하나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지는 말게.”
범한은 상대방의 말에 악의가 없다는 걸 알고 있던 터라 두 손을 벌려 보이며 말했다.
“사고검이 죽는다면 동이성은 어느 한쪽의 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우리 위대한 경국이든, 북제든, 모두에게 닥친 제일 큰 문제는······ 어떻게 해야 동이성을 안정적으로 자신의 손에 넘어오도록 하느냐죠.”
“어쩌면 양측이 다투는 가운데서도 동이성은 계속해서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도 있을 걸세.”
“그럴 수 없을걸요.”
범한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고개를 가로로 내저었다.
“사고검이 죽으면 성주부(城主府)와 검려 사이의 갈등이 폭발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동이성에 중립을 지킬 자격이 있을까요?”
“한데 그게 자네가 급히 서량으로 가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말해주지 않고 있군.”
범한이 유감이라는 듯 이홍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소리를 낮추어 말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천하 사람들에게 서량과 동이성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 하거든요.”
“그 후에는?”
이홍성이 의심스러운 듯 범한을 바라보았다.
“그런 후 황제 폐하께 증명해 보일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분명 ‘만약에’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정말로 천하 통일을 하셔야겠다면, 꼭······ 싸울 필요는 없다는 거죠. 설령 싸우게 된다고 하더라도, 무력적인 수단을 동원하기보다는 문(文)을 통한 싸움을 해도 된다고 알려드릴 것입니다. 설령 반드시 무력을 동원해 싸우게 되더라도······ 최소한의 싸움으로 그치게 할 수 있다고 말이지요.”
범한의 말소리는 갈수록 작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자기가 한 말을 실현시킬 자신이 없어 보일 만큼 대단히 작아져 있었다.
이홍성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 자신이 뭔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하기까지 했다.
이홍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재 안을 빠르게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자신이 방금 전 들은 내용을 소화시키기 위한 행동 같았다.
한참 후, 이홍성이 범한 옆에 서서 참을 수 없다는 듯 웃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 안에는 황당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네 백치인가?!”
이홍성이 범한을 거칠게 쏘아붙였다.
“그런 유치한 생각은 어찌 나온 건가? 자네가 무슨 신선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병졸 하나 동원하지 않고 초원 이민족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병졸 하나 없이 동이성에 더군다나 북제까지 해결하겠다니!”
화가 난 이홍성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범한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자네가 청주까지 간다기에 엄청 대단한 생각이 있어 그러는 줄 알았더니만, 그런 유치한 난전(亂戰)이나 펼치러 가려 했던 거였다니!”
“대체 뭐가 하고 싶은 건가? 태학 학생들이 알랑방귀 뀌면서 추켜 세워주니까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잊은 건가? 정말로 성인(聖人)이라도 될 생각이야?”
이홍성이 거칠게 범한의 멱살을 잡고 이를 악물었다.
“미친 건가? 천하 사람은 자네 생각을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을 거야!”
이홍성이 자신의 얼굴을 범한에게 바짝 가져다 댔다. 그리고 암담함이 들어찬 범한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추고 으르렁댔다.
“황제 폐하께 증명해 보이겠다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범한이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내가 무슨 생각 중이냐고요? 태평한 천하와 전쟁 없는 세상을 희망한다고 말한다면······ 이런 내 생각이 황당하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자 이홍성이 잡고 있던 멱살을 풀었고, 범한은 다시 의자에 털썩 앉게 되었다.
이홍성은 너무 놀란 상태라 범한을 바라보며 한동안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경국의 사내가 어찌 이리 전쟁을 싫어할 수 있는 거지? ’
다행히 이홍성은 범한이 그동안 죽음의 문턱을 얼마나 넘나들었는지 알고 있었고, 절대 살고 싶어서 죽는 걸 두려워하는 인간이 아님도 알았다.
“그 생각은 전혀 황당하지 않아.”
이홍성이 매 글자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그저 애당초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거지.”
범한이 고개를 들고 대단히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왜 불가능하다는 거죠? 내 힘으로 천하통일을 한다면, 황제 폐하께서 다시 남쪽과 북쪽으로 정벌 전쟁을 하러 가실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만 명, 십만 명, 백만 명, 심지어는 천만 명에 이르는 평민들이······ 그 휘황찬란한 목표를 위해 죽어야 하는데, 그들 목숨을 위해서라도 그런 생각을 하면 왜 안 되는 거냐고요!”
“알았네, 알았어, 알았다고.”
화가 나 있는 이홍성은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 생각은 할 수 있어. 하나 그건 영원히 이루지 못할 일이야. 더군다나 내가 이미 권유했듯이 황제 폐하께서 자네 생각을 모르시도록 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랬다가는 분명 자네를 미치광이 취급하실 테니까.”
“나는 원래 미친놈이에요.”
범한이 두 눈을 감고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요 2년 동안 내가 어찌 지냈는지 모를 겁니다. 매일 그 문제만 생각하며 지냈단 말입니다. 이제 곧 크게 전쟁이 터질 것만 같고, 또 그 일이 일어나면 백성들이 영문도 모른 채 말발굽에 밟혀 죽고, 칼과 창에 찔려 죽을 것만 같단 말입니다. 그 모든 걸 바꾸고 싶어요. 한데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도 없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며 화를 냈다.
“나를 도와줄 만한 사람이 없다고요!”
이윽고 이홍성을 똑바로 응시하며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평평은 그 일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아버지는 늙으셨고, 장인어른은 황제 폐하 때문에 겁에 질린 늙은 토끼처럼 오주에 콕 박혀만 있고요! 큰 형님이요? 그분은 얼씨구나 하면서 나가 싸울 분입니다. 경도에서 그냥 멍하니 있는 걸 싫어하시는 분이니까······.”
‘오죽 아저씨마저 떠나 나 혼자 남았다고요.’
범한은 속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나 혼자뿐이라고요!”
범한의 입술이 살며시 떨렸다. 그리고 이를 바드득 갈며 말을 이었다.
“나 혼자서 밤마다 생각하고, 고민했다고요.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 이루기 어려운 목표란 건 나도 다 알고 있거든요.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겠어요!”
“황당하군! 웃겨! 유치하고!”
이홍성이 범한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리고 미친놈에게 정신 차리라고 충고하듯 말을 이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30년이란 시간을 들여 이런 절호의 국면을 만들어내셨는데······. 서호 따위? 만약 황제 폐하께서 준비만 잘 하신다면, 밀고 들어가는 즉시 그들을 쓰레기처럼 뭉개버릴 수 있어! 지금 상황이 이런데, 자네는 황제 폐하와 완전히 반대로 행동할 셈인가? 말해두는데, 황제 폐하는 자네가 대신 무언가를 해드릴 필요가 없는 분이라고. 그분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능력이 있으시단 말이야!”
이홍성이 백치를 바라보듯 범한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2년 동안 자네는 감찰원 권력이 줄어들도록 일부러 놔두고 조정을 안정시켰네. 황실 금고를 과거처럼 다시 빛나게 함으로써 국고가 다시 차고 군비가 보충되도록 했고······. 정말로 그분 대신 서호를 평정하고 손에 넣을 생각이라면 큰 전쟁을 치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자네가 황제 폐하를 대신해 이미 해 놓은 것이네. 그런데 이제 와서 전쟁을 하시려는 황제 폐하의 마음을 접게 만들겠다고? 그렇다면 자네가 보기에 황제 폐하께서 미치신 건가, 아니면 자네가 미친 건가? 대체 왜 그러는 거야!? 2년 동안 자네 신상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이홍성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범한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천하를 태평하게 해?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네!”
“적어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천하가 태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내 삶의 이상인 셈이거든요.”
범한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어릴 적 담주에 있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 뭘 해야 할까 생각했더랬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천하가 태평하다면 그보다 더 좋은 건 없겠다는 생각이 갈수록 더 뚜렷해졌어요.”
그리고 한동안 차분하게 있다가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2년 전 경도에서였습니다.”
범한이 고개를 치켜들고 가까이 있는 관심 갖고 자신을 바라봐주는 이홍성의 두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둘째가 피를 토하고 죽는 걸 지켜보았습니다. 장 공주는 자결했고요. 그리고 반역에 가담한 수많은 병사들, 금군, 감찰원 부하들이 황제 폐하의 천하 통일이란 목표 때문에 길닦이용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그때, 그걸 나의 이상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도 내 생각이 웃긴가요?”
“나도 죽은 사람을 본 적 있네.”
이홍성이 범한에게 눈을 부릅떴다.
“3년 동안 들판에서 지내면서 죽은 사람을 자네보다 훨씬 더 많이 봤다고. 한데 그게 뭐 어떻다고 그러나? 역사란 건 언제나 그 모양이야. 그러니 자네의 이상은 비웃음이나 당할 거라고. 이제 알겠나?”
“아무리 비웃음이나 당할 이상이라도 똑같은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