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
열일하는 과금 기사 프롤로그
프롤로그 부적응자
자주 생각했다.
만약 삼국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관우 같은 존재가 되었을 텐데.
나는 장비 같은, 허저 같은, 조자룡 같은, 여포 같은 존재가 되어 천하에 위명을 떨쳤을 텐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평화로운 현대사회에 태어났다.
“저 새끼! 저 새끼가 우리 아들을 때렸어요! 세상에 얼굴 다 망가진 거 봐! 저런 새끼는 감방에 보내서 콩밥을 먹여야 해”
초등학생 때 중학생을 패고 다녔다. 중학교 때는 고등학생을 패고 다녔고, 고등학교 때에는 한 지역을 아우르며 [일진 사냥꾼]이라는 명성 아닌 명성을 누렸다.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는 양아치들도, 심지어 대기업을 뒷배로 뒀다는 조직폭력배 놈들도 내 앞에서는 함부로 설치지 못했다.
특히 고등학교 2학년 때 작정하고 함정을 팠던 조직폭력배 마흔 명을 혼자서 쓸어버린 후로는, 평소 잘난 척하던 꼰대들도 감히 내 앞에서 입을 털지 못했다.
결국 무혐의로 경찰서를 나서는 나를, 평소 안면이 있던 전투 경찰 세민이 형이 불렀다.
“야! 장군!”
“아, 그렇게 부르지 마요.”
“그럼 장군을 장군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냐? 부적응자?”
쯔쯔-.
혀를 차는 모습에 주먹이 부르르 떨렸지만 참았다. 아무리 나라도 전투 경찰한테 덤빌 정도로 머저리는 아니었으니까. 전투 이능을 전문가의 경지까지 끌어올려야만 자격증을 얻을 수 있는 전투 경찰은 기가스 소환이 가능한 전쟁병기. 아무리 잘 싸워도 맨몸으로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대체 왜 이리 피곤하게 사냐? 그냥 넘어가려면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지금이야 이렇게 풀려나지만 미성년자라 가능한 일이야. 언제까지 이렇게 흘러가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까 엎드려서 박박 기라고요?”
“그런 말이 아니잖아. 인마! 에휴…… 이 녀석아. 이래 봐야 남는 게 없단 말이야.”
“남는 게 왜 없어요?”
나를 걱정해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툴툴거리며 답한다. 왜냐하면 경찰서 앞에는…….
“형! 걱정했어요!”
“거봐! 내가 무혐의라고 했잖아! 정당방위라고!”
“재연이 오빠~! 출소 축하해요!”
“이 골빈 년아, 이거 출소 아니거든?”
경찰서 주차장에 있던 친구들이 환호하며 나를 반긴다.
나는 웃었다.
“친구들이 있잖아요.”
“……글쎄.”
세민이 형이 씁쓸하게 웃었지만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다니고.
“아, 미안! 나 학원가야 해서.”
졸업하고.
“아쉽다. 이제 자주 못 보겠네.”
“뭐, 재연이가 공부 타입이 아니긴 했지.”
“그래도 재연이는 뭘 해도 잘할 거야!”
대학에 가고.
“아, 뭐야. 쟤 깡패야? 경찰을 부르면 되지 왜 거기서 싸우고 지랄이야?”
“아쉽지만 이 성적으로는 경찰대학교에 갈 수가 없어.”
그리고.
“사관학교로 편입? 미안하지만 그곳은 자네 같은 반골을 받지 않는다네.”
“다 무혐의였습니다.”
“쯔쯔. 무혐의라고 정말 아무 기록도 안 남을 거라 생각하나?”
그리고.
“기감(氣感)이 너무 떨어지는데. 이 수치로는 어떤 영능도 입문자의 경지를 넘지 못할 거다. 어릴 적부터 알았을 텐데 공부도 안 하고 기술도 안 배웠어?”
“아, 죄송해요. 이런 성적으로는 좀.”
“어따 대고 인상을 써? 너 이새끼 양아치야?”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나서야.
“죄송합니다.”
“어렵겠는데요.”
-본 사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 사는 한재연 님과 함께하는 방향을 진지하게 숙고했습니다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함께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세민의 형의 말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모두의 동경과 사랑을 받는 영웅이 아니다. 조폭조차 눈을 깔고 다니는 강자는 더더욱 아니다. 훌륭한 자식도, 자랑스러운 친구도 되지 못했다.
그저 부적응자.
과도할 정도의 자존감을 가진 난 사회의 부품이 되지 못했다. 어디에서도 고개 숙이지 못했고 선을 넘는 상대를 만나면 주저 없이 주먹을 드는 양아치였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고등학생 때 나는 [일진 사냥꾼]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설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대학교를 졸업한 난 알바 하나 제대로 못하는 밥버러지에 불과하다.
“아, 저 정신병자 새끼 드디어 전역하네.”
“저놈 그놈이지? 대장님 들이받았다는? 진짜 우리 대장님이 착해서 살았지.”
“고문관 새끼.”
“진짜 다행이다. 저 새끼가 어빌리티라도 타고났으면 사고를 얼마나 쳤겠냐?”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뻑하면 주먹질이야? 무림인이세요?”
이젠, 나도 안다.
중고등학교 때의 나는 주먹질이나 하고 다니던 양아치였고.
대학교 때의 나는 지잡대나 겨우 가는 멍청이였으며.
군대에 있을 때의 나는 항명을 일삼는 관심 병사였다.
“……세민이 형의 말이 맞았네.”
부적응자.
나를 비범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말 역시 일부 맞는 말이지만…… 그래 봐야 나의 재능과 적성은 현대사회와 맞지 않았으니까.
결국 남는 건 한탄뿐이다.
“삼국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관우 같은 존재가 되었을 텐데.
나는 장비 같은, 허저 같은, 조자룡 같은, 여포 같은 존재가 되어 천하에 위명을 떨쳤을 텐데.
“취침하겠습니다!”
수면 캡슐에 눕는다.
내일이 전역일이었지만 조금의 기쁨도 없다. 전역증을 들고 사회로 나가 봐야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잉여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잠이 들었을 때.
나는.
다른 세상에 서 있었다.
“평민 사냥이다!”
“와하하하하!”
“꼬마 머리통은 1점! 계집 머리통은 2점! 사내놈 머리통은 3점이다!”
순간.
내가 삼국지 속에 들어왔다고 착각했다는 사실을 비웃지 않았으면 한다. 전역일이 다가오며 매일 생각하던 일이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
물론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온 사람들 모두가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사, 살려 주세요. 나으리! 시, 시키는 건 다 할 테니 제발 살…….”
촤악!
화려한 갑주를 걸친 사내가 애원하고 있던 여인의 목을 쳐 날려 버린다.
“아…….”
나는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머리. 엄청난 기세로 솟구치는 피. 그 모든 장면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망막에 새겨진다.
‘평민 사냥…… 이라고 했어.’
그냥 평민이 있고 귀족이 있는 정도가 아니다.
평민 사냥.
그 네 글자만 가지고도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대충 알 수 있다. 지금 이 세계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참혹한 곳인지.
“핫하! 죽어라!”
“이것들아! 시시하게 서 있지 말고 도망을 쳐야지!”
화려한 갑옷을 입은 젊은 남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있다.
잘려 날아다니는 팔다리, 땅을 구르는 머리통, 쏟아지는 내장과 피…….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패닉에 빠졌을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했겠지.
그러나 나는 패닉에 빠지는 대신.
근처에 있는 기둥 아래에서 돌덩이 하나를 뽑아 들었다.
“……좋아.”
크기에 비해 무거운 돌이다. 흔히 말하는 주춧돌.
나는 그것을 입고 있던 겉옷으로(어느새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감싸 들었다.
“하하! 건장한 남자 놈! 3점이로구나! 오! 머리색이 까맣잖아?”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커다란 말을 탄 금발의 서양인이 뛰어온다.
두근! 두근!
두근두근!
쿵쾅쿵쾅!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혈관의 피가 마치 화살처럼 쏘아져 온몸을 휘도는 게 느껴진다.
나는 옷으로 감싼 돌덩이를 들고 나를 죽이려 달려오는 [적]을 마주 보았다.
말을 타고 있기에 시점이 높다.
무게중심은 안장을 밟은 오른발.
들고 있는 검은 1~2킬로그램 정도, 달리는 말의 속도는 시속 40킬로미터 안쪽. 몸은 단련되어 있지만 검에 담긴 기운은 없다.
“좋아.”
한눈에 모든 상황이 인식된다. 나는 녀석이 접근해 검을 휘두르는 순간 확 몸을 수그렸다.
“어~ 딜!”
나를 베기 위해 갑주의 사내가 몸을 조금 더 기울인다. 그렇게 무게중심이 중심선을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
나는 옷가지로 감싼 돌덩이를 들었다.
콰득!
“엇?”
묵직한 충격과 함께 휘둘러진 검이 돌덩이에 단단히 박힌다. 화려한 갑주의 사내는 깜짝 놀라 칼을 회수하려 했지만 내가 돌을 놔 버리자 묵직한 무게에 휘청거린다.
나는 손을 내뻗어 녀석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어엇?”
무게중심이 확 하고 기울자 자세가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하다못해 들고 있던 검이라도 놓았으면 괜찮았을 테지만 그러지 못한 사내의 몸이 속절없이 낙마한다.
퍽!
그는 낙법을 치려했고 심지어 그 동작이 꽤 능숙하기까지 했지만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내가 잡고 있던 녀석의 팔을 흔들어 그 시도를 무마시켰기 때문이다.
“아, 안…….”
입을 쩍 벌린 녀석의 머리가 땅과 충돌하며 녀석의 뒤통수가 자신의 등과 닿는다.
우드득!
확인할 필요도 없는 즉사(卽死)이다.
“이히힝!”
깜짝 놀란 말이 제자리에 멈춰 섰지만 나는 그저 멍하니 쓰러져 있는 갑옷의 사내를 보았다.
“……죽었네.”
자의로 사람을 죽였다.
문자 그대로 대참사였다. 현대사회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 행위. 교도소에 갇혀 긴 시간을 썩어야 하는, 어쩌면 영원히 나오지 못할지도 모를 중범죄.
하지만.
쿵! 쿵! 쿵. 쿵…….
미친 듯 박동하던 심장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며 돌덩이에 박혀 있던 검을 뽑아 든다. 다행히 날이 좀 상했을 뿐 멀쩡해 보인다.
“으악! 제, 제발 살…… 컥!”
“아! 그거 내가 팔 잘라 놨는데 가로채기 있어?”
“죽이는 게, 임자지! 3점!”
산속에 위치한 고즈넉한 분위기의 마을은 인세의 지옥이 되어 있다.
마을 주민의 수는 100명이 넘고 갑주 남녀들의 숫자는 고작 8명에 불과한데 마치 양 떼 사이에 뛰어든 사자처럼 날뛰고 있다.
“하하.”
삼국시대에 태어나길 바란 적이 있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관우 같은 존재가 되었을 텐데. 여포 같은 존재가 되었을 텐데.
전설적인 무장으로서 천하에 위명을 떨쳤을 텐데.
“……좋아.”
검을 들고 마을의 외곽으로 돌기 시작했다.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망상을.
증명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