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03
열일하는 과금 기사 102화
“와.”
다시 봐도 감탄이 나온다.
“와, 진짜.”
너무나 압도적인 빨간색이었다.
“종료.”
누가 볼까 두려워 화면을 꺼 버리자 체다의 털이 차르륵 눕혀지며 갈색 털로 돌아온다. 나는 호텔로 성큼성큼 들어서며 생각했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400억.
평생 생각도 해 본 적 없는 액수다. 능력이 향상되면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지금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금액.
“그냥, 그냥…… 그냥!”
가슴이 쿵쿵 뛴다.
‘다…… 팔아 버릴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400억이라니 그 정도 돈이면 신화급 클래스, 수호령, 펫은 물론이고 신화급 장비와 스킬마저 장만할 수 있다.
난 이미 화점을 지배하고 있으니 400억도 다 필요 없다. 100억 안쪽에서 해결할 수 있겠지.
물론 문제는 있다.
‘그랬다가 리벤지가 서비스 종료되면서 게임 능력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완전 나가리야.’
돈은 돈대로 사라지고 능력도 사라지는 최악의 상황.
물론 다른 선택지도 있다.
‘지금 주식을 다 팔아 버리고 그냥 현금 400억을 먹는 것.’
아르데니아로 들어갈 수 없는가?
그래도 400억이 남는다.
게임 능력이 사라져 버렸는가?
그래도 400억이 남는다.
“하하. 나 참.”
보통 사람이라면 고민할 선택지가 아니다. 400억이면 굳이 투자 같은 걸 할 필요 없이 은행에만 맡겨도 다달이 나오는 이자가 6,000만 원이 넘기 때문이다.
월 이자가 6,000만이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가?
‘죽을 때까지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세상의 많은 이들이 바라는 꿈같은 삶.
그러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마냥 편안한 삶, 그냥 놀고먹는 삶,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
내가 그런 걸 원했다면 지옥이나 다름없는 중세 랜드에 던져졌을 때 그토록 큰 기쁨을 느꼈을 리 없다.
‘하. 요새 너무 돈돈 했나. 잠시 이성을 잃었어.’
예전의 나는 금전에 아무런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부자를 봐도 부럽다고 생각한 적 없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역시 없었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돈 한 푼 없는 백수일 때보다 매일 죽어라 일하는 지금, 돈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지다니.
‘그런 면에서 이 400억을 리벤지를 지키는 데 쓰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지. 배사랑 대표 쪽을 지원한다든가.’
생각해 볼 만한 선택지다. 이 능력도 아르데니아도 나에겐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이 돈을 다 쏟아붓는다고 해도 리벤지를 지켜 낼 수 없을 수 있어.’
개인은 몇 번 죽고 태어나도 벌 수 없는 400억이지만 대기업 입장에서는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기에도 모자란 돈일 수 있다.
내가 네메시스 소프트에 힘을 보태도 리벤지의 서비스가 종료될지 아닐지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혹시 예약하셨을까요?”
카운터에 있는 화사한 얼굴의 직원이 말을 건다.
“아뇨. 네메시스 소프트 간담회에 참석하려고 왔습니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을 따라 걸으며 생각한다.
‘차라리…… 400억을 다 다이아로 바꾼 다음 아르데니아에 짱 박힐까?’
아르데니아에 들어가면 현실의 시간은 멈춘다. 물론 대우주의 시간이 다 멈출 리는 없으니 내 소우주의 시간이 무한하게 가속된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
즉.
‘아르데니아에 들어가 나오지 않으면 리벤지 서비스 종료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
내가 아르데니아에서 20년을 살았을 적에도 지구의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10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400억을 가지고 100년의 시간이 흐른다면. 어쩌면 나는 대륙을 통일하고 초월의 경지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후에 지구로 돌아와서.
“돌아와서…….”
거기서 생각이 멈춘다. 초월자가 되어서 지구로 돌아와 뭘 어쩐단 말인가?
34지구는 초월자라도 법을 어기면 경찰이 잡아가는 마경.
일단 초월자만 되면 행성 전체를 지배하고 신으로 숭상 받는 하위 문명과는 차원이 다른 곳이다.
무엇보다 스카이 소프트의 대표 샤이닝 역시 초월자가 아닌가? 지금 이 상황은 돈으로 해결해야지 무력으로 뭘 어찌할 수 없다.
‘게다가 난 이제 촉망받는 배우이자 고위 능력자야. 요번 영화나 백과사전 같은 한탕이 없더라도 10억이 연봉쯤은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 마냥 지구를 버리고 처박히는 것도 아까운 일이다.
‘그래! 그까짓 400억이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나라면! 나라면…….’
거기까지 진행된 생각이 또 멈춘다.
‘시발. 40년이나 걸리네.’
역시 400억은 너무 큰돈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기다리고 있던 직원이 깍듯한 인사를 건넨다.
“어서 오십시오. 킬리언스님.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바통터치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로 이동하자 먼저 앉아 있던 성재가 손을 들어 날 반긴다.
“재연아!”
녀석을 훔쳐보던 여직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 둘이 친한가 봐요.] [그런데 하는 게임은 좀 깬다. 아저씨들이나 하는 게임이라던데.] [돈 많으면 할 수 있죠! 못할 건 또 뭐예요?] [하긴. 아…… 성재님 너무 잘생겼다.]민첩 스텟에는 별로 투자하지도 않았는데 컬렉션 보상만으로도 쓸데없이 예민하다.
“너도 왔네.”
“당연히 왔지. 리벤지가 문 닫냐 마냐의 기로인데.”
그의 말대로 간담회에 모인 유저들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그들 역시 스카이 소프트의 대표인 샤이닝의 인터뷰를 봤기 때문일 것이다.
“……최악은 그가 진실의 선언을 했다는 겁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목표를 이루려 들 텐데…….”
“아니, 멀쩡히 잘 굴러 가는 게임을 지 맘에 안 든다고 서비스 종료라니요. 이거 정의신한테 걸리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주식은 올라서 이득이지요.”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도, 화를 내는 사람도, 이 상황을 기꺼워하는 사람도 있다.
⤷너와나의 : 아! 미리 사 뒀어야 하는데! 진짜 미친 듯이 오르네.
⤷대주주가될 거야 : 2500만 가즈아!
⤷지혜투자 : 아 이거 더 오르는 건데 파는 사람이 없네.
⤷나는나인걸 : 진짜 스카이가 네메시스 먹나? 진짜로?
⤷대주주가될 거야 : 모르겠고 가즈아! 가즈아!
주식판 역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진실신과 정의신의 영향으로 인해 거짓 정보를 이용한 사기나 작전 등이 존재하지 않는 34지구에서 주식이 이 정도로 요동치는 이벤트는 결코 흔치 않다.
하물며 그 대상이 작은 중소기업도 아니고 대기업이라면야.
“안녕하세요. 네메시스의 대표 배사랑입니다.”
그때 배사랑 대표가 모습을 드러낸다.
작년에 보았던 활기와 자신감이 가득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피로와 분노에 찌든 얼굴.
그녀는 형형히 빛나는 눈으로 수많은 사람 앞에 섰다.
“네메시스는 지금 괜찮은 겁니까?”
“스카이 소프트에서 지분을 25%나 차지했다고 하던데요!”
“리벤지 서비스는 끝인가요?”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질문한다.
그들은 유저이기 이전에 사업가인 사람들. 모호한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당연히 괜찮습니다. 리벤지는 여전히 매출 1위의 게임이고 우로보로스로부터 특허를 받은 세컨드 라이프의 개발사입니다!”
사랑은 차분한 태도로 유저들의 질문에 대답했다.
유저 간담회가 아니라 청문회장을 연상케 하는 날 선 질문과 대답.
놀랍게도 사랑은 잘 대처하고 있었다.
‘하긴 논리적으로는 빈틈이 없지. 스카이 소프트가 아무리 커도 네메시스를 먹는 건 말이 안 된다.’
네메시스가 널리고 널린 중소기업도 아니고 매출 1위의 게임을 개발한 대기업. 부채가 과하게 많은 것도 아닌데 적대적 M&A가 상식적으로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러나 문제는…… 이미 상황이 충분히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거야.’
매출 1위의 리벤지를 가지고 세상이 놀랄 기술을 발명한 네메시스의 주식이 추락하던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나뿐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네메시스 소프트의 상황이 뭔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이건 정말 말이 안 돼. 설마 게임마스터께 밉보이기라도 한 건가? 과도한 과금 정책 때문에?”
“말도 안 돼. 게임마스터께서 이런 하찮은 일에 관심을 보일 리 없지 않나?”
“이건 특급 기밀인데 말이야. 초월자들 사이에서…….”
수근거리는 사람들.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아, 이거 정말…… 분위기가 심상치 않군.’
성재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은 듯 불안한 표정으로 소근거린다.
“와. 이거 쎄한데. 리벤지 진짜 문 닫는 것 아니겠지?”
사랑은 적극적이고 차분한 태도로 유저이자 주주인 존재들을 설득하려 들었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에도 사람들의 술렁임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논리에 빈틈이 없고, 그 모든 게 진실임에도 사람들을 설득할 수가 없다.
“잘 부탁드립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는 사랑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호텔을 나선다.
성재가 배우들끼리 모이는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다고 꼬드겼지만 내게는 선약이 있다.
“이것으로! 제53회! 스카이 소프트의 유저–! 간담회를–! 시작–! 하겠습니다—!”
우렁찬 사회자의 포효와 함께 축포가 터진다.
콰콰쾅!
“와아아아!”
스카이 소프트가 통째로 빌린 놀이공원이 십만 명도 넘을 듯한 유저들로 바글바글하다.
실제로 이 장소에 찾아오지 못했더라도 접속기를 통해 연결된 숫자는 그 5배는 된다고 한다.
“와…… 정말 분위기가 사뭇 다르네.”
네메시스 소프트의 유저 간담회는 아무나 참가할 수 없다. 충분히 과금한 VVIP만이 초대장을 받아 찾아오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막대한 선물과 서비스를 받는 것.
그러나 스카이 소프트의 유저 간담회는 다르다.
셀 수 없이 많은 유저들이 스카이 소프트에서 지금까지 나왔던 게임들을 체험해 보거나 스카이 소프트의 역사를 주제로 한 퀴즈쇼에 참가했다.
대전 게임으로 우승자를 뽑기도 하고 새로 나올 게임들을 시연하기도 한다.
놀이기구는 놀이기구대로 돌아가는 중.
사람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즐겁게 놀았다.
[모두 즐길 준비됐나—!]“아, 초대 가수도 있네.”
놀이공원 한편에 마련된 무대에 나조차 얼굴을 알 정도로 유명한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린 왕자란 별명을 지닌 가수였는데, 귀여운 별명과 달리 100세를 넘긴 어르신이다.
[이미 지친 마음~ 다잡을 수 없어~]쩌렁쩌렁하게 노래를 부른다.
과연 경력이나 명성만큼 훌륭한 가창력과 능력자들의 마음을 진탕시키는 영파(靈波).
노래를 부르다 흥이 올랐는지 그가 마이크를 내민다.
[자, 다 같이!]“흐으으으응~흐응~”
“괜찮~~ 흐응~~”
“너무~~~흐으으응~”
멀뚱히 앉아서 말을 뭉그러트리는 관객들의 반응에 어린 왕자의 얼굴이 굳는다.
[……아니, 너네 내 노래 몰라?]“이제는~ 흐으으응~”
“아무리~~ 흐으으응~”
사방에서 허밍만 난무한다. 워낙 유명한 노래라 들어는 봤는데 가사를 모르는 것이다.
당연하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저 가수를 좋아해 모인 이들이 아니라 진성 게임 마니아들.
아무리 유명한 곡이어도 잘 모른다.
딱.
가수도 관객도 서로 어색하던 그때, 불현듯 놀이공원이 어두워진다.
그리고.
[LOST]커다란 글자가 놀이공원 중앙에 떠오른다.
[World]“와아아아아!”
“드이어! 드디어!”
“샤이닝 형 사랑해!”
어린 왕자의 노래에는 시큰둥하던, 어르신이 애쓰는 모습이 미안해서 허밍이라도 해 주던 착한 게이머들이 단번에 폭발한다.
천지를 울리는 함성. 발 구름에 울리는 땅.
열광하는 그들의 모습에 무대 위의 어린 왕자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 그렇게 애써도 일어나지도 않더니…… 그래! 뭐 돈 받았으면 된 거지! 스카이 소프트 만세!”
“스카이 소프트 만세!”
“와아아!”
열광하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 속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렇군. 이건…… 못 이기는 싸움이다.’
분명 리벤지는 전 세계 매출 1위에 빛나는 게임.
그러나…… 플레이어의 숫자나 인지도, 평판 등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아니, 솔직히 말해 미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안 좋다.
‘농담 아니고. 이 정도면 스카이 소프트에서 비겁한, 정의롭지 못한 짓을 해도 판정은 반대로 뜰지 모를 정도다.’
스카이 소프트가 법에 어긋나는 수를 써 네메시스를 공격한다 해도 많은 이들이 ‘사악한 돈벌레들을 향한 참교육’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의 차이.
결국, 나는 결심했다.
“네메시스 소프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주식 판매 건입니다. 대표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주식이라면 얼마나…….”
“2,000주 정도입니다.”
“에, 흠. 말씀 올려 보겠습니다.”
평상시라면 어림도 없었을 일이다.
주식이 2천 주건 2만 주건 약속도 없이 어떻게 네메시스의 대표를 만난단 말인가?
그러나 지금 네메시스는 100주의 주식도 소중한 풍전등화의 상황.
나는 곧 네메시스의 대표, 배사랑을 만날 수 있었다.
“전에 뵈었던 분이군요. 오랜만이에요. 한재연 님. 못 본 사이에 아주 유명한 배우가 되셨던데요?”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내게 인사한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제가 가진 주식 전부를 네메시스에 판매하겠습니다.”
“감사한 말씀이에요. 다만 저희가 자금의 흐름이 좋지 않아서 대금을 치르는 데 시간이…….”
“돈은 필요 없습니다.”
“……네?”
사랑의 얼굴에 의혹이 깃들었다가, 이내 경계심이 깃든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내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혐오감까지 맴돈다.
“고객님이 가진 주식을 돈으로 환산하면…… 400억도 넘습니다. 그마저도 더 오를 가능성이 있고요. 그런데 그걸 포기하고…… 다른 걸 요구하겠다는 건가요?”
친절하던 미소가 사라지고 그 얼굴에 참담함이 깃든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네, 다이아로 주십시오.”
“어떻게 그런 요구…… 네? 뭐라고요?”
잠시 내 말이 이해가 안 된 듯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랑에게 말한다.
“다이아로 달라고요. 제 주식. 다이아에 팔겠습니다.”
“네에에?”
혐오와 경계심이 사라지고 거기에 황당함이 깃들었다. 쓰레기를 보던 눈이 미친놈을 보는 눈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에게 말했다.
“대신 10배.”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안 되면 아르데니아로 튄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었다.